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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7월 17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717토] 타산지석 삼아야 할 미국의 금융개혁
미국 상원이 15일(현지시간) 금융위기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춘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친기업 성향의 공화당과 재계의 반발로 초안보다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1930년대 대공황 당시 금융규제법 도입 이후 가장 획기적인 개혁안을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법안은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를 막기 위해 정부에 강력한 감독 권한을 부여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부실 대형 금융회사가 경제에 위협을 줄 경우 신속히 퇴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금융회사의 대마불사 관행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금융소비자와 투자자 보호를 강화한 것도 개혁의 핵심이다. 불공정 수수료나 약탈적 고금리 관행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산하에 독립적인 소비자보호기구를 만들도록 했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등 고위험 상품에 자기자본의 3% 이상을 투자하지 못하도록 투기적 거래에 대한 규제 근거를 마련한 것도 눈에 띈다.
금융위기 이후 이렇다 할 개혁안을 내놓지 못한 우리로선 미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은 금융위기에 대한 냉철한 반성을 토대로 발 빠르게 대응하는데 우리는 금융개혁의 방향도 잡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오히려 금융 공기업과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의 외압 논란에서 보듯, 관치금융이 부활한 느낌이다. 금융감독 기능을 효율적으로 조정하자는 목소리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밥그릇 싸움에 뒷전으로 밀려났고, 금융소비자 보호에 주력해야 할 금융감독 당국은 퇴직 후 낙하산 욕심 때문인지 소비자 편에 서기보다는 금융회사를 두둔하는 경우가 많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금융규제 완화와 은행 대형화를 추진했다. 그런 만큼 금융선진국의 규제강화 흐름이 곤혹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파생상품 등 고위험 투자에 대한 규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규제 당국의 일원화와 감독기관의 전문성 강화 등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전 세계적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맞춰 국내 현안 해결을 서두르기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717토] 4대강 공사 중단하고 지방정부와 ‘대안’ 논의하라
충남도와 경남도가 4대강 사업을 재검토하기 위한 특별기구를 각각 꾸리기로 했다. 4대강 사업 중단을 공약했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두관 경남지사의 당선으로 총론 차원의 여론은 이미 확인됐다. 이제 해당 지방정부들이 실증적 조사·분석을 거쳐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은 주민의 생활과 직결된 것이니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와 마땅히 협의해야 한다.
두 지방정부의 복안은 합리성도 갖추고 있다. 충남도의 ‘4대강 사업 특별위원회’에는 각 분야 전문가와 금강권역 7개 시·군의 주민대표가 참여하기로 했다.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단체장과 반대하는 단체장을 가릴 것 없이 모두 대표를 보내 대안을 논의하겠다는 뜻이다. 수자원·생태환경·지역발전 분야 전문가 30여명이 참여하는 ‘금강 살리기 전문가 포럼’도 출범하는데, 이 가운데 15명은 국토해양부가 비슷한 목적으로 추려둔 명단을 따랐다고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이 기구는 공사구간별로 하나하나 따져 지역에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가려내겠다고 한다. 선입견 없이 수정·전환·보완·중단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기로 했다. 현행 사업계획안은 정부가 필수적인 검증절차조차 생략하고 급조한 까닭에 허점이 많았다. 이런 터에 두 지방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당연히 반겨야 할 일이다. 지역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이 찬반 의견을 아우르며 논의한다면 튼실한 대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중앙정부는 공사를 일단 중단하고 지방정부와 협력하는 게 마땅하다. 큰비가 내리는 철인 만큼 안전을 위해서도 공사는 중단해야 한다. 국토해양부 공무원들이 경남도와 충남도의 움직임을 평가절하했다고 하는데, 이는 편협하고 어리석은 태도다. 이번 기회는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기식 사업 추진으로 초래한 곤경을 헤쳐나가는 출구가 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대화하겠다는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국가적 대립과 마찰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러잖아도 4대강 사업 중단을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문수스님의 49재 집회가 오늘 전국적으로 열린다.
