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7일 금요일
어제는 버스 티고 간김에
고향 집에 가 보았다.
거의 날마다 고향은 가지만
집에는 잘 가지 않는다
고향집은
1920년 생인 아버지도 그 내력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 집은 1891년 생인 할아버지가
조금 떨어진 큰집에서
세간 날 때
다른 사람한테 샀다고 한다
1941년 쯤 할아버지가 샀던 큰채는 헐어 버리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아버지 말로는 처음 할아버지가 샀던 그 집은 큰채 천정 바로 아래를 흙으로
바르지 않어서 구렁이가 다녔다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큰채는 헐어 버리고 다시 새집을 지었다 하였다.
그래서 당시 아버지 나이가 18 살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1970년 즈음 아버지가 지붕 석가래가 소나무 인데
몇개는 오리목 이어서 처음에는 잘 모르고 그랬는데 오리목은 좀벌레에는 약하다고 하였다.
아래채는 1920년생인 아버지가 10 살도 되지 않은 1930년 전에 사서
아래채는 언제 지었는 지도 잘 모른다고 하였다.
그 건물은 사서 몇번 고쳐서 그 원래 모습은 잘알 수 없다.
그렇지만 외양간 부분은 얼마는 그 대로 남아 있다.
고향집은 2010년 즈음 할아버지 명의 에서
내 명의로 바꾸고
김천으로 2014년 이사 와서
큰채 아래채 외벽을 흙담 바깥으로 6 인치 브로크로 쌓고
지붕도 붉은색 함석으로 바꾸었다.
그곳 외양간에서 20-30 분 동안 앉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온갖 지나간 일들이 떠 올랐다
폭 약 3미터 길이약 4미터 인데,
길이 방향 약 2ㅡ5미터 정도는 소가 머무는 공간이다.
그곳에 소 먹이 주는 소죽통이 있고
소 오줌 똥을 누고
그 오줌 똥을 모아서
똥은 거름자리에 버리고,
오줌은 모이도록 해 두어서
소 오줌 은 똥바가지로 모아서
논 밭에 가져다 버렸다.
그 똥통 재질이 1960연대 이전에는 가죽나무로 만든 것들 이었는데
1970년 대 이 후에는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소 오줌 모으는 곳에 병아리가 빠져 죽는 일도 발생 한다.
그래서 병아리 거느린 어미 닭이 못들어 가도옥 막는 경우도 많았다.
외양간은 소죽 끓일 때 장작을 사용하면 그 장작불에 쇠를 달구는 역할도 한다.
가끔 잔치나 큰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그 안에 볏짚을 깔고 그 우에 멍석을 펴서 요긴하게
사용한다
가마솥은 안쩍을 깨긋이 씻어서
국 끓이는 것으로 사용도 하고
가끔 길가던 사람이 와서는 소죽 끓인다고 훈훈 하게 해 놓아서
따뜻하다고 하였다.
아궁이에 장작불로 숯을 만들어 쇠를 달구어
만들어 내나름대로 실험실 구실을 하였다.
시겟도도 만들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아버지 한테 바리깡오로 이발도 하였고
어릴 때 한번은 사녕꾼이 못 찾아간 참새 줏어 외서 형과 같이 궈워 먹기도 하였다.
가마솟에 물 대워서 겨울 철 에는 몸도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