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간
건물 준공검사가 떨어지고
근무도 동시에 땡~~~
이번엔 연천군 배수펌프장으로 가란다.
이미 가고 싶었던 곳
임진강과 전방의 풍경에 젖어보고 싶어서 망설임 없이
오 케이!
그런데
통화를 끝내고
내비로 거리와 시간을 살펴보니
주말마다 집에 다녀가기 힘들겠다.
캠핑 간 것처럼 펌프장에서 우기 장마철 네 달을 생활해야 하는데
몸이 한창 때가 아니다.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서울을 거쳐 시간 반도 더 걸리는
실제로 운전하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다.
마음만 청춘
운전은 갈수록 버겁다.
주저 없이 포기했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지
내일 회사로 가겠다는 말과 동시에 미련을 한 방에 털어버렸다.
눈 뜨자 곧바로 출발했다.
한산할 때 운전해야 편케 간다.
쉬원스레 뚫린 길로 시간 반 걸려 양주시 본사에 도착했다.
시간을 살피니 8시
먼 거리 양주까지 갔으니
그냥 집으로 오기 아쉽다.
외미로 농로길 따라
어린 시절 추억 되살려 걸었다.
비닐하우스가 즐비한데
대부분이 오이재배 중이다.
이 많은 오이 누가 먹을까?
나야 나
오이소백이 좋아하고
오이지도 즐기는 나
그러나 어린 시절
농사일 추억은 하나도 그립지 않다.
그냥 지워버리고 산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들판을 걸으면서도 다를 바 없다.
이 넓은 들판에
시골집 앞에도
도랑 뚝에도
텃밭 노릇하는 땅
어디 놀리는 자투리 땅이 안 보인다.
시간여 넘게 걸었다.
특이하게 볼만한 시골풍경은 아니지만
그냥 걷고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땀에 젖어 몸이 축축하지만
이리로 저리로
넓은 들판을 구석 구석 들여다 보았다.
비닐하우스 농막을 살펴보아도
젊은이들은 볼 수 없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그리고
일하는 젊은이들은 모두 베트남 사람들
농촌은 이렇게 변해버렸다.
시간 반 들판을 휘젓고 나서야
인사나 하고 가자
사무실로 들어서니
함께 일했던 동료가 하나 둘 나타났다.
다음 임지를 협의하기 위해서
며칠 전 내가
허우대만 멀쩡하지 실속이 없어요.
에잉~~~
허우대도 멀쩡하지 않아요.
임플란트 7개째 시술 중인 동료가 즉석에서 디스해 주었다.
곱씹어 보니
웃자고 한 농만은 아니었다.
뭐라고 하더라
등뼈쪼개기 운동이라던가
동료 한분이 가르쳐주었다.
지금 자꾸 허리가 휘어진 모습으로 걷고 있어요.
노인들이 다 그래요.
가슴을 활짝 펴고 뒤로 힘 것 제끼고
허리 곳곳하게 걷는 습관을 생활화하란다.
아차
어느새 나도 모르게 허리가 굽어가고 있었구나
그 후론 걸으면서 곧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야지...
작별 인사차 들렀는데
사장은 미련이 남아서인지
기름값을 별도로 보태주겠다고 한다.
차마 이제 운전이 전 같지 않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냥 웃었다.
돌아오는 길
새벽과는 달리 북적거리고 줄지어 기어가고
집에 도착하니 맥이 풀린다.
이젠 운전도 접어야 하나?
깨톡으로
솔직히 운전이 점점 힘들어 저서 갈 수가 없다고 전하고
매듭을 지었다.
초여름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당분간 책이나 보면서
쉬엄 쉬엄 산에도 오르고
그래 조금만 일하고
잠시 쉬었다 가면서
여유도 즐기고 삶도 풍요롭게
겯눈질 해가면서
다음 일거리도 준비해야지
지난번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작은 건물에 전기선임하고 홀로 북치고 장구치고
소장부터 미화까지 일자리 부탁하니
자리 나면 첫 방으로 연락해주겠단다.
이젠 한 달 남은 소방설비 2차 시험
또 열공해 봐?
지난번 시험처럼
감독관이 내 나이 확인하고퍼
이번에도 열심히 신분증 들여다 볼라나 몰라....
첫댓글 선생님의 글을읽고 아들에게 자격증따라 했더니 구체적으로 뭔자격증따요 어무니 ~~ 하더군요 부지런하신 성품에 또다시 고개 숙여집니다 날마다 어찌잘놀까 궁리하는건 ~~젊어서 너무 달려 일이 무섭나? 일할곳없어 미리 놀준비하나 ? 반성중입니다
찬찬하고 조용한성품이 느껴지는글 의미있게 잘읽었습니다
내 자신도 제대로 길 찾아가지 못합니다. 세월 다 보내고서야 정신 번쩍 이미 열차는 떠났는데 그래도 할 수 있는 날까지... 삶이 억지로 되지 않는 듯 ...
열심히 살아오셨고
또 젊은이들보다 더욱 발전적인 모습의 선배님의 글 만날때마다..
돌아가실때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 당뇨로 호미로 살짝 찍힌다리가 푸른 국광사과빛으로 물들어갈때도
그저 밭에 심은 고구마 캐서 나눠 먹으라시던
노는땅 빌려서 시금치 심어서 사람사서 거두니 남는건 막걸리값...
부산에 살았어도 온갖 밭농사 짓고 살던 어린시절이
사진들 보며 떠오릅니다.
오늘도 추억에 잠시 쉬다 갑니다..
지금도 텃밭 엄두가 안 납니다. 그냥 추억과 땀 흘리는 님들 바라보면서 경외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