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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 년이 시작되면서 1공수특전여단에서 대대장을 하게 되었다.
대위 때와 소령 때에 두 차례 차출되어 특전사 근무를 했던 소년은
중령 진급이 되어 대대장 부임지를 선택하던 시기에 특전부대에서 못다 이룬 가치를 실현해보고자 지원하게 되었다.
특전사 대대장은 야전부대 대대장과 달리 상급 지휘관이 대령이 아닌 준장(원 스타)이고
대대 간부급 인원은 3~4배 정도 많아 훨씬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지므로 그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임 전에 적지 않은 선배들이 만류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특전사 경력을 쳐주지 않고 오히려 안 좋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원하였고, 그곳에서 대대장을 하며 가장 여한 없는 지휘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소년이 취임한 1공수여단은 과거 전두환 여단장 시절에 근무했던 부사관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특전사 부사관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인원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충성심도 대단한 편 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권력에 휘둘리며 상관에게 무조건 따르는 것이 충성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년이 대대장 취임을 하던 시기에는 장교 정년이 연장되며 진급 연차와 대대장 보직 기간이 함께 늘어나
대대장을 3년이나 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년은 서두르지 않고 취임 3년 차에는 대대원 모두의 수준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어
진정 수준 높은 부대가 되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그런 생각으로 소년은 자신만의 독특한 지휘를 한다.
취임 이후 먼저 대대 핵심 간부인 팀장과 팀 선임담당관, 지역대장 및 행정보급관, 대대 참모장교 및 행정부사관들의
의식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2개의 숙제를 냈었다.
하나는 이면우 박사의 『신사고 20』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내라는 것이었다.
그 책은 새로운 발상으로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을 제시한 책인데
그 책을 읽고 대대 간부로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모두 10~30년 간 군 생활을 한 간부들인데 이런 괴상한 숙제를 낸 대대장을 낯설게 생각해서 인지
대부분의 독후감 내용이 형식적인 내용뿐으로 자신들의 생각은 담겨있지 않았다.
그런데 3명의 간부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적어냈고, 그래서 그 3명의 간부를 통해 대대 실상을 파악했던 것이다.
두 번째 숙제는 대대장이 핵심 간부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해결해 줄 수 있으므로
자신의 신상에 대해 대대장에게 알려줄 내용을 적어 내라고 했다.
그랬더니 또 간부 대부분이 이것은 첫 번째 숙제보다 더 황당하다며 아예 제출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것은 입대하여 자대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졸병들만 작성하는 것이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출한 이들도 대부분 형식적으로 적어냈던 것이다.
그 와중에 4명의 간부가 현재 자신이 가진 관심거리를 알려주었고 대대장과 함께 어떻게 보람 있게 근무하고 싶은지를
적어내어 그들을 통해 대대 저변의 분위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특전부대는 전시에 팀 단위로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이므로 평시에도 전시처럼 팀 단위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행정 편의를 위해 각종 작업 간에 참모부 간부들이 임의로 팀 병력을 차출하여 작업하고 있어
팀별 훈련 여건이 보장되지 않고 있었다.
하루는 전 대대원 교육 시 작업으로 인해 팀 병력이 전원 집결하지 않은 몇몇 팀장에 대해
팀원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완전군장으로 얼차려를 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작업을 시켰던 당시 대대장보다 7~8세 연상의 대대 군수 담당관이 대대장실로 달려와
자신이 대대작업을 위해 팀 병력을 빼서 작업을 했는데 해당 팀장들에게 얼차려를 주면 자신의 체면이 뭐가 되느냐고 하며
따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전에 대대장이 모든 부대 운영은 전날 대대장에게 보고되어 승인된 것들만 하되 반드시 팀 건제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해당 팀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후로 팀 병력이 임의로 차출되는 일이 없어져 팀장의 권위는 점차 높아져 갔다.
팀 단위로 작전하는 부대에서 핵심은 팀장이고 그들이 주도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대대장은 중대장들과의 간담회를 분기별로 갖기로 했다.
처음에 중대장들의 상관인 소령급 지역대장들이 함께 참석하니 중대장들이 눈치가 보여 자신들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여
이후부터는 중대장들만 모이게 하여 1년 차 중대장부터 부담 없이 의견을 말하게 하니까 자연스러운 토론 분위기가 되었다.
