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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이론과 실재 스크랩 性命雙修法
이현수 추천 0 조회 119 13.01.02 10: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天仙正理(性命篇)

東亭 말씀에`學問가운데 가장 위대한 학문은性命에 관한 것이다` 라고 했다.
性命에 관한 학문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래서 이제 性命學의 玄妙한 이치를 세상에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이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는 性과 命이 하나였다.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자라면서 形體와 기운이 차차 완성되어 드디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데, 어머니 몸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性과 命이 두 갈래로 분리된다.
이로부터 性은 命을 보지 못하고, 命은 性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幼年을 지내고 少年에서 壯年, 老年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한다.
아! 슬픈 일이로다.
그래서 上古聖人들이 크게 자비를 베풀어서 후세학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性命에 관한 비결을 연구하여 철학적인 체계와 과학적인 이론을 세워서 후세학자들을 가르쳐서 다시 한번 復活再生시키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다시 내 몸을 뱃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나의 性命을 새로 만들고 神氣를 불어넣어 始元의 구멍으로 들여보내어 다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古人들은 이것을 性命學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러므로 性命學은 한말로 말하면 無病長壽하는 학문이며 永生不死하는 학문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法方으로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즉 `性理와 命理`를 함께 닦는 이른바 `性命雙修法` 이 그것이다.
性과 命을 雙修하는 법도를 仙道라 하고, 藍輿가 결합하는 것을 凡道라 한다.
凡道와 仙道의 원리는 같다. 凡道는 여자가 남자한테 시집을 가는 것이고, 仙道는 남자가 여자에게로 장가를 드는 것이다.
凡道는 陰이 陽을 맞이하는 것이고, 仙道는 陽이 陰을 정복하는 것이다.
凡道는 水火未濟이고 仙道는 水火旣濟이다.
凡道는 順行하고 仙道는 逆修한다.
順行하면 나서 죽음에 이르고, 逆修하면 永生不滅한다.


凡道는 여자가 아기를 밴 다음,  배 안에 콩알만한 것이 생겨서 배꼽 밑에 자리를 잡으면서 움직인다.
이것을 醫書에서는 胎原이라 한다. 胎原은 이로써 사람 몸 속에서 발생하게 된다. 이로부터 五臟 六附가 생겨나고 四肢와 百骨이 자라나서 몸밖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차차 자라면서 능히 눈으로 볼 수 있게 되고 귀로들을 수 있게 되고,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걸을 수 있으며, 또 능히 생각하고, 마음이 어질고, 의롭고, 지혜롭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능히 聖人도 되고 神人도 될 수 있으며, 능히 文章도 짓고 武術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이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리석은 남녀라도 서로 만나서 교배하면 거기서 하나의 胎가 생겨나서 사람을 만들 수가 있다.
仙道도 이와 같아서 性과 命의 기운을 교배시키면 자연히 몸 안에서 결합되면서 한 알의 콩알만한 丹이 생겨나서 배꼽 아래 자리 잡는다.
그리고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곧 性命을 영생토록 하는 上天所秘의 지극한 보물인 것이다.


 

돌이켜 보니, 과거 모든 聖賢들과 부처들은 丹書와 經典들을 무수히 지어내었으되, 이제까지 그 누구도 丹의 신비함과 道의 오묘한 眞理를 直言으로 밝히지 않았으며, 다만 비유와 상징으로써, 또는 어떤 형상과 별명을 써서 표현했으므로, 그 명칭이 무려 천 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그 많은 형상과 별명들이 다만 性과 命의 원리를 상징하지 않음이 없으며, 신비의 元竅[생명을 만들어 내는 구멍]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만일 이 신비의 구멍[元竅]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 道를 닦고 싶어도 마치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고 물 안에서 토끼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三峯祖師의 말에 `수련자가 玄關을 알지 못하면 마치 암실에 들어간 것과 같다` 고 하였다.
만일 玄關의 정체를 모르면 어디에서 藥物을 採取하며, 어디서 烹練하며 어디서 靈物을 만나볼 것이며, 어디서 만들 수 있으며, 爐鼎은 어디에 설치할 것이며, 周天은 어디에서 돌릴 것이며, 陽火는 어디에서 進火시킬 것이며, 陰符는 어디로부터 退出시키며, 卯酉는 어디에서 沐浴할 것이며, 小周天의 始終功夫가 玄關에서 用使함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玄關의 원리를 안다면 聖父와 靈母를 서로 교배시켜서 하나의 玄關을 창조해 낼 수가 있다.
照陽眞人이 이르되 `이 구멍은 범속한 구멍이 아니다. 乾坤이 합하여 되는 구멍이다` 라 하였다.
凡道는 胎原이 없으면 生男도 生女도 할 수 없다.


仙道는 玄關이 없으면 어찌 능히 神仙이 나오고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학자들은 먼저 玄關의 이치를 밝게 안 다음에 修行에 들어가야 한다.
마음이 主宰者임을 알게되면 道닦는 일은 매우 간단하고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玄關의 이치, 마음의 本質을 알지 못하면 더욱 번잡하고 더욱 어려워진다.
하늘이 있으면 반드시 땅이 있다. 낮이 있으면 반드시 밤이 있다. 陽이 있으면 반드시 陰이 있다.
그리하여 암컷과 수컷, 남자와 여자가 모두 상대성의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周易에 이르기를 `一陰一陽之謂道 [한 陰과 한 陽의 相助을 道라 한다]` 고 했고,
呂洞濱은 `玄篇種種說陰陽 二字名爲萬法王 [경전마다 陰陽을 말하는데 陰陽 두 글자가 萬法의 王이 된다]` 고 했다.
또 張三峯은 `女子無夫爲怨女 男子無妻是狂夫 [남편없는 여자는 원한 품은 狂女와 같고, 마누라 없는 홀아비는 미치광이와 같다]` 고 했다.
천하만사와 만물이 상대가 없는 것이 없다.
만일 능히 `二八同類` 와 `三五合一` 하는 이치를 알기만 하면, 한가지 법만 들어도 백가지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으며, 豁然貫通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 다시 평소에 丹書를 熟讀하고 깊이 연구 노력하면 모를 것이 없느니라.
그런 다음에 道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 수행도 날로 돈독해 지면 마치 구름에 가리었던 햇빛을 보는 것처럼 환히 깨침이 열리게 된다.
抱朴子는 말하기를 `세상에 더러는 道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 法을 알지 못하고, 또 眞師를 만나지 못하면 천하에 다시없는 奧妙한 일을 듣지 못하리라` 했다.
만일 年少한 사람이 이 공부를 한다면 즉각적으로 효험이 난다. 만일 즉석에 효험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선생은 가짜이다.
사람을 속이고 우롱하는 惡黨인 것이다.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道에는 세 가지 術法이 있다.
첫째는 採取, 둘째는 藥物, 세째는 火候이다.
이 세 가지 외에, 또 玄關이 있다.
張三峯은 `玄關의 眞法을 모르면 眞鉛을 採取해서 갈무리할 곳을 알지 못한다` 고 했다.
또 玄關을 알아도 採取를 모르면 照陽의 말에 `鉛遇癸生須急採 金逢望遠不堪當 [鉛을 癸에서 만나거든 급히 採取하라. 金丹을 보고도 사라지면 감당하지 못한다]` 고 했다.
다만 採取하는 법을 알더라도 만물의 이치를 모르면 照陽의 말에 `鼎器안에 眞種子가 없으면 물과 불을 아무리 교배시켜도 빈 가마와 같다` 고 했다.
또 다만 採取 藥物 玄關의 이치를 안다해도 火候를 알지 못하면 上陽子가 말한 `비록 外火를 가동시켜도 內符가 잠겨 있어서 응하지 않으므로 헛수고만 한다` 고 했다.
이로부터 한가지 한가지씩 순서에 따라서 공부해 나가야 하는데 火候에는 또 두 가지 법도가 있다.
하나는 文火, 하나는 武火이다.


여기에는 `九九 · 八十一` 의 歸納算法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는 아주 세밀한 법칙이 있다. 즉 `敎人見人打子` 하는 법이 있고, 또 여기에는 調息하는 법이 따른다.
능히 기운의 進退법을 아는 사람은 그 마음이 더욱 세심하고 미묘하여 져서 불과 몇 십번, 많으면 백여 차례만 호흡이 三焦위에서 머무르게 되면 숨이 짧고 급하다.
소위 신령한 거북이 천년을 사는 것도 호흡을 깊게 하는 까닭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햇빛이 오래 쪼이면 바다 물이 자연스럽게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가듯이, 호흡을 배꼽 아래로 길고 깊게 들이키면 몸 안에 있는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그 징후가 나타난다.
즉 先天의 氣가 생겨난다.
入藥鏡에서 말하기를 `先天氣 後天氣 得之者 常似醉 [先天氣와 後天氣를 얻은 사람은 항상 술에 취한 것처럼 된다]` 고 했다.

