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월도 19(다시 찾아온 관계)
예사랑
지나친 관심은 관심이 아닙니다
당신을 향한 관심이 지나쳐 지나친 관심이 괴롭힘이 되었군요.
지나친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당신을 향한 사랑이 지나쳐 지나친 사랑이 고통이 되었군요
지나친 친절은 친절이 아닙니다
당신을 향한 친절이 지나쳐 지나친 친절이 상처가 되었군요
당신을 향한 관심이 사랑이 친절이 지나쳐 지나간 모든 인연은 물거품으로 사라졌습니다
난생처음으로 그림이 꿈에 나타나 버려진 여인처럼 울더군요 왜 저를 버리셔야 하는지 묻더군요
할 말이 없어 단지 당신을 향한 관심이 사랑이 친절이 가시인 줄 늦게 알았노라 대답했습니다
성탄절을 일주일 앞두고 정성스러운 포장에 쌓인 소포가 저를 찾더군요
행정과에서 우편집배원으로부터 건네받은 물건은 어젯밤 꿈에 나타난 그 그림이더군요
선생님의 아름다운 인생에서 배달된 그림이 언제나 변하지 않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리라는
글에 좋은 친구를 소개한 그대의 관심과 사랑과 친절이 다시 찾아온 관계를 만들어 주더군요
당신을 향한 관심이 사랑이 친절이 지나쳐 지나간 모든 인연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잘 지켜야하겠어요 성탄절을 앞두고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신일월도 18(11번째 꽃가지의 노래)
예사랑 신동환
여기저기서 노오란 은행잎 같은 외로운 가을이 한 잎 한 잎 떨어진다
은행잎 떠난 자라마다 다시 올 봄을 준비해 놓고 11번째 꽃가지 아래
코발트색 바탕에 붉은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붉은 하늘을 쳐다보면 속눈썹에 붉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 보면 손가락에도 붉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열 개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데
문득 11번째의 손가락처럼 갸름한 그대의 얼굴이 어린다
노란 은행잎 닮은 그대의 얼굴이 어린다
소리 없이 열 개의 손가락 밑 손금에는 고요한 시내가 흐르고,
고요한 시내가 흐르고, 시내 속에는 노란 은행잎처럼 밝은 얼굴
밝은 그대의 얼굴이 흘러간다
11번째 꽃가지는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고요한 시내는 흘러 노란 은행잎처럼 밝은 얼굴
아름다운 그대의 얼굴이 어린다
* 윤동주 님의 '소년'을 감상하고....
신일월도 17(어느 시인의 고백)
예사랑 신동환
초승달아 넌 아니
시인이 하루를 얼마나 힘들게 지내는지
모든 괴로움 참아 가며 오직 너 초승달에게 밝은 웃음 보이기 위해
애쓰는 그 마음을
황금태양아 넌 알고 있지
시인이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애타게 지내는지
심장이 타는 고통 속에서도 오직 너 보름달에게 해맑은 웃음 보이기 위해
무릎을 꿇는 그 마음을
열두 가지 찔레꽃아 난 네가 부러워
시인이 한 달의 생활비 마련하려고 발버둥 쳐봐도
밤톨 같은 아들 봉숭아 닮은 아내에게 웃음 주기 힘 드는데
넌 어찌 하루 종일 하얀 이 보이고 웃음꽃 피우는 그 마음을
신일월도 16(샤넬 No.5 닮은 그대는)
예사랑 신동환
봄바람 그리운
120204 그대는
예술촌 마당에 제뿌리 잎 내고 보라색 꽃피운 이아 같이 찾아왔습니다.
바닐라향 샤넬 No.5 반가운
120313 그대는
알싸한 통도사 홍매화와 같이 앙증맞게 걸어왔습니다.
은은한 향기 샤넬 No.5 애틋한
120728 그대는
목마와 숙녀를 암송하며 진홍색 샐비어 꽃잎 되어 웃었습니다
따뜻한 향기 간절한
131102 그대는
신일월도와 함께 병원 갤러리에 쑥부쟁이 되어 피었습니다
신일월도 15(꽃잎 먹고 죽은 시인의 노래)
예사랑 신동환
시인은 몰랐습니다
열두 꽃가지 뒤에 숨긴 독약의 의미를
시인은 몰랐습니다
초승달 앞에 놓인 검을 칼날의 진실을
꽃뱀의 독약 품고 있는 열두 꽃가지에
꿀벌과 나비가 날지 않는 이유를
시인은 몰랐습니다
몰랐기에 철없는 시인은 꽃잎을 먹다 永眠을 맛보았습니다.
