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과, 그 지도자 바츨라프 하벨에 대해 알아봅니다. 하벨의 역저 <힘없는 자들의 힘>을 읽어봅시다.
1936년 10월 5일 바츨라프 하벨이 태어났다. 하벨은 체코의 자유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극작가 겸 정치가로서 흔히 “체코의 국부”로 우러름을 받는다. 그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했고,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1993년부터 2003년까지는 체코의 초대 대통령도 지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되면서 12세이던 하벨은 상류층 출신이라는 이유로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공산당의 제약을 받았다. 그는 극장에서 전기 기사와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도 비밀경찰의 감시하에 생활했다. 1959년 군복무를 마친 이후 하벨은 극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8년 발생한 ‘프라하의 봄’은 하벨을 민주화 투사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주화 ‧ 민주화를 저지하기 위해 소련군이 침공해오는 사실을 알린 ‘자유 체코슬로바키아 라디오’ 활동에 진력했는데,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에 진압된 이후 당연히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1977년 체코슬로바키아 지식인들의 정치 개혁 촉구 ‘77 헌장(카르타)’에 가입해 더욱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결국 1979년부터 1983년까지 투옥되었다.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이룬 벨벳 혁명(신사 혁명, 평화 혁명)의 주역으로 활약한 하벨은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구스타우 후사크 1당 독재 체제를 마침내 무너뜨렸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하벨은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그 후에도 2003년까지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그는 퇴임 후 본업인 극작가로 돌아와 활동을 계속했다. 2011년 75세를 일기로 타계했고, 수도 프라하의 관문인 루지네 국제공항이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으로 개명되었다. 그가 쓴 <힘없는 자들의 힘>의 일부를 읽어본다.
후기 전체주의 체제의 내적 목표는 얼핏 보이는 것처럼 단지 집권층이 권력을 계속 움켜쥐는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자기보존이라는 사회적 현상은 좀 더 높이 있는 것에 종속된다. 그것은 바로 체제를 움직이는 맹목적인 자동 작용automatism이다. 권력 구조 안에서 인간이 어떠한 위치에 있건 간에 체제는 인간을 인간 자체로서의 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자동 작용을 움직이게 해줄 연료로서 본다. (이원석 서민아 역, 필로소픽 발간, 2019, 25~26쪽)
‘반체제 인사들’이 어떤 종류로든 권위를 갖는다면, 쓸데없이 곳곳에 출몰하는 외래 곤충들처럼 오래전에 전멸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부가 이 배타적인 집단과 그들의 배타적인 아이디어를 그토록 경외하며 고수해서가 아니라, 감추어진 영역 안에 뿌리를 둔 진리 안에서의 삶이 지닌 잠재적인 정치적인 힘을 완벽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며, ‘반체제’적 성격이 점차 커지는 세계, 그리고 그것이 다루는 세계―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세계, 삶의 목표와 체제의 목표 사이의 긴장이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세계 ―가 다가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82쪽)
후기 전체주의 체제는 이처럼 자기 환경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대 인류의 보편적인 무능함을 드러내는 한 가지 양상, 특히 극단적인 양상으로, 따라서 그 실제 기원이 유독 잘 드러난다. 후기 전체주의 체제의 자동 작용은 전 세계적인 기술 문명의 자동 작용의 극단적인 형태에 불과하며, 이것이 보여주는 인류의 실패는 현대 인류의 전반적인 실패에 대한 한 가지 변형에 불과하다. (141~142쪽)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