세상 만사에 天氣가 하강하고 地氣가 상승하여 거기서 만물이 생겨난다.
男精과 女血이 서로 화합하면 胎原이 생겨난다. 丹法도 이와 같다.
旋陽祖師가 말하기를 `與君說破我家風 太陽移居月明中 [그대에게 仙家의 家風을 설명하자면 太陽을 옮겨다가 밝은 달 속에서 살게한다]` 고 했다.
柯懷經은 말하기를 `日裏金烏 飛入廣寒 [해 속의 금 까마귀가 광한루로 날라 들어간다]` 고 했다.
모두가 先天氣와 後天氣를 조합시키는 표현이다.
心中의 陰氣속으로 腎中의 陽氣가 들어가서 陰氣를 陽氣로 同化시키는 것을 말한 것이다.
陰氣가 陽氣를 만나면 즉 安心安身 이 되어서 비로소 生氣를 얻어 살길을 찾게된다.
朝元子의 말에 `南邊血是砂中汞 北畔精爲水內鉛 [남쪽 심장의 피는 모래 속에 숨어있는 水銀이요, 북쪽 신장에 들어있는 정액은 물 속에 들어있는 납덩이[鉛]다]` 고 했다.


烘汞[水銀]은 心臟에서 생겨나는 火氣를, 鉛은 腎臟에서 생겨나는 水氣를 상징한 말이다.
馬自然은 鉛汞精中居 燒成無價珠. 到來兩個字 了盡萬家書 [鉛과 水銀은 솥 안에 들어가면 구워져서 다시없는 보물이 만들어지는데, 鉛汞(연홍) 두 글자의 이치만 알면 만 권 경서를 다 읽음과 같다]` 고 했다.
또 種離權은 말하기를 `際去鉛汞兩味樂 其他都是狂愚迷 [鉛과 汞(홍)의 두 藥物을 알지 못하고 다른 것을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친 자들이 하는 짓이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의 참뜻은 恒間에서나 선방에서 鉛汞에 대한 藥物의 원리도 모르면서 參禪을 한다, 修道를 한다하고 요상한 짓을 하면서 丹이 어떻고 道法의 씨가 어떻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가리키는 뜻이 된다.
그들은 절대로 鉛汞이 藥物이 되고, 藥物을 구어서 丹을 만드는 조화법칙을 알지 못한다.
모두가 道하고는 상관없는 것이다.
先天大道를 닦고자 하는 사람은 奧妙한 곳에서부터 一陽을 가동시킨다.
冬至는 한 해의 一陽이 처음 발동하는 때이다.
초승달이 西南 庚方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때는 한 달의 一陽이 발동하는 때이다.
子時는 하루의 一陽이 처음 발생하는 때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반드시 내 자신의 一陽이 생겨나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몸 속의 一陽은 즉, 外腎[陽根]이 일어나는 때이다.
아무 생각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을 淸淨이라 하고, 어떤 생각 끝에 일어나는 것을 混濁이라 한다.
이런 이치를 어찌 몰라서 되겠는가.
柯懷經은 말하기를 `一陽初動自心志 正時丹家下手時` 라 했고,
華陽祖師는 말하기를 `陽生之時가 기起手之時라 [마음이 동하는 때가 곧 수련을 착수하는 때라]` 했다.
능히 마음이 動하는 때, 陽根이 불쑥 일어나는 때에 進火작업을 시작한다.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머뭇거려서도 안 된다. 鉛을 還元시킬 때, 한 點의 汞을 영입한다.


이 대목은 煉精化氣할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百日功靈의 법칙대로 공부를 시작한다.
백일동안 法方대로만 닦으면 精이 氣化하는 것이다.
즉 人道에 있어서는 胞胎하는 것이고, 仙道에 있어서는 道胎하는 것이다.
비로소 玄關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玄關 안에는 道兒의 씨가 잉태하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 시작할 때에 어떻게 着手하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每日같이 시간표에 따라 巽風法을 쓰면 鉛이 녹아서 氣로 변한다.
精液이 달아서 氣化한다는 뜻이다. 棲雲先生이 말하기를 `사람이 五穀을 먹으면 陰精이 생기는데 이것을 단련하지 않으면 陰精이 怪異한 作亂을 하게된다` 고 하였다.
어떤 作亂을 하는가 하면 `喜, 怒, 哀, 樂, 慾` 에서 발동되는 온갖 못된 짓을 함으로써 사람의 몸과 마음을 피로하게 하고 불태워서 極에 이르면 性命까지 빼앗아 간다.
모든 죄악의 원인은 바로 陰精의 기운이 魔鬼로 변하여 사람을 해치고 망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잘 다스려서 수련을 하면 喜, 怒, 哀, 樂, 慾은 `仁, 義, 禮, 智, 信`으로 바뀌어서 마음과 몸을 安心 · 安身 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陰精을 어떻게 수련시켜야 하는가?
다음에서 들어보기로 하자.
처음에 空氣를 丹田에다 깊이 빨아들인다.
물이 끓어오른다.
위로 올린다.
위에 있는 불을 아래로 내린다.
물이 불을 만나면 스스로 氣化하게 된다.
蒸氣는 위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더운 김[蒸氣]이 全身을 돌아서 玄關자리에 들어가서 百脈으로 퍼져나간다.
全身이 마치 솥처럼 끓어오른다.
바야흐로 陰精을 구어 삶아 陽氣로 바꾸는 作業인 것이다.
이로서 陰鬼는 소멸하고 陽神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을 晝夜로 백일동안 하게되면 全身에 가득한 陰精은 완전히 소멸하게 되고 순전한 陽氣만이 남게되는데 이것을 乾體라 한다.
悟元子는 이것을 설명하여 `陰精은 五穀飮食의 精이다. 巽風 과 坤火로서 猛烹하고 極煉하지 않으면, 이것이 몸 가운데 있어서, 思想과 色慾을 일으켜서 마음을 어지럽힌다.` 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陰精을 구어 삶을 것인가 하면, 精神을 한곳에 모으고 호흡을 조정하며 코로 바람을 불어넣고 입으로 피리를 불듯 火氣를 불어내면 陰精이 벌겋게 달아서 先天의 元氣로 변하여 丹田에 들어가서 쌓이게 된다.


이것이 곧 한 알의 조그마한 丹이다.
불질하는 것을 `火候` 라 한다.
鑛石을 녹여서 쇠를 뽑으려면 용광로에 불질을 해야 한다.
鉛을 爐안에, 汞을 鼎器안에 넣고 굽고 달이려면 뜨거운 火候作業을 해야한다.
그런데 火候에는 武火는 爐안에 들은 鉛鑛을 녹이는 陽火이고, 文火는 鼎안에 들은 汞을 익히는 陰火이다.
武火는 藥物을 채취하는 强한 불질이고, 文火는 약물을 溫養하는 弱한 불질이다.
이것을 古聖人들은 `文烹 · 武煉` 이라 했다.
巽風은 東南風이며 뜨거운 바람이다.
따라서 後天의 呼吸하는 氣運이며, 이것을 母氣라고 한다.
先天眞一의 기운을 子氣라고 한다.
그래서 母氣가 子氣를 굴복시키게 된다.
마치 `如猫捕鼠` 하듯 敵을 만나면 즉각 사로잡는 것과 같이, 불질[火候]도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用風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하겠다.
子時에 武火를 쓰고, 다른 시간에 文火를 쓴다.
탁약[피리]을 분다는 뜻은 武火를 뜻하고,
피리를 불지 않는 불질은 文火라 한다.
그러나 火候의 이치는 스승으로부터 직접 전수 받지 않으면 끝내 알기 어렵다.
天道는 한 차례의 휴식 없이는 운행되지 않는다.
따라서 丹道도 한차례의 휴식 없이는 운행할 수 없다.
수행과정에서 반드시 숨을 쉬지 않아야만 비로소 하나의 大丹을 만들 수가 있다.
숨을 쉬지 않음으로 해서 先天의 元氣가 虛無가운데서 스스로 나타난다.
참으로 빠르게 나타난다.
만약 크게 깨달음이 열린 사람이면 後天에서 능히 先天의 淸眞한 기운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약간의 차질이 있어도 後天의 濁精으로 변하여 몸밖으로 새어나가서 아무런 쓰임이 되지 않는다.
悟眞篇에 이르기를 `見之不可用하고 用之不可見이니 恍惚裏相逢하고 杳冥中有變이라` 했다.
古人들의 비유가 참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先天의 기운은 虛無한 가운데서만 생겨난다.
그러므로 精이 몸밖으로 새어나온 것은 藥이 되지 않는다.
恍惚과 杳冥은 虛無의 오묘한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마음이 고약하여 온통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어찌 丹經의 비밀을 直說로서 밝힐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애석하고 한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주 덮어버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道脈은 전해야 하며, 法方은 일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득이 비유로써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매번 修煉에 들어갈 때마다 子時에 起功하는데 陽根이 發起하면 神氣를 元穴에다 뽑아 넣어야 한다.
먼저 武火로서 猛熱한 불질을 한다. 잠시 후에 성낸 물건이 오므려 든다.
다음에 文火로써 약물을 溫養시킨다. 혹 한달 동안 또는 백일동안 열심히 하면, 내 몸 안에 玄關이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
天秩老師는 이러한 이치를 `사람이 鉛汞二物의 뜻을 알면, 능히 하나로 합성시켜서 玄關을 만들 수 있다` 고 하고,
또 柯懷經도 `玄關은 본시 없는 것이나, 神氣를 교접시킨 다음에 만들어진다` 고 했다.
五化篇에서는 `陰陽이 相搏하면 芝菌은 뿌리가 없이도 생겨나고, 燥濕이 相育하면 게와 굼뱅이는 어미가 없이도 생겨난다` 고 했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가 玄關이 無에서 有로 창조되는 이치를 설명한 말이다.
老子 道德經에서 말하기를 ` 恍恍惚惚 其中有物. 妙妙冥冥 其中有精` 이라 했고,
莊子는 南華經에서 `北溟有魚하니 其名을 爲玄이라` 하고
魏伯陽은 ` 知白守黑하면 神明自來니라` 하고,
丹經에는 `眞鉛眞汞은 人不識이나, 露出一楊하면 淸淨月과 같다` 고 했다.
위의 말들은 모두가 玄關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玄關이 처음 뱃속에 생겨나는 이치를 易理로 표현하면 地雷復卦(84)이다. (참고): 84가 政變하면 48이요, 合變하면88이 된다. 또 逆變11이 된다.


