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어찌나 적응의 동물이던지.
무인도에서 4년이란 시간을 이겨냈던 톰 행크스('캐스트 어웨이')가 이번엔 공항에서 9개월을 버텨낸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터미널'은 뉴욕 JFK 공항에서 9개월을 지내야만 했던 순수한 남자의 이야기다. 지난 88년 입국 서류를 분실, 파리 드골 공항에서 11년을 기다렸던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주인공 빅토르 나보스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게 웬일! 오는 동안 고국에 쿠데타가 일어나 무국적 인간이 돼버린 것. 뉴욕을 코앞에 두고 공항 67번 게이트에 짐을 푼 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는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날을 고대하며 공항에서 생존하는 법을 익힌다. 영어 한마디 못하던 빅토르가 일자리를 구하고, 친구도 사귀고, 아리따운 여승무원과 로맨스를 키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웃음과 감동이 끊이지 않는다.
톰 행크스는 어눌한 표정과 말투로 황당무계한 상황에 처한 빅토르를 실감나게 연기한다. 힘든 와중에도 남을 배려하는 빅토르의 순진무구한 모습은 마음 한구석을 훈훈하게 데운다.
세계 영화계의 절대파워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후 선보이는 '터미널'은 최강의 드림팀이 뭉쳐 촬영 당시부터 화제를 낳았다.
에피소드도 풍부하다.
9.11 테러 이후 보안이 더욱 강화된 실제 공항에서의 촬영은 불가능.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은 캘리포니아 팜데일의 1700평 거대한 부지에 '제2의 JFK 공항'을 만들었다. 200여명이 20주동안 매달린 결과물.
영화에 출연하는 여러 조연들 역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인물을 발탁했다. 공항의 관리인 '굽타'역을 맡은 85세의 쿠마 팔라나는 영화속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추방돼 마술과 접시돌리기를 하며 살아온 전력의 소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