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관징 스승의 입적
관징 스승은 2007년 음력 6월 19일(8월 1일) 자시에 향년 83세를 일기로 입적하셨다. 관징 스승은 말년에 당뇨가 심해 병원에 다녔는데, 간병인이 필요해 한때 속가에서 주사도 맞고 치료를 했으나 마지막에 산휘사로 가셔서 입적하셨다.
입적하신 뒤 곧 전화 연락을 받았으나 비자 때문에 4일 뒤에야 현장에 도착하였다. 원래 중국에서는 3일이면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입적하시기 전 스승의 유품 대부분을 대만의 홍수와 홍리에게 주라는 유언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당국과 이야기가 되어 7일장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도착하여 3일간 더 준비를 한 것이다. 도착해서 임종을 지킨 분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⓵ 관음재일인 6월 19일 입적할 것이라고 입적일을 분명히 지적하셨다.
② “나는 극락으로 돌아간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③ 몸을 깨끗이 씻고, 붉은 가사를 입고, 제자들이 자시가 좋다고 하자 그때 까지 기다려 입적하였다.
이것으로 우리는 스승께서는 극락으로 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국에서 참석한 제자들은 우리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장례비를 대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인민폐 2만 위엔(약 400만원)을 주고 준비하도록 하고, 이어서 관징 스승의 마지막 제자였던 대만의 홍빈 . 홍이가 홍수 . 홍리 이름으로 30만 대만 달러(약 1,200만원)를 장례비로 내놓아 경제적인 이유로 장례가 소흘하게 되지 않도록 하였다. 현지에서는 참석하는 인원에 따라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간다.
8월 8일 걸어서 3시간 거리인 셴먼사 다비장(스님들만 하는 다비장)에서 다비를 하였는데, 대만에서 간 우리 부부와 가족(북경 사는 조카도 참석), 그리고 제자들을 포함하여 50명쯤 참석하였다.
다비를 마치고 탑에 들어갈 뼈 조각을 모아 산휘사에 다다라 법회를 마친 뒤, 60km쯤 떨어진 마이셰옌에 미리 만들어 놓은 탑에 안치하였다. 그 뒤 다시 산휘사에 돌아와 영단에 사진을 안치하였다. 더운 여름인데도 많은 촌민들이 참석하여 스승의 왕생 길을 빌어주었다.
4) 스승이 남긴 것들
(1) 염주 이야기
관징 스승께서는 아주 열심인 제자들에게 자신이 걸고 다니던 염주를 그 제자에게 주어 3개월 간 걸고 다니다가 되돌려달라고 한다. 나에게도 그 기회가 왔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염주를 걸면 몸이 이상하게 흔들리고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그 염주를 걸면 편안하였다. 3개월이 지난 뒤 돌려드려야 할 때 여쭈었다.
“스승님 이 염주를 제가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 염주는 그렇게 값진 것이 아니다. 진짜 보디나무 열매가 아니다.”
“스승께서 쓰신 것이라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스승께서 오랫동안 쓰신 염주를 불당에 올리고 대신 침향목으로 좋은 염주를 하나 만들어 드리고 아울러 굵은 합장주도 침향목으로 만들어 드렸다.
그리고 그 두 염주들은 입적하신 뒤 유언에 따라 모두 나에게 돌아와 현재 법당에 모시고 있다.
(2) 사리 이야기
나는 평소에 고승들의 사리에 관심이 많았다. 대만에서는 정토불교에서 광친 스님, 리빙난 거사, 주윈 스님을 3명의 대표인물로 뽑는다. 그 가운데 광친 스님(1892~1986)은 산속에서 10년 넘게 과일만 먹고 수행 했다고 해서 과일스님이라고 불리는 고승이다. 그 스님이 1986년 2월 13일 까오슝 먀요통사에서 입적하셨는데 가장 많은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 때 사리를 다 추려내고 난 뒤 남은 재에서 가려낸 사리꽃 1점과 사리가 되지 못한 작은 알갱이들을 구하여 신단에 모셨다.
그 뒤 우연히 어떤 사람으로부터 쉬윈 화상의 사리를 1과 샀다. 그래서 스승에게 그 사실을 말씀드렸다.
“고승의 사리는 그렇게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시면서 엄하게 꾸짖으셨다. 그리고 이어서 사리 3과를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사리는 쉬인 화상이 남기신 것이다. 너희 부부에게 각각 1과씩을 주고, 나머지 1과는 너의 딸 약으로 주는 것이다.
