화성 3.1운동 만세길
▲방문자 센터에 들어오면 맨 처음 볼수 있는 대형 마크다
이 마크엔 화성시 3.1운동의 의미인 만세의 표현이 담겨있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형상이네?
최고의 굿 아이디어 입니다.
▲조암 터미널에서 09:10분에 출발하는 호곡리행 5-2번 버스를 탄다.
▲약 10여분 만에 방문자 센터와 가까운 화수 사거리에 하차한다. 방문자 센터에서 접수를 마치고 스템프 북을 받아 다시 화수 사거리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여기까지 진행 방향으로의 길 안내 표시가 없다.아쉬운 점이고 이번 주말에 건의를 해야하겠다.
▲방문자 센타 건물을 본따 만든 마을 버스정류장 모습.
▲화성 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는 방문자들의 휴식과 체험을 위한 공간이다.
여산 宋씨 가문이 100여평 땅을 기증하고 우정 보건지소 건물을 리모델링 하였으며 벽돌을 쌓아 올려만든
수직적 기념비와 함께 재생의 의미를 드러내며 내부공간에서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방문자센터 모습. 태극기도 3.1 모형을 이루며 꽂혀있다.
▲어두움을 빛으로 승화하는 듯한 공간
▲센타 내부모습
▲화수 사거리에서 차도를 따라 100여m 정도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꺾어진다.
전봇대에 붙은 첫번째 이정표를 잘 보고 가야한다.알바하기 쉽고, 놓치기 쉬운 지점이다.
▲벌써 노오란 원추리가 활짝 피어 군락을 이루고
▲모심기로 바쁜 시골 풍경이다,메꽃이 반겨주는 주곡2리 마을회관도 지나고,
▲봄꽃들이 지고나면 또 여름 꽃들이 피어 길손을 반겨준다.해당화와 꽃양귀비, 접시꽃망울 ,초롱꽃
▲전형적인 고향의 시골 길이다. 장미매발톱과 창포꽃
▲모내기가 끝나고, 풍년을 기원해 보며...
▲차병혁 선생 생가 가는 길에
▲장안면 주곡1리 마을회관과 꼬부라진 전형적인 시골길
▲차희식 선생(1884~1938)1919년 4월3일 만세운동 당시 살았던 집이다.
주곡리 주민들과 함께 장안면 우정면 사무소와 화수리 주재소를 불태웠고
일본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처단하는등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하여 1968년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 하였다.
그가 살던 집터다. 아쉽게도 지금은 폐가로 남아있다.
100여년이 지난 후세에 이르러 스템프 도장함이라도 설치되어 있어 이 집을 보고 간다.
그래도 우리 말고도 계속 찾아주는 이가 있으니 그의 뜻 숭고하게 길이 남으리...
▲생가 내부 모습...ㅉ
▲생가를 나오면 5월의 농촌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고...
▲샤스타데이지 꽃양귀비 금계국이 절정인 5월이다.
▲장안면 버들 저수지, 주말을 맞아 세월을 낚고있는 꾼들,젊은 시절 이곳으로 낚시 한번 오려다
끝내 못 와 보고 낚시를 접은 지금에서야 이곳을 지나게 되니 버들지의 감회가 새롭다.
▲차병혁선생 생가, 차병혁 선생은 (1889-1967)장안면 석포리 출신으로 만세꾼들을 인솔하여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경성 법원에서 징역3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이에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62년 독립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스템프함과 분홍 낮달맞이꽃, 생가 뒷쪽 집엔 저 할머니가 홀로 쓸쓸히 살고 계신다고...
툇마루에 적적하게 앉아계신 저 할머니가 87세 고령의 차병혁 선생의 孫婦이시다.
연로하신 할머니의 손을 잡아보며, 잠시 지난 이야기를 찬찬히 엿쭈어 보았다.
차병혁 선생이 생전에 계실때 손수 수발하셨다고 하시며 희미한 옛 기억을 떠 올리시며
한숨을 쉬신다.ㅉㅉㅉ
슬하에 3남 2녀 5남매를 두셨고, 자손들은 모두 외지로 나가고 홀로 사신단다.
갈길이 바쁘니 부디 건강하시라 인사 드리고, 씁쓸하고 죄인같은 무거운심정으로 생가를 뒤로하고..
