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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을 한편 한편 정리할 계획입니다.
우선은 방송된 원고만 실어 봅니다. 조금 기다리시구 우선
방송된 원고 살펴봐 주세요.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상전 행차와 퇴고, 가도와 남효온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퇴고에 얽힌 고사’입니다.
희은 퇴고라고 하면 원고 정리를 마쳤다는 거 아닌가요?
종구 보통 글 쓰는 작업, 시를 짓고 문장 다듬기며 수정을
끝냈을 때 퇴고를 했다 그러죠. 요즘 주변에 보니깐
무슨 선거구호 한 줄 짜내느라 진땀들 흘리던데요.
희은 선거판에 나도는 한줄의 구호를 써 내기도 쉽지 않아서
이리 써볼까 저리 해볼까 그런 모습 역시 퇴고를 하지
못하고 고심하는 거잖아요.
종구 오늘 퇴고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를 돌아볼텐데요.
우선 퇴고란 말이 어떻게 나왔는가 돌아볼까요?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가 나귀를 타고 수도 장안으로
들어가며 번뜩 떠오른 시구가 있었죠.
가도 (여-) 조숙 지중수요 승퇴 월하문이라 (鳥宿池中樹 僧敲月下門)
새는 연못 속 나무에 잠들고/ 스님은 달 아래 사립문을 밀친다
(갈등) 아니 사립문을 두들긴다가 낫지 않을까. 가만 달빛에 그냥
사립문을 쓰윽 밀치는 모습이 운치 있는게 아닌가?
종구 바로 그 대목에서 밀칠 퇴자로 쓸까. 두들길 고자로 쓸까.
이걸 고심하면서 가다 그만 경조윤 한유의 행차에
끼어 들게 됩니다. 장안에 최고 고관 행차를 범한거죠.
희은 당장 끌려가 혼쭐이 날 일을 저지른 시인 가도.
시구를 굽다가 그만 어르신 행차 방해한건데 어찌 됐나요?
종구 경조윤 한유가 가도의 이야길 듣다가 ‘그 구절은 밀 퇴자 보다
두드릴 고자가 낫겠는데‘ 충고를 해주죠. 두사람은 어느새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서 걸어가며 끝없이 시를 이야기하구요.
바로 여기서 ‘퇴고’란 말이 탄생했던거죠.
희은 볼품 없이 나귀 탄 시인 가도를 알아 본 한유란 분도
대단한 안목 아닌가요?
종구 한유는 당송 팔대가에 드는 대문장가였죠. 한퇴지 한창려란 호가
붙었구요. 가도란 시인 역시 당나라를 대표했던 시인에 들구요.
이런 사람이 만났으니, 서로 말고삐를 나란히 잡고
끝없이 대화가 이어졌던겁니다.
희은 마치 어렵사리 퇴고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책을
하듯이 그런 모습이었겠군요.
종구 서로 마음과 진정을 알아주면 지위고 신분이고 떠나서
한퇴지와 가도처럼 그림같은 한 장면이 나올 수 있는데요.
우리 나라 고사로 옮겨볼까요. 조선 세조 때 생육신 중에
한 사람이었던 추강 남효온이 길에서 퇴고를 하려다 못한
심경을 어떻게 전했는지 볼까요?
희은 아까 가도와 한창려는 멋지게 퇴고를 마쳤잖아요. 근데
생육신 남효온은 길에서 구상한 글을 끝내지 못했다 왜요?
종구 (낭송) 눈 내린 아침 정중을 찾아가는데/ 오리 남짓 되는 길에
물렀거라 벽제소리 네 차례나 질러대니/ 나귀등 오르락 내리락
시 한줄 구워지랴 퇴고를 할 수 있으랴/
희은 오리 남짓 되는 길이라면 2키로 거리 정도 길인데
네 번이나 고관 행차 만나 나귀에서 뛰어 내려야했군요.
종구 반대의 모습이죠. 한퇴지와 가도는 말고삐 나란히 했는데
남효온은 나귀잔등에서 네 번이나 내려와 고관에 예를 표해야
했으니 퇴고가 될 리 있느냐. 글도 사람도 서로 잘 만나야
술술 풀린다는거죠. 상전노릇에 글이 다 날아갔다잖아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퇴고에 얽힌고사’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성주풀이 황장목과 양양부사 박지원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성주풀이 황장목과
양양부사 박지원 고사를 돌아볼까요?
희은 성주풀이와 연암 박지원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성주풀이 가사 중에 연암 박지원이 나오나요?
종구 연암 박지원과 성주풀이를 바로 대면 아무 연관이
없는 듯 싶지만. 성주풀이와 연암 사이에 황장목을 세워두면
서로 만나게 됩니다. 우선 성주풀이 이 가사 한번 보세요.
희은 자주 듣던 성주풀이 그 대목이군요.
(낭송)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의 솔씨받어 봄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도리지둥이 되었네.
아, 여기서 황장목이 나오는군요.
종구 보통은 임금의 관을 만들 때 썼다는 소나무를 황장목이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황장목을 왕의 소나무다. 하기도했고
강원 산간과 경상북도 산간지역 금강송을 말하기도 했구요.