지방정부 또한 연구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공사 진도가 더 나가기 전에 대안을 제시해야 설득력이 높아질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20100717토] 이젠 '죽음의 質'을 고민하는 사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 산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란 연구기관이 OECD 30개국을 포함한 세계 40개국을 대상으로 그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품격(品格) 있는 죽음을 맞느냐는 걸 갖고 '죽음의 질(The Quality of Death)'을 조사해 한국 순위를 하위권인 32위로 평가했다. EIU는 죽음에 대한 사회의 인식, 임종(臨終)과 관련한 법제도, 임종 환자의 통증과 증상을 관리하고 환자 가족이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완화 의료(palliative care)'의 수준과 비용부담 등 27개 지표를 비교했다. 영국이 제일 좋은 평가를 받았고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벨기에가 뒤를 이었다.
한국 사회에선 살아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는 사람이 거의 없고, 어떤 이의 죽음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그의 회생 가능성을 포기하는 부도덕한 일처럼 인식됐다. 그렇다 보니 인공호흡기 같은 기계장치를 감아 맨 채 고통 속에서 죽음과 만나게 된다. 병원들도 호스피스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죽음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교육받거나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의사·간호사가 임종 환자들 곁을 지켜왔다.
국립암센터가 2008년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4.6%가 '완화 의료'를 원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해 암(癌) 사망자 6만7000명 가운데 완화 치료를 받는 이는 7.5%인 5000명에 불과하다. 무의미한 생명연장 시술은 환자 본인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치료 비용을 남은 가족 어깨에 지우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도 '죽음의 질' 문제를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논의해 볼 때가 됐다. 죽음의 단계가 의료보건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인식부터 필요하다. '죽음의 질'에서 최고 평가를 받은 영국은 죽음을 앞둔 환자가 삶의 마지막 시기를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돌봐주는 '종말 간병 간호사(Terminal Care Nurse)' 제도를 운영, 그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 우리도 완화 진료 비용의 일부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거나 은퇴한 간호사 등을 재교육시켜 임종 전문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의과대학에서도 완화 진료를 정규 과정으로 이수케 해야 하고 품격 있는 죽음을 가르치는 '웰 다잉(well-dying)' 전문가도 길러야 한다. 불치병에 걸렸을 때 어떤 식의 죽음을 맞고 싶다고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생전 유언(living will)' 작성 운동도 필요하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 가족과 친지들의 사랑 가득한 보살핌 속에서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할 때다.
[서울신문 사설-20100717토] 광복절 사면복권 국민 힘 모으는 내용 돼야
정부가 8·15 광복절을 맞아 수천 명을 대상으로 특별사면 및 복권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인과 정치인, 그리고 18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위반해 형이 확정된 선거사범 등이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단독사면 때 제외된 경제인이 상당수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과 재판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대통령의 이러한 사면권은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이번에 특별사면이 실시되면 이명박 정부 들어 5번째여서 너무 잦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은 의미가 적지 않다. 광복절 사면복권은 분열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정권교체 혼란기에 무리한 사법처리 논란을 불렀던 일부 경제인들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사면해 경제살리기에 동참시키는 것을 검토해 봐야 한다. 선거정국을 거치면서 표적 사법처리 논란이 인 정치인들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 화합의 손을 잡아야 할 시점이다. 다만 사면은 명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시행되어 국민들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사면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면복권은 부작용이 많은 제도이다. 사면권이 남용되면 법치주의 근간이 파괴된다. 법제도의 안정성을 해쳐 사법질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대화합을 명분으로 단행하는 사면복권이 국론분열의 씨앗을 잉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면복권이 취지와 달리 법 경시 풍조를 낳지 않도록 엄격하게 대상자를 선정해야 한다. 주요 경축일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단행되는 사면복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국민 화합은 최대한 도모하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2007년 사면업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설치된 사면심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무부 장·차관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의 민주적 운영으로 정당성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717토] 부동산 대책, 거래부터 살리는 게 급선무다
정부가 4 · 23대책을 보완하는 추가 부동산대책을 이달중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사고팔 수 있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사실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은 대단히 시급하다. 지금 부동산시장은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거래도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상태다. 전국 미분양 주택이 11만호를 넘고, 분양된 아파트들도 미입주 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이로 인해 건설업계는 물론 이사업체 인테리어업체 등도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만큼 추가 대책은 서둘러야 할 과제다.
