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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설교, 감사력
(살전 5:18, 개정)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는 하나님의 의지요 명령입니다.
감사는 당연한 성도의 할 일입니다.
(골 4:2, 개정)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항상 감사하라
(골 2:7, 개정)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감사함에 넘치게 하라.
그냥 감사하지말고 감사에 깨어있어야하며 감사가 넘치게 하라.
(딤전 4:4, 개정)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하면 버릴 것이 없다. 모든 것에 감사하라.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 예수님은 항상 감사하셨습니다.
식사전에 반드시 감사기도하셨습니다.
(눅 22:17, 개정)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사도바울 역시도 감사로 기도하라
(빌 4:6, 개정)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엡 5:4, 개정)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어리석은 말 우리를 죽게 하는 말하지 말고 감사하는 말을 마땅이 하라.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딤전 1:12, 개정)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직분 주신 것도 감사하라.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부을 맡기심이니...
감사합니다.
감사는 건강을 유지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 화가“오너 숄맨”은 결혼을 하고, 그의 아내가 잉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숄맨은 임파선 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숄맨은 아내에게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우리 감사합시다. 이때까지 살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우리 부부의 좋은 만남과 사랑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바로 죽지 않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시다.”그리고 그는 남은 3개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예수님의 성화를 그리기로 결정하고 정성을 다해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팔려나갔습니다. 그의 생명은 3개월의 한시적인 생명이라고 의사는 진단을 했는데, 30년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고 건강했습니다.
그의 주치의인 존 헨리는 말하기를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해독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치료제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감사함의 능력입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맑은 음성과 화면을 보려면 채널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에도 생체 리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체 리듬을 감사함에 맞추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때 인체의 기능이 원활할 뿐 아니라 건강하게 됩니다. 반면 불평하며 원망하게 될 때, 인체의 리듬이 깨어지며 건강을 약화시킵니다.
(시 37:7, 개정)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사람의 몸에 정상적인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암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이루게 되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미움이나 증오 불만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게 되면 체내의 정상적인 산소를 소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 중 산소를 가장 많이 소비시키는 것이 증오라고 합니다. 평안한 마음과 기쁨이 넘치는 삶,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만물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즉 감사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라고 합니다. 감사는 인체의 신진대사를 정상화해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연 치유력을 활성화시켜 건강한 삶을 지켜주는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욥 9:27, 개정)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시 37:8, 개정)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웃음 치료 넌센스 퀴즈
1.돼지기 방구뀌면? ,,,, (돈까스) 2.물고기가 방구뀌면? ,,, (생선까스)
3.계급이 높은 균은?,,, (대장균) 4.춤을 잘추는 새는 ?,,, (제비족)
5.재산이 많은 벌레는? ,,(황금벌레)
6.새우등이 굽어진 이유는 ? ,,(새우잠 때문)
7.호랑이 보다 무서운 동물?,, (하루강아지) 18.진짜 돌대가리는?,,, (망부석)
20.갑순이와 갑돌이가 결혼을 못하는 이유?,, (동성동본)
21.한식과 양식의 차이는? ,,(한손 과 양손으로 먹는다)
22.때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목욕탕 때밀이)
25.빈부의 차이는? ,,,(맨손과 맨션)
한 번 웃어봅시다. 하하하 히히히 ㅋㅋㅋ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시편 50편 23절에“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셨습니다.
수만 명 앞에 어린아이 도시락인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라는 절대 부족 속에 감사를 선택하여 감사하신 예수님 앞에 하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이 12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힘력자(力)를 쓰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권력(勸力), 재력(財力), 실력(實力), 체력(體力)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힘이 있습니다. 감사력(感謝力)입니다. 감사의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힘입니다.
사람의 말이나 삶은 모두가 심는 씨앗과 같습니다. 감사의 씨앗을 심으면 감사의 열매가 맺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는 목사는 말하기를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주님께서 천국을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면 레벨이 높아집니다. 작은 것을 보고 감사하면 더 큰 것을 주시고, 더 큰 것 주심에 감사하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부목사 때 며칠간의 출장에서 돌아와 오래간 만에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유치원에서 배웠는지“감사히 먹겠습니다.”하며 수저를 들었습니다. 어찌나 예쁘던지, 우리 식구들은 이제 앞으로 항상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식탁에 반찬이 달랑 두 가지만 올라 왔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불평도 못하고, 그래도 감사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한 말이“간신히 먹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범사에 감사함의 조건을 찾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파멸로 이끄는 사탄의 미혹입니다.
시편 105편 1절에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6편 12절에도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 98편 4-6절에 보면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찬양할지어다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8편 12-14절에도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저가 그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저는 모든 성도 곧 저를 친근히 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거리로 다 할렐루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에도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고생하며 사는 아들내외를 위하여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집은 다 찌그러져 가도 아들 내외를 위해 집을 마련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 결정을 하고 아들 내외가 기뻐할 것을 생각했습니다. 조그만 집에서 고생하던 아들 내외가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만 해도 기뻤습니다. 드디어 잔금을 치르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계약할 때 빠졌던 며느리도 함께 갔습니다.