또 三峯祖師는 말하기를 `玄關往來 無定位. 黃庭一路 皆玄關 ` 이라 했다.
이와 같은 말들은 모두 玄關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설명이다.
玄關이 뱃속에 일단 성립이 되면 道兒를 잉태한 것이다. 따라서 道兒는 스스로 뛰놀기 시작한다.
사람이 잉태하면 뱃속에서 `活活潑潑` 하게 胎動이 시작한다.
前后左右로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純陽祖師는 이것을 가리켜 ` 玄牝玄牝 眞玄牝, 不在心兮 不在腎. 窮取生身 受氣初, 莫怪天机 都洩盡. [현묘한 짐승, 원초의 생명체는 위에 있지도 않고 아래에 있지도 않다. 처음 기운을 받아 태어났던 그곳에서 찾아라. 天氣를 괴이하게 여겨 의심을 하면 모두 흘려 버리고 만다]` 고 했다.
悟眞篇에서는 `勸君窮取 生身處, 返本還元 是藥王. [그대에게 권고하나니 네가 태어난 그곳을 찾아서 다시 근본 자리로 되돌려야만 靈藥이 된다]` 는 뜻일 것이다.
위의 두 분 말씀은 玄關의 자리를 가리켜 주신 뜻이 된다.
즉, 남자의 氣穴과 여자의 子宮에 해당한다.
氣穴과 子宮의 자리는 같은 곳이다. 다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中間에서 `顚倒顚` 은 어떻게 하는가?
周易에 이르기를 `地天泰` 라 했다.
그러므로 이미 顚倒顚을 알고, 地天泰의 하는 법을 알면은 하늘과 땅의 기밀[天機]을 능히 훔쳐서 조화를 부릴 수 있다.
程伊川은 이르기를 `若非竊造化機면 安能長生乎리오` 라 하고,
陰符經에서는 `其盜機也면 天下莫能見하며 莫能知리오` 라 했다.
그렇다면 天地의 기밀을 어떻게 훔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그런데 仙學은 바로 天地의 기밀을 훔치고, 天地의 기운을 뽑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 天地처럼 永生하자는 학문인 것이다.
능히 盜機하는 법을 알게되면 나의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된다.
六合안에 한 虛空境界가 있다.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땅이 서로 虛無가운데서 교배하게 된다.
해와 달은 虛空밖에서 번갈아 운행함으로써 천하만물을 무궁무진하게 낳고 기른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 서로 交感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日月의 운행과 天地의 교감도 中心이 없으면 운행될 수 없으며 생물도 생겨나지 못한다.
華陽祖師 말씀에 `이것은 곧 藥이 생겨나는 法象이라` 했다. 절대로 놀래서는 안 된다.
만일 놀라고 두려워하거나 疑心症을 내면, 藥의 神氣가 달아나서 無用의 것이 되고 만다.
아무쪼록 생각을 끊고 마음을 텅 비우고 조심조심 때가 이르기를 기다린다.
武火를 써서는 안 된다. 또 藥物이 빛을 발산할 眞候를 놓쳐도 안 된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서 氣의 動靜을 살핀다.
沖虛子 말씀에 `覺而不覺 復覺眞元` 이라 했다.
처음 느낌이 있다가 느낌이 일단 멈춘 다음에 다시 느낌이 오면, 이때가 바로 正子時이다.
不覺하는 이유는 陽氣가 아직 旺盛하지 못한 탓이다.
그 다음에 다시 강한 느낌이 오면, 그때 곧바로 武火를 가동시켜서 藥物을 채취한다.
즉 藥物이 眞元이 되어 가장 기운이 왕성할 때이다.
그런데 채취할 藥物이 늙거나 어려서도 안되므로 이를 잘 판단해야 한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 張三峯 祖師는 말씀하기를 `月之圓存乎` 구결을 외워야 한다 했다.
그리하면 오묘하게도 正子時가 언제인가를 자연스럽게 마음에 느낌이 온다고 했다.
또 白玉靈 은 말하기를 `月圓口訣明明語, 時子心傳果不訛. [月圓口訣 의 뜻이 분명하니 正子時를 마음에 전해 줌이 헛말이 아니다]` 라고 했다.
이제 藥物이 圓熟하면 採取를 해야한다. 가장 어려운 고비이다.


바야흐로 내 자신의 眞身을 胞胎시켜서 胎原에 앉히려는 것이다.
이 작업이 곧 내 자신을 `再入胞胎` 시키는 과정이며, 또 百日功靈의 마지막 단계로서 煉精化氣하는 공부의 끝맺음이 된다.
먼저 達磨口訣을 외운다. `天應星, 地應潮, 月之圓存乎.` 계속해서 속으로 읽으면 드디어 兩眉간에 초승달이 떠오른다.
滿月이 되었을 때 즉각 武火를 가동시켜 단 한번의 採取를 하고는, 다시 文火를 써서 溫養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武火는 하지말고 文火만 계속하는 것이다.
達磨祖師는 이 대목을 ` 二候採牟尼者` 라 했다.
즉 武火二候로서 如來를 採取한다는 뜻이다.
張三峯은 `只於二候金丹就` 라 했다. 같은 뜻이다.
牟尼는 부처의 별명이며, 金丹은 神仙의 별칭이다.
또 말하기를 `아직 四候가 남았는데 그것으로 小周天의 神功에 쓴다` 고 했으며,
四候는 昇降과 沐浴하는 四候라 했다.
寂無禪師는 채취하는 법을 `從督脈上升, [독맥으로 머리위에 올리고]
從任脈降下 此謂之一周天 [임맥으로 단전丹田에 내린다. 이것을 한차례의 周天이라 한다]` 고 했다. 許旋陽은 `乾用九 積得陽爻 216 乃抽鉛度數. 坤用六 적득음효積得陰爻 144 乃添汞限規, 爲一周天` 이라 했다. 周易 繫辭傳에 있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乾策 216 爻는 鉛을 뽑아내는 度數라고 했다.
즉 午前에 공부하는 度數로서 36 息을 여섯 차례 하면 216 息이 된다. 또 坤策 144 爻는 午後에 하는 공부도수이다. 24 息을 여섯 번 하면 144 息이 된다. 합해서 360 息이 되는데, 이 度數는 1 年 · 360 日의 기운을 하루동안에 몸 안에 가동시킴으로써, 하늘과 땅의 기운을 사람이 훔쳐서 長生하는 神藥을 만드는데 쓰는 법도이다.
그러므로 道를 닦으려는 사람은 乾坤兩策의 360 度數의 쓰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柳華陽은 `12 規를 1 周天이라`하고,
伍沖虛는 `子進陽火 36. 歇水於卯, 謂之沐浴. 午退陰符 24. 停符於酉, 謂之沐沐, 爲一周天.` 이라 했다.
이 말씀은 乾坤 360 爻를 子時에서 陽火 36 息을 여섯 번. 午時에서 陰火 24 息 여섯 번 하라는 뜻이며,
특히 卯時와 酉時에 沐浴하는 이치를 설명한 뜻이 된다.
불질을 하면 그릇이 달아오른다. 그래서 물을 공급해야 하는데, 進火할때 한번, 退火할때 한번씩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한다고 해서 납득될 문제가 아니다.
아무래도 明師를 만나서 직접 배우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문제이다.
陳泥丸은 `天上十二辰에 行至卯位則 刑殺이오. 運至酉地則 德生이니 爲一周天이라` 했다.
參同契에는 `열두 달 안에 春分을 만나면 참나무 잎이 떨어지고 秋分을 만나면 보리 싹이 돋아난다.
이것이 곧 刑殺과 德生의 원리이다` 고 했다.


