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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원문보기 글쓴이: 우리
창세기 1장 중요 내용
* 太初에 하나님이 天地를 창조하시니라
*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고...
* 빛을 낮이라 칭하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라
* 땅이 풀과 각기 종류 대로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이는 셋째날이라
*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누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또 별들을 만드시고... 이는 넷째날이라...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 3, 5, 11~19, 26, 27절)
질문 1)
하나님, 즉 神은 정말로 存在하는가? 있다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무조건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독실한 기독교인은 매우 불쾌할 것이다.
즉, 신의 존재에 대해 감히 따진다고...
그러나 이런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을 못한다면 그건 맹신이고, 따라서 앞으로 젊은 세대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큰 지장이 있을 것이므로 다음 해답란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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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 장 질문의 답
질문 1 내용
하나님 즉 神은 정말로 存在하는가? 있다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필자의 이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 기존 신학자나 목사들한테 배운 성경 해석과는 180 도 다를 것이다.
1번 질문의 답을 말하려면 '인간이 창조된 목적'과 '진화'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창조적 진화론
본론에 들어가기 전 우선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무엇인가부터 말한다.
'홍익인간'이란 말은 바로 '하느님 교훈'이다.
여기서 '하느님'이란 여호와가 아니라 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우리 민족이 6 천년부터 믿어오던 하느님'이다.
이 '하느님'을 '하나님'이라 하건, '한울님'이라 하건 같은 말이다.
지금 기독교인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이라고 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0 년 전으로,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전도사들이 하늘의 신인 여호와를 믿으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이미 옛부터 하느님이 있다고 하니까, 그 하느님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라 하면서 그 근거로 주기도문의 '하나님 이름을 거룩케 하시며...' 를 증거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번역이다.
우주 공간에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한테는 이름 따위가 있을 수 없다.
즉, 백두산, 금강산, 한강, 낙동강, 그리고 홍길동, 김선달 등 그 수가 많을 때는 이름이 있어야 하나, 해나 달 등 하나 밖에 없는것에는 이름이 필요 없다.
사실 여호와란 말은 여호와 자신이 밝혔듯이 '스스로 있는 자' 즉 自然이었다.
그러니 이것도 따지고 보면 이름이 아니다.
주 기도문의 "'하나님 이름을 거룩히...'라 하는 것은 영어에서 name을 '이름'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네임'에는 '이름' 이외에 '名儀', '名分' 등의 뜻이 있다.
그러니까 주기도문의 ''하나님(아버지) 이름'을 거룩케...' 가 아니라 ''하나님 명의'를 거룩게 하시며...'이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건 따지지 말자.
우주의 신은 이곳저곳에 궁전을 차려놓고 이것은 내 땅, 저것은 네 땅이라고 싸우지는 않을 것이니 '하나님'이라 했건, '여호와'라 했건, 또 미국에서 'God' 이라 하건, 일본에서 '가미'라 하건 그건 그 민족의 말이니 따지지 말자
*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지금껏 여러 성경 해설서나 신학자 목사들의 설명이 많을 테니 여기서는 '우리 하느님'을 말한다.
여시서 하느님이라 함은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과 구별하기 위해서이고, 또 우리는 애국가에서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우리 하느님께서도 우리 민족에게, 아니 전 인류에게 교훈을 내린 것이 있다.
그 교훈이 바로 '천부경(天符經)'이다.
우리에게는 천부경 이외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써 있는 문서는 아무 데도 없고, 그 말씀이 훼손이나 변질이 없이 그대로 보전되는 문서는 오직 <신지녹도전자(神誌鹿圖篆字) 천부경> 밖에는 없다.
이 천부경의 핵심은 '홍익인간'이다.'ㅇ
그러나 후세인들은 '홍익인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다'라고 임의로 해석하여 우리 헌법, 특히 교육법 1조에까지 써 넣고 있다.
이 신지녹도문을 처음 해독하여 천부경을 말한 이는 아직까지는 고운 최치원 한 분뿐이었다. 그는 81자로 천부경을 해석해놓았는데, 후세인들이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하느님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음양오행설이나 한자, 그리고 컴퓨터로나 가능한 숫자풀이로 풀이해보고 있으나 누구 하나 속시원이 풀었다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필자는 최치원 만이 해독했다는 <신지녹도문과 천부경>이라는 그의 81자에서 힌트를 얻고, 신지녹도문을 다시 한 번 해독하여 '천부경'이란 바로 '하나, 둘, 셋... 열'이라는 우리의 숫자였고, 최치원의 81자는 천부경이 아니라 천부경의 예찬시첩 이라는 결론을 얻고, 그 자세한 내용을 이 카페에 써놓았다.