중요한 것은 거래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지 가격 상승세를 다시 자극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지만 아직도 내집 마련은 아예 포기한 채 사는 서민들이 적지 않다. 넓은 집으로 옮기려 해도 있는 집이 팔리지 않는데다 추가 소요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실정이다.
정부는 4 · 23 대책에서 '전용면적 85㎡ 이하'와 '6억원 이하'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대출규제를 완화해주던 것을 하나만 충족시켜도 허용하는 방안, 1조원으로 책정된 국민주택기금의 지원 규모를 늘리는 방안 등을 강구 중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집값 안정과 거래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 조치를 연장하는 방안, 대출 만기구조를 장기화하는 방안, 대출 원금 상환 시기를 연장하는 방안, 보금자리 주택의 공급 규모와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 등도 적극 검토해볼 만 하다.
다만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緩和)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860조원 선까지 부풀어오른 가계부채가 더욱 늘어난다면 가계발 금융불안이 현실화하면서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717토] 원전수출 밝게 하는 신형 원자로 가동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건설 중인 신고리 원전 3호기에 국내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원자로 'APR1400' 모델의 설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원전수출 전망도 크게 밝아지게 됐다. 실용화 단계에 들어선 이번 모델은 기존의 한국형 표준원전보다 설비용량이 40%나 확대되고 설계수명도 20년 이상 늘어난 첨단 모델이다. 내진설계 등 안전성도 크게 강화됐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사업에 설치될 원자로도 바로 이 모델이다.
이번 신형 원자로의 개발 및 가동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UAE로부터 수주한 대규모 원전사업의 성공 여부가 이번 신형 원자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형 원자력발전은 이미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터키 정부와 원전사업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한국전력은 곧 인도 원자력공사와 공동개발계약을 맺고 한국형 원전건설 타당성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필리핀도 최근 취임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이 한국형 원전건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한국형 원자로의 진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국형 원자로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신형 원자로를 앞세운 한국의 원전수출이 잇달아 개가를 올림에 따라 세계 원전시장의 72%를 장악해온 미국ㆍ프랑스ㆍ일본의 삼각구도마저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의 원전수출에 대한 견제가 그만큼 거세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므로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미 선진국 회사 간의 합종연횡이 활발해졌고 일본은 정부와 업계가 힘을 합쳐 원전수출 전담기구까지 설립해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오는 2030년까지 450기 정도가 건설될 예정이어서 원전 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원전에다 30년간의 원자력발전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를 살릴 경우 우리나라는 원전 르네상스의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다. 몇 가지 핵심 원천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원전사업에 대한 금융지원과 수출전담기구 등 지원 시스템 확충에 적극 나서야 한다. 수출전담창구의 경우 지식경제부 내에 원자력수출진흥팀을 구성했으나 기구의 격과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서도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 내일/정성희(논설위원)-20100717토] 시험 반대 ‘교사 이기주의’
말 많던 2010학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끝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반대운동과 일부 교육감의 대체 프로그램 마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학생이 별 탈 없이 시험을 치렀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서울 영등포고와 대영중의 집단 시험거부 사건을 제외하면 체험학습을 떠나거나 대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은 전체 학생(193만9000명)의 0.02%인 433명에 그쳤다. 2008년 188명, 2009년 82명에 비해선 늘었지만 요란했던 평가거부 움직임에 비하면 찻잔 속의 태풍 같은 것이었다.