모두가 一周天의 이치를 비유로 표현했을 따름이다.
小周天의 공부는 사람마다 그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같다.
처음 몇 십 번해서 숨이 차서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백 여 번해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체격과 신체조건에 따라 적게 하는 사람, 많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나 아무튼 한번 가동시키면 한번의 和煉이 된다.
단련하고 또 단련하여 靜物을 굽고 삶기를 약 100 일동안만 열심히 하면 靜物이 몸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되면서, 氣로 변화하게 된다.
이것이 곧 和精火氣하는 공부이다. 三峯祖師는 이것을 `照此進功하면 築基可高하여 不必百日이라` 했다.
또 柳華陽은 `百日은 煉精의 대명사이다.
만약에 少年이 열성적으로 닦는다면 아주 빨리 得丹할 수 있으며 백일에 완성할 수 있으되,
中年이 넘어서면 기한을 정할 수가 없다` 고 했다.


백일기한은 어렵다는 뜻이다.
나이 많아서 陽根이 잘 發起하지 않는 사람은 먼저 陽根을 發起시키는 공부를 한다.
陽根이 발기하면 그 다음에는 다시 陽根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공부를 한다.
왜냐하면 陽根이 發起하는 것은 곧 몸 안의 陽氣가 밖으로 蒸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陽根이 일어나면 곧 採取하여 丹田에다 축적해야 한다. 그리하면 발기하는 陽根이 오므라든다.
이러한 이치를 佛經에서는 `成就如來 馬陰藏相` 이라 했다.
黃庭經에 이르기를 `閉子精路 ,可長活. [靜物이 빠져나가는 통로를 막음으로써 長生할 수 있다]` 고 했다.
李虛明은 `陽關一閉하면 個個長生한다` 했고
性命圭旨에서는 `遂日如此交構하고 如此抽添하면 汞漸多하고 鉛漸小하여 久則 鉛將盡하고 汞亦乾하야 結成一摩(果頁)尼하리니 이것이 곧 金液을 金丹으로 만드는 법이라` 했다.
悟眞篇에서는 `鉛을 쓰되 세상에 있는 광물이 아니라 진짜 鉛을 쓴다.
버리고 또 없이하는 것이 眞鉛을 쓰는 妙理이다` 고 했다.
그런데 鉛이니 汞이니 하는 글자는 사실에 있어서는 命理와 性理의 상징물임을 알아야 한다.
더 알기 쉽게 말하면 鉛은 坎中陽爻이며 汞은 離中陰爻이다. 楊賢眞人이 말하기를 `學者가 道를 물어 여기에 이르면, 그 스승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百日下에 하늘에 成道할 것을 맹세하고 스승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라 했다. 子野眞人이 말하기를 `鉛을 쓰는 법은 마치 고기잡이에 그물을 쓰고, 토끼 잡는데 틀을 씀과 같다.


고기와 토끼를 잡은 다음에는 그물과 틀을 버리는 것처럼, 丹法도 그와 같아서 丹을 採取한 다음에는 爐는 버리고 鼎器만 쓴다` 고 했다.
爐는 鉛을 氣化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武火도 쓰지 않는다.
張眞陽은 ` 처음 有作工夫는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으되, 뒤에 하는 無爲工夫는 눈으로 볼 수 없다.` 고 했다.
다만 無爲공부는 믿음이 가장 요긴한 관건이다. 믿음 없이는 神明이 호응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有作의 공부가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임을 世人들이 알겠는가` 라고 했다.
有作을 有爲라고도 한다. 몸을 움직여서 하는 공부를 뜻한다. 즉, 기운을 頂門으로 밀어 올리려면 全身에 힘을 주어 用을 써야한다. 그래서 有作이라 한다.
또 有作을 交構라 하고, 築基라 하고 命功이라 한다.
命의 진리[命理]는 調藥하고 採藥하고 煉藥하여 缺損된 元氣를 보완하여 나의 命줄을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無爲를 無作이라고도 한다. 無爲공부를 또 煉己라 하고, 性功이라 한다.
性의 진리[性理]는 去三心, 滅四相, 絶六慾, 斷七情하여 속세에서 생각하는 일체의 욕망과 잡념들을 끊고 다만 나의 性理를 養生하는 공부이다.
白玉靈은 이것을 `性之根과 命之枝는 同出異名이다. 兩物이 合歸一處하면 結而成丹하야 還爲元始하면 先天氣니라` 고 했다.
이 글에 性命學의 妙理가 잘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煉精으로서 化氣가 가장 절정에 이르렀을 때가 곧 陽純陰盡 한 때다.
이때에 스스로 陽光이 印堂에 빛을 發顯한다. 처음 초승달 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에 다시 나타났다가 또 사라진다.
이때 武火를 중지하고 文火만 쓰면서 鼎器안을 內觀한다. 動靜을 살핀다.
만일 止火할 때에 불길을 멈출 줄 모르면 위험한 경우를 만난다. 藥이 늙으면 神氣가 소실되기 때문이다.
照陽眞人은 말하기를 `若也持盈未己心 不免一朝殆辱 [약물이 다 익었는데도 止火할 마음을 정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辱을 免하기 어렵다]` 고 했다.
`止火` 는 後天武火이다. 止火한 다음에는 自然文火를 쓴다.
悟眞篇에서는 `自有天然眞火候 不須熱木吸吹噓 [천연적인 약한 불질을 하되, 뜨거운 木丹불을 피우고 바람을 불어넣지는 말라]` 고 했다.
이때쯤 되면 眞氣가 모두 丹田 안에 모인다. 굳게 가둬서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앞에서 말한 小藥의 경우에는 藥이 먼저 생긴 다음에 採取하고, 이제 말한 大藥의 경우에는 먼저 採取한 다음에 藥이 생겨난다.
大藥을 일단 採取한 다음에는 반드시 `七日採工` 하는 법을 써야한다.
그 採法은 좌우 눈동자의 빛으로 丹田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두 귀로 丹田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마음속의 靈力을 丹田안에 쏟아 붓는다.
이렇게 하기를 一晝夜 동안에 두 세번 혹은 4 ~ 5 차례 한다.
다른 시간에는 조용히 앉아서 약한 文火를 쓰면서 기다린다. 이렇게 하기를 7 일 동안 하면서 항상 玄關안의 동정을 살피노라면 大藥이 드디어 발현한다. 빛을 發散하는 것이다.
黃庭經에 이르되 `晝夜七日, 思勿眼. [밤, 낮 이레동안 생각지도 말고 잠도 자지 말라]` 고 했다.
周易에서는 `七日來復` 이라 하고,
또 `復其見, 天地之心乎. [다시 나온 天地의 마음을 본다]` 고 했다.
丹經에서는 `天女獻花, 龍女獻珠. [하늘 선녀는 꽃을 바치고 용궁의 玉女는 구슬을 바친다]` 고 했다.
모두가 大藥이 發顯하는 法度와 이치를 표현한 말이다.
앞서 말한 小周天 工法은 元氣를 가지고 小藥을 만드는 煉精化氣하는 공부이다.
이번에 말하는 大周天 工法은 元神으로 大藥을 만드는 공부이다.
이 大藥은 불에 단련된 구슬과 같아서 맹렬하게 六根을 진동시키며, 丹田은 끓어오르며, 불알은 이글거리며, 눈에는 金光이 발산하며, 귀에는 바람소리 요란하며, 머리 속에는 독수리의 우는 소리가 나며, 全身에 활력이 약동하며, 코는 막혀서 멍멍하다.
이러한 증세가 몸에 나타나거든 곧바로 大藥을 火爐에서 採取하여 神室로 옮기는 소위 大周天의 工法을 써야 한다.
그런데 이 工法을 잘 쓰느냐 잘못 쓰느냐에 따라 吉凶과 生死가 판단된다.
잘쓰면 永生不老하고 잘못 쓰면 北望山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大周天 工法은 단 한번의 武火로 足하다.
그 다음부터는 自然眞火를 쓴다. 고요히 靜觀內照하면서 부드럽게 불질을 한다.
움직이면 쉬었다가, 멈추면 다시 行功한다.
절대로 속세의 욕망과 思念을 끊는다.
모든 위험스런 것들을 미리 예방할 수 있으면 비로소 `過關之法` 을 터득한 것이 된다.
이러한 이치를 伍沖虛는 말하기를 `五龍捧聖 [다섯 용이 神聖을 받든다]` 고 하고,
丹經에서는 `轉神入定 [神明을 몰아서 神室에 坐定시킨다]` 고 표현했다.
小藥이 모이고 모여서 大藥이 되는데 나이 어린 청소년이면 빨리 大藥을 만들 수가 있으나 壯老年 사람들은 만드는데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
아무튼 이제 무수한 小丹이 모이고 쌓여서 大丹이 되었기 때문에 玄關에서 神室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大藥이 神室에 들면서부터, 自然流動을 시작한다.
活活潑潑하면서 반드시 心臟에 충격을 준다.
이때 깜짝 놀라면 藥氣가 소멸하여 밖으로 달아나기 쉽다.
그러므로 마음을 굳게 결심하여 미리 대비하면 기운이 마음을 뚫지 못하고 자연히 아래 쪽 下丹田에 내려가서는 다시 陽關[陽根]을 衝動한다.
굳게 닫지 않으면 밖으로 빠져나간다.
陽關이 굳게 닫혀 있으면 스스로 뒤로 돌아가서 尾閭를 衝擊한다.
혈尾閭穴이 굳게 닫혀 있으면, 穀道로 내려가서 다시 肛門을 衝擊한다.
이때 만일 肛門이 열려 있으면 放氣로 빠져나가서 前功은 실패하고 만다.
이것을 `下鵲橋의 危驗` 이라 한다.
반드시 眞意로서 下關을 무사히 通過시키면 憂患은 없어지게 된다.
이로부터, 大藥은 다시 스스로 위로 올라가서 夾脊을 통과하여 玉枕을 뚫고 頂門에 直貫한다.
釋迦는 이것을 가리켜 `一箭射透 九重鐵鼓` 라 했다.
大藥은 다시 任脈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서 印堂에 이르는데 만일 印穴이 막혀서 通過하지 못하면 코 안으로 흘러내려 코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만다.
그러므로 기운이 頂門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코도 막고 입도 막아서 미리 예방하지 않으면 前功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上鵲橋의 危驗` 이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법을 마음에 깊이 새겨서 미리 예방해야 할 것이다.
이미 眞意로서 기운이 印堂을 통과하고 코와 입을 통과하면 12 重樓에 도달한다.
古人들은 이것을 `服食` 이라 하고, 또 `一粒金丹 呑入腹` 이라 표현했다.
비로소 나의 命줄이 하늘에 매여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에 들어있음을 알게된다.
그리하여 陽神이 神室안에 들어가서 陰神과 點化한다.
이것이 곧 `取坎塡離` 로서 乾坤을 다시 定位에 復成시키는 大周天의 功法이다.
大藥이 이미 中宮神室에 들어간 다음에는 반드시 `抱元守一` 의 법을 써야한다.
이 法方은 마치 龍이 구슬을 배 안에서 키우듯, 닭이 알을 품듯, 온 精神을 거기에 집중한다.
古人들의 이름바 `養道胎` 이며, 中庸 에서 말하는 `道也者, 不可須留離也. [道 곁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고 한 것이 이를 가리킨 뜻이 된다.
元神의 寂滅의 경지에서 中田과 下田을 고요한 달빛처럼 내려 쪼이면서 둘을 한 덩이로 融合시켜서 虛空境界를 만들어 그 속에서 元神으로 하여금 道胎를 靜養시킨다.
이리하여 2 ~ 3 月 동안 길러 나가면, 元氣가 神室안에서 약간씩 胎動하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識性은 점점 소멸하여 없어지고 眞性이 점점 靈覺을 띄게 된다.
元氣가 점점 靈覺하면 거기서 참 智慧와 참 勇力이 생겨난다.
이로부터 4 ~ 5 月이 경과하면 元氣는 元神으로 모습을 바꿔 나간다.
이로부터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이것을 胎仙이라 한다.
다시 6 ~ 7 月쯤 지나면 잠을 자지 않으며 머리는 맑아져서 상쾌하기 이를 데가 없다.
다시 8 ~ 9月이 되면 百脈이 고동을 멎고, 코와 입으로 숨을 쉬지 않는다.
다시 10 個月이 차면 元神이 크게 안정이 되어 내 몸이 太極인 純陽體로 還元復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華陽祖師는 `十月道胎火 一年沐浴功` 이라 표현했다.
즉, `열달 동안 道胎를 키우는 불질을 하고, 1 년동안 沐浴하는 공부가 성공했다` 는 뜻이 된다.
공부가 이 경지에 이르면 능히 지혜가 생겨나며 이로부터 六通에 도달하게 된다.
六通은 漏盡通, 天眼通, 天耳通, 宿命通, 他心通, 神境一通이다.


