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내 또래들이 유행에 미쳐있고 사랑에 미쳐있을 즈음에 나는 시에 미쳐 있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시를 위해 가출도 저질렀고, 술병도 터뜨렸고, 이십대에 시를 쓰기 위해 사랑도 빌렸다. 허나, 그렇게 시작한 시는 종이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순간만큼만 가슴이 벅찼을 뿐 이내 땅에 여지없이 곤드라져 쳐박히곤 했다.
시를 위한 열병에 괴로워한더 나날 끝에 스승을 만났고 그 분으로 인해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쓰는 시와 새롭게 만났다. 스승님께서는 삶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발에 채이는 돌멩이 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따뜻한 안부를 건네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시인으로서 무한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오늘의 나를 있게해 주신 석화 선생님께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은 시를 뽑아주신 [창작21] 선생님들께 밑거름을 주신거라 여기면서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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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 1986년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생, 중국 연변대학 조선어문학과 4학년 재학 중.
[심사평]
心眼으로 觀하라
최종심에 오늘 분들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강격희, 전은주, 심인식 세 사람을 뽑았다.
공자의 사가시론에 의하면 시인은 흥을 일으켜야 하고(可以興) 잘 볼 줄 알아야한다(可以觀)고 했다. 시인은 모름지기 흥을 일으켜 독자를 감동시켜야 하고 그런 시를 쓰기 위하해서는 피상적인 겉핥기식의 관찰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남이 보지 못하는 사물의 내면까지를 깊이 읽어 낼 수 잇어야 한다. 헌데, 선에서 탈락한 응모작들은 대부분 감흥이 없다.(요즘 기성시단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것은 시인 아니어도 누구나 볼 수 있는 상식적인 눈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은가? 누가 빤한 소리에 감동을 받겠는가.
이런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세 사람을 만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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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의 시는 깔끔하게 정제된 형태미와 시조가락인 듯 부드러운 리듬에 실려 퍼지는 고국의 정서가 잘 조화를 이룬다. 낡은 듯하지만 무잡한 요즘 우리 시단에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쁘게 솟는 너의 미소 스케치하는 봄날"이나 "그리움에서도 햇봄 냄새 나려나?" 같은 구절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이다. 허나 "빈 하늘은/ 이방인의 무너진 사랑이다" 같은 표현은 너무 생경스럽고 "산은/ 겨울이면 춥다"는 상식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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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일정한 가능성을 보여준 세 분의 등단을 축하하며 앞으로 세 분 모두 상상력의 깊이를 더하고 폭 넓은 현대시의 감각을 더욱 풍부하게 익혀서 우리 시단에 없어서는 안 될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연변의 소식을 주어서.
건강하시지요?
예, 회장님. 저희는 요즘 상해의 아이까지 방학으로 집에와서 간만에 "이산가족 대 상봉"을 이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지내신다니 반갑습니다. 저는 2주후 우크라이나로 떠납니다. 아직 최종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하리코프 정수리고려인학교로 부임할 듯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중국동포와 우크라이나 동포 문학회까지 아우르는 교류를 이어가볼 생각입니다.
그렇구나.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디 가서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