희은 그럼 금강송이 황장목인 셈이군요. 성주풀이에선 안동땅
제비원의 솔씨로 시작해서 그 소나무가 잘 자라 황장목이
되었다는 뜻이군요.
종구 성주풀이에선 안동 제비원 솔씨가 황장목으로 잘 자랐다고
나옵니다만, 연암 박지원에게로 가면 황장목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당한 일과 만나게 되거든요. 연암 박지원이
강원도 양양고을을 다스리던 양양부사로 있을 때 기록 보세요
희은 여기 보니 연안 박지원이 64세에 양양부사로 재직했다.
환갑 넘어 양양부사 나리가 된 셈이군요.
종구 요즘으로 치면 시장급은 됐지요. 그 양양부사로 임명된지
50일 안에 온갖 어려운 일이 밀려드는데 그 당시 신임 부사
박지원이 무슨 고생을 했는지, ‘순찰사에게 올림’ 글 보세요
희은 (낭송) 순찰사께 고합니다. 양양부사로 내려와 앉은 자리
따뜻해질 짬이 없이 산이며 들로 바다쪽으로 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는대다 왼종일 죄를 지은자 앞에 두고 대질심문을
했더니 다리가 마비 되고 말았습니다. 아주 지금 곱사등이꼴
인데. 황장목사건이 또 터지고 만 것입니다. 차관이 내려와
황장목 벌목사건을 조사한다. 그 와중에 세금 조사해 올려야지
어부들 민원 받아야지. 병이 도져서 쓰러질 지경에다 진영의
장교들이 황장목 사건을 연달아 터뜨리는데 어민들 원성은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요.
종구 연암 박지원이 만년에 벼슬길에 나갔는데요. 강원도 양양부사로
내려가자 마자 현지 공무와 즉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노도처럼
밀려드는 정황을 엿볼 수 있죠. 그 가운데 가장 골머리 아픈게
황장목 사건이었다는겁니다.
희은 앉은 자리 덥혀질 짬이 없었노라는 한 구절만 봐도 당시
지방관으로 나간 목민관들 업무가 얼마나 많은건지 짐작이
가는데요. 64세 양양 부사 연암 박지원. 황장목사건은 무슨일?
종구 당시 황장목, 금강송을 함부로 잘라내거나 벌목했다간
큰벌을 받았죠. 때로는 가혹한 처벌 때문에 황장목 감독관이
호랑이 보다 무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구요. 연암이 부임할 때
어민들이 배를 수리하면서 썼던 나무가 황장목이었다. 해서
진영 장교들이 많은 어민들이 황장목 벌목죄로 잡아들이니
연암이 그걸 하나하나 따지다가 병이 나고 말았다는거지요.
희은 성주풀이에선 술술 잘 자랐던 황장목, 연암시대엔 부득이한
벌목 때문에 잘려나간 황장목도 꽤 많았군요.
종구 요즘은 그 금강송 구별도 못해 가지고. 숭례문 복원 때
엉뚱한 나무 갖다 썼잖아요. 그 귀한 황장목 잘들 자라고 있을까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황장목과 연암’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탐관오리와 뱀, 다산 정약용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탐관오리와 뱀에 관한
고사를 돌아볼까합니다.
희은 예전엔 탐관오리를 뱀에 비유를 했나 보군요.
종구 다산 정약용은 ‘탐관오리와 같은 뱀을 격살하자는 글’을
남기기도 했을 정도니깐요.
희은 뱀이 용으로 변신해 천변만화의 조화를 부리는 걸로 보면
뱀이 꼭 그렇게 사악한 것만은 아니란 생각도 들거든요.
종구 물론 뱀이 은혜를 갚은 전설도 있는 걸 보면
뱀을 사악한 것으로만 보진 않았다는 건데요.
동서를 가릴 거 없이 뱀과 사악함에 대해선 비슷한
생각이란게 흥미롭지요.
희은 다산 선생이 탐관오리를 뱀에다 비유한 글을 남겼을 정도면
그 시대에 탐관오리 행태가 얼마나 사악했는가 짐작이
가는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종구 다산은 오초사니 연화사니 백화사. 시신사. 체호사등
온갖 뱀들을 등장시켜서 탐관오리들과 연관지어
관직을 이용한 악행들을 적나라 하게 드러내 비판하고
있는데요. 우선 이 구절을 보세요.
희은 (낭송) 독사를 보라. 한번 물리기만 하면 후회해야 소용이 없고
상처를 잘라내야 이에 안심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아 도리어 그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 독충을 모두 죽이고 놓아주지 말라.
사람 생명을 위협하는 뱀을 격살하라는 준엄한 선언이 담겼군요.
종구 다산은 ‘뱀을 격살하라’는 글에서 뱀도 역시나 자연의
한 생명체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인간세상에 있어서
독사와 같은 탐관오리를 가려내 처치 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우리들 삶을 위협하는 독충이고 재앙이다. 하면서
뱀들을 잡아 없애야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여기보세요.
희은 (낭송) 저 산을 보라. 옹이가 많아 쓸모없는 저륵 같은 나무.
가시가 있어 먹지도 못하고 쓸모없는 절명은 베어 버려야
소나무나 대나무가 잘 자라지 않겠는가?