漏盡通은, 앞서 말한 煉精化氣 공부를 해서 精氣를 밖으로 흘리지 않는 道通을 뜻하고 그 다음에 차례로 五通을 얻게 된다.
天眼通은, 능히 天上의 일을 볼 수 있다.
天耳通은, 능히 天上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宿命通은, 능히 前世의 인과를 알 수 있다.
他心通은,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
神境一通은, 만일 識神으로써 用事를 하게 되면 오로지 사람들의 吉凶禍福을 앎으로 일러주기를 좋아하면 자신의 心君을 보전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魔道에 떨어지고 만다.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慧覺이 열렸더라도 이를 쓰지 않으면 즉, 능히 識神을 智慧로 전환시켜서 비로소 하나의 道胎를 완성시키게 된다.
道胎가 원만하면 神氣도 完熟하여 진다. 이때에 神의 존재를 알게되며 몸 안에 氣가 없음도 알게되면 識性은 없어지고 眞性이 靈化한다.
그러나 氣가 일단 靈化하면 胎안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다.
만일 때를 놓치면 禍胎의 위험이 있다. 옮기는 도법[徒法]을 써야 한다. 中 · 下二田에서 上丹田으로 옮겨야 한다.
尹眞人은 이 대목을 가리켜 `五氣朝於上元, 三華皆聚於乾坤. [다섯가지 五行氣運은 上丹田에 알현하고, 精, 氣, 神 세 精華는 하늘 꼭대기에 모인다`〕 고 했다.
이로부터 백일동안 다시 靜養하면 心靈神臺에 오른다. 눈을 감고도 앞을 내다볼 수 있다. 六出이 紛紛하고 遍彌六合하면 즉, 出神하는 광경이 나타난다.
頂門에 猛然히 一聲의 靑天霹靂이 天地를 震動 시킨다. 元神이 天門으로 솟아오른다.
頂門으로 元神이 태어날 때에 머리와 印堂에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太陽보다 더 밝은 光明이 全身을 감싼다.
이때 절대로 놀라거나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만일 깜짝 놀라게 되면 金光은 소멸하고 靈力은 없어지고 만다.
또 눈앞에 기괴한 형상들이 나타난다.
절대로 그들의 말을 들어도 안되고, 또 놀라서도 안 된다.
魔障이 온갖 모양으로 변신하여 유혹하고 시험하는 것이다.
한참동안 기다리면 金光이 마치 차바퀴 모양으로 빙빙 도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된다.
그럴 때 즉시 上丹田에 돌아오게 하여 7 일동안 輔養하면 다시 몸밖으로 나와서 旋回하게 되는데, 다시 上丹田에 불러 들여야 한다.
一出하면 一入하면서, 나가면 回收한다.
처음에는 一步에서 시작하여 一步, 十步, 百步, 千步로 점점 멀리 내보낸다.
왜냐하면 아직 갓난아기이기 때문에 멀리 보내면 돌아올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調神이라 한다. 갓난아기에게 걸음마를 시키는 것이다.
이때 반드시 天魔가 와서 시험한다.
마음을 혼란시키며 온갖 유혹과 공포와 甘言利說로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러므로 문밖출입을 삼가고 근신해야 한다. 그리하면 몸은 점점 虛武와 寂滅의 경계를 이룰 수 있다.
古聖들이 말하기를 `道高一尺하면 마魔高一丈이라` 했다.
아직도 煉己功夫가 미숙한 사람은, 이 경지에 와서 道를 놓치기가 쉽다. 魔에 속아서 魔道로 떨어지고 만다.
이로부터 3 년 동안의 젖먹이 공부를 해야한다.
道兒를 성숙시키는 기간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직 慧力이 어리기 때문에 태어난 즉시로 用使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년 동안의 調神공부가 끝나면 陽神은 성숙하게 자라서, 능히 天文과 地理에 통달하며 능히 風雲造化를 부리며, 六丁과 六甲을 마음대로 用使하여 智慧와 勇力이 샘물처럼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물 속에 들어가도 가라앉지 않으며 불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칼로 베어도 베이지 않으며 돌로 쳐도 상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시험을 해보아서 아무 탈이 없으면 이로부터 다시 `煉神還虛` 하는 공부에 들어가야 한다.
즉 太虛無極의 경지에 들어가는 공부이다.
道書에는 이를 九年面壁이라 했다.
이 공부에서 `神人合一` 의 無形無體의 경지에 이르면, 玉皇上帝로부터 丹書 내려주시기를 기다린다.
그리하여 丹書를 받음으로서 비로소 天仙의 證果를 얻어 永亭無彊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옛 聖人들이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부서지는 때는 있어도, 仙人의 목숨은 다함이 없다` 고 했다.
柯懷經은 말하기를 `만가지 물건이 오직 하나의 원시로 돌아간다` 고 한 것이 곧 이러한 경지를 표현한 것이 된다.