* 학업성취도평가, 학생들은 덤덤해
학업성취도평가를 무턱대고 옹호할 생각이 내겐 없다. 그래서 이 시험이 정말 아이들을 열 받게 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학부모는 “문제가 쉬웠다”며 딸이 태평했다고 한다. 문구점에서 만난 다른 초등생은 “OMR카드 작성은 힘들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시험범위가 너무 넓어 옛날에 배운 문제에 대해 기억이 가물거리긴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어요.” 어쨌건 시험을 망쳤다고 속상해하는 학생은 없었다. 물론 내가 접촉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된 얘기이긴 하다.
그래도 이는 시험을 앞두고 여러 학교에서 파행 수업이 이루어졌다는 소식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반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조사대상 학교 401곳 가운데 22%인 89곳이 강제자율학습이나 문제풀이 수업을 했다고 발표했다. 학교 5곳 중 1곳이 시험에 대비한 보충수업을 했다는 뜻이다. 교사들은 분개할지 모르겠지만 학교가 공부를 더 시켰다니 학부모는 내심 좋아하지 않을까.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학교와 평가에 태평한 학생 및 학부모들, 이 둘 사이의 괴리에 평가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학업성취도평가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란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고사’가 부담이라며 피켓을 들고 나오는 아이들에게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에는 예민하지만 시험 결과가 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 등 4등급으로 구분돼 통보되는 이런 시험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보통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학업성취도평가는 확실히 교사에게는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 동네 이웃인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우리 반의 성적이 나쁘면 자존심도 상하고 교장이나 동료 교사로부터도 눈총 받는다”고 말했다. 반에서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나오면 이 아이들을 따로 지도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사전에 공부시켜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도 스트레스다.
* 무사안일 교장 교사에게 자극제 됐다
시험 성적과 교사의 급여를 연계하는 미국의 경우는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우리보다 더 심하다. 스티븐 래빗의 ‘괴짜경제학’을 보면 교사가 학생의 시험 성적에 책임을 져야 하는 ‘고부담 시험’이 등장한 이후 시험 부정에 연루되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교사였다. 어떻게든 학생성적을 올려야 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답안지를 몰래 고치는 일이 벌어졌다. 2008년 평가에서 지역과 학교 차원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교장한테도 학업성취도평가는 골칫거리다. 학교 서열이 매겨지고 교장의 능력과 책임이 걸려 있다.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제로였다’ ‘우수학생 비율을 끌어올렸다’는 등의 평가결과는 지금 같은 교장공모제하에서는 교장을 연임하느냐, 탈락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 시험이 학교를 들쑤셨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공교육이 그간 얼마나 무사안일했는지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학업성취도평가의 가치는 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박종권(논설위원)-20100717토] 쌀 막걸리
우리 민족의 DNA에는 술이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유전자 중 ‘아데닌’의 ‘A’는 원래 ‘알코올’이라고 우리끼리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중국 문헌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은 부여(夫餘)편에서 “나라 가운데 크게 모여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춘다(國中大會 連日 飮食歌舞·국중대회 연일 음식가무)”고 했다. 바로 영고(迎鼓)다. 이때 ‘음주가무’가 아니라 ‘음식가무’인데, 우리네는 먹는 것보다 (술을) 마시는 것이 먼저다.
한·중·일 3국의 문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술이다. 삭풍이 불어 추운 중국은 돼지고기를 곁들여 40도가 넘는 ‘배갈’이 제격이다. 작은 잔을 입에 털어 넣고 ‘간베이(乾杯)’를 외친다. 기름진 음식은 찬바람에 얼굴이 트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다. 먹는 것을 우선해 나그네가 머무는 곳도 ‘판뎬(飯店)’이다.