호랑이와 이리 등 살상하는 맹수를 죽여야 사슴이나 노루가
편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사람이나 동물이나 가리지 않고
독을 뿜어 숨지게 하는 뱀들을 제거해야.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를 쫓아낼 수 있을 것이며 어진 신하를 보호하면서 백성을
살릴 것이니, 이게 천지의 지극한 생명 살림길 아니겠는가?
종구 자연계 입장에서는 서로가 다 먹이사슬로 얽혀 있구요.
그 나름 생존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독사처럼 사람이며
동물들 가리지 않고 해치는 건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인간세에 있어서 그 사악한 무리가 탐관오리다. 끝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숙오가 요사한 뱀을 죽여 묻고서 끝내 복을 받았고, 기노가
사악한 뱀을 사살해서 사방의 나라를 복종케 했다. 강량신이
독사의 머리를 문 전설이나 뇌공이 도끼로 뱀을 처단한 것이나,
사람이고 신이고 이 뱀보다 더 미워하는게 없을 정도다.
탐관오리가 바로 이런 뱀들이니. 사슴을 먹고, 코끼리를 삼키며,
그 꼬리가 광대한 곤륜산을 감싸며 조화를 부린다 해도. 마땅히
처단해야 백성이 사는 길 아니겠는가?
종구 다산 정약용이 이 시대에 살았다면 이런 글을 다시 썼을까요?
아니면 국난을 극복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용들이 많다며
찬탄하는 글을 남겼을까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다산과 뱀’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죽장망혜 단표자로와 바가지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죽장망혜와 바가지 고사’
돌아볼까요?
희은 단가 ‘죽장망혜’가 떠오르네요. ‘죽장망혜 단표자로 천리강산
들어가니~~’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종구 대나무 지팡이를 짚구서 물 떠 먹는 자그만 표주박 하나 차고
녹음 짙은 숲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떠오르죠.
희은 단가 ‘죽장망혜’에 등장하는 첫 그림이기도 한데요.
단표자가 물 떠 먹는 바가지. 표주박을 말하는거군요.
종구 예전에 바가지도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불렀는데요.
대표자, 그럼 큰 바가지를 말했죠. 후표자라구 하면
깊이가 있고 큰 바가지였구요.
희은 ‘죽장망혜’에 나오는 ‘단표자’는 유람할 때 물 뜨기 좋은
자그만 조롱박이었겠군요.
종구 그렇죠. 여기서 한가지 새기고 가야할게 선비와 바가지는
가난해도 즐거운 사이라는 관계라는겁니다. .
나물밥에 물 한바가지를 먹더라도 즐겁게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의 초탈한 행복이 깃든 바가지였거든요. 여기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이 한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공자께서 안회를 일러 가로되 ‘ 밥 한그릇 물 한바가지로
누추한 골목집 살며 즐거운 안회여!
참으로 어진 안회여!
종구 안회의 변함없는 안빈낙도를 칭찬한 말인데요.
가난해도 즐겨 배우며 도를 따르는 생활자세를 칭찬한 말이죠.
그래서 통일신라 때 당나라 고관으로 일했던
최치원은 이런 글로 좋은 이웃을 만난걸 반기기도 했었죠.
희은 최치원이 당나라 장안에서 우신미 장관에게 주는 글이군요.
(낭송) 이 사람이 어찌 안회 같이 골목에 눌러 앉아
물 한바가지로도 즐거운 사람이릿까만
맹씨 같은 이웃이 있으니 그게 큰 복 아니겠소
종구 최치원 자신은 나물밥 먹고 물 한바가지로도 만족할
그런 안회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근데 이웃에 맹자와 같은
인품의 우신미 장관이 사니 이게 큰 복 아니겠소.
반기는 모습이죠.
희은 가난하면서도 삶의 길을 찾고 그 속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결코 쉽지 않잖아요. 가난과 삶의 길,
정도를 찾는 일이 서로 만만치 않은 일이구요.
종구 그래서 최치원은 솔직히 고백했죠. 나는 나물밥에
물 한바지 마시고 만족할 그런 위인은 못 된다. 하지만
이웃에 그런 도덕군자가 사는 건 행복한 일 아니냐. 그런데
다산 정약용에게 오면 그 물 바가지도 버릴 수 있다는겁니다.
희은 오며 가며 물 한모금 떠 먹자는 그 물바가지를
버릴 수 있다니요. 그럼 남은 건 손바닥 뿐일텐데요.
종구 그겁니다. 고대에 고상하고 절개있는 선비 허유가 늘상
늘상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마시니깐, 주변 사람이 물바가지를
줬어요. 그걸 나무에 걸어두니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거든요.
그 소리가 번거롭다며 물바가지 치우고 다시 손으로 받아 마셨죠
희은 그럼 다산도 허유처럼 물 바가지 버리고 손으로 마시겠노란
뜻이었군요. ‘단가- 죽장망혜’ 에 깃든 선인들 청빈하면서도
스스로 즐거웠던 바가지 고사, 잠시 돌아봤습니다.
