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기록에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발아되지 않은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계절이 지닌 속성 때문일까. 겨울로 가는 길목에 서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채색되지 않는 상념이 나를 슬프게 한다.
모처럼 그동안 만나지 못한 우리 오 남매가 한 자리에 모였다. 가까이 사는 남동생과는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멀리 사는 막내 동생과 만난 지 십 년이 넘었다. 어릴 적 한 집에서 살던 때를 들추다 보니 웃음 지을 이야기도, 찡그릴 이야기도 끊임이 없었다. 주름살 많은 큰오빠, 머리가 희끗희끗한 막내 동생, 저마다 삶의 무게에 이지러진 모습이었지만 어릴 적을 회상하는 얼굴에서는 파릇파릇 생기가 흘러 보였다. 이야기 속을 한참 헤매다가 마주친 얼굴 숙이. 숙이와 함께 보냈던 지난날들이 아련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50년이 훌쩍 넘었다. 아무리 꽃단장을 해도 세월의 그림자는 감출 수 없는 나이다.
여름날 숙이와 함께 마루에 앉아 축음기 소리를 들으며 따라 불렀던 콧노래.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그 속에 꼭 사람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바늘이 돌아가는데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날까 신기하기만 했다.
키 작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숙이와 나는 마치 쌍둥이처럼 지냈다. 상수리나무 밑에서 풍뎅이의 목을 비틀어 마당을 쓸게 하고 흙먼지를 마시면서 철없이 웃었던 시절. 앞마당 봉숭아 꽃잎 으깨어 손톱에 묶어놓았다가 다음 날 누가 더 꽃물이 곱게 들었는지 손톱을 내밀어 겨루기도 했다. 다음 날 누가 더 꽃물이 곱게 들었는지 손톱을 내밀어 겨루기도 했다. 감꽃을 꿰어 만든 목걸이, 자운영 꽃시계를 차고 신랑각시놀이 하던 시절 가을이면 메뚜기 잡으러 들을 헤매다가 땅거미가 내리면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숙이네 우물가에는 우리 집과 경계를 가르는 자두나무가 있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곧장 풋자두 먹기 시합을 했다. 신물 나는 자두를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먹으면 그날의 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신맛이 강한 자두와 살구를 즐겨 먹는다.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신 김치를 좋아한다.
등굣길에 숙이가 들고 온 만화책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종종 지각을 할 때도 있었다. 만화 보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기랴. 숙이는 만화책 속에 등장한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를 연필로 그려서 나에게 자랑하곤 했다.
면소재지에는 3일과 8일에 닷새 장이 섰다. 장이 서는 날이면 으레 숙이와 나는 시골 장바닥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다. 운이 좋으면 동전을 주울 때도 있었다. 가위소리 장단 맞추어 구수한 입담을 들려주던 엿장수, 만병통치약이라며 북소리에 맞춰 약을 파는 약장수, 겨울 방학을 하면 유랑극단이 펼치는 심청전을 보면서 심청이의 갸륵한 효심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장화홍련전을 볼 때는 계모의 사악함에 분통을 터뜨리다가 부사가 원한을 풀어주는 결말에 통쾌해 웃음 짓기도 했다.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절개를 지켰던 춘향이와 이 도령의 상면 장면이 모습이 한동안 가슴을 채우기도 했다.
낮에 보았던 마당극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던 장래 희망이 이튿날이면 자고 일어날 때마다 바뀔 때가 흔했다. 밤이 깊을 때까지 적고 또 적어도 끝내 찾지 못한 꿈을 그리다 잠이 들 때도 있었다.
우리가 함께 다니던 여고를 졸업할 즈음, 음악을 좋아하는 숙이는 어른이 되어 레코드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꿈의 날개를 펼쳐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과 싸우다 홀연히 떠나버렸다. 믿고 싶지 않은 죽음이었다. 요즘도 길을 가다 레코드 가게가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다. 숙이가 이루지 못한 꿈이 마치 내가 갚아야 할 채무처럼 느껴졌다.
아침마다 함께 오갔던 등하굣길, 토요일 오후 찔레순 꺾어먹으며 나물 캐러 다녔던 들판, 뱀을 보고 놀라 줄행랑을 쳤던 개울가. 붕어빵을 나눠먹으며 추위를 달랬던 하굣길 모두가 한 편의 그림이 되어 마음의 창에 걸려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어린 시절로 돌아가 노닐던 우리 오 남매는 쉼 없이 질주하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녁이 되어 저녁식사를 마친 뒤 각자의 짐을 챙겼다.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향해 흩어져야 하는 시각이 온 것이다. 아쉽지만 당연한 시각. 남매들을 배웅하고 혼자 남겨진 쓸쓸함에 한동안 서성이다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이 낯설다. 낯선 모습 뒤에 숙이의 모습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