일본은 덥고 습해 빨리 취한다. 그래서 ‘사케’를 홀짝홀짝 마신다. 한 모금만 마셔도 금세 잔을 채워 주는 것은 건배로 인한 만취를 경계해서일까. 습해서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 창궐하니 자주 씻을 수밖에. 그래서 ‘료칸(旅館)’마다 목욕통이 있다. 중국이 씻지 않는 것이나, 일본이 자주 씻는 것은 생존의 지혜가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우리는 넉넉한 사발에 인정이 철철 넘치는 막걸리다. 벌컥벌컥 마신다. 안주는 풋고추에 오이 하나면 족하다. “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박목월 ‘나그네’)가 몸을 뉘는 곳은 그래서 ‘주막’이다. 역시 막걸리는 “장사 안 되는/외딴 집/되리라고는/생각도 않는 집/풋마늘 한 대궁에/막걸리 한 모금/혼자 기울이는/이 쓸쓸한/맛”(김익두 ‘술맛’)이 최고다. 겨울철엔 소주도 마신다. 시인 백석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고 했다. 그래도 백의민족에게는 역시 걸쭉한 막걸리다.
이런 막걸리가 보릿고개와 밀주단속에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런데 국산 막걸리의 원료에서 우리 쌀 비중은 불과 13.6%라고 한다. 나머지는 값싼 수입쌀이나 밀이다. 이 와중에 정부는 쌀이 남아돌자 사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짜고 있다고 한다. 그럴 바에 가격을 맞춰 국산 쌀 막걸리를 활성화하는 게 낫겠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 했다. 기왕이면 풍토에 맞는 쌀 막걸리가 우리의 면면한 정서를 보전하는 길이기도 하지 않겠나.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0717토] 목화
“목화는 흑인의 검은 손으로 따도 희다.” 스토 부인이 쓴 <엉클 톰스 캐빈>에 나오는 말이다. 하얀 목화는 인류의 피부나 다름없다. 목화로 짠 면(綿)은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가 입은 의복의 3분의 2를 차지해 왔다. 비단이나 양모보다 값싸고 가벼운 면은 오늘날에도 60억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 인조섬유가 넘치는 시대에도 면직물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목화는 그래서 ‘하얀 황금’이라고도 일컫는다. <목화의 역사>라는 책을 펴낸 자크 앙크틸의 표현이다.
목화는 백의민족인 우리 겨레의 옷이기도 하다. 옛 조상들은 목화 솜으로 만든 흰 무명옷을 즐겨 입었다. 잘 알려진 대로 목화와 우리 민족의 인연은 고려말 문익점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무명’이라는 말이 그의 손자에게서 비롯됐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문익점이 목화 재배에는 성공했으나, 솜꽃에서 실을 빼내 천을 짜는 직조술은 알지 못했다. 그는 손자 문래(文萊)와 문영(文英)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목화씨가 유용하려면 실을 뽑고 천을 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문래는 실을 뽑는 방추차(紡錘車)를 만들고, 문영은 천을 짜는 방법을 보급시켰다. 둘의 이름을 따서 사람들은 방추차를 ‘문래→물레’라고 하고, 목화 솜으로 만든 천은 ‘문영→무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목화로 만든 무명 천은 마포(麻布)보다 질기고 따뜻하다. 베옷으로 겨울을 나던 조상들에게 무명은 ‘꿈의 옷감’이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온 지 30여년 만에 백성들 대부분이 입고 다닐 정도로 무명옷은 보편화했다. 비단이 귀족들의 옷이라면 면화는 백성의 옷으로 서민들의 몸을 따스히 감싸온 것이다.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고 한다. 박노해 시인의 표현이다. “꽃잎 떨군 자리에/ 아프게 익어 다시 피는/ 목화는/ 일년에 두 번 꽃이 핀다네.” 목화는 꽃이 진 뒤에도 ‘다시 한번/ 앙상히 말라가는 온몸으로’ 최후의 꽃을 피운다. 모든 것을 바쳐 ‘춥고 가난한 날’을 감싸는 목화는 이 땅의 어머니들을 닮아 있다.