‘고전기행 사설여행’ ‘중작망혜와 바가지’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직언을 올린 주운의 절함과 기대승의 글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목숨을 걸고
직언을 올린 한나라 주운과 그를 찬탄하는
기대승의 글을 돌아볼까 합니다.
희은 목숨을 건 직언. 그리고 기대승은 그 사건을 어떻게
봤는가를 살펴 봐야겠군요.
우선 주운이란 인물이 목숨을 걸었던 사건이 있었겠죠?
종구 중국 서한시대 성제 때 일이었죠. 황제인 성제는
자기 스승이었던 안창후 장우를 믿고 일을 맡겼는데
장우는 황제의 비호 속에 간악한 일을 자행하고 있었죠.
희은 황제의 스승이었던 장우. 그가 간악한 일을 저지르는데
정작 성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가요?
종구 그렇죠. 이때 괴리땅 수령인 주운이 나섰습니다.
성제를 알현하고서 ‘상방참마검’을 내려 달라고 합니다.
그 검으로 역적 간신 머리를 베어서 부정과 비리를 일삼는
무리를 뿌리 뽑겠노라 했죠.
희은 황제가 내린 ‘상방참마검’으로 역적과 간신을
처단할 것이다. 그러니 황제께서 칼을 내려 달라.
그 소리를 들은 성제는 많이 놀랐겠군요.
종구 당연히 누구냐? 물었죠. 누가 역적이고 간신이란 말이냐?
무슨 일로 그러느냐? 그때 주운은 거침없이 말합니다.
‘안창후 장우부터 처단해야겠습니다.’
희은 황제의 스승을 처단하겠다고 했으니 많이 놀랬겠군요.
물론 황제는 주운을 향해 진노 했겠죠.
종구 ‘면전에서 과인의 스승을 욕하다니. 당장 죽여야겠다’
그리고 어사대를 불러 끌어내 치라고 했죠. 이때 주운은
난간을 붙들고 외칩니다. ‘이 나라의 역적 간신은 바로
안창후 장우입니다. 장우를 죽여야 역적 간신무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 그러면서 난간을 놓지 않는겁니다.
어사대는 한사코 끌어 내리려구 했구요. 그때 난간이 뚝
부러지고 말았죠. 그걸 ‘절함’이라고 했습니다.
‘부러진 난간’이란 뜻이죠.
희은 끝까지 난간을 놓지 않고 황제에게 역적과 간신을
처단하소서 외쳤던 주운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종구 그 일이 있고 난 후 성제는 진상을 파악하게 됐고.
주운의 말이 틀림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황제의 스승 장우가
권세를 부리며 추악한 부정과 역적행위를 했다는게
드러났거든요. 역적은 벌을 받았고 황제는 그 부러진 난간을
그대로 두게 합니다.
희은 목숨을 걸고 직언을 올렸던 주운의 충성을 두고 두고
거울삼아 보게 했던거군요.
종구 그 일을 놓고 조선중기 고봉 기대승은 이런 노래를
남겼습니다. 주운의 충정과 목숨을 건 직언을 찬탄한건데요.
여기 기대승이 남긴 ‘절함’ 부러진 난간이란 글을 보세요.
희은 (낭송) 위태로운 종묘사직/ 간신역적 내치고자 목숨 건 주운이여
난간을 꺾으면서 어찌 일신의 영예를 생각했을까?
그 충성과 굳셈 죽음도 불사하고 마침내 임금 마음을 돌렸더라
오호라 주운이여 내가 우러르니/ 나인들 그리 못하랴만
기회가 없구나/ 쓸쓸이 홀로 푸른 역사를 어루만진다
종구 맑고 푸른 역사를 위해 난간을 부러뜨리며 직언을 올린 주운.
우리 시대 귀감을 삼아야 할 기개 아닌가요?
희은 ‘고전의 샘터’ ‘절함과 기대승’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성현의 거문고 사랑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성현과 부휴자전’
고사를 돌아볼까 합니다.
희은 성현은 악학궤범을 저술하는데 참여했던 분 아닌가요?
종구 맞아요. 악학궤범은 한국음악학의 기본사료이기도 한데요.
유자광이나 신말평, 박곤, 김복근 같은 사람도 참여했지만
성현의 공로가 가장 컸죠.
희은 음률에 정통한 성현이었군요. 그냥 이론에만 능한건
아닐까요. 서적들 참고해서 정리하는 그런 정도 연구자로요.
종구 성현은 입으로만 음악을 사랑하고 이론만 저술한 사람이
아니라 거문고 연주자로도 유명했거든요.
성현 당시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가 이마지였는데요.
성현이 바로 그 이마지에게 거문고를 배웠구요. 만년엔
눈 내리는 날 밤 마당에 돗자리를 깔구서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기록이 전해 올 정도입니다.
희은 보통의 생각으로는 그게 가능한 일일까? 눈이 많건 적건
거문고에 쌓이고 스며들었을텐데, 이런 환경에서 거문고를
탈 수 있을까? 그거부터 생각하게 되는데요.
종구 백설이 휘날릴 때 마당에 돗자리 깔구서 거문고 술대로
백설의 춤을 연주했을 그림 한폭이 떠오지 않나요?
