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합천 삼가면에 들러 남명 선생의 용암서원을 살펴봤다. 팔월 하순 이글이글 기왓장이 틜 듯 무더운 날이다. 적막한 외딴 서원은 주차장이 텅 비었다. 찌는 듯 더위가 기승을 부려서인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듯 한적하다. 강학당 마루에 앉아 한참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무실에서 김 원장과 국장의 얘길 들었다. 청주 교원대 연수 동기들이 바람 쐬러 길을 나섰다.
코로나가 엉겨 붙어도 시원한 차로 다니며 조심하면 탈 없을 것이라 여겼다. 잠시 주춤하고 멈칫하다간 다시 번져나가는 전염병으로 계속 움츠리며 살자니 답답하다. 지난해 봉화 백두대간 국립수목원에서 호랑이 만남에 이어 나서니 속이 다 시원하다. 수학과 영어, 과학, 국어 전직 교사였으니 주요 과목이 모였다. 할 얘기도 다양하다. 당구를 좋아해서 자주 만나는 사이다.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일정 때와 광복, 6.25 전란 시대 전차 다니는 거리를 봤다. 모노레일을 타고 산 정상에 있는 청와대에 들어갔다. 집과 정원 잔디와 나무가 너무 닮아 정말 그곳인가 여겼다. 흡사한 집무실 대통령 의자에 앉아 잠시 대통령 업무도 봤다. 영화나 연속극에 어찌 그 시절이 나오나 했는데 바로 여기였다.
대야성 함벽루와 정양늪으로 갔다. 푸른 강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백사장이 그림같이 펼쳐져 정자에서 시원하게 건너다봤다. 늪에는 어리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가시연잎이 널찍하고 둥글게 멍석을 깔아놓은 듯하다. 늪 사이로 다리를 놓아 건너갔다 오니 아름다운 정경이 눈앞에 어른거려 한 번 더 볼 걸 했다.
다음 날 국보 52호 대장경판전을 찾았다. 오르는 길 언덕 좌측에 고운 최치원의 학사대에 들렀다. 거꾸로 꼽힌 지팡이가 가지를 아래로 척척 늘어뜨리고 살아있었는데 터만 있고 뽑혀 없어졌다. 죽은 나무라도 그냥 뒀으면 했지만 가뭇없다. 빈터만 휑하다. 당나라에서 건너와 기울어져 가는 신라 말기 함양 태수 일을 맡았다. 지리산 졸참나무를 옮겨 심어 풍수해를 막는 십 리 상림 숲을 가꿨다.
방랑길에 올라 부산 동쪽 바닷가에 잠시 머물다가 쌍계사에 들어갔다. 만년엔 가야산으로 가 지팡이를 꽂아 두고 떠났다. 그의 처음 아호를 따서 대한 팔경 해운대라 한다. 전나무 지팡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령 250년으로 경상남도 기념물이기도 하다. 링링 태풍으로 부러져 고사 되자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대장경 판각 경내로 들어가 창틈으로 차곡차곡 기대 놓은 거치대를 들여다봤다. 고려 현종 때 초조대장경이 병란으로 소실되자 재침을 막기 위해 고종 때 대장경도감을 설치 오늘날 재조대장경을 제작했다. 임시수도 강화도 서문 밖 선원사 대장경판당에 보관하다 조선 초 태조 무렵 해인사로 옮겼을 것이라 여긴다.
승려 독경 속에 2천여 명 군인의 호송을 받았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이 있단다. 현존 경판은 고려 대장경이라 하고 판수 8만이어서 팔만대장경이라고도 이른다. 목판인쇄로 가장 오래고 완벽한 자료이다. 제주도와 완도, 거제도의 산벚, 돌배, 자작나무를 이삼 년 해수에 담가뒀다가 갈라 곱게 대패질했다.
필사를 붙이고 각인해서 똑같은 모양으로 새겼다. 뒤틀리지 않게 가운데 부분을 갈라 판각했다. 최초의 송나라 판판대장경과 구전하는 거란판대장경을 비교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유일한 대승법계무차별론은 해인사에만 있는 불경이다. 뽑힌 서예가와 판각 장인, 목수들에게 교육을 통해 하나의 글자체와 판을 만들어냈다. 온 정성을 기울인 예쁜 글자 예술이다.
목판은 가로 23행이고 세로는 14행으로 310자 내외이다. 한석봉은 뛰어난 서예와 정교한 판각술에 놀라 신필이라 일컬었다. 막대한 경비를 국가에서 부담했다. 과학적 배열과 엄격한 자료수집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모범이 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축소한 영인본 48권과 한글 번역판 120권을 출간했다.
거란과 몽골의 침입으로 두 번이나 새겨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내용은 부처의 일대기와 설법이다. 석가모니 말씀을 경. 율, 론의 3장 체계로 집대성한 판이다. 현존하는 판각은 글자 수가 5,238만 자이다. 16년간 쓰고 깎았으며 구양순체 글씨이다. 앞뒤 두 채 장경판전은 바닥 땅속에 소금과 모래를 넣고, 길쭉한 건물 앞뒤 벽엔 크고 작은 통풍창과 함께 습기를 줄이려 노력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경판 수가 무려 81,258판 국보 32호이다. 불력으로 나라를 보호하려는 염원이 담겼다. 의천과 최우, 이규보 등이 왕명을 도와 판각에 앞장섰다. 많은 정성을 들인 판본이다. 그래서인가 판각 나무가 파삭파삭 부서지거나 금이 가고 말라도 줄어들지 않는다. 좀이 슬지 않으며 쥐나 뱀, 참새, 제비, 거미, 모기, 파리 등의 서식이 적다.
해마다 판각을 한 장씩 머리에 이고 주위를 도는 행사가 있다. 사각 모서리가 마모되지 않도록 조선 고종 말엽에 쇠를 붙였다. 화재로 위험할 때마다 용케 피했다. 그래도 1천 년 가까운 판을 잘 보호하고 이어가기 위해 영축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도자기로 구워내어 간직하고 있다.
여러 장을 옮기려면 글자가 뭉개질 수 있다. 한 장은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어떻게 날랐을까. 가깝나 그 먼 길을 산 넘고 물 건너 해인사까지 갔을까. 기록이나 전하는 자세한 내용이 없어 신비스럽다. 문경새재를 넘어내려 내륙으로 갔을 것이란 추측이 있다. 또 서해를 지나 남해안을 돌아서 거제도를 거쳐 가야산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단다.
한 판 이는 행사가 그때 정성껏 날랐던 모습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배는 풍랑으로 위험할 수 있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 몇 시간이면 가지만 그땐 험하고 힘든 여정이다. 몇 며칠 아니 한 달이나 어디서 자고 먹고 쉬었을까.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빠른 세월만 바람같이 휘하고 흘러간다. 아득하기만 한 얘기다.
첫댓글 즐거운여행 좋은 남겨주셔서 감사하고 수고하셧습니다
소설도 올려놓으셨고,감사합니다 찬찬히 읽어 보겠습니다
박회장님 카페를 잘 보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성이 대단합니다.
따스한 안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