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벽
김진영
“야, 그거 어떻게 됐어? 안 하기로 했어?”라고 내뱉는 말이 화살이 되어 내 마음에 박혔다.
얼마 전 친구에게 고민을 말했다. 둘이서만 조심스레 말했던 건데, 아무렇지도 않게 지인들의 모임 중 큰 소리로 말하는 입술을 보니 그 고민의 크기보다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이 더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을 걸어 왔다. 그 사람에겐 예사롭게 대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가볍게 던져진 그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내게는 상처가 되며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가벼운 사건이었으며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큰 소리도 떠들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려 왔다.
내게는 실수하면서 자신에게 관대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그 친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면 습관처럼 나를 놀리려는 모습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을 다스린 다음 날, 그 친구에게 둘만의 이야기를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고 하니, “아~”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얘한테는 똑같이 해줘서 깨닫게 해야겠구나.’라고 작정했다.
상처가 되거나, 자존심 상할 만한 말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약 올릴 때면 약 올리는 것으로, 면박을 줄 때면 면박으로 대응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신경질은 눈덩이가 굴러가듯이 분노의 덩어리로 점점 커져만 간다. 이 방법은 내 마음을 스스로 더 다치게 하는 일이다. 이건 확실하다.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반복되니, 그 친구를 뽀송하게 바라보던 마음이 차가운 철벽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그 친구 사이에 벽을 두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서 지속되어야 한다면, 그냥 마음에서만 멀어지면 된다고 느꼈다. 친절하게 대하되 굳이 진정한 마음을 줄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여러 번 말해서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하자는 감정이 들었다. 내가 평생 데리고 살 것도 아니니깐 말이다. 물론 내가 했던 말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대하듯 내 의견을 말할 순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의 벽은 존재할 것 같았다.
한 친구가 말했다. 그 친구에게 너무 마음을 주지 말고, 친절하게 대하지 말라고…. 넌 진심으로 대하는데, 걔는 그렇지 않고 거짓말로 네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부아가 치솟아 올랐다. 그와 동시에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있었을까?’란 의문과 함께 연민이 들었다.
남의 약점을 드러내며 흥밋거리로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 친구는 그걸로 인해서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된다고 느낄 수는 있겠다. 이런 행동은 그 친구에게 집중은 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인식은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약 올리면 곧바로 반응하는 내 반응이 재미있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재밌다고 한 적이 있기에 대하는 태도를 조금은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 친구가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할 때면 곧바로 되받아친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험담의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 소중한 사람이기에 그건 아니라고 정정한다. 그리고 거울처럼 너도 똑같은 행동을 하거나 더 심하게 행동했노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내게 타인의 험담을 하는 것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어떤 날은 너의 그 말투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와서 싸우냐고 말한 적이 있기에 더 콕 집어서 말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 말투 또한 조금씩 변했다. 물론 나를 약 올리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런 변화를 보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의 벽은 존재한다. 이제 이런 벽을 조금은 말랑하게 만들어 무너뜨릴 차례다. 예전처럼 뽀송하게 바라보진 못하더라도 그 친구의 변한 모습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시점이다. 저도 모르게 마음의 벽이 ‘툭’하고 솟아오를지도 모르지만 어렵게 변화한 그 모습을 인정해야겠다.
지금까지 그 친구에게는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일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말해준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받은 상처로 인해서 변할 수 있는 친구를 포기할 뻔했다.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대단하다는 마음마저 든다. 그 친구를 모두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변화한 모습을 인정해야겠다.
마음이 좁아서 가는눈으로 흘겨볼 때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그 친구가 좋다.
“고마워, 변화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