그 속에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거문고 곡조는 과연
어떤 곡이었을까 궁금하구요.
희은 그 시대 최고의 거문고연주자였던 이마지에게 직접 배운
성현의 거문고 곡조 역시 절륜했던 모양이군요.
종구 이마지가 거문고로 좌중을 울렸다는 기록도 전하고있어요.
그 당시 거문고란 악기가 펼쳤던 곡조. 지금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 있다는 것두 짐작하시겠죠.
희은 지금은 거문고가 뒤로 밀려 있는 그런 모습 같거든요.
헌데 조선 시대엔 거문고로 사람 심금을 울린 명 연주자가
있었다는거군요.
종구 다만 이야기로만 전해오는 이런 악곡들이 정간보 정도로만
전해 왔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아쉬움도 들구요.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선비요 문장가였던 성현.
그가 자신의 삶을 기술한 ‘부휴자전’에서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지 잠시 음악에 관련된 몇구절 돌아볼까요.
희은 성현이 자화상을 기록한 ‘부휴자전’에 남긴 음악이야깁니다.
(낭송) 부휴거사가 거문고 타기를 좋아하니 주변 사람들이
방종하다고 놀리자 거사가 말하기를 ‘음악을 사랑함이 어찌
음탕하고 안일한데 방종함이겠는가? 율려를 고르게 하여
중화의 덕을 이루자는 것이다. 거문고를 타 보라. 가슴속
사특하고 더러운 기운이 절로 씻겨 내려갈 것이다. 이래서
군자는 거문고를 가까이 했음이라’
종구 음악을 사랑하는 뜻이 간결하고 뚜렷하게 드러나 있죠.
음탕과 안일함으로 방종하자는게 아니다. 중화의 덕을
음악을 통해 이루고자 함이다. 이 구절 보세요.
희은 그래서 거문고를 통해 그렇게 널리 중화 시키면서
사특함을 씻어내 맑은 기상을 간직하고자 했던거군요.
종구 성현의 음악사랑 또 다른 면모는 다음 시간에 다시 돌아보구요
우리 음악이 지닌 중화의 덕, 널리 모아모아 어울리며
화평함을 추구했던 마음을 돌아봤으면 합니다.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성현과 거문고’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영원한 스승상, 퇴계 기대승 그리고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스승의 날이죠.
역사 속에 빛나는 영원한 스승의 모습들 다시
돌아볼까 합니다.
희은 스승님 하니깐 학창시절로 가는 눈길, 또 역사 속에서
퇴계선생님. 율곡선생님, 떠오르기도 하네요.
종구 겨레의 큰 스승상을 세종 대왕에게 찾아야 하는
날입니다. 원래 스승의 날이 세종임금 탄생일이죠. .
오늘이 세종임금 탄생 610돌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희은 스승의 날과 세종임금이 서로 연관이 있었군요.
겨레의 영원한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임금.
종구 그 밖에도 역사 속에 찬연히 빛나는 스승을 추모하고
찬탄하는 소리를 잠시 거울삼아 볼까 합니다.
퇴계선생과 오랜 세월 편지로 성리학 논쟁을 벌인
고봉 기대승을 추모하는 글을 보실까요?
희은 퇴계선생님 쪽 보다 고봉 선생 쪽에서 스승을 어찌
찬탄했는지 보자는 말씀이군요. 다음글은 고봉선생 문하생
이로가 남긴 추모의 글입니다.
(낭송) 동방에 사라진 성현의 가르침/ 앞에서 퇴계선생이시고
뒤에서 고봉선생 이으셨더라/ 삼성의 공부 힘을 다하셨고
고경의 깊은 뜻 정심으로 찾으셨다네/ 여기 삼성의 공부란?
종구 그냥 함축된 말로 ‘삼성 공부’ 했는데요. 실은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죠. 하루에 매일
세가지 일을 반성하면서 산다는건데요.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하루 세가지 반성하는 일 보실까요.
희은 (낭송) “나는 매일 세 가지 일로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할 때
충실히 나의 능력껏 해줬던가? 친구와 사귀면서 성실하지 않은
점은 없었던가? 스승님이 나에게 전해주시고 일깨운 학업을
힘써 배우고 익히고 있는가. 이 세가지를 매일 반성하며 산다.
종구 그게 바로 증자가 말한 ‘오일 삼성오신’이란 구절인데요.
남을 생각해 일할 때, 친구와 사귈 때, 배운걸 학습할 때.
이 세가지에 있어서 반성할 점을 꼭꼭 찝어 말하고 있죠.
바로 집중된 봉사정신, 신뢰로 다진 우정의 소통, 그리고
배움에 있어 부지런한 탐구자세.
희은 예나 지금이나 스승으로 삼을 구절 아닌가 싶습니다.
그 공자와 증자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후세 학자들도
자신을 수양하는데 ‘삼성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단거군요.
종구 그래서 퇴계선생님이나 고봉 기대승 선생이나
‘삼성의 공부를 지극히 했고, 오경의 뜻을 궁리했더라’
그런 찬탄의 말로 제자들이 추모하고 있는겁니다.
옛 스승들 남긴 어록이나 행실이 복잡 다단한게 아니었거든요.
