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념일
태국 짜끄리 왕조 개국 기념일(Chakri Day)
2. 역사와 사건
기원전 46년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탑수스 전투에서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와 카토를 물리치다.
402년 - 스틸리코가 폴렌티아 전투(Battle of Pollentia)에서 알라리크 1세를 저지하다.
1199년 -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리처드 1세가 어깨에서 화살(석궁)을 제거한 후 감염으로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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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무훈담의 단골 주인공이며 소설이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용맹스런 전사(戰士)이자 지휘관. 사자왕 리처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영국 국왕 리처드 1세다. 십자군 측의 전설적 영웅으로 오랜 세월 회자되어 온 그는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로서는 별다른 능력이나 치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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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년 여름 리처드는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리처드 1세는 자신의 대관식에 여성과 유대인의 참석을 금한다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유대인 대표들은 새로 등극한 왕에게 예물을 바치기 위해 대관식에 나타났다. 리처드 1세의 부하들은 유대인들을 공격했다. 이에 따라 영국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났고, 리처드 1세는 이를 진압했다. 등극과 동시에 일어난 유혈 사태. 이는 재위 기간 대부분을 전쟁으로 보낸 리처드 1세의 앞날을 예고한 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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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0년 7월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 나섰다. 원정 준비는 전비(戰費) 조달을 위해 모든 것을 팔아 치우는 일이었다. 고위 관리들은 직위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돈을 내야 했다. 높은 값을 치르는 사람에게 관직을 팔았다. 성(城)도 높은 값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팔았다. 작위(爵位)도 팔았고 마을도 팔았으며, 수도원들도 권리를 유지하자면 돈을 내야 했다. 봉신(封臣)의 지위로 예속되어 있던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1세도 막대한 돈을 받고 예속 상태에서 풀어주었다. ‘적당한 값만 치를 사람이 나타난다면 런던도 팔 것’이라 선언할 정도였다. 백성들이 혹독한 세금 부담에 시달렸음은 물론이다. 리처드에게 잉글랜드는 십자군 전쟁을 치르기 위한 재원(財源) 바로 그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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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년 6월 초 아크레 근처에 도착한 리처드에 대해 살라딘 살라딘은 포로 문제를 협상하기 위한 전갈을 리처드에게 보냈지만, 리처드는 포로 문제로 시간을 보내기 싫어했다. 살라딘은 십자군 포로들을 석방한 적이 있었지만, 리처드는 2천7백 명의 무슬림 병사들과 3백여 명의 여성 및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함께 싸우던 필리프 왕이 귀국해버리고 십자군 내부 알력도 심한 가운데, 리처드는 아르수프 연안 지대와 다룸 지역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성지 예루살렘을 재탈환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1192년 9월, 5년 기한의 휴전협정이 맺어졌다. 십자군 세력이 해안 지방 일부를 차지하고, 예루살렘을 포함한 나머지 지역은 살라딘이 차지하는 조건이었다. 또한 살라딘의 통행증을 발급받은 순례자들의 성지 통행권을 보장하는 조건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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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협정을 맺은 1192년 9월 리처드는 고국으로 향했다. 동생 존이 필리프 왕과 결탁하여, 자신이 프랑스 내에 소유한 땅을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존이 형 리처드의 왕권까지 빼앗으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그 해 성탄절이 되도록 리처드의 행방은 묘연했다. 리처드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바닷길을 싫어한 리처드는 변장하여 육로를 통해 이동하다가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5세에게 붙잡혀 있었다. 레오폴트 5세는 십자군 원정 때 리처드에게 모욕당한 적이 있었다. 리처드는 국왕인 자신의 깃발과 공작인 레오폴트의 깃발이 함께 나부끼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깃발을 빼앗아 진흙탕에 던져버렸던 것. 레오폴트 5세는 리처드를 신성로마 황제 하인리히 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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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1세는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프랑스 서부 앙주 지역을 통치한 귀족 가문에 기원을 둔 왕가 출신이었다. 더구나 리처드 1세가 재위 기간 중 고국에 머문 시간은 반년 남짓이었다. 잦은 전쟁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는 “춥고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불평하며 잉글랜드 땅 자체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재위 기간 대부분을 타국에서 전쟁을 하며 보냈으니, 막대한 전비는 고스란히 백성의 부담이 되었다. 국왕이 오랜 시간 고국을 떠나있으니 정치적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로서의 점수를 매긴다면 결코 후할 수 없다. 그는 ‘싸웠을 뿐 다스리지는 못했다.’ 또한 ‘사자의 심장을 지녔을지언정 영혼은 지니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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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는 무훈담의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그 용맹이 후대에까지 전설적으로 회자되어 왔다. 역대 잉글랜드 국왕 가운데 그처럼 숫자가 아니라 별칭, 즉 사자왕 또는 사자심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로 후대에까지 널리 일컬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으면서도 백성들로부터는 신앙심 깊은 왕으로 평가 받으며(십자군 전쟁에서 보여준 용맹 때문이었지만), 후대에까지 잉글랜드의 상징적 인물들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라 하겠다. 그 아이러니에 대한 하나의 설명은, 근대 유럽 여러 나라가 제국주의 확장을 추진하던 시기에,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군주, 귀족들을 전설적 영웅으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은 리처드 1세, 독일은 프리드리히 1세, 프랑스는 고드프루아 드 부용 사자왕의 마지막은 허무했다. 1199년 3월 리처드는 리모주에서 리모주 자작의 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다. 3월 25일 초저녁 리처드는 갑옷을 입지 않고 성벽 가까이 거닐며 상황을 살피다가 성에서 날아온 화살에 왼쪽 어깨의 목 가까운 부위를 맞았다. 상처가 심하게 곪아 들어가 리처드는 1199년 4월 6일 세상을 떠났다. 리처드의 머리는 쁘아뚜의 샤루 수도원에, 심장은 노르망디의 루앙에, 그리고 나머지 유해는 앙주의 퐁테브로 수도원에 묻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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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년 - 제7차 십자군 원정 중 파리스크르 전투에서 성왕 루이 9세가 아이유브 제국군에게 패배해 포로가 되다.