암살자의 칼날 감추고 다가온 속눈썹에
웃음과 눈물이 없는 이유를
시인은 몰랐습니다
몰랐기에 순진한 시인은 초승달 입에 물고 피토하며 이슬같이 사라졌습니다
먼 훗날 화가는 알리라 시인의 割恩斷情을
신일월도 14(죽은 나무를 심는 화가)
예사랑 신동환
신새벽 눈을 뜨고
죽은 나무를 심는 화가를 생각해본다.
어린 소년 눈엔 또, 붉은 잔디밭에서 무얼 심어 보는 것일까
초승달 붉은 들판에 와 본다
화가는 자리를 비우고
죽은 나무 부름켜에 어린 소년 혼자 물을 뿌린다
붉은 하늘엔 열두 송이 꽃을 피우고
은은히 흰 꽃가루 날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황금태양은 갸웃거린다
죽은 나무에서 연초록 잎이 돋을까
봉숭아 닮은 꽃을 피울까
이루어 줄까, 화가의 소망을
신일월도 13(처량한, 도시)
예사랑 신동환
도시는 자연의 연초록 생태계를 휘감아 품고
동물이 살지 못하는 아스팔트로 이끄는 먼 길이
쭉 뻗은, 대로를 따라
오늘도 헐레벌떡 기어간다
비틀거리는 도시인의 발자국은 트롯을 흉내 내고
더는 앞으로 움직이지 못할 절름발이 신세
또 어떤 처량함으로 다리는 저리도 절뚝거리며 걷는가
도로변 가로수는 아랫도리가 베어지면서
알 수 없는 검은 새떼만 폐타이어 그림자 주위를 돌고
이윽고 금이 간 다리 아래 아득히
신음하는 지친, 도시
신일월도 12
예사랑 신동환
도시의 고독 품고 싶은
코발트 마음결에
은은히 펴지는 격자무늬
여울져 물들이는 외로움
붉은빛 외로움 속에
미소 짓고 싶어라
혈액은 곱게 흘러
그리움 돋아나고
소리 없는 그믐달에도
사려 깊은 검은 이야기
영원을 향한 그 속삭임
번지는 저 사랑
신일월도 11(바다의 노래)
예사랑 신동환
붉은 물길을 따라
홀로 헤엄치노라면
무시로 아가미 안으로
밀려오는 황금태양의 노래
아무리
찬란하여도
들을 수 없는 교향곡
열두 가지 찔레꽃
물속으로 가라앉고
짓무른 눈가엔
시나브로
살며시
그대의 속눈썹 닮은 초승달이
붉은 석양 바라보며 눈물짓는데
파란 물길 따라 아침이면
더 애틋한 얼굴이여
흐르는 꽃잎에
그대 이름자 적어 보내듯
가벼이
흘러서 가리
녹보석 펼쳐진 저 도시로
신일월도 10(어느 예술가의 노래)
예사랑 신동환
바람따라 흘러가는 가을구름처럼
에메랄드 창문 너머 당신은 그렇게 내게 옵니다
초저녁 달빛 아래 태양의 붉은 빛은 세상을 물들이고
그때 당신의 향기 내 가슴 속에 스며듭니다
시인의 어진 마음 닮은 그믐의 초승달이 허드러진 찔레꽃 열두 폭 커튼 뒤에서 펄럭일 때
당신의 까만 눈동자 흔들리는 가을 핏빛 고독과 마주 합니다
신일월도 9 (꽃잎)
예사랑 신동환
그대의 얼굴을 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대의 미소를 달이라고 노래하지 않는다
잔잔히 펴지는 여백을 격자무늬로 그려놓고
붉은 날개 흘러 하늘에 강물 만들고
하얀 은가루 잔잔히 하늘에 은하수로 흐를 테지만
은은히 거문고 소리를 내는 가을날의 초승달
신일월도 8(봉숭아 꽃잎의 노래)
예사랑 신동환
대물린 꽃잎 안고
은은히 펴지는 손가락
애타는 마음이 일구어 낸
사무침 번지는 앙가슴
그대 가냘픈
날개 하나로
그리움을 물들인다
출렁이는 달빛따라
강물은 홀로 울고
노을처럼 붉게 물든
봉숭아 꽃물 손톱 끝에 초승달 얼굴 되어 수줍게 미소 띠는데
신일월도 7
예사랑 신동환
전파 타고서