여기서 '하나, 둘, 셋'은 '하늘과 땅이 인간을 만든 이유와 원리'가 되고, '넷, 다섯, 여섯'은 만들어진 '인간이 이 땅 위에 정착하여 번성하는 과정'이며, '일곱, 여덟, 아홉'은 그 '인간들의 진로'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홉'의 뜻은 원래 '남근'이지만, 이는 '씨족의 완성'이기 때문에 씨족이 완성되어도 그것으로 만족하고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 울타리를 열고 나가라'는 말을 마지막 '열'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의 씨족만이 사람이 아니라 타 씨족도 사람이고, 그들과 씨를 섞어 어울리게 된다면 땅 위의 인간들이 한 가족이 되어 더욱 번성하게 된다는 말로, 이것을 현대 말로 하면 우리 88올림픽에서 전 세계인이 외치던 'We are the world'가 된다.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참 뜻인데, 이 뜻은 신기하게도 현재 생물학으로 밝혀보는 '생물의 생성요인과 그 진화과정', 그리고 '인간들의 진화과정'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므로, 본론을 제기하기 전 우선 이 말부터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 홈페지 게시판 중 신지녹도문 천부경 해석 35번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14 (홍익인간을 말하는 '열'의 뜻풀이 1)에서 인용한다.
이것은 전연 논리적이지 못한 <창세기>를 논리적이며 과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방편이다.
우주는 맹목적인 게 아니다
지금 진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단순한 우연으로 여러 별 중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공기와 물 등이 있고, 우연히 생명체가 만들어졌으며, 이 생명체가 진화했을 거라 추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을 펴자니 이상한 것이 많고, 막히는데가 많다. 또한 신학자들은 성경에 쓰인대로 하루아침에 神이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엄청난 과학적 모순이 있다.
이에 필자는 '창조적 진화론'을 말하려 한다.
이는 두 학파의 이론에 타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우주란 맹목적 무의식이 아니라, 반드시 우주 의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우연적인 진화로는 단세포 생물인 대장균 세포의 작용 하나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슈퍼 컴퓨터를 남산 만하게 만든다 해도 대장균 세포의 역할 하나 할 수 없다는 것은 생물학 박사들이 더 잘 안다.
지금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고민은 대장균 같은 생명체는 그만 두고 간단한 사발시계 하나, 그것도 그 부속까지 다 만들어 원시의 조건과 같은 바람 불고 벼락치고 어쩌구 하는 사막에 버려두고 몇 백만 년을 기다려도 그것이 자연적으로 우연히 조립될 확률은 완전 제로라는 거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 있던 물질들이 시계 부속품 등으로 만들어지고, 또 이것이 우연히 조립되고...
결론은 지금 이 사발시계 하나만도 엄청난 지성들이 연구, 발전시켜야 만들어지는데, 진공관 래디오, 트란지스타, 흑백티비, 칼라티비, 컴퓨터 그리고 생물, 동물, 사람, 사람의 두뇌세포... 이것들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엄청난 지성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에서 만들어진 대장균 세포 하나를 보더라도 우주는 맹목적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 있다는 것이며, 이 우주 의식을 '하느님'이라 하건, '여호와'라 하건, '알라'라 하건 그건 엿장수 마음 대로라고 했다.
이 우주 의식은 그냥 있을 수 없다.
뭐 신이 특별히 인간을 사랑하사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다.
예로 들면, 어떤 작가한테 어떤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는 자기의 정신을 그 작품을 통해서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못 한다면 이는 애초부터 그런 아이디어가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주의식도 자기와 같은 지성체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인간이다.
그럼 인간이 신과 같으냐?
그렇다. 같다. 단, 현재 그 알량한 인간의 지혜로 오염된 인간이 아닌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같이 그 섭리가 신과 일치하는 분들과 선악과 이전의 인간은...
그런데 작가가 작품을 만들려면 반드시 재료가 필요하다.
이 재료가 바로 물질이다.
이 재료로 인간을 만들 때 한꺼번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기초부터 만들어 다듬어간다.
이 기초를 '바이러스, 즉 미생물'이라고 본다.
이 미생물은 아직 생명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물질도 아니다. 물질과 생명체의 중간이라고나 할까....
그 이유는 이것들이 번식하는 걸로 보면 틀림없는 생물인데, 이를 분석해보면 이는 단순한 단백질덩이이기 때문이다.