天仙正理 (補遺篇)

 


東亭先生이 말하기를 `男女가 眞法을 修鍊함에 있어서 모든 것을 자신의 몸 안에서 해야한다.
처음 시작할 때 그 원리는 같으나, 다만 한가지 방법에 있어서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는 氣를 닦고 여자는 形을 닦는 것이 다를 뿐이다` 라고 했다.
男子는 煉氣를 한다. 처음에 손대는 곳이 坎宮이다.
배꼽아래 있는 丹田이며 醫書에서 말하는 內腎이 그곳이다.
女子는 煉形을 해야 한다. 처음 착수할 때, 離位에다 功力을 들인다.
그런데 離의 자리는 두 乳房의 중간이며 任脈上에 있는 [月亶]中이 그곳이다.
劉悟元이 가로대 `太陽煉氣는 男子理요. 太陰煉形은 女蹄筌 [남자는 太陽의 기운을 닦고, 여자는 太陰의 형체를 닦는다]` 라고 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煉氣는 煉鉛하는 것이고, 煉形은 煉汞하는 일이다.
남자는 眞汞을 알지 못한다. 이는 有陽이나 無陰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眞鉛을 알지 못한다. 이는 有陰이나 無陽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남자의 修眞은 白虎를 항복 받는 일이고, 여자의 修眞은 汞龍을 끓는 공부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는 공부는 남녀의 法이 다 같다.
남자가 眞汞을 알게되면 뒤에 할 공부는 煉形을 해야하고, 여자가 眞鉛을 알게되면 뒤에 還丹공부를 해야한다.
照陽께서 말하는 이른바 `後行長` 이 그것이다.
사람이 차차 늙어지면 精神이 쇠퇴하고 陽氣가 없어지므로 비록 修道를 하고자 하나 안될까 두려워서 닦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張三峯께서 말하대, `人老原來有藥醫, 訪明師問方兒. [사람이 늙으면 본래에 가지고 있는 藥으로 고치라. 밝은 스승[明師]을 찾아서 그 法方을 물어야 한다]` 라고 했다.
어찌 헛된 말이라 하겠는가.
이제 明師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이, 이 글에서 그 方文을 일러주는 것이다.
공부함에 있어서는 먼저 조용한 방을 마련하고, 두 세 사람의 뜻이 맞는 同伴과 함께 수련함이 좋다.
行禪, 住禪, 坐禪, 臥禪을 뜻 가는 대로하라.
절대로 억지나 무리한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차차 공부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노라면 神氣가 차차 쌓이고 모여서 生氣가 발생하게 된다.
積氣하면 生精하여 日久月深하면 飮食의 量이 점점 늘고 四體는 더욱 가벼워지며 丹田은 따뜻하여지며, 外陽[陽根]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부터 마음이 가라앉고 몸에 고요함을 얻을 수 있다.
이로부터 마음에 生氣가 발동하여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이것은 術法을 쓰지 않고도 生理를 굳게 다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물을 오래 가두면 거기서 벌레가 생기는 이치와 같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은 모두가 男女老少가 修行하는 일반적인 이치를 말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永生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하기로 한다.
靈原大道歌에 이르기를 `休論 沸, 唾, 精, 津, 氣, 血, 液, 達本窮源總一般` 이라 했다.
이 물건들이 어떻게 일정한 자리가 있겠는가.
수시로 변화 유동한다. 따라서 마음과 뜻이 가는데 따라, 몸에 있으면 感熱하여 땀이 되고, 눈에 있으면 感悲하여 눈물이 되고, 콩팥에 있으면 感念하여 精이 되고, 코에 있으면 感氣하여 콧물이 되면서 從橫으로 流轉하면서 全身을 돌아다님으로써 그 기운이 물질로 변하여 결코 神水가 되지 못하고 만다.
神水에 대한 설명은 몹시 표현하기가 어렵다.
아는 사람이 적다. 사람을 살리는 한가지 물건이 眞氣에서 나온다.
모든 사람들은 매일같이 밤에 깊은 잠에 빠진다.
陽氣가 생겨나도 採取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며 크게 잘못된 일이다.
性命圭指에서 말하기를 ` 陽精은 매일 발생하나 世人은 聚合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고 했다.
全神身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後天의 汞[性]으로 변질하고 만다.
종일토록 온 몸 안을 돌면서 하고싶은 대로하는데 이것이 모두 汞의 用使가 아닌 것이 없다.
밤이 되면 汞의 기운이 빠져서 깊이 혼수에 들어간다.
이렇게 하여 나이 먹고 늙어지면 海水는 고갈하고 潮信은 없어지고 만다.
이것은 汞이 흐르지 않아서 윤활하지 못함으로 결국에는 精水가 끊어지고 만 것이다.
즉 精路가 폐쇠된 것이다.
이로부터 눈은 어두워지고, 귀는 멀어진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日用而不知` 라 했다.
이는 汞의 이치를 모름으로써 써서 다 없애버린 것이다.
만일 朱汞을 항상 가지고 싶으면 반드시 水鉛으로써 汞의 用使를 制止해야 한다.
悟眞篇에 말하기를 `須要制伏覓金公 [性을 다스리려면 반드시 命을 찾아라. 火는 龍, 金은 白虎의 비유]` 고 했다.
또 參同契에서 말하기를 `太陽流珠는 항상 사람 몸에서 떠나려 한다. 급히 金華를 얻어서 流珠를 잡아 묶어라` 고 하고,
또 말하기를 `河上此女는 靈하여 가장 神靈스러우니, 그녀를 얻으려면 黃芽의 뿌리로서 잡아 묶어라` 고 했다. 여기에서 流珠니 此女니 하는 명칭은 모두가 眞汞을 비유해서 한 말이다. 또 金華니 黃芽니 하는 명칭은 모두 眞鉛의 비유이다.
丹經에서 말하기를 `命無性이면 不立하고, 性無命이면 不存` 이라 한 것도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煉精化氣`, `煉氣化神` 이라 하였다.
神은 汞이며, 氣는 鉛이다.
어찌 鉛이 아니고서 능히 汞을 만들 수 있으리요. 圭指에 이르기를 `人見金之産於月, 不知月之光, 本出於日. [사람이 달에서 금빛이 생겨나는 것을 보지만 그 빛의 근본은 해에서 나오는 이치를 알지 못한다]` 고 했다.
어찌 능히 汞이 없이 鉛이 생겨나겠는가?
그러므로 鉛과 汞을 相生시키려면 바람과 불[風火]을 교배시키는 수련을 쌓아야 한다.
오래 닦으면 마침내 鉛氣는 없어지고 汞의 기운만 남는다. 이것을 金丹이라 한다.
거북이가 夜光珠를 얻으면 능히 그 껍질을 脫皮할 수 있고, 龍이 如意珠를 얻으면 능히 하늘로 날을 수가 있고, 뱀이 定風珠를 얻으면 능히 永生할 수 있고, 여우가 月華珠를 얻으면 능히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짐승들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이 어찌 金丹을 얻지 못하리오. 그 이치가 이와 같거늘 믿는 사람은 드물다.
대저! 하늘과 땅은 하나의 太極이다. 또 모든 생물에는 하나의 太極이 들어있다.
지금 사람의 몸 속에 들어있는 太極의 이치를 살펴보자.
사람은 곧 一太極이다. 鉛汞은 太極의 陰과 陽에 해당한다.
玄關은 太極 가운데 들어있는 無極의 자리다.
대저! 伏羲氏의 河圖는 先天의 對待法으로서 上德者가 닦아야 하는 법도이다. 上德者는 즉 童眞의 몸을 가진 사람이다.
大禹洛書는 先天에서 後天으로 변질한 것이므로 下德者가 닦아야 하는 法方이다.
下德者는 즉, `已破之體` 로서 先天眞童이 파손된 것을 뜻한다.
上德者와 下德者가 닦는 道法은 비록 다르나, 그 도달하는 결과는 같다.
다만 眞鉛은 水中金이요. 一과 四는 孫悟空이요. 眞汞은 火中木이요. 二와 三은 저팔계요. 玄關은 그 가운데 있는 眞土요. 生數 五는 沙奧淨이니라. 이것이 곧 三과 五를 合成하면 한 개의 `唐三藏` 이 되는 이치니라.
白馬는 正位에 居體함이요. 아름다움이 그 속에 들어 있어서 四肢로 뻗어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西遊記를 읽되 그 참뜻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능히 三藏의 두 글자의 참 뜻을 알고 精氣神의 三寶를 깨닫기만 한다면 金丹의 道를 이루지 못할 리가 없다.
參同契에서 말하기를 `三五與一은 天地之精이라` 했다. 좀처럼 전해 듣기가 어려운 말이다.
비유컨대 마치 江을 건너려면 배가 있어야 하고, 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이 있어야 함과 같다.
만일 배가 없으면 어찌 江을 건널 수가 있으며, 그물이 없으면 어찌 고기를 잡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法이 없으면 어찌 道를 닦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의 얼굴을 보니 지혜가 머리에 흘러 넘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억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내가 眞言으로 그 奧妙한 곳을 밝혔으니 원컨데 育士道 同志者는 한 번 듣고 眞法을 깨달아서 닦도록 하라.