희은 ‘하루 세 번 반성했노란 삼성의 공부만 잘 해나가도
인간다움, 사람답게 살수 있대는 말씀 아닌가요?
종구 남을 위해 일할 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충실했는가 돌아보자.
이 한구절을 이 시대 공직자나 기업가들이 새기고
실천했더라면 저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생겼겠느냐 그겁니다.
희은 일상 속에 우리가 스승으로 삼을 구절들 멀고 어려운게
아니라 너무 가까이 있는데 다만 실천하지 못할 따름이겠죠.
종구 일상을 깨우는 말, 가까이서 찾자 그겁니다. ‘남을 위해 일할 땐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충실하게 하고 있는가 돌아보자’
(성독조) ♬위인모이 불충호아 (爲人謀而不忠乎)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영원한 스승’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박연폭포와 고려 이영간 용잡이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개성 박연폭포와
이영간 고사를 돌아볼까요.
희은 개성에 박연폭포 하니깐 황해도 민요 ‘개성난봉가’
생각나는 분 많을겁니다. ‘박연폭포 흐르는 물은 범사정으로
감돌아 든다 에헤 에헤 어람마~~~‘
종구 보통 ‘박연폭포’라고도 하죠. 그 박연폭포는 오늘도
개성 천마산 기슭에 변함없이 흐르고 있을테구요.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 송도 삼절로 유명한 개성의 추억들이
다시 생각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희은 한때는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개성이었죠. 앞으로 다시
그런 날이 오겠지만요. 그 개성에 이영간 고사가 유명한
모양이군요.
종구 동국여지승람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고려 문종 때 정2품 참지정사 벼슬을 했던 이영간이
개성 박연폭포에서 용을 잡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거든요.
조선 중기 문신 채수나 유호인이 송도유록에 남긴 이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고려조의 문종이 박연폭포를 찾아와 놀다가 도암위에 올라
갔는데, 난데없이 비바람이 몰아치고 돌이 흔들리니 문종이 놀라
두려워 하자. 수행하던 이영간이 글을 지어 용의 죄목을
하나 하나 책망하며 박연폭포에 글을 던지자. 용이 등을 드러
냈다. 이에 이영간이 용을 후려치니 박연폭포가 붉어졌다.
종구 전설의 고향에서 나옴직한 이야기죠. 개성 박연폭포에서
용을 잡은 사람으로 전해오는 고려의 이영간 비범한
인물이란걸 엿볼 수 있구요.
희은 조선 시대 사람들까지 기록에 남겨 전하는 이영간.
글로 용의 죄를 묻고 박연폭포에 떠오른 용을 후려 잡았다니
이걸 사실로 받아 들이기는 쉽지 않을 듯 싶은데요.
종구 그렇다면 고려 이영간 이야기를 한가지 더 돌아봐야겠네요.
이건 동국여지승람 담양편에 전하는 이영간과 소년암
일화거든요. 잠시 담양 소년암 바위사연으로 가볼까요?
희은 (낭송) 담양사람 이영간이 어려서 연동사에 공부할 때
하루는 서쪽 산고개 바위에서 동자랑 같이 장기를 두는데
돌아보니 큰 호랑이 한 마리가 그 바위 옆에 엎드려 있더라.
놀라움을 참고 장기판을 다시 보니 동자도 호랑이도
간곳이 없더라. 그 일로 인해 그 바위를 소년암이라 불렀다.
종구 담양에 소년암이 있었다는 이야기죠. 이런 것두
요즘 흔히들 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서 담양 소년암과
이영간 이야기 만들수도 있잖겠어요.
희은 그러니깐 고려 문종때 이영간이란 인물은 어릴적부터
기이한 일이 있었다는거군요. 담양에선 호랑이 동자랑 장기를
두고 박연폭포에서는 용을 후려 잡구요.
종구 역사에 등장하는 이영간은 기적같은 기이한 일이 종종
있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는 기록도 있거든요.
술 마시는 삵쾡이를 살려준 고사도 있구요.
희은 술 마시는 삵쾡이를 살려줬다구요. 그 보답으로 뭔가 있었나요?
종구 맞아요. 몰래 술을 훔쳐 먹는 삵쾡이를 살려주자.
기이한 술법을 부리는 책을 주더란거죠. 그 이후 이영간이
보통 사람이 상상못할 일들을 보여주기도 했더란거구요.
희은 5월의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해 졌으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고전기행 사설여행’ ‘이영간과 박연폭포’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잔별에 얽힌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잔별을 노래한 구절
잠시 돌아볼까 합니다.
희은 잔별하니깐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코스모스’란
다큐 프로그램이 생각나는데요.
종구 우주다큐라 할 ‘코스모스’를 통해서 무한한 상상력과
지식을 얻구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의 옛 선인들은
저 하늘에 잔별을 어찌 노래했을까 잠시 돌아보자는겁니다.
희은 잔별하니깐 저는 우선 ‘진도 아리랑’에 나오는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에 수심도 많다’
이 구절이 떠오르네요.
종구 하늘에 잔별만큼이나 수심이 많더라 노래했던 옛 사람들.