생물학 박사나 우리들도 다 아는 이야기를 해보자.
현재 과학에 의하면, 원시 생명체는 원시 지구의 바다에서 원시 태양의 자외선, 천둥번개, 벼락, 방사선 등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 실험실에서는 원시 지구와 같은 조건을 갖추어놓고 아무리 오랫동안 실험을 해도 단백질 비슷한 것은 합성되었으나 생명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요즘 말하는 유전공학도 이미 만들어진 생명을 조작하는 것이지, 없던 생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즉, 그들은 애초부터 어떤 무엇이 만들어지려면, 특히 생명체가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그 '설계자의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데 한계가 있다.
하여간 원시 물질과 생명체의 중간인 미생물이 만들어졌고, 이 미생물들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공생관계가 되어 융합하여 단세포 생명체가 만들어졌으므로, 우리의 신체 세포 하나도 수 억 수 조의 미생물 집결체라는것이 현재 마이크론 생명학자들의 이론인데, 이는 과연 수용할 만한 이론이다.
이 과정에서도 나는 '우주의식의 설계 각본대로' 그렇게 됐다고 본다.
이 단세포 생명체들이 또 공생 융합하여 다세포 생물이 만들어지는데, 이것도 우주의식의 각본 대로라고 본다.
그러니까 위에서 과학자들이 '이상하게도 또는 신비하게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우주의식'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유인원 과정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는 질문이 나오는데, 나의 대답은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은 아니지만, 원숭이와 인간의 조상은 그 각자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에선가는 같았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원숭이등 유인원도 언젠가는 인간으로 진화를 할까?
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애초 인간과 유인원의 공동 조상에서 인간과 유인원이 갈라질 때 자연의 섭리(神)는 자신의 표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하여 여러개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보았을 것이고, 여기서 가장 정확한 자신의 표현체는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유인원들은 인간을 만들어보기 위한 하나의 실험동물이고, 이미 그들은 그들대로 진로가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인간으로 진화할 확률은 제로라고 본다.
그러니까 결국 인간은 우주 의식, 즉 神의 자기 표현체이고, 이는 자연 속에서 서로의 공생과 융합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것이 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 '홍익인간'의 원리이다.
* 그렇다면 먼저 늘 필자가 말한 '자연 속에서 동물이나 인간은, 인간의 간섭 없이는 서로 유전자나 말 등이 교환, 혼동되지 않는다'는 말과 상치한다.
그래서 이 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을 원론적으로 수정한다면 '자연 속에서 생물은 '그 몸집이나 진화 정도에 비례하여' 인위적인 간섭없이는 변하지는 않는다'고 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현미경도 전자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생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질도 아닌 바이러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종이 생긴다.
그러나 몸짐이 크고 진화 과정이 거의 끝난(사람 기준) 동물들이 자연 속에서 변종될 가능성은, 미생물의 크기와 비례되어 수만 년도 아닌 수 십만 년 이상 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다.
생명체뿐 아니라 물질도 이와 같다.
지금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 속의 전자'를 예로 든다.
이 전자는 하나의 알맹이인 '子이면서도 전파'라는 말에서 보듯이, 하나의 파(波)이다.
우리말에 '전자'라는 말과 '전파'라는 말이 있는데, 이 '자'와 '파'의 물리학적 역학관계게는 완전 반대이다.
즉, '子'란 하나의 알갱이로, 돌맹이나 총알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波'란 연못에 돌을 던지면 퍼져나가는 물결 같은 것이어서, '파장'이니 '음파'니 하는 것은 모두 그 '파장이 퍼져나간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전자, 전파'는 완전 '한 몸으로 두 짓을 하는 도깨비'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도깨비의 정체를 잡은 것이 '하인리스타인의 불확정 이론'인데, 이 이론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예를 들면, 한 시간 전에 서울에서 부산을 향해 출발한 자동차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질문할 때, '경부고속도로 상에 있다'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이론을 좁혀 가보자. 서울을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넘었으니 서울 나들목은 빠져나갔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전까지는 못 갔을거라... 이걸 더 좁혀가면...
그래서 이 이론은 도깨비 잡는 이론인데, 그 뿐 아니라 이 도깨비의 하는 짓은 몇 백만 분의 일 초 사이에도 태어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이것도 없어진 그곳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엿장사 맘 대로 이곳 저곳, 원자의 범위 안에는 아무데나 나타 난다.
