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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은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몬스
가수 이은미와의 전방위 인터뷰 |
국내 최초 라스베이거스 초청공연 갖는 이은미 |
맛있는 음식과 요리의 차이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맛있는 음식은 맛만 있으면 되지만, 요리는 요리사의 경험과 노하우까지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런 점에서 가수 이은미가 부르는 노래는 요리다. 맛도 맛이지만 그녀만의 경험과 감정이 노래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수로 살아온 지 20년. 노래할 땐 한없이 행복하지만, 인간 이은미로서는 편치 않은 삶을 살았다는 그녀의 무대 밖 솔직 토크. |
무대 밖 고단한 삶에 대한 명상록
& 가장으로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
“지난 15년 동안 공연을 쉰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를 쉬게 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었어요. 올곧게 저만을 위해 사는 삶이 되지 못했던 거죠”
“혹시 제 얘기,
건방지게 들리진 않았나요?”
노래만 하고 살아온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자주 쓴다. 그럴 때마다 이은미는 단호하게 “저 선생님 아니거든요, 이은미 씨라고 불러주세요” 대답한다.
노래 잘하기로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녀에게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리나라 가수 최초로 라스베이거스 초청 공연을 갖게 된 것. 이은미는 미국 가수들도 서기 어렵다는 라스베이거스 힐튼호텔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국내 최초’, ‘엘비스 프레슬리가 8년 장기 공연을 했던 역사적 무대’라는 등… 벌써부터 이 소식은 호들갑스럽게 전해지고 있었다.
투어를 앞두고 기쁨, 설렘 혹은 부담감은 없는지 물었다. 담담하게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게 말하면 건방진가요? 그런 거 전혀 없는데요”였다. 그리고 잠시 후 설명이 이어졌다.
“국내 무대, 지방 무대 상관없이 무대에 서는 것은 늘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미국 어느 콘서트홀이라고 해서 더 떨릴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셀린 디온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서는 무대에 한국 가수 이은미가 초청되었다는 점이 자랑스러울 뿐이죠. 저는 그곳에서도 이은미 저 자신으로 승부할 겁니다. 제 밴드와 함께 제가 불러왔던 제 노래를 부를 예정이에요.”
어머니는 내 인생의 멘토
늘 라이브만을 고집한다는 이은미의 확고한 신념은 이제 대한민국 대중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호되게 단속하는 것들 중 시간이 흐를수록 느슨해지는 것도 있을 법하다.
“개인적으로 제가 온화해졌으면 좋겠어요. 연륜이 생긴다는 것이 바로 온화해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타협의 문제인데요, 이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늘 제가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고.”
이은미는 자신의 이런 고집에 대해 ‘못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못됐다’고 표현한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노래를 부르고 났을 때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아주 소박한 바람인 거죠.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고 갔는데 무대의 여건이나 기본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저는 무대 위에서 피 흘리며 상처 받아요.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 ‘돈 벌었으니까 됐다’ 식으로 타협한 적 없어요. 제가 참 못됐거든요.”
이번에 발표한 앨범은 제목이 ‘마 논 탄토(Ma Non Tanto)’. 음악용어로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이다. 이 앨범을 발표하기 전까지 그녀는 개인적으로 극심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3년 12월 마지막 날 연말 공연을 마친 후 그녀는 새해 첫날 아침 소속사로 전화를 걸었다. 6개월 동안 자신을 찾지 말라고만 얘기한 다음 훌쩍 여행을 떠났다.
“당시 많이 지쳐 있었어요. 음악을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어요. 좌절하고 배신당하는 일련의 일들을 겪었어요. 하지만 제가 원래 그래요. 음악에 대해 욕망이 차오르면 힘든 건 다 잊어버리고 또 노래할 생각만 하거든요.”
이은미는 힘들고 괴로울 땐 어머니를 생각하며 버틴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은미 인생의 멘토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허리 질끈 동여 묶고 일당 5,000원짜리 가정부를 하면서 저희들을 키우셨어요. 그 전까지 밍크코트 입고 ‘사모님’ 소리만 들었던 어머니가 한순간에 그렇게 변해야 했던 거죠. 힘든 일 하시면서 저희 식구들의 가장 역할을 다 하셨어요. 그런 어머니의 강인한 모습을 늘 닮고 싶었습니다.”