東亭先生이 가로대 上德은 無爲공부를 하되 察求하지 않는 사람이라 했다. 즉 上德者는 童眞體의 소유자로서, 반드시 스승을 만나서 道의 有爲하는 法方을 전수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無爲의 功法만 알면 된다는 것이다.
下德者는 行功하여 그 쓰임을 쉬지 않고 한다는 것이다. 즉 下德者는 이미 破體한 몸의 소유자로서 반드시 스승으로부터 有爲行法을 전해 받아서 일찌감치 栽接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破體한 사람은 반드시 몸에 缺陷이 생겨서 부족한 것이 있으므로 만일 栽接함이 없으면 어찌 능히 기초가 튼튼하겠는가. 이것이 곧 築基공부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古人들이 이르기를 `氣敗血於하면 宜補接하라` 한 것이다.


道經에서 가로대 `接年接命해야 以長生之客이 되리라` 고 했다.
또 釋典에 이르되 `老僧會接無根樹 하야 能績無油海底燈이니라` 고 했다.
또 呂祖는 이르되 `氣精宜及早거든 接命莫敎致遲하라` 고 했다.
또 圭旨에서 말하기를 `果然接之則 長生하고 不接則 妖死矣니라` 고 했다.
지금 사람들은 道를 비유로서 표현하는 뜻을 알지 못한다.
栽接한다는 뜻을 잘못 알고 가짜 스승들은 이것이 곧 여자를 鼎器로 하여 남자가 그 위에 올라타는 것을 交氣한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道法이라 가르친다.
契書에서 가로대 `雜性不同類 安肯合體居` 라 했다.
종류가 다른 물질로서는 合體同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말한 栽接의 뜻은 자기의 몸 가운데 들어있는 後天기운을 返還시켜서 先天의 眞陰과 眞陽으로 만들어 두 물건을 하나의 丹으로 합성시키는 것을 뜻한다.
丹書에서 소위 말하는 `九還七返` 하는 법으로 金液을 大金丹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長三峯이 말하는 `萬般渣質皆非類 眞陰眞陽正栽接 [모든 물질로 된 것은 그 짝이 아니며, 오직 진짜 陰陽만이 접을 부칠 수가 있다]` 고 했다.
또 말하기를 `陰陽交鉛汞接 要知是用本身` 이라 했다.
鉛과 汞을 접목하려면 절대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붙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대저! 鉛과 汞은 물[水]과 불[火]을 뜻한다.
반드시 水火의 뿌리를 명백히 알아야만 비로소 栽接하는 이치를 알게된다.
道德經에서 말하기를 `此兩者 同出而異名` 이라 했다.
儒佛仙 삼교三敎의 모든 經書에도 `異名同出` 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므로 鉛과 汞의 분별이 있고, 물과 불의 구별이 있음은 모두가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만가지 별명과 천가지 이름이 모두 陰과 陽의 별명에 불과함을 알아야 하며, 또 자신의 몸 가운데 들어있는 生氣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알고 수행하면 누구나 聖人이 될 수 있다.
和淸眞人이 가로되 `性之根 命之頂 同出異名分. 兩類合歸一處, 結成丹, 還爲元始, 先天氣. [性의 뿌리와 命의 꼭지는 한곳에서 나왔으나 이름이 다를 뿐이다. 두 종류를 한곳에 歸合시켜 丹으로 결성시키면 元始로 돌아가서 다시 先天의 기운이 된다]` 고 했다.
대저! 元始 先天者는 즉, 몸 가운데 있는 물과 불의 뿌리이며 白虎와 首經은 나의 보물이다.
老子 가라사대 `有物混成하야 先天地生하고, 寂兮孤兮 하여 獨立而不改니라` 했다.
그러므로 소위 `二 · 五` 의 ` 二 `는 坤의 六二爻를 뜻하며, 離卦의 陰物을 뜻한다.
` 五 `는 乾의 九五爻를 뜻하며, 坎卦의 陽物을 뜻한다.
밖의 陽爻와 안의 陽爻가 한 몸으로 합쳐지면, 여기에서 眞一의 純乾體가 합성된다.
이것을 至善으로 잘 養生시키면 여기에서 浩然의 기운이 조화를 이룬다.
이것을 다시 뱃속으로 呑服한다.
이것을 소위 `刀圭一入口 白日生羽翰` 이라 표현했다. 칼날 같은 불덩이를 한 입에 넣으니 白日靑天에 나래가 돋아난다는 뜻이 된다.
대개 천지간에 짝이 없이 생겨나는 물건은 없다. 周易에 이르기를 `對待者를 살펴보면, 乾坤爻而 萬物泰하고 坎離交而 一身泰` 라 했다.
이렇듯 雙修하는 비법을 儒敎에서도 자상하게 밝혀 놓았으되 다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따름이다.
그러면 좀더 깊이 들어가서 `聖倒` 에 대해서 論해보자.
성인의 공부에는 `水火` 의 법칙이 있다.
이것을 周易에서는 `上男下女는 是以亨之義也라` 고 했다.
여기에서 물은 男性이고 불은 女性이다.
그래서 ` 水 · 火 ` 의 法度는 `男上 · 女下` 의 관계가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곧 亨通하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물과 불은 보통의 水火가 아니며, 이 물은 坎卦안에 들어있는 `火中水 [물이 불에서 생겨나는 것]` 이다.
또 離卦안에 들어있는 불은 물 속에서 생기는 `水中火` 이다.
그리고 이 `水火相生` 의 이치는 몸 속의 모든 脈絡을 개통시킴으로써 생겨나는 진짜 陰陽이다.
불은 坎水에서 생겨나서 眞陽이 되고 물은 離火에서 생겨나서 眞陰이 된다.
崔公이 말하대 `水眞水 · 火眞火` 라 하고, 또 `鉛으로 龍을 굴복시키고 汞으로써 백白虎를 항복 받는다` 고 했다.
또 呂祖는 `乾鉛과 坤汞은 金丹祖요. 龍鉛과 虎汞은 崔通靈이라` 했다.
또 三峯祖師는 `眞水火로 配陰陽함은 世人莫要에 亂思量이라. 饒爾無爲가 空打坐하면 不免亡身 葬北邙하리라` 했다.
水火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어디서부터 栽接할 것임을 알지 못한다.
소위 진짜 불은 대개 `水中에 들어있는 불`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불은 물로서는 끌 수 없는 불이다. 이를 이름하여 `眞火` 라고 한다.
또 진짜 물은 `火中에 들어있는 물`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물은 불로서 없앨 수 없는 물이다. 이를 이름하여 `眞水` 라고 한다.
즉 眞陰과 眞陽인 것이다.
앞에서 西遊記를 예로 들었는데 다시 한번 살펴보자. `紅孩兒의 火` 와 `西海龍王의 水` 는 도저히 끌 수도 말릴 수도 없다.
西遊記 後篇에 `火雲樓之火` 와 `西海龍王之水` 도, 역시 끌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으며, 반드시 `南海觀音의 물` 로서 만 능히 제압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南은 離요. 火요. 海는 水요.
`火中之水` 는 곧 身中에 들어있는 眞水를 뜻한다.
紅孩兒의 火는 雲樓의 불인 즉, 곧 身中에 들어있는 眞水를 뜻한다.
또 觀音者는 身中을 內觀해서 그 속에서 들려오는 音信을 뜻한다.
音信이 한번 들려오면 水火는 자연히 旣濟하게 된다.
이것을 呂祖師는 `此中有眞信, 信至君必驚. [뱃속에 진짜 소식이 있다. 그 소식이 한번 들려오기만 하면 그대는 깜짝 놀라리라]` 고 했다.
泥丸翁은 말하되 `精生有時, 時至神知, [精은 때가 되어야 생기며 그 때에 神明의 이치를 알리라]` 고 했다.
또 朱元育은 가로대 `時節一到, 藥物自産. [때가 한번 이르면 약물은 스스로 생겨난다]` 고 했다.
내가 西遊記를 보니, `人蔘果樹`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一味藥物을 栽接한다는 뜻이다.
다만 藥物의 이치를 모르고는 藥物은 採取하는 법과 火候를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면 헛수고만 한다.
이 대목이 모든 丹書의 가장 핵심에 속하는 것이며 `藥物 · 採取 · 火候` 가 세 가지 秘方이다.
그 가운데 가장 진짜 비밀은 운용하는 가운데 들어있는 `分合과 內外` 에 관한 것인데 참으로 말로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하자.
分이라는 것은 採外를 뜻하고 取라는 것은 取內를 뜻한다.
火者는 神火이다.
候者는 眞意이다.
合은 채취하는 火候이며, 火候는 곧 채취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火候는 밖에 있는 것을 채취하는 것이 아니며, 火候 속에서 채취한다.
한번 채취해서 爐 속에 들여보내면 스스로 축적하지 못함으로 반드시 黃婆가 등장하여 內外로 分合하고 정리토록 호령을 하면 모든 것이 다 명령에 따르게 된다.
經書에 이르기를 `黃婆는 中宮의 王師` 라고 했다.
또 말하기를 `靈兒와 차녀는 몸밖으로 빠져나가려 하나 黃婆가 들어서 이들을 붙잡아 방안으로 들여보낸다` 고 했다.
오호라! 靈兒는 능히 白虎를 타며, 次女는 능히 靑龍을 타고 달릴 수 있다.
그래서 黃婆가 들어서 그 들의 神通術을 통제할 수 있다.
얼마나 광대한 세계인가!
四象과 五行이 모두 `中央 戊己土` 에 자리잡고 있는 黃婆의 眞意에 예속되어 있음이 이로써 헛말이 아님을 알게된다.
더욱이 黃婆는 능히 龍을 항복시키며, 범을 굴복시켜서 그것들을 짝지어 원만한 부부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졌다.
黃婆의 역할은 또 일정한 시간이 아니더라도 마음대로 子時와 午時를 임의로 만들어 낸다.
능히 乾坤을 正位에 앉게 한다. 丹道는 처음부터 끝까지 黃婆의 힘에 의존한다. 그런데 黃은 중앙의 색깔이며, 婆는 화합하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周易에서 이르기를 `主宰者는 理며, 此所以須臾不可離也나 及至면 脫胎니라. [몸을 다스리는 힘은 理며, 理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때가 오면 胎를 벗어난다]` 고 했다. 和靑翁이 말하기를 `泥丸宮裏有黃婆, [머리속에 黃婆가 들어있다]` 고 했다.
西遊記에 나오는 孫悟空이 바로 黃婆를 비유한 상징물이 된다.
오직 黃婆의 진리를 깨달아야만 `老 · 嫩(눈:어리다)` 의 뜻을 알게된다.
黃婆는 사람 몸의 主人이며 眞意이다. 嫩을 키워 黃婆를 만드는 것이다.
尹眞人이 말하기를 `眞意者는 乾元也` 라 했다.
吳自得은 말하기를 `黃婆를 알고자 하면 부모가 나를 낳아주기 이전의 面目을 생각하라` 고 했다.
長三峯은 가로대 `本來面目은 항상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그것으로서 남에게 黃婆의 뜻을 가르쳐라` 고 했다.
혹시 묻는 사람이 있어서 `발견하면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易에 이르되 無思하고 無爲하면 寂然不動할때 感而遂通하게 되는데 이때에 이르면 비로소 黃婆를 볼 수 있다` 고 했다.
처음 수련에 들어가서 藥物을 조합하는 법을 `分 · 合` 으로 나누면,
分은 眞陽과 眞火를 戊土에다 採하는 것이고, 또 眞陰과 眞水를 己土에다 取하는 것이다.
合은 陰陽과 水火를 교배시켜서 戊와 己에다 蓄積시켜서 빛을 발산하게 하는 일이다.
다음 藥物을 만드는데 있어서 分은 무엇이 壬水이고 무엇이 癸水인가를 분별하는 일이다.
즉, 壬水는 陽이고 癸水는 陰이다.
壬水는 맑고, 癸水는 濁하다.
壬水는 眞鉛이며 外藥이며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므로 `鉛還向外來` 라 표현했다.
또 癸水는 즉, 眞汞이며 內藥이며 자신의 몸 안에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취汞在家中取` 라 표현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물건이 合하면 爐안에 들여보내서 烹煉하여 굽고 삼는다.
다음은 불[火候]에 대해서 말해보자.
文火는 숨을 막고[封固], 목욕하며[沐浴], 불을 멈추며[止火], 온양하는[溫陽] 구분이 있다.
또 武火는 先天의 기운을 採하여 眞一의 鉛을 取하며, 坎의 中爻를 採하고, 水中의 범을 取하며, 黑中의 白을 採하며 陰中의 陽을 取하는 것을 뜻한다.
周天에 대한 이치를 말해보자.