때로 부대원 통제와 관련된 민감한 부분에 대한 토의가 계속되어 지루해질 무렵에는
담배를 피우는 중대장들에게 담배를 피우게 하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각자의 소신을 말하게 하여 제대로 소통함으로써
대대장의 의도와 중대장들의 의도가 합치된 부대원 지휘를 하게 되었다.
특전부대는 최강의 전투력을 항시 구비해야 하므로 평시 전투력을 지속적으로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부임 직후 평가하는 것을 보니 참모부 부사관들이 평가 간에 자신과 친한 팀장 및 선임담당관이 규정대로 하지 않음에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아 평가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래서 대대장이 절대 봐줄 수 없는 것이 평가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라고 강조하고 평가 시마다 확인했더니
대대평가에서 우수한 부대가 진짜 우수한 부대라는 생각을 갖게 되어 모두가 일상의 훈련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특전사 대대장의 가장 큰 권한은 인사권이었다.
장교에 대해서는 대위 이하 장교들에 대한 보직 및 근무 평정 권한을 갖고 있어 장기 복무 및 진급에 많은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고,
부사관에 대해서는 장교들보다 훨씬 더 절대적인 진급과 보직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주임원사를 비롯한 고참 부사관들은 대대장에게 줄을 대는 행태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소년은 분야별로 인사를 할 때마다 소신껏 근무하는 간부들의 의견을 다방면으로 듣고
근무 실적과 능력에 맞는 간부들로 발탁함으로써 대대원들이 대대장의 인사를 믿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개인 전투기술을 숙달하는 것은 평상시 대대장이 직접 확인할 수 있지만,
전시에 적 후방지역에서 실행해야 할 전술훈련은 그 전 과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 팀원에게 훈련 간 수첩에 작전일기를 매일 작성하여 훈련 종료 후 제출하도록 했다.
그렇게 직접 모든 대대원의 작전일기를 읽으며 그 팀의 수준을 파악하여 평가함으로써 실질적인 수준을 높힐 수 있었다.
제대로 준비한 팀은 각 팀원이 계획 및 준비 과정에서부터 실행 간 문제점에 대해 적을 수 있었으며
심지어 똑똑한 인원들은 개선책에 관해서도 기술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대는 대대장 재임 기간에 받는 대대 훈련평가에서 특전사 최고의 부대로 평가받아
이라크 파병부대 1진으로 선발되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하나의 부대가 가족과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서로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갖도록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특전부대에서는 매년 체육대회가 며칠간 크게 열리며 우승하는 부대는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것 같은 기쁨을 누린다.
그러다 보니 일부 대대가 건제를 유지해야 하는 경기에서 잘하는 인원으로 허위 편성하여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부대의 그런 행태를 말하는 대대 간부에게 대대장은 “체육대회는 전투가 아니라 단결 활동일 뿐이며, 전시에는 그런 편법을
쓸 수가 없으니 진정 우수한 부대가 되려면 남이 어떻게 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우리가 정당한 방법으로 하면 된다.”라고 설득하였다.
그래서 체육대회 종합우승은 못했지만 전 부대원이 나서서 맞서는 종목 경기는 거의 우승하게 되었다.
한번은 체육대회 권투경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대대별 로 5명씩 대표선수가 나와서 경기를 벌여 3명이 승리하면 이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2:2에서 마지막에 나온 대대원이 경기 도중에 어깨가 탈골이 된 것이다.
순간 대대장이 기권하라고 지시했는데 권투 감독인 상사급 부사관이 어깨를 맞추었다고 경기를 계속하도록 했다.
그러다 그 대대원의 어깨가 다시 탈골되었는데 또 어깨를 맞췄고,
감독인 부사관은 선수 본인도 원하고 있으니 그대로 경기를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대장이 감독인 부사관에게 가서 고함을 치며 기권시키라고 했고,
심판에게도 중단시키라며 소리쳐서 결국 그 경기를 기권패로 끝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다음 날 대대 주임원사란 이가 난리가 났다며 이후 사정을 전해왔다.
심판을 본 부사관은 전역을 앞둔 고참 부사관인데 어린 대대장에게 수모를 당했다며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한 권투 감독을 맡았던 부사관은 자기도 어느 정도 고참 부사관인데
대대장이 부하들 앞에서 자기를 야단쳐서 창피하다며 술 마시며 울고 불고했단다.