아버지는 신이 났습니다. 아들 내외가 아파트를 보며 얼마나 기뻐할까. 집으로 들어서며 아버지는 아들 내외 얼굴만 봅니다. 아들 내외의 행복해 하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들, 며느리의 얼굴이 별로 기쁘지 않아 보입니다. 아들이 뭐라고 속삭입니다. "어휴, 나는 이렇게 작은지 몰랐네. 이거 장농도 제대로 못 놓겠는데... 우리 짐을 어디다 다 갔다가 놓지 .화장실도 이렇게 작네..."곁에 있던 며느리가 거듭니다.
"이 아파트 지은 지가 꽤 오래 되었나 봐요? 스물 몇 평 이라면서 이렇게 적을 수가 있어요. 아저씨. 뭐 잘못된 거 아녜요?" 부동산 중개소 아저씨가 뭐라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의 얼굴이 힘이 빠져 나갑니다. 아버지는 주름진 얼굴로 표정관리를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어둠에 덮인 아파트를 나서며 그 아버지는 허공에다 말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 저런 후레자식들이 있어 하며...흥분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흥분하시기 전에 ...생각해 봅시다.
이 아들 내외가 바로 '나' 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하늘, 땅, 바다, 공기, 양식, 물, 사계절, 친구, 가정, 가족, 생명, 직장, 건강, 집 등 다 그 분이 주신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그분이 주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지옥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대신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저주의 죽음입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저주를 대신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아들조차도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의 선물을 준비하신 후, 우리가 얼마나 기뻐하고 즐거워할까를 생각하셨습니다.
뜨거운 불이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에서 건져 천국으로 보내 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막상 그 구원의 선물을 받은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무덤덤해 합니다. 감격도 안합니다. 감사도 안합니다. 우리가 사랑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때를 따라 다 공급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감사하기는커녕 미련한 '아들 내외'와 같이 "이게 적다, 이게 없다"고 불평만 해 댑니다.
하나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 어떠하실까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서글프시겠습니까? 아무리 주어도 주어도 감사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 다만 다고, 다고만을 외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감사하는데 너무 인색하고 고마워하는데 주저하고...,
불평하고 분내는데는 조급하고 어리석고...,
집안에 초등학생 되는 아들이 엄마한테 수첩을 줍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방청소 5000원, 신발정리 3000원, 아빠 구두 닦은 거 10000원
엄마심부름 5000원, 설거지 3000원, 빨래갠거 5000원 합계 26000원주세요.
엄마는 그 수첩에다가 다시 적어서 줍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 아침.점심.저녁 밥먹여준거 0원, 우리 아들 아플때 밤새 병간호한거 0원, 우리 아들 이쁜옷 사준거 0원, 우리 아들 학교 다닐 수 있도록 학비 대준거 0원, 필요할 때마다 용돈준거 0원, 지금까지 우리 아들에게 해준 거 모두 0원... 이렇게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아무소리도 못했습니다.
뭐 그리 불평하고 원망하고 기대하는 것이 많습니까?
그저 감사해보자구요,
뭐 명품바지...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것 생각하고 살았습니까?
뭐 등심먹고 싶다고 등심~ 그러 달걀 프라이 해주어도 감사했는데...,
뭐 그랜져...k7 언제 우리가 옛날에 자전거 발리로 고모집에 갔습니다.
뭐 밥이 마음에 안들어...어디 예날에 반찬 투정했습니까?
뭐 학원이 마음에 안들어...어디 학원이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보내준것 감사해야지...,
세상 사는 이치는 동서고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까.
몇년 전 생겨난 유머에 '쌍기역으로 시작하는 여섯 가지 성공비결'이란 게 있다. '꿈·끼·깡·꾀·꼴·끈'이 그것이다.
요즘엔 새로운 세상살이 지혜로
'매끈·따끈·화끈·질끈·불끈·너끈·끈끈'이라는 '일곱 가지 끈'이 떠올랐다.
경쟁사회를 살자면 깔끔한 외모,
따스한 마음, 열정, 때로 모른 체 눈감는 포용성,
두 눈 부릅뜨는 용기, 뭐든 받아들이는 여유로움,
지치지 않는 끈기를 지녀야 한다는 얘기다.
추수감사절을 맞으면서 감사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보니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지요? 예전에는 찬송가 429장을 잘 부르지 않았습니다. ‘받은 복을 세어 보라’는 말에 대한 저항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자꾸만 받은 복을 헤아려보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고마움임을 망각하게 됩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어르신들이 계신 데서 외람된 말입니다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 찬송가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약해지고 또 낙심되는 일이 있을 때 주님이 주신 복을 헤아리다보면 지금의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 문제의 크기가 과장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도 만나지만, 어떤 경우에도 세상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한 가지 자유가 있습니다.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까 결단하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시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감사는 꽉 막혀 버린 길을 여는 열쇳말입니다. 불평불만, 절망, 분노의 감정이 우리를 지배할 때, 받은 복을 헤아리다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바라보면 길이 보입니다. 우리가 다소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저는 목사로 살아가는 것이 복이라고 느낍니다. 목사직은 멍에입니다. 때로는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함부로 벗어버릴 수도 없는 게 멍에입니다. 울면서라도 가야 할 길입니다. 아직 멀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에 조율하며 살게 하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 교회에 ‘생명 세상을 여는 녹색 교회, 멋진교회, 멋쟁이 교회, 수준높은 교회’라는 분명한 지향점을 주셨습니다. 비록 더디기는 해도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동행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받은 은혜를 헤아리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은 잘 헤아립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잘헤아리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빈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들에게 주어지는지 모릅니다.