즉, '전자는 탄생하여 어떤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생멸을 거듭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멸 현상은 비단 소립자들 뿐 아니라, 지구나 태양 같이 몸집이 큰 것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단, 여기서 그 생멸 기간은 그 몸집에 비례되니, 지구에 종말이 와서 사라져서 지구가 다시 태어난다고 가정할 때, 그 흩어졌던 먼지들이 다시 합쳐저 다시 지구가 만들어지는 기간이 된다.
하여간 현대 과학에서는 이 도깨비를 잡은 덕분에 지금 우리가 래디오, 티비, 그리고 컴퓨터와 핸드폰을 쓰고 있다.
생명체의 변이를 예로 들다 보니 말이 물리학적으로 빗나가고 있네...
생명체의 설계 속에는 '이미 만들어진 그 생명이 죽지 말고 잘 살아야 된다'는 설계(본능)도 들어 있는데, 그래서 생명체들은 죽는 걸 싫어하고 어떻게든 살고자 한다.
이러자니 생명체는 자연 속에서 혼자 활동하는 게 불리해지면 공생 융합하려 한다.
즉, 미생물인 바이러스들이 융합하여 하나의 세포를 만들고, 이 세포들이 융합하여 동물은 물론 사람을 만들고...
그런데 이 생명체가 어느 정도 애초 설계했던 목적(신의 자기표현체인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그간 이루어진 것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는 설계도 동시에 들어 있다고 본다.
이것이 '본능'이다.
즉, 필자가 지금 쓰는 이 글이 어느 정도 완성만 되도 사라지지 않게 '보관하기'라는 컴퓨터 키를 눌러 그간 쓴 글들이 날아가지 않게 자물쇠를 채워놓듯이...
그래서 생물들은 죽기 싫어하는 본능이 있고, 그래서 자살은 신의 섭리에도 거역되는 행위가 된다.
* 그러나 여기서 자살이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것이라 할 때, 이는 개체적 자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송어 등 어류는 태평양 3만 킬로를 헤매며 먹고 커서 번식기가 되면 고향산천, 즉 자기가 태어난 개울로 회귀한다. 동해안의 남대천이 그 중 하나이다. 이 송어들은 알을 낳고 그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지키다가 결국 알이 부화하면 그간 모래와 자갈에 살점이 뜯겨 뼈만 남은 채 최후를 마친다.
벌이나 개미의 숫컷은 교미하는 순간 그 생식기가 암컷의 자궁을 막고 빠지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죽는다.
사마귀의 수컷은 교미하는 순간 암컷의 먹이가 되어 암컷이 알을 낳는데 영양소가 되게 한다.
지금 한라산에는 노루가 있는데 천적이 없으니 엄청 번식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나났는지 들개들이 나타나 이들을 잡아 먹고 있다.
동물보호협회에서는 이 들개를 포획하려고 먹이와 젗을 놓고 있지만, 사람 냄새만 맡아도 도망가는 이 들개들이 좀처럼 그 그물에 말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보호협회에서는 참으로 치사한 짓을 하여 그들을 잡는다.
즉, 발정한 암캐의 오즘 등을 그 근처에 뿌리고, 암캐를 나무에 매어놓는다.
그러면 수캐들은 사람이 있건 말건 목숨을 걸고 암캐에게 찾아와 교미를 한다.
그런데 이 개들은 교미후 한 30분 동안은 서로 떨어지지 않아, 교미가 끝나기도 전 그대로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
동물보호협회에서는 수캐만 다 죽이면 들개들이 번식을 못할 걸로 보고 이런 치사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데 만만치 만은 않다.
영화 '주라기 공원'에서는 공용들이 번식을 못하게 수컷만 만들어놓는다. 그러나 그 수컷들 중 어떤 놈은 독초를 뜯어 먹고 암컷으로 성전환을 한다,
지금 공원의 은사시나무는 봄만 죄면 꽃가루를 날려 사람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시키므로 암나무들만 골라 모조리 베어버린다.
그러나 한 3~4년쯤 지나면 숫나무들 중 어느 놈이 암컷으로 성전환을 하여 다시 꽃가루를 날린다.
한라산에 노루가 너무 번식하면 풀들이 남아나지 않아 결국 모든 노루들이 전멸하게 되는 걸 막기 위해 자연은 들개 같은 천적을 만든다. 이 들개들을 번식 못하개 수컷들을 잡아 죽인다 해서 노루들의 천적이 다시 생기지 않으리란 발상은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이렇게 동물들은 어떻하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오직 자신들이 유전자를 이어갈 번식에만 목적을 둔다.
