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6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위로’ - 1. 위로부터의 위로(Comfort)
본문 : 고린도후서 1장 3~4절(2~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새번역>
최근에 따뜻한 위로를 받아 보신 기억이 있으십니까? 힘들고 지쳤을 때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손 내밀어 주던 따뜻한 손길을 경험하신 적이 최근에 있으십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말을 다 들어준 경청의 사람이 요즘 여러분 곁에 있으셨습니까? ‘위로’란 단어가 생각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많이 원하지만 좀처럼 ‘위로’ 받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위로 그 자체가 사치 같아서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으로, 볼 것으로, 유흥으로 위로를 받고자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로의 방법은 좀처럼 제대로 된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행동들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왠지 모를 허전함, 무엇인가 원인 모를 두려움, 미래에 대한 염려 등이 함께 찾아오며 다시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바로 그 공허함과 힘듦이 공존하는 그 때가, 바로 ‘위로부터의 위로’를 구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입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드디어 세상에서 찾는 위로가 아닌 하늘로부터 오는 위에서부터 오는 위로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 개역개정>
조금 더 풀어서 번역된 새번역으로 다시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마태복음 5장 4절, 새번역>
여기서 조금 더 풀어서 번역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더 원어에 가까운 해석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5장 4절, 공동번역>
혹시 읽은 이 구절들에서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모순’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혹시 발견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결코 동시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슬픈 감정이 있는데 어떻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이건 진짜 모순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래서 머리로 생각하는 성경 구절은 마음으로 와 닿지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슬픔과 행복은 공존할 수도 없고, 연관 검색어가 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슬픔을 통해서 하늘의 위로를, 위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은 결코 받을 수 없는 위로를, 슬퍼하는 사람은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세상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어서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이야말로, 드디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열렸기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피조물의 입장에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아주 고약한 취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대상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혼자로 만들어 버리시는 취미가 있습니다. 질투의 하나님답게 고립된 사람이 되어 버리게 하십니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과의 만남 이 후에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행복이기에 순서를 바로 잡아 주시기 위하여 혼자로 만드시고는 슬픔이 행복임을 알게 하시고, 새로운 출발선에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의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혼자 서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너무도 사랑하사 만나고 싶어서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혼자가 되게 하셨고, 만나셨고, 모든 슬픔을 위로하셨고, 결국엔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심으로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야곱은 왜 그토록 험악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까? 바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삶이 싫어서 도망쳐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1:1로 만나게 되었을 때, 그의 인생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로를 통해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자였던 모세는 광야로 쫓겨나 양을 치며 외로움과 고독의 40년을 보냅니다. 왕자에서 양치기라니 도대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이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그런 극한 사지로 몰고 가십니다. 그리고는 거룩한 만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위대한 계획을 품고 계시던 하나님은 슬퍼하는 모세를 위로하심으로 무엇이 행복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많은 시간동안 쫓겨 다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쫓겨는 다녔지만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쫓겨 다니지 않고 평안해지자, 하나님과의 동행을 저버리고 죄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철저히 외로웠던 그 순간이 오히려 행복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부터 오는 평안과 위로와 왕의 권세와 모든 능력, 그 어떤 것도 필요가 없던 시기였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위로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상에서 오는 평안을 누리는 순간부터는 왕궁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남의 옥상이나 훔쳐보던 삶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을 포함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보면서 정말 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밸런스 게임에 대해서 빠르게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면 아마도 평생에 우리를 쫓아다니는 골칫거리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없이 평안한 삶 vs 하나님과 함께 고난의 삶
질문을 보니 고민되십니까? 마음은 하나님과 함께 고난의 삶인 대 사실은 하나님 없이 평안한 삶이 더욱 구미가 당기지는 않으십니까? 그런데 사실 고린도후서 1장을 통해 답을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참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5~7절, 새번역>
여기 나오는 말씀의 순서를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고난이 넘치는 것과 같이, 위로도 또한 넘칠 것입니다. 위로가 넘치고 고난이 넘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먼저 있고, 위로도 또한 넘칠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는 것도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특이한 순서로 ‘고난 후에 위로’라고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난의 삶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고난이라는 슬픔의 삶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행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 드리자면, 드디어 하나님의 위로를 넘치게 받을 수 있기 절호의 기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고난도 없고 하나님의 위로도 없는 삶보다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의 위로도 받을 수 있는 삶이 더욱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슬퍼하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위로부터 오는 위로는 지금 내 삶 속에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깨닫게 되면 우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 새번역>
바울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누가복음 9장 24절, 새번역>
분명히 죽는 것도 슬프고, 목숨을 잃는 것도 슬픈 것인 대 바울은 도리어 유익이라고 말하고, 오히려 목숨을 구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묵상을 통해 이 말씀까지도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1~12절A,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요즘 위로부터 오는 위로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아니 이렇게 바꾸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죽어가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주변에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공감하며 함께 슬퍼하고 계십니까? 슬퍼하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혹시라도 이런 멋진 슬픔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괴롭고 지치고 힘드십니까? 잘 풀리지 않아, 잘 해결되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공허하고 막막하고 외로우십니까? 그런 슬픔으로 가득하십니까?
고난이 있으십니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고 계십니까? 말씀을 지키는 것 때문에 애매한 고난을 당하며 답답함을 느끼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부끄러움과 감사를 반복하고 계십니까?
이런 고난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난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토로하지 못 할 만큼 처절하고 꼬인 인생의 고난 그 차제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슬픔의 종류라도 괜찮습니다. 그 어떤 고난이라도 괜찮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위로에 지치셨다면 이제 위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을 순간이 된 것입니다.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고약한 취미가 바로 당신에게도 임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을 원하고 계십니다. 당신과 소통하기를 원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위로하기를 원하시며, 사랑하며, 함께하며, 함께 걷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생 최고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오로지 하나님을 만남으로 주어지는 위로부터의 위로가 임하는 순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감격과 감동의 순간이 바로 우리에게 펼쳐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위로부터의 위로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4장 27절, 새번역>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평화, 평안,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위로부터의 위로를 받은 자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요한복음 4장 14절, 새번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직접적으로 위로부터의 위로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마가복음 1장 11절, 새번역>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평안!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 이 넘치는 위로부터의 위로를 삶 속에서 반드시 경험하게 되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주께 구한 두 가지 바램 + 주 품에 후렴
#오늘의말씀, #2024년10월설교시리즈, #위로, #Comfort, #위로부터의위로, #고린도후서1장3_4절, #살아나서살리는교회,
#김광수목사, #2024년10월6일주일설교문, #10월6일주일설교문, #애통하는자, #슬퍼하는사람, #위로를받을것,
#하늘의위로, #위로부터오는위로를받을수있는기회, #아브라함, #야곱, #다윗, #모세, #하나님없이평안한삶,
#하나님과함께고난의삶, #고난이은혜인이유, #인생최고의기회, #평안, #영원히목마르지않는물,
#마가복음1장11절, #사랑하는자녀, #경기도광주시교회, #문형동교회, #봉골길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