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김맹련은 동래 기장에서 태어났는데, 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집안 출신이었다. 한글학자이자 유명한 독립투사로 알려진 김두봉과도 가까운 친척이었다. 차정은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셈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닮아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p.11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여성운동으로 이어졌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비교해서 차별받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일본인들에게 지배받고 한국의 남자들에게도 억압받기 때문에 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차정은 여자도 고등교육을 받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 p.19
심문을 하던 경찰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그들은 머리와 뺨을 때리고 발로 차고 구타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차정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이 잔인한 고문이 이어졌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에도 차정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 p.37
1차로 입학한 학생은 26명이었다. 이 학교의 교장은 김원봉이 맡았고 박차정은 여자 교관으로 활동했다. 이때 박차정은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임철애, 임철산이라는 가명을 썼는데, 이 이름은 차정이 일신여학교 교지에 실었던 소설「철야」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김두봉도 교관으로 참여했는데 조선 어문을 가르쳤다. --- p.57
차정은 민족해방운동을 앞에 내세우면서도 여성해방운동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앞길]이라는 잡지에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차정은 여성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 p.72
부녀복무단 대원은 22명으로 대부분 의용대 대원들의 부인이나 가족들이었다. 이들은 전선의 의용대원들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가족들의 소식을 전했으며 대원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전단, 표어, 팸플릿 등을 뿌리는 선전활동을 했다. --- p.83
꿈에 그리던 해방이 되었을 때 김원봉이 차정의 유해와 피 묻은 군복, 군모를 가져와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리하여 차정은 김원봉의 고향인 경남 밀양시 감천동 뒷산 양지바른 곳에 몸을 누이었다. --- p.100
민족을 위한 차정의 불꽃같은 삶이 마침내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아직 어둠 속에 있었다. 그 후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2018년 11월 17일, 차정의 오빠 박문희가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것이다. 언젠가 남편 김원봉과 작은오빠 박문호도 공로가 인정되어 세상에 다시 나오길 차정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 p.102
첫댓글 발간을 축하합니다★★
35세로 시대의 아픔을 다 안고 가셨군요.
박차정 선생님!
박미경 작가님의 노력으로 박차정 선생님이 다시
살아나셨어요.
책 발간 축하드립니다.
박미경 선생님, 이 시리즈의 유일한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기대됩니다.
이 책으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여성위인이 탄생했음 좋겠어요. ^^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박미경선생님 덕분에
다시 읽게 되네요.
발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