마당에는 분홍색 낮달맞이꽃이 만개하여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듯
▲만세뜰을 재현해 놓은 시설물
▲석포2리를 지나며,시골에도 작은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요즘엔 시골 사람들이 토지에 공장을 지어 세를 주고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하더니....
▲목장도 지나고. 젖소목장과 한우 목장이 많이 눈에 띤다. 엔시레이지를 만들 귀리, 목초지대
▲뒤 돌아보며... 길은 차도로 이어지며 긴긴 차도를 걷게 된다.
▲어느 가정집 앞에 잘 키운 화단에 다육이가 예쁘다. 구경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시더니
안에도 있다며 뒷곁으로 안내하시더니 커피까지 한잔 주시며 쉬어 가시란다.
대화를 하다보니 학교 후배분을 여기서 만나 반갑게 맞아주신다.
뽑아다 놓은 연한 상추까지 담아 주시며
지날때 또 들리라고... 시골의 후한 임심이 아직도..
▲수촌리 교회 가는길에, 공장 담장에 핀 5월의 장미..
▲개죽산 횃불시위터.1919년 개죽산을 시작으로 횃불을 피우며 만세를 불렀다고 하며
인근 지역으로 퍼져 밤마다 일제히 횃불이 올랐다고 한다. 개죽산 스템프 함
▲시골길의 운치..좌측으로..
▲백낙열 집터에도 스템프함이 있고,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2002년에 건국 만세포장을 받았다고 한다.
▲밭에서 일하는 동네 분들과 잠시 대화하며 인사도 나누고 간다.
▲수촌교회.당시 만세운동에 근거지가 되었다고 교회도 파괴하고
동네 가옥 42채중 38채가 불에 타고 보복과 탄압이 가해졌다 한다.
▲장안 공원의 3,1독립운동 기념비.
▲수촌 1리도 지나고 옛 장안면 사무소터로 이동한다.
▲장안공단을 지나며 찾아든 중국집,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이제는 차도를 따라 장안 공단을 지난다.
▲차도를 따라가다 좌측으로 장안면 사무소터를 찾아..
▲옛 장안면 사무소 터 스템프함. 만세꾼들이 당시 면장에게 만세꾼에 동참할것을 요구하며
일제 식민지배에 저항의 표시로 면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쌍봉산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옛 장안면 사무소터를 뒤로하고 쌍봉산으로 이동하다 만난 처가의 모내기를 도와주러 오셨다는
서울분 새참 때가 안되어 막걸리도 한잔 못 나눠 아쉽다고 하신다. 말만 들어도 고맙지요.ㅋ
▲
▲이 부근에 길안내 표시가 없다.
▲삼괴 중 고등학교 부금에 길안내 표시가 안되어 있어서
오전에 뒤에서 불필요 하게 붙어있는 리본을 떼어서 갖고 다니다가 이곳에 달고 간다.
잘 모르면 우가돈가를 물어보면 될것 같다.쌍봉산 입구에 있다.
▲쌍봉산 입구, 시간 때문에 정상까지 못 가는게 아쉽고,다음에 걸을 땐 정상을 올라 보리라.
쌍봉산 남쪽 봉우리는 화성지역 3,1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지다.
▲오늘의 종점으로 정한 조암리에 도착 한다.
조암리는 1943년 쌍봉산에서 내려온 만세꾼들이 조암리를 지나 우정면 사무소로 이동하여
면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화수리 주제소를 습격하였다.
이에 일제는 만세운동에 보복하고자 조암리 일대의 큰 집들을 골라 10여채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트레킹을 마치고...
화성 3.1운동 만세길이 1919년도에 만들어 졌지만 아직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타 카페에서 그 사실을 알게되어 아내와 함께 걷기로 했었는데 오늘이 그 날이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그늘이 없는 길 일거 같아 더 덥기전에 2주간에 걸쳐 끝 내려고 그 첫 걸음을 뗀다.
전날 설친 잠을 깨고 새벽부터 준비하여 수원역에 도착 07:40분에 출발하는 9802번 조암행 버스에 올라
발안을 지나 우정읍 조암 터미널에 08:53분에 도착한다. 09:10분에 호곡리로 가는 5-2번 버스에 올라
09:17분에 화수 사거리에 하차하여 방문자 센터를 찿아 간다.