어린 아이들 눈으로 보면 저 하늘에 잔별만치
꿈도 많고 상상의 세계도 많은 거 아니겠어요?
희은 그럼 옛 사람들은 잔별을 가지고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돌아봐야겠군요.
종구 통일신라의 고운 최치원은 ‘새벽을 노래하다’ 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잔별 그림부터 보실까요?
희은 (낭송) 동녘 하늘 발그레하니 훤해지면서
푸르름 사이로 먼 먼 숲 위에 깜빡 거리는 잔별이여
종구 새 아침이 밝아 오는데 아직도 하늘에 떠 있는
잔별을 보고 있는 모습이죠.
새로 밝아 올 동녘의 하늘에 이젠 스러져야 할
하늘의 잔별을 대조시킨 순간이기도 하구요.
희은 새 하루가 열렸다. 이젠 태양이 세상을 밝힐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일러 준 잔별들은 잠시 물러날 때이다.
그런 교차점을 그려준 노래이기도 하군요.
종구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잔별에 얽힌 또 다른
그림 한폭을 만나게 됩니다. 당나라 시인 중에
두목이 극찬을 했던 잔별의 시이기도 한데요.
당나라 조하가 노래한 잔별은 어떤 그림인가 보실까요?
희은 (낭송) 남아 있는 잔별들 사이로 기러기는 하늘을 날고
긴 젓대 한 곡조에 누각에 기대 있다네.
종구 당나라 시인 조하가 그린 잔별은 하늘을 비껴 나는
기러기가 등장하면서 누각 기둥에 기댄채로
젓대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이 떠오르고 있죠.
희은 노래하는 그대로 한폭의 동양화가 되는군요.
남아 있는 잔별 사이를 날아가는 기러기
대금인지 피리인지 그 한곡조를 누각 기둥에 기대고서
듣고 있는 잠들지 못한 사람 모습이잖아요.
종구 조선의 3대 시가인 중에 한 사람인 윤선도가
좋아했던 이 한구절은 새벽에 저무는 잔별 그림이 아니라
초저녁 밝아 오는 잔별을 돌아보는 시선이거든요. 보세요.
희은 윤선도가 좋아했다는 한구절
한 가락 피리소리에 저무는 강 하늘이여
종구 (성독조) 일성 장저 강천모라. (一聲長笛江天暮)
여기선 초저녁 밝아오는 잔별들이 배경으로 등장하죠.
누군가에겐 수심 걱정처럼 무수히 떠 있는 잔별이었고
누군가에겐 잠들지 못한 별빛 같은 상념으로 만나는 잔별이고
어떤 사람에겐 피리나 젓대 한곡조로 만났던 잔별인 셈이죠.
희은 도심의 밝은 전등 때문에 더욱 흐려진 하늘의 잔별인데요.
가끔 밤하늘 새벽하늘에 잔별들과 눈을 맞출 짬 내보시는건?
‘고전기행 사설여행’ ‘잔별’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카페에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정조대왕 홍재전서 간모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정조대왕의 존현각
고사를 찾아 보겠습니다.
희은 정조대왕과 존현각, 어떤 일화가 전해 오는지
궁금한에요. 우선 존현각이 어디에 있었던 건가요?
종구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한양 오대궁 가운데
하나죠. 종로구 신문로에 있었던 경희궁에
어진인물을 받들겠노란 존현각이 서 있었거든요.
희은 종로구 신문로에 있었다는 경희궁은 일제 강점기 당시
사라진 우리의 고궁 아닌가요?
종구 일본이 해체해 버린 우리의 경희궁, 그 안에 광해군 때
지었던 경덕궁이 영조대왕 때 경희궁으로 고쳐서
수리하게 됐거든요. 그 안에 어진인물, 나라를 살릴
인재를 받들겠노란 존현각이 우뚝 서 있었던겁니다.
희은 그렇다면 영조대왕은 그 존현각에서 나라를 이끌어 갈
인물들과 만나 국정을 논하기도 하고 민생을 살릴
방도를 강론하기도 하구 그랬겠군요.
종구 그 전통을 정조대왕도 받들겠노란 뜻으로
‘존현각명’이란 글을 지어 후세에 남겼던겁니다.
여기 그 몇구절 돌아볼까요?
희은 (낭송) 어진이여 인물이여 존현각에서 부르난다
자나깨나 생각하여 부르고 있나니
머나 먼 산림 속이라도 이 소리 듣고 올지라
현자를 찾는 간모 깃발 드날려라
간절한 뜻으로 예의 갖춰 구하난다.
정조대왕의 ‘존현각명’ 앞 구절인데, 인재를 구하는 간절한 뜻이
담겨 있군요. 현자를 찾는 간모의 깃발을 드날리겠다는 건?
종구 예로부터 나라를 구할 인재. 민생을 구할 인물을
널리 찾는 걸 ‘간모의 깃발 흔들어 찾는다’구 했거든요.
희은 그럼 ‘간모’란 한구절만 봐도 아 이건 인물을 구하는
거구나. 그런 뜻이겠군요.