노래를 그만둘까 할 정도로 지쳤을 때, 이은미는 어머니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어머니의 DNA를 물려받았으니 그런 용기가 저에게도 있어야 되잖아요. 하지만 저는 죽어도 어머니를 못 따라갈 것 같아요. 힘든 일이 생기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려면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돈보다는 신용 하나로 살았습니다”
이은미는 올여름 ‘스킨스쿠버’를 배웠다. 워낙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몇 가지 도전하고 싶은 운동이 있는데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라고 했다.
“제가 물을 좋아해요. 여름에 스킨스쿠버를 배웠는데 너무 즐거웠어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요, 저는 3일 만에 과정을 다 마쳤어요. 연말까지 잡혀 있는 공연 스케줄이 어느 정도 끝나면 암벽 등반도 할 겁니다. 제가 게으를 땐 한없이 게을러서 며칠씩 시체놀이 할 때도 있는데요, 일단 맘먹으면 가열차게 운동하는 스타일입니다.”
늘 무대에서 노래하고 운동을 즐기는 덕분에 나이가 드는 것은 잊고 산다. 요즘 여배우들은 ‘나이 드는 게 행복해요’라고 얘기하는 게 유행이지만 이은미에겐 세월의 흐름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여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 다 거짓말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이 드는 게 그저 행복하고 좋기만 한 사람은 없을걸요. 제 경우 나이 들었다는 것을 아직 몸으로 실감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많이 불안하죠. 지금 생각해보니 집도 하나 없는데….”
‘공연 횟수가 많으니 돈도 많이 긁어모았을 것’이라고 추측들 하겠지만 이은미는 모아놓은 돈도, 돈 욕심도 없다.
“돈이야 많으면 좋겠죠. 돈이 없으면 현실에서 불편하니까요. 저는 남들에게 궁상떨지 않고 후배 만나서 밥 한번 살 수 있을 정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는 돈보다는 신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돈보다 신용. 저는 그렇게 살았어요.”
공연 후 합장하는 습관
‘모아진 두 손 안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결혼이나 남자에 관한 질문에 대해, 그녀는 연예인이 아닌 음악인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결혼이나 남자에 대해 한마디 하면, 그게 크게 와전되고 왜곡된 기사로 보도되어서 그동안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대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공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들 말씀하시지만, 전 그런 것에 상처받거든요.”
그녀는 살면서 인간 이은미로의 삶이 편치 않다고도 했다. 자신 스스로 내면을 바라보면 짠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왜 너그러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걸까 뒤돌아보면서 호흡을 가다듬곤 한다.
“제가 지난 15년 동안 공연을 쉰 적이 없어요. 무대에서 서려면 그 외 시간은 연습하고 준비해야죠.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진행을 제가 혼자 해요.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를 쉬게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없었어요. 올곧게 저만을 위해 사는 삶이 되지 못했던 거죠.”
이은미는 앞으로 딱 10년만 노래하고 초야에 묻혀 살고 싶다고 얘기했다.
“제가 산과 물과 바다를 좋아해요. 이것들이 다 갖춰져 있는 곳을 생각해보니 제주도더라고요. 그래서 10년 후엔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요. 초야에 묻혀서.”
이은미 하면 맨발로 노래하는 가수로도 유명하지만, 공연 후 그녀는 습관처럼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다. 불교 신자도 아닌 그녀에게 합장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공연 끝나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할 때 합장하는 버릇이 있어요. 두 손을 모으는 행위 자체가 저를 평화롭게 합니다. 두 손을 모으면 그 안에서 저는 평안을 느낍니다. 그 순간 저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거죠.”
인터뷰 중간 그녀는 갑자기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기르기 시작한 꽃 사진이었다.
“화초를 기르기 시작했어요. 화초를 기르니까 정말 참 신기해요. 사랑으로 키우고 돌봐주면 잘 자라거든요. 이 일도 제가 온화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이은미는 세월이 지나고 노래하기 싫어지면 안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추억을 파는 장사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이은미는 안다. 자신이 얼마나 노래를 사랑하고 대중들을 사랑하는지 말이다. 이은미의 노래가 맛깔스러운 음식, 그 이상의 느낌을 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여성조선 06년 11월호 People & Life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