화수 사거리에서 보면 방문자 센터라고 이정 표시가 작게 달려있어 찾기 쉽다.
다행이 방문자 센터 직원이 일찍 출근하여 10시까지 기다리지 않고 쉽게 접수하고 설명도
들으며 스템프 북도 받고 두번째 도장함이 있는 차희식 선생 집터로 출발한다.
버스에서 하차 한 화수 사거리로 다시 나와야 하며 사진에 설명대로 사거리를 건너 직진으로
100여m쯤 진행하다 좌측 으로 꺾인 길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이곳부터 이정 표시가 있고,
생각보다 대체적으로 리본이나 이정 표시는 잘 되어 있어 끝 날때 까지 알바는 하지 않았다.
1919년 4월 3일 삼일 만세운동에 화성 장안 우정 발안 지역에서 격하게 일어났던 것을 상기하며
그 분들이 만세를 부르며 걸었던 길을 오늘날에 우리가 다시 걸어보는 계기가 되어 고맙고
길을 만들고 내어준 분들께 감사 하며 걷는다.
너무 유명한 향남면 제암리 교회의 잔악했던 일제의 사건은 학창시절에 배우기도 했지만
우정 장안의 만세길은 처음 들어본 이야기라 선조들이 싸운 독립의 숨결을
느껴보며 걷는 길이기도 하다.
우정 장안의 여러분들이 만세운동에 앞장서서 일제와 맞서 싸웠다든 고되고 힘든 독립운동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장을 돌아보며 착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걷는다
그 분들의 숭고한 얼을 되새기고 이어 받아 나라 사랑으로 승화되는 다짐을 가져야 하겠다.
시간의 길을 따라 100년전 그 분들을 기억할 수 있고, 그 분들의 뜻을 기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뜩 드는 이 시간...
필자가 태어난 곳이 경기 화성 비봉이다.
젊은시절 우정 장안을 여러번 지나다녀 보았지만 만세길을 모르고 있었다는게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화창하고 좋은 날씨에 고향의 만세길을 걸어 본 다는게 늦은 걸음이지만 무언가 뿌듯함도 밀려온다.
50몇년 전과는 많이 변한 시골 모습에 놀라며 예전의 쌍봉산은 뾰족한 두개의 봉우리가 참 높아 보였으며
멀리서도 아~저기보이는 저 산이 쌍봉산이구나 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향 땅의 만세길을 걸으며 자부심과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한번 짚어보는
귀한 시간 이였고,아직 완주는 아니지만 이번 주말에 남은 길을 마무리 할 계획으로 있다.
함께한 아내에게 고생했다고 전하며 남은 길도 조암 5일 장날에 맞춰 일찍 끝내리라 생각하며 마무리 한다.
조금은 어두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길이지만 온갖 꽃들이 미소지며 마중해 주었기에
마음편히 걸었던 길...화성 3.1만세길,당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후대는 오늘도 이렇게
꽃길을 걸었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여기까지....
감사 합니다.
2021.5.22.
첫댓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도
어제,오늘(6월9일~10일) 걸었습니다.
아직 걷기 초보(?)라
알바도 많이하고
완주 후 센터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라 문은 잠겨있구...
다행이 통화가 되어
완주 수첩을 비밀장소(?)에 놔두고 가면
특별히 보내주겠다는...
글과 사진을 보면서
행.복해지네요~
경험했다고...
잘 보고 갑니다.
옆지기님과
행복한 걸음,건강한 걸음하세요.
아~ 저의 카페를 다녀가셨군요.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3,1 만세길을 완주를 하셨군요.
축하 드립니다.
좋은 추억 남기셨습니다.
제가 후답자를 위하여 부실한 곳에 리본이 꼭 있어야 할
여러 곳에 옮겨 달고 왔는데도 알바를 하셨군요.
안타깝습니다.
둘째날 코스 조암 터미널에서 각리 죽리를 지나 방문자 센타 방향으로
몇 군데 리본이 없어서 보충해서 달고 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관리자를 못 만나셨군요.
다행이 특별히 보내준다고 하니 좋으셨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한길 이어 가세요.
다시한번 축하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