이후 그들을 불러 왜 대대장이 경기를 중단시켰는지 물어보니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단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도 아들이 있지 않냐, 만약에 당신 아들이면 그런 상황에서 계속 권투경기 하게 할 수 있느냐!” 하며 소리를 치니
그제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어깨가 탈골되었지만 대대원이 열렬히 응원하는 상황에서 어느 선수가 스스로 기권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하며
그런 것은 책임 있는 간부가 결정해주는 것이라고 확실히 알려 주었고, 전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체육대회를 하며 부대원을
불구자로 만들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전 부대원들에게 인식시켰다.
여담으로 대대원 간 돈독한 전우애를 갖도록 한 돌반지 작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소년이 특전사 9공수여단 중대장 시절에 아들 돌잔치에 돌 반지 선물을 2개만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지역대 중대장들 명의로 받은 1개와 중대원이 방문 시 가져온 것이 전부였다.
소년의 친족이나 친구들은 형편이 여의찮아 그냥 오거나 옷가지를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 후 소년은 한동안 애엄마로부터 어이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자녀 돌잔치를 하는 팀장과 팀 선임담당관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돌반지 작전을 실행했던 것이다.
당시 40대 이상인 10여 명의 부사관은 돌잔치에 올 연령대가 아니고 부모 장례식이나 자녀 결혼식에 다닐 나이였다.
그래서 대대장으로서 그들에게 말했다. “대대 후배 부사관 자녀 돌잔치에 선배들이 거의 안 오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대장은 재임 기간에 매번 들를 예정인데 가급적 많이 와서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되면 참 좋겠다.
그리고 장교와 부사관으로 나눌 필요 없이 경조사에는 대대원 모두가 함께하면 좋겠다.” 라고.
그랬더니 이후 그들의 돌잔치에는 20~30개의 돌반지가 선물로 오게 된 것이다.
고참 부사관이나 영관급 지역대장의 경우 개인별로 최소한 반 돈짜리는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 잔치에서 대대장이 직접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며 아들(사위)이 근무를 잘하고 있어 감사하다고,
며느님(따님)이 남편이 근무를 잘하도록 내조를 참 잘해주고 있어 감사하다고 전하니
이후 그들은 부대가 상급부대 평가나 훈련 등으로 바쁠 때 스스로 앞장서서 준비했던 것이다.
당시 병사들의 자기 계발 여건을 마련해주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대대도 10여 개 과목을 선정하여 동호회 활동을 했다.
그러다 3개월 후 대대장 임기를 마치기 전에 발표회를 하게 되었다.
기본 지침을 주고 발표회 며칠 전에 리허설을 점검하던 소년은 깜짝 놀랐다.
대대원이 너무도 열정적으로 준비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공연장인 간부식당 입구에는 화가 아들인 하사가 이끄는 미술부의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공연 첫 순서는 음악부로 구성된 대대 밴드에 의한 축하 공연이었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던 중사 한 친구가 이를 이끌었다.
이어서 영어회화부의 팝송 합창, 태권도부의 격파 시범, 천리행군 및 대대훈련평가 소감문 우수작 낭독, 부모님께 보낸 편지 낭독,
밴드 공연, 이등병의 편지 등 합창, 부대가 합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1시간 40분의 공연이 금방 지났다.
초청 관객들은 생각보다 높은 수준에 놀랐고 열정적인 모습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렇게 소년은 1공수여단 5대대장으로 3년 간 근무하고 떠나면서 대대원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첫댓글 소년의 멋진 추억과
리더로서의 덕목, 멋진 행보에 박수를 보냅니다.
자신만의 추억은 다른 곳에서는 모르는 법이지요.
정말로 멋진 군 생활을 하셨군요. 덕분에 편안히 지냈답니다.
나라 지키는 군인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예요~^^
고생햇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1공수특전여단 대대장으로 대단하셨겠네요! 난 대대 서기로 근무해 대대장을 떠받듯 모셨는데...ㅎㅎ
멋집니다
소년의 멋진 리더와 개혁에
점점 변해가는 군생활 편안했을
그시절의 젊은이 들의 모습이 떠오 르네여ᆢ
수고 하셨어요ᆢ
서경지역이라 클릭했다가 군인딸과 사위를 둔 엄마라서 글 제목을 보고 읽어보려다가 긴 글에 잠시 키핑으로~ㅎ
장문의 글을 쓰시면서 지난 날을 회상하는 좋은 시간이셨겠어요..
지금은 시간이 여의치 않아 다 읽지 못하지만 다시 짬내어 꼭~읽어보겠습니다~^^
나도 70년대 초반 거여동에 위치한 특전사 교육대에서 근무했는데....지금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행주산성과 미사리에서 점프하던 생각이 아물아물 희미하게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