‘딸의 약으로 주는 것이다.’는 말을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뒤 딸이 암에 걸려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딸의 사리는 이미 어떤 분이 탑을 세우는데 사리가 없다고 해서 그 탑에 모시도록 보시를 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어떤 사람은 사리를 물에 담아 놓았다가 마셔서 병을 나은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약으로 주신 사리를 탑에 넣어버렸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동안 투병을 한 뒤 딸의 암이 완전히 나아버렸다. 돌이켜보면 딸에게 약이 된 것은 그것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탑을 쌓는 분에게 보시를 해서 공덕을 얻는 것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딸의 암이 나은 것은 스승이 약으로 주신 사리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다.
입적하시기 전 가서 병간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스승께서 사리병을 내놓고 말씀하셨다.
”전에 우리도 스승의 사리를 7과씩 나누어 가진 적이 있다. 이제 너에게 7과를 나누어 줄 터이니 7과를 덜어내도록 하여라.“
그 동안 간직하고 있던 사리들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려고 마음먹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 숟가락 같은 도구로 7개를 덜어낸다고 덜어냈는데, 생각보다 사리들이 크기가 작아서 그런지 꺼내놓고 보니 100개 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정도의 숫자가 사리병에 남아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시던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것이 네가 가질 양인 모양이다.“
이렇게 하여 쉬인 화상의 사리를 많이 간직하게 되었다. 그 뒤 스승께서는 환우가 더 위중해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해지자 마지막 순간 나머지 모든 사리를 나에게 넘겨주셨다. 이는 지금 남아있는 제자들 가운데 내가 사리의 가치를 가장 잘 알고, 잘 간직할 것이라고 믿으셨기 때문이라고 본다. 2015년 1월 15일 서길수 교수가 와서 사진을 찍을 때 헤아려보니 모두 285과나 되었다. 몇 년 전 헤아려볼 때 280과였는데 5과가 더 늘어났다.
관징 스승의 다비가 끝나고 나는 열심히 사리를 모았다. 이곳에서는 아직 사리를 본 사람이 없고, 별 관심도 없기 때문에 영탑에 모실 뼈 조각을 젓가락으로 모으는 정도였다. 그러나 사리는 완전히 불타고 난 뒤 남은 재 속에 남아있고 크기도 3mm정도로 작기 때문에 큰 젓가락으로는 집을 수가 없다. 나는 이미 그 전날 꿈에 관징 스승으로부터 사리 58과가 나올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찬찬히 찾아보았다. 그리고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여 57과를 가려 낼 수 있었다. 스승은 분명히 58과라고 했는데 1과가 부족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킴의 언니가 1과를 찾아가지고 간직하고 있다가 주어서 58과를 모두 수습할 수가 있었다. 2년 뒤인 2009년 사리 6과가 늘어 64과가 되었는데 서길수 교수가 3년 공부 들어갈 때 1과를 나누어 주어 63과가 되었다. 그 뒤 관징 스승의 대만 제자인 황졘민, 츄타이산 2명에게 각 1과씩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61과가 되어야 하는데 그 때 다시 세어보니 모두 72과가 남았다. 그러니 나누어준 3과와 합하면 모두 75과로 75-58=17과가 늘어난 것이다.
2015년 1월, 6년 만에 서길수 교수가 다시와서 사진을 찍으면서 정밀하게 헤아려보니 모두 73과(1과는 쪼개져 나온 것 같아 뺌)였다. 그 사이에 1과가 늘었고 입적하신 8년 만에 모두 18과가 늘어난 것이다.
(3) 유지를 살려 살아간다.
나에게 관징 스승은 큰 은혜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부도 관징 스님처럼 크게는 못해도 절도 짓고 남을 위해 보살행도 하려고 한다. 우리 서방삼성전 신도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나도 스승과 같은 큰 도력이 없기 때문에 크게 불사를 일으킬 수 없지만 우리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현재도 작은 규모지만 1년에 한 번씩 불우한 노인들 100명에게 제법 큰 밥상을 올리는 공양을 하고 있다. 앞으로 절을 세운 뒤 경로당을 세워 더 크게 돕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도들에게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다행히 지금 과테말라에서 시작한 광산이 궤도에 오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뜻이 이루아질 날이 오리라고 본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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