튤레타 에유비이안 아랍어: دەوڵەتی ئەییووب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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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기간 | |
왕조 | |
수도 | 카이로(1174 - 1250년) |
공용어 | |
민족구성 | |
정부형태 | |
면적 | 2,000,000km2(1190년) |
인구 | 7,200,000명~8,000,000명 |
국교 | |
통화 | 디나르 |
이전국가 | |
이후국가 | |
1320년 - 스코틀랜드는 독립 선언문 (Arbroath Declaration of Arbroath)에 서명
1327년 - 시인 Petrarch는 Avignon의 Saint Clare 교회에서 이상적인 사랑 Laura를 처음 본다.
1453년 - 메흐메드 2세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포위 공격을 시작,(5월 29일 함락)
1712년 - 뉴욕 노예 반란 브로드웨이 근처에서 시작
1830년 - 조지프 스미스 2세, 올리버 카우드리, 데이비드 휘트머가 공식적으로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를 세우다.
1894년 - 캐나다 출신 미국 선교사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에 의해 광성고등학교가 평양에서 개교하다.
1895년 - 오스카 와일드가 런던에서 동성연애 혐의로 체포되다.
1896년 -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열리다.
1909년 - Robert Peary와 Matthew Henson 북극에 도착
1917년 - 영국으로 향하던 미국국적의 상선이 독일 제국 잠수함에 격침되었다는 이유로 미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하다.(제1차 세계대전)
1930년 - 간디 소금 행진이 끝났다.
1992년 - 보스니아 전쟁 시작
1994년 - 르완다 집단 학살 시작되다.
2009년 -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 주 라퀼라 인근에서 리히터 규모 약 6에 해당하는 지진이 발생하여 최소 15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3. 태어난 사람
1483년 - 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로.
1888년 - 독일의 화가, 영화 감독 한스 리히터 (화가)
1904년 - 독일의 정치인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1928년 - 미국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
1930년 - 독일의 지휘자, 피아니스트 앙드레 프레빈.
1936년 - 대한민국의 시인 신경림.
1937년 - 미국의 가수 멀 해거드
195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선영.
1960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규철.
1966년 - 대한민국의 야구 코치, 전 야구 선수 이종운.
1971년 - 스웨덴의 축구 심판 마르틴 한손.
1974년 -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로베르트 코바치.
1976년 - 일본의 작가 오토타케 히로타다.
1983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이지선, 대한민국의 가수 무웅 (배치기).
1982년 -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홍광호.
1984년 - 대한민국의 방송 기자 이정민.
1985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건우.
198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나승현.
1988년 -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김나희.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패브리스 무암바.
1990년 -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 서예지.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찬미. 대한민국의 가수 켄 (빅스).
1995년 - 일본의 가수 모리모토 류타로 (Hey! Say! JUMP).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민규 (세븐틴)
1998년 - 미국의 배우 페이턴 리스트
4. 사망
885년 – 비잔틴 성인 Saint Methodius
1199년 -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가의 2번째 군주.
1252년 – 베로나의 Saint Peter
1520년 -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
1829년 -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
1971년 -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1977년 - 일본의 정치인 기도 고이치
1992년 - 구 소련 태생 미국의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
2005년 - 모나코의 레니에 3세.
2016년 - 대한민국의 변호사 김창국
201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진구
2016년 - 미국의 가수 멀 해거드
출처: https://oldconan.tistory.com/37752?category=558354 [올드코난 (Old Conan) 세상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