‘문익점의 목화’보다 800년 앞선 백제시대의 면직물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를 두고 백제 때 목화를 재배한 증거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어쨌든 목화는 희고, ‘겨레의 옷’임에는 변함이 없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데스크 칼럼/[전호림(중소기업부장)-20100717토] 경쟁없는 사회, 줄 안 서는 사회
"학생 시험 거부하고 교사 평가 안받겠다는
전교조·좌파 교육감국가 경쟁력 초석무너뜨릴 수도"
삼성전자가 스승 격인 일본 주요 전자업체들 순익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흑자를 내며 승승장구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지난 5일 `삼성 최강의 비밀`이라는 커버스토리에서 삼성 경쟁력의 근원을 치열한 내부경쟁 시스템에서 찾았다. 쟁쟁한 인재들이 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지만 과장 부장을 거치면서 떨어져 나가고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람은 1%도 안 된다. 이런 담금질을 거쳐 별(임원)을 달면 `경제적 신분`이 달라지는 파격적인 연봉이 주어진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만이 과실을 따먹도록 한 시스템이 세계 최강 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인간은 그 끔찍한 경쟁을 피해 마음 편하게 일생을 살다 가는 것이 꿈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사회 어디에도 그런 무릉도원은 없다. 그런데 전교조와 일부 시민단체, 좌파 성향 교육감들이 그 허망한 꿈을 좇고 있다. 시험이 학생 간 경쟁을 조장하고 줄 세우는 도구로 쓰이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이다.
전교조에 동조하는 시민단체는 그저께 일제고사를 반대하면서 "학생들이 시험 스트레스로 학습의욕을 잃고 있다"며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희망찬 미래를 찾아주려는 부모들이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단다.
과연 그럴까. 경쟁의 무풍지대에서 성장하면서 `경쟁면역결핍` 형태로 사회에 나온 아들딸들이 해맑고 희망찬 얼굴로 살아갈 공간이 지구 어디엔가 숨어있다가 기꺼이 반겨줄까.
경쟁하지 않고 줄 안 서도 되는 사회는 이미 소멸하고 없다. 설사 한국 내에서 그런 삶이 가능하다고 해도 나라 밖으로 한 발짝만 벗어나면 경쟁의 정글이 입을 벌리고 있다.
무역거래가 GDP 대비 70%나 되는 이 나라 경쟁력은 곧 사람의 경쟁력이었다. 우리는 미국 일본 독일 중국 같은 쟁쟁한 강국과 겨뤄 이 만한 나라를 일궜다. 그 밑천은 뜨꺼운 교육열이었고 치열한 경쟁이었다. 나라 문을 걸어 잠그고는 살 수 없는 한국 처지로 볼 때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부(富)가 대물림되듯이 `가난과 능력 부재`도 대물림될 수 있기에 아이들이 경쟁력을 갖도록 삶의 기반을 준비해주지 않는 스승은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
그보다 더한 모럴 해저드는 전교조가 스스로 평가받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평가`받지 않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학교 현장에선 실력 없는 교사를 성토하는 학생들 목소리가 높은데도 실력이 있건 없건 평가받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정년까지 무사히 가겠다는 것은 이기주의의 극치이자 수의 힘을 빌린 폭력이기도 하다.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아니 포위된 한반도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새삼 절감했다. 노골적이고 그악스럽게 북한을 편들어온 중국은 한ㆍ미 서해훈련을 거의 우격다짐으로 가로막고 있다. 급기야 미국 항모에 대해서도 "서해에 진입하면 중국의 과녁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조지 워싱턴호는 결국 동해로 항로를 틀고 있다. 세계 최강국을 을러대는 중국의 서슬에 한국민은 등줄기가 서늘함을 느꼈을 것이다.
국토의 서쪽은 중국이 짓누르고, 동쪽은 여러 차례 강토를 짓밟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영토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우리 어깨에 손을 얹고 `내가 있으니 괜찮다`고 속삭이지만 언제까지 우리 안보를 책임져줄까. 한반도는 여차하면 `법(미국의 보호)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천안함을 계기로 온 국민이 절절히 깨달았다. 우리가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서희를, 이순신을, 세종을 배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나라의 외연에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약육강식이 펼쳐지는데 한국 내부는 지금 칼날 위의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무슨 수로 벼리지 않은 칼, 들지 않는 칼로 해맑은 얼굴에 희망을 노래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