종구 그렇죠. ‘간모’란 말은 오경 중에 시경의 용나라 민요인
용풍 ‘간모’에서 시작됐는데요. 간모란 검은 소 꼬리를
깃대에 달아 둔 건데요. 춘추시대 위나라 대부가 이 간모를
수레 뒤에 깃대에 매달고 어진사람 훌륭한 인재를
맞이하러 나섰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죠.
희은 그래서 정조대왕이 존현각에서 인재를 기다리며
나라와 민생을 구할 인재라면 그 간모를 휘날리면서
나가 맞이 하겠노라 했던거군요.
종구 인재를 받들어 섬기겠노란 뜻을 새긴 그 존현각.
일제가 허물어 버린 경희궁과 함께 사라진 셈인데요.
우리시대 어려운 때를 당당히 헤쳐나갈 인재를 구하는
오늘의 ‘존현각’이 필요한 때 아닌가 그겁니다. 자 정조대왕의
다음 구절 보세요.
희은(낭송) 주나라 천하통일 이룬 강태공도
주 문왕의 정성으로 찾지 않았던가?
이땅에 어찌 인재가 없으리요 정성이 문제이리라
어진이 나라구할 인재를 존현각에서 부르나니
정성이면 찾으리라 무궁한 복이 그 아니겠는가?
종구 사라진 존현각, 그렇다고 인재를 구하고 찾는 정성까지 사라진걸까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정조대왕 존현각’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효자 조임도 어버이 봉양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효자 조임도 고사를
돌아볼까합니다.
희은 어버이 날인지라 효성이 지극했던 분들 일화를 통해
오늘의 우리들 어버이 섬기는 마음 돌아봐야겠지요.
효자 조임도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종구 조선 선조 때와 광해군시절을 거쳐 현종때까지
80세 장수를 했던 분이기도 한데요. 조정의 당파 싸움을
탄식하면서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어버이 섬기며
학문을 연구했던 퇴계학 연구자이기도 했죠.
희은 당파 싸움 와중에 휩쓸려서 패거리 지어 벼슬자리
보전하면서 살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요?
종구 그렇죠. 해서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 살면서
어버이 봉양에 정성을 다했던 선비였는데요. 여기
갈암 이현일이 남긴 조임도 일생을 간추린 행장 글을 볼까요?
희은 (낭송) 간송 조임도가 그 아버지를 간병하는데 부친의 대소변
맛을 보아 병세를 가늠할 정도였다. 부친이 별세하자 음식을
끊고 슬퍼해서 그 모친이 달래 겨우 죽을 넘길 정도였다.
모친이 병에 걸려 낫지 않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며
손가락을 베어 약에 타서 올렸을 정도였다.
네, 요즘은 상상이 안가는 효행을 실천한 분이군요.
종구 오늘 간송 조임도 한분의 어버이 섬기는 일을 소개 드리고
있습니다만, 예전에 효성이 출중한 선비들은 이 정도는
거의 다 했던 분들이라고 보면 될겁니다.
희은 우리 단가 효도가에 나오는 일화들이 꾸며낸 게 아니란
말씀이군요. 어버이 봉양을 위해 한 겨울에 얼어 붙은 강가에서
잉어를 빌어 잉어를 구한 일도 실제 있었던 일이란 말이죠?
종구 그럼요. 이 자리에서 세세하게 소개 드릴 수 없는 사례가
많은데요. 자기 몸을 바쳐서라도 어버이 병환을 낫게
하겠다. 깜짝 놀랄 사례들이 많이 전해오고 있죠.
간송 조임도 역시 그 효자들 중에 한사람이었구요.
다시 갈암 이현일이 남긴 조임도 효행 기록을 볼까요?
희은 (낭송) 부친상 이후 곡기를 끊다 시피해 피골이 상접한 것을
모친이 말리고 달래 겨우 죽을 먹게 됐는데, 그 모친을
지극 봉양하다 별세하니 슬픔을 이기지 못해 곡기를 끊고
삼년간 죽으로 연명하자 위로하는 사람들 마다 걱정이 많았다.
그때 간송 조임도가 말하기를 ‘양친이 다 돌아가셨으니
이제 효도를 하고자 한들 어디에 해야 하는가?’
종구 이런 사례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지나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옛 사람들이 이처럼
어버이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했던 그 바탕엔 어떤 정신이
자리하고 있는지, 여기 오경 중 예기 애공문 한구절 볼까요?
희은 (낭송) 사랑을 실천하는 인자는 어버이 섬기기를 마치
하늘을 섬기듯 하는 것이다.
네. 여기에 어버이를 하늘 섬기듯 하란 깊은 뜻이 새겨졌군요.
종구(성독조) 시고 인인지 사친야 여 사천이니라.
어버이 섬김을 하늘 섬기듯 하라. 그래도 갚을 수 없는게
어버이 은혜이다. (是故仁人之事親也如事天)
희은 우리시대 어버이 자리를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고전기행 사설여행’ ‘효자 조임도’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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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주풀이에 나오는 가사 중 황장목 가사가
있는데 황장목 나무가 그렇게 귀한 줄일 오늘 처음
알았네요.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파랑새님이 다 하시면 어떡해요~ ㅠ.ㅠ
나도요~~~!!!
늘 퇴고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 어원을 이제사 배우네요. 면무식케 해주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