陰符經에 이르되 `天地之道는 浸이라.` 했다.
天來子는 말하기를 `流行者는 氣라` 했다.
그러므로 氣가 이르면 즉 子時가 온 것이 된다.
따라서 文火를 쓰는데 이것이 곧 浸이다. 아래로 浸入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浸入한 文火는 곧 武火로 변화한다.
비유컨대 冬至에 이르면 復卦가 된다. 一陽이 땅 밑에서 점점 위로 솟아올라서 乾天에 닿는다.
그러므로 이것을 `進陽火` 라 한다. 또 이름하여 `乾用九` 라고도 한다.
九者는 陽을 뜻한다. 이때 武火를 다시 가동시켜서 아래로 내린다. 내려가면 다시 文火로 변화한다.
비유컨대 夏至에 이르면 (女+后:15)卦가 된다. 一陰이 乾天으로부터 내려와서 땅 밑으로 침입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退陰府` 라 한다. 또 이름하여 `坤用六` 이라 한다. 六者는 陰을 뜻한다. 이러한 易理法則은 復卦(84)에서 乾(11)에 도달하고 (女+后:15)卦에서 坤(88)에 도달하는 순환과 운행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작업을 周天의 功法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相對性의 浮浸하고 動靜하는 이치만 깨달으면 누구나 金丹의 道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비결에 가로대 `念不起면 意不散이라. 含光默하고 眞息綿하야 文武를 轉換調勻하면 自然暗合하야 天度方可하리니 謂之는 周天火候니라` 고 했다.
그러므로 參同契에서는 六十四卦로서 消長盛衰를 비유했고, 一年節候를 비유했고, 한달의 盈虛晦朔하는 이치를 비유했다.
그러나 儒書에서 다하지 못한 내용들을 參同契에서 자세히 밝혀 놓았으므로, 世人들이 이르기를 `神仙이 參同契를 만들지 않았다 면 火候에 대한 이치를 어찌 알았을까?` 라고 했다.
그래서 이른바 萬古로부터 丹經의 王者로 불리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요약해서 정리해 보면, 비록 수련공부의 요령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았다고 생각하나 모두가 어떤 형상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므로 스스로 총명한 까닭에 행여 잘못 인식한 점이 없는가 再三 살펴서 길을 잘못 들지 말도록 하라.
그래서 照陽眞人께서 말하기를 `本立言以明象하고 旣得象以忘言하라. 猶說象以指意하고 悟其意則象損하라. [근본을 세우려면 형상으로서 설명하고, 형상으로 진리를 알았으면 설명을 잊어야 한다. 형상을 그려서 그 뜻을 알았으면 형상을 마음 속에서 지워서 없애 버려라]` 고 했다.
모든 神仙들이 비결을 남겼으나 사람마다 표현과 비유가 같지 않다.
그러나 한가지 말씀 안에는 반드시 眞理와 법칙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을 보고 깨달았으면 말을 잊어버리고, 그 뜻을 알았으면 형상을 잊어버리라고 한 것은, 절대로 형상과 文言에 집착하거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니라.
오호라! 나와 뜻을 같이하는 育士道 後學들은, 반드시 뜻을 굳게 다져서 玄妙한 性命의 眞理를 파헤쳐 적어도 몇년동안은 經書를 읽고 깨침을 얻으며, 다행히 스승을 만났을 때에는 진짜와 가짜를 스스로 분별하게 되며, 邪道와 正道를 스스로 판단하게 될 것이니, 당면해서 잘못됨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丹書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또 형상과 문자의 참뜻을 알지 못하면, 朝往暮離 식으로 우왕좌왕함이 괴이할 것이 없느니라.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며, 염소를 가리켜 소라하고, 여자를 鼎器로 삼고, 童子를 사서 眞液을 받아 藥物로 사용하려 하며, 스스로를 속이되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아니하며, 도리어 神仙과 부처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니,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까?.
그래서 이러한 亂道와 亂法을 막기 위하여 여기에 특히 補遺篇을 세상에 내어 儒佛仙武基家의 衆生을 救하고자 하는 바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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