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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당(雪嶽堂) 무산(霧山) 스님 이야기 >
무산 스님의 이력
무애도인(無碍道人), 설악당(雪嶽堂), 무산(霧山) 스님, 오현 스님, 조오현(曺五鉉),
신흥사 조실, 설악산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대종사, 승려문인 등
직함이나 성함, 법명도 다양한 스님이 계셨다.
바로 무산 스님이시다.
무산 스님은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57년 경남 밀양 성천사
인월 화상으로부터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68년 범어사 석암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젊은 시절 금오산 토굴에서 6년 동안 고행했으며, 설악산 신흥사에서
정호당 성준화상을 법사로 건당(建幢)했다.
※건당(建幢)---수행 구도(修行求道)가 다른 이의 사표가 될 만큼 원만해서
법을 전하는 스승에게서 법맥을 이어받는 일.
그 후 스님은 계림사와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와 제8, 11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하셨다.
뒷날 신흥사 조실이 돼 설악산문을 재건했으며,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됐다.
만년에는 백담사 무문관에서 4년 동안 폐관정진도 하셨고,
지난 2016년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무산 스님은 평생을 수행정진과 전법교화에 헌신했으며, 현대불교문학에 많은 업적을 이뤘다.
특히 지난 1996년에는 만해 스님의 유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하고,
만해대상을 매년 시상하면서 포교 활성화와 우리 문화 예술 발전에도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만해 마을을 세웠으며,
만해 마을은 문인들의 창작공간이자 문학포교의 진원지로 많은 역할을 해왔다.
1999년에는 불교정론지 ‘불교평론’을 창간했으며, 은사 스님의 법명을 딴
‘성준장학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왔다.
무산스님은 조계종 원로의원과 여러 사찰의 조실로 있으면서 후학을 지도했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시조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오다가
지난 2018년 5월 26일 법랍 62년 세수 86세로 원적에 들었다. 무산 스님의 부도탑은 신흥사에 세워졌다.
저술로는 <벽암록 역해>, <무문관 역해>, <백유경 禪解-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는 법을 어찌 알랴>,
<선문선답> 등이 있다. 시집으로 <심우도>, <만악가타집(萬嶽伽陀集)>, <절간 이야기>,
<아득한 성자>, <적멸을 위하여> 등이 있다.
(2) 무산 스님의 법문
설악당 대종사 무산 스님의 2015년 하안거 해제법어를 소개한다.
『지난 2013년 3월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FORTUNE)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50인을 선정했는데,
그 중 1위에 프란치스코 교황 이분을 올려놓았답니다.
이분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고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 관용을 추구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배경과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이 오갈 수 있도록
대회를 강조하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느닷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이분의 화두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종교인의 생명은 화두입니다.
우리 스님(禪師)들은 서로 안부를 물을 때, ‘화두가 성성합니까?’
‘화두가 깨어 있습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화두에는 활구(活句)가 있고 사구(死句)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이분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이분의 살아 있는 화두, 즉 활구에서 나옵니다.
그분은 한국 방문 시에 빡빡한 일정 속에서 세월 추모 리본을 달고
네 차례나 세월호 유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했고,
희망을 잃지 말라며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겼습니다.
지난 3월 로마 교황청을 찾은 염수경 추기경, 김희중 대주교 등 한국천주교 주교단 일행 13명을
면담한 자리에서 교황의 첫 물음이 세월호 문제와 유족들의 안부였다고 합니다.
사실상 세월호가 방한 내내 프란치스코 교황의 화두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푸란치스코 교황 이분의 화두는 살아 있는 오늘의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지난 결제 때 우리 스님들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알 필요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 다 천 년 전 중국 선사들의 산중 문답이니까 말입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화두와 우리 선승들의 화두는 시간상으로 천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화두는 오늘의 문제가 화두인데,
우리 선승들의 화두는 천 년 전, 중국 선승들의 도담(道談)입니다.
불자들에게 존경받는 어느 노스님은 내가 어릴 때 저에게
“화두 들고 참선 공부하다가 죽어라”라고 당부했습니다.
빨리 깨달아 깨달음의 삶을 살고자 참선하는 것이지
참선하다 죽으려고 참선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프란치스코 이분이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지금 영적 치매에 걸리지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한국에는 깨달은 선승들이 많은데 깨달음의 삶을 사는 선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화두를 타파하면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부처가 왜 존재합니까?
중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심의 근원은 중생입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필요 없습니다. 중생이 없는데 부처가 왜 필요합니까?
프란치스코 교황 이분이 세월호 유족들과 고통을 같이 하듯이 중생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승들의 화두도 오늘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우리 시대의 아픔들
그 우비고뇌(憂悲苦惱)가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승들은 아직도
천 년 전 중국 선사들의 도담에 머물러 있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화두는 그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 사람이 오늘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산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육도만행(六度萬行)이라고 합니다.
육도(六度)는 잘 아시는 것처럼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지혜바라밀을 말합니다.
만행(萬行)이란 이 육도바라밀을 실천, 봉행하는 만선(萬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육도만행, 육바라밀은 모두 실천하는 만선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해제라고 하면 방학했다는 기분이 드는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난 3개월 동안 금족수행(禁足修行)을 했다면,
이제는 금족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만행을 통해 다 보여주어야 해요.