찬송가 489장의 후렴 부분에 보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받은 복을 세어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신 16:10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받은 복을 헤아려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은 복을 헤아릴 줄 하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가 나옵니다.
(레 22:29, 개정)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
생명을 받았습니다. 건강을 받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살 집이 있고 하루 끼니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그날 그날 양식이 있습니다. 더구나 마음껏 신앙생할 할 수 있는 영적 환경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하루 세끼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받은 은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은혜입니다.
어떤 군인이 월남전에 참전하였다가 지뢰를 밟는 바람에 양 발목이 잘리어 나갔습니다. 그는 후송되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을 받아들일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하며 자신의 삶을 비관하였습니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 주님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무엇을 잃었니?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라고 불평스럽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미소를 머금고 그에게 또 다시 물었습니다.
손 있니? 예 있습니다. 팔있니? 예
눈 있니? 예
코있니? 예
먹고 말할 수 있는 입 있니? 예
따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가슴 있니? 예
주님은 계속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그는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무엇을 잃었니? 병사는 대답했습니다. 예 두 발목만 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우리에게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하기도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있는 것을 헤아림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없는 것 잃은 것 가지고 불평하지말고 있는 것 받은 것 가지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동합니다. 올해 결혼한 한 부부는 축의금의 십일조를 곤경에 처한 중증 장애인 가정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물론 익명입니다. 또 다른 한 가정은 아기 백일잔치를 위해 여퉈두었던 돈을 역시 장애인 가정에 위탁하기로 했습니다. 넉넉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그 마음을 주셨습니다. 자기 것을 덜어내 더 필요한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을 맛본 사람은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놓으신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교회도 많은 재물을 축적하기 시작하는 순간 타락의 길로 떨어지고 맙니다.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자꾸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초막에 머물던 시절을 잊어버리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님까지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자신을 위해 덜 쓰고 다른 이들을 위해 더 쓸 때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너무 많은 재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교우들도 이번에 추수감사절에 감사하십시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을 돕는데 사용하십시다. 생활시설 장애인들에게 기증합시다. 장애인 주관보호시설에 온수기 공급합시다..., 누가 도움을 요청했어요 넉넉하면...
(인도의 시성 타고르)“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고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높게 가지면 언제나 불평과 원망만 쏟아집니다. 그러나 마음을 낮추어 보십시오.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 마음들을 좀 낮춥시다.
바을은 롬 12:16절에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고 했습니다.
눈을 돌려 세상을 보면 서로 높아지려는 아우성 뿐 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세를 낮추고 목소리를 낮추어 겸손의 본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도 이런 겸손을 직접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면 감사가 나옵니다.
'매끈·따끈·화끈·질끈·불끈·너끈·끈끈'이라는 '일곱 가지 끈'이 떠올랐다.
환경 때문에 감사할 수 없다구요. 아닙니다.
환경은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선물입니다.
(시 119:71, 개정)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34:19, 개정)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세계 최대의 가전회사인 일본의 마쓰시다 그룹을 창업한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일본 최고의 기업가입니다. 거대한 그룹입니다. 신문의 기자가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남들과 무엇이 달랐기에 이처럼 71개 계열사에 종업원 13만명을 거느린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 마쓰시다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세 가지가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첫째, 무척 가난했습니다. 둘째, 몸이 약했습니다. 세째, 머리가 남들보다 모자랐습니다."
기자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듯 갸웃거리자 웃으면서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등을 하며 세상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몸이 약했기에 항상 운동에 힘써 늙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무식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임하면서 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젊은 시절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오는 사건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청각장애라는 사건까지도 좌절과 낙망이라는 부정적인 해석보다는 감사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하였다. 그는 말년에 이렇게 고백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내가 젊은 날에 귀머거리가 됨으로써 연구에 몰두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각장애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밀려오는 사건들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러나 밀려오는 사건들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행히 인생은 밀려오는 사건들 자체보다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부정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여부가 정해진다.
영어로‘STRESSED’라는 단어를 좌에서 우로 읽으며 해석을 하면‘stressed’가 되어‘스트레스를 받는’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우에서 좌로 읽으며 해석하면 ‘desserts(디저트)’가 된다.
인생살이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건을‘stressed’로 해석하여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것인가, ‘desserts’로 해석하여 인생의 감칠맛 나는 디저트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 정도야 인생의 감칠맛 나는 디저트지, 이런 일도 없으면 심심해서 무슨 재미로 살아?”하면서 오히려 감사한다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다행히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기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고, 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장18절)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는“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4장 15절)고 기록되어 있다. 감사할 때 은혜가 더해져서 또다른 감사가 넘쳐나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