메시지 한 편이 날아왔다
붉다 못해
가을은
피로 물든 메시지만 남기고
그 자태
곡진한 사연
전원 교향곡 홀로 연주한다
신일월도 6(신일월도 속의 도시)
예사랑 신동환
배흘림기둥 주심포이던 아비의 한옥 서까래
그대 골반 속에 걸려 시린 가시 피 토해내듯
신도시 쇠창살 밟고
그대 말뚝이춤을 추어라
지금도 쌍둥이 빌딩 너머 철교 너머 해질녘 들판엔
잠뱅이 흙투성이 삽 들고 쟁기질하던 아버지가
저무는 황금태양 바라보며
맨 발로 구두신은 자녀 기다리는데
신일월도 5
예사랑 신동환
조붓한 잎새따라
봉선화 핍니다
이것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상일 뿐,
누구도 그 마음 속 깊은
울음은 듣지 못합니다
메마른 에메랄드 도시에
봉선화 핍니다
손톱 끝에 물들어 소리 없이 우는 꽃
가냘픈 꽃도 아픔을 알아
혼자서 울고 있나 봅니다
신일월도 4
예사랑 신동환
파란 가을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같이
에메랄드 창문 넘어 당신은 그렇게 내게 옵니다
시인의 어진 마음 닮은 그믐의 초승달 뜨고
흐드러진 열두 폭 찔레꽃커튼 푸른 바람에 펄럭일 때
그때 당신의 까만 눈동자는 흔들리는 붉은 가을의 고독과 마주 합니다
초저녁 달빛 아래 붉은 태양빛이 세상을 물들일 때
그때 당신의 향기 내 가슴속에 스며듭니다
흘러가는 구름 같이 파란 가을바람 불어오고
창 밖에선 초승달 손짓하고 열두 꽃가지 마디마다 보랏빛으로 물들 때
그때 당신의 초승달 닮은 속눈썹은 가냘프게 울고 있습니다
신일월도 3
예사랑 신동환
저기 붉은 하늘에서 머리 맞대고 걸아가는 남녀는
서라벌의 아사달과 아사녀이고 이조시대 이도령과 성춘향이다
파란 바람을 타고 황금태양으로 나들이 가고 있다
이 얼마나 다정다감한 모습인가
아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너와 내가 바라는 우리의 풍요로운 미래처럼
코발트 흙에 뿌리를 고이 내리고
하늘에서 거꾸로 자라는 열두 송이 꽃나무는
파란 바람에 흔들거리며 하늘에
박힌 별처럼 빛나고 있다
신일월도 2
예사랑 신동환
에메랄드로 장식된 도시의 하늘엔
검은 초승달과 황금 태양만 있을 뿐
순수, 동경과 사랑은 모습을 감추고
뜨거운 핏빛만 수 놓아져 있었다
사라진 별들이 빛나던 공간에
꽃으로 장식된 청춘들이 흔들릴 뿐
말없는 건물들은 뒷날을 몰라
핏빛 하늘에서 유영하는 고기들은 진양곡을 부르고 있었다
황금 태양 속 삼각형 비행선엔
무릎을 꿇은 여인이 검푸른 칼날에 희생된 영혼을 애도할 뿐
지난날 별빛으로 아름답던 기억을 망각으로 밀어 놓고
태양빛에 어리는 영혼의 명복을 빌고 있다
신일월도 1
예사랑 신동환
에메랄드빛 눈썰미를 간직한 화가의 신일월도에는
황금으로 덮인 태양이 있다
정확히 둥근 원 안에는
전설 속에서 계수나무 옆을 지나간
토끼 발자국이 보이고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현대인의
외발도 볼 수 있다
무지개를 닮은 예술가의 신일월도에는
검은 눈썹을 가진 달도 있다
애인의 짙은 속눈썹 같은 초승달이
붉은 하늘을 갉아 먹고
불안과 슬픔으로 숯덩이가 된
심장인 듯
황금 태양 아래 고요히 떠 있다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