만행의 길에서 육바라밀을 다 실천해야 합니다.
육바라밀이 만행이 되고 만행이 육바라밀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선승들의 깨달음의 삶은 이 육도만행 속에 다 있어요.
이 육도만행이 선승들의 깨달음의 화두가 되어야합니다.
부처의 삶을 사는 사람이 부처입니다.
부처의 삶을 살지 않고 그냥 부처가 되겠다고 죽을 때까지
화두를 붙들고 참선만 해서는 부처가 되지 않아요.
그렇게 해서 부처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육도만행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육도만행이 깨달음의 삶이고 장부가 살아가는 수칙이고, 활로입니다.
나는 공부 잘하는 스님들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면 어떤 스님들이 공부 잘하는 스님인가,
부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이것을 한번 돌아보시라고 내가 오늘 교황님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나무비로자나불.
(3) 무산 스님의 게송
사바세계는 오래 몸을 숨길 수 없으며,
세월은 한계가 있어 죽음이 임박하기를 기다릴 수 없다.
명예와 이익은 언제나 공허하며 세속의 은애는 끝내 헤어지게 되고
원수는 서로 보복하기를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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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은 단지 나쁜 짓을 할 줄만 알지 참회할 줄은 모르며,
단지 복을 구할 줄만 알지 복을 자기의 분수에 맞게 쓰려고 하지 않네.
염불 일성(一聲)이 무량한 복을 증진시키며,
예불 일배(一拜)가 강가의 모래알같이 많은 죄를 없애는 줄을 전혀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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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도(道)의 문으로 들어가는 공덕의 어머니이다.
하지만 믿음은 바른 믿음과 삿된 믿음으로 구분된다.
소위 바른 믿음이란 바르되 삿되지 않으며 깨달아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불교에 귀의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정확한 지견(知見)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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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은 부처님의 덕을 경배하는 것이며,
염불은 부처님의 은혜를 느끼는 것이며,
간경(看經)은 경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며,
좌선은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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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득한 성자 -
아득한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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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 한줌 -
어제 그저께 영축산 다비장에서
오랜 도반을 한줌 재로 흩뿌리고
누군가 훌쩍거리는 그 울음도 날려 보냈다.
거기, 길가에 버려진 듯 누운 부도
돌에도 숨결이 있어 검버섯이 돋아났나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대로 내려왔다.
언젠가 내 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 건가
어느 숲 눈먼 뻐꾸기 슬픔이라도 자아낼까
곰곰이 뒤돌아보니 내가 뿌린 재 한줌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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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부처를 팔고 그대는 몸을 팔고 -
일본 임제종의 다쿠안(澤庵:1573-1645) 선사는
항상 마른 나뭇가지나 차가운 바위처럼 보여,
한 젊은이가 짓궂은 생각이 들어 이쁜 창녀의 나체화를 선사 앞에 내 놓으며
讚(찬)을 청하고, 선사의 표정을 삐뚜름히 살피니
다쿠안 선사는 삥긋삥긋 웃으며 찬을 써내려 갔습니다.
나는 부처를 팔고
그대는 몸을 팔고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고
밤마다 물 위로 달이 지나가지만
마음은 머무르지 않고 그림자 남기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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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은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리를 내가 듣게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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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미꽃 -
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 캐던 울 어머니
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
이제는 한 줌의 歸土 서러움도 잠드시고
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을
삼삼이 눈 감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임의 樣子
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
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
긴 긴 날 배고픈들 그게 무슨 죄입니까
적막산 돌아온 봄을 고개 숙인 할미꽃
※歸土(귀토)---흙으로 돌아간다는 말로서, 죽음을 의미함.
※樣子(양자)---얼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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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 구나. 억!’
--- 무산 스님의 임종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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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은 스님은 찾기 어려우나
경 속에서는 찾을 수 있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할까.
재가불자로서 네 가지 중계를 엄히 지키고
육도만행을 몸소 행하니
자비희사는 보살이며
모든 행에 머묾이 없음이 선(禪)이네.
청정한 아미타불이 마음 가운데 앉았으니
희로애락이 모두 범음(梵音)이네.
중생을 널리 교화하면 백의(白衣)를 입은 것이며
자기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면
불신(佛身)을 증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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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 ‘백의(白衣)’의 의미
백의(白衣)는 흰색이 아니라 소색(素色)이라 한다.
잔연 그대로의 색이란 말이다.
그래서 흰색은 순수, 결백, 청렴, 절제 등을 상징한다.
백의(白衣)란 말 그대로라면 흰옷을 뜻하나
불교에서는 재가(在家) 신자를 이른다.
재가불자를 백의거사(白衣居士)라 한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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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천방지축(天方地軸)은 하늘의 방향과 땅의 축을 모르는 듯 급하고
허둥지둥하게 움직이는 태도나 상태를 뜻하는 표현.
* 기고만장(氣高萬丈)은 ‘기운이 만 장만큼 높다’는 뜻으로,
일이 뜻대로 잘되어 우쭐거리거나 화가 나서 기세가 과도하게 치솟는 상태를 비판적으로 말할 때 사용.
* 허장성세(虛張聲勢)는 실력· 실속이 부족한데도 큰소리치거나 허세를 부려 겉으로만
위세를 부리는 태도나 상황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