그런데 지금 생물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있다.
어느 해안가에 고래들이 떼로 몰려와 자살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도로 끌어다가 바다에 넣어주어도 다시 나와 집단 자살을 한다. 왜 일까?
어느 섬에 나그네 쥐라는 쥐의 일종이 살고 있다.
이 쥐들은 너무 번식하여 먹이들이 고갈되면 그 쥐들의 반 수 이상은 바다로 뛰어들어 집단 자살을 한다.
이 역시 왜일까?
자기네 종족이 영위하던 범위 안에 먹거리가 떨어지면 결국 그 집단은 전멸하고 만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숫자가 없어지면 그들은 다시 살아간다.
지금 이락크 등지에서는 자살특공대가 미군을 괴롭히고 있다. 참으로 천인공로할 만행 같지만 우리의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도의 의거도 이와 같다.
즉, 개인이 죽더라도 그 종족을 살리고자 하는 것은 義이고 자연의 섭리이다.
그래서 자살은 개인이 자신을 위해 하면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죄가 되지만, 그 종족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의가 되는 것이다.
또 인간이나 어느 정도 진화한 동물들은 자신들의 유전자 등을 함부로 뒤섞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고, 그래서 침팬지는 침팬지 끼리, 오랑우탕은 오랑우탕끼리만 유전자를 교환한다.
그런데 종이 다른 것들은 아무리 교접해도 번식이 되질 않는다.
그 이유를 원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몸을 포함한 동물, 그리고 생명체들의 몸에는 그 진화의 목적(신의 자기 표현체인 인간) 을 기준으로 하여 그 목적에 가까워질수록 지금까지 만들어진 자기 유전자의 파괴나 혼동을 막기 위하여, 즉 자기를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설계도가 들어 있는데, 이를 초급성 거부반응인 '알파갈' 유전자라 한다.
이 이론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지금 서울대에서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하여 세계 특허를 얻어낸 황우석 박사의 이론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복제양 돌리나 돼지 등은 복제가 가능하고, 이미 많이 되어 있다 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만 두고 사람과 비슷한 유인원에만 들어와도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미생물인 바이러스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종이 생기는데, 사람에 가까와질수록 왜 변종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이는 바로, 위에서 말한 신의 자기 표현체인 인간을 기준으로 하여 그 목적에 가까워질수록 지금까지 만들어진 유전자 자신의 파괴나 혼동을 막기 위하여, 즉 자기를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설계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유전자 때문에 인간은 물론, 인간과 가까운 종일수록 그 복제도 안 되고, 외부 유전자의 침입을 차단할 수 있다. 즉 외부로부터 어떤 균이 들어오면 이를 파괴시켜 우리 몸을 보호하므로 우리는 어떤 세균에 감염되거나 외상을 당해도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알파갈 유전자의 간섭으로 이종 간, 즉 다른 동물과의 교접은 번식을 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동종 간의 장기 이식도 그 유전자를 따져야 하므로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황우석 박사는 여기서 거부반응이 없는 돼지 유전자를 만들어 사람의 장기에 대체하려 하는 것이다.(더 자세한 이론 생략)
그러나 동종 간의 교접은 번식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우리의 세포가 번식을 하려면 반드시 그 유전자가 감수분열, 즉 꼬아진 사닥다리 같은 유전자가 반으로 갈라지고, 이 반반인 유전자들은 거의 비슷한, 역시 갈라진 유전자를 만나면 왕성하게 번식을 한다. 그것도 오히려 더 잘 번성한다. 이것도 '홍익인간'의 원리이다.
즉, 늙어가는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씩 가자고 태어난 아기들의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이 반쪽 유전자의 결합이 '수정'이다.
그러니까 정자와 난자는 모두 감수분열된 유전자들이고, 이것이 서로 만나 새 유전자, 즉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데, 그러니까 동종간, 즉 사람과 사람, 개와 개는 그 감수분열된 유전자끼리 합성될 수 있으나, 사람과 개 사이의 유전자는 아무리 감수분열된 유전자라 하더라도 그 코드가 너무 달라 맞지를 않는다.
그래서 사람과 개 사이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으나, 거의 사람인 오랑우탄(인도네이아 어떤 섬의 언어로 山사람이란 뜻)과 사람 사이에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도 있다 한다.
* 이상으로 모든 생명체들은 물론, 사람까지 그 유전자는 부계만의 유전자를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정확히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씩 타고 나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 유전자는 부모로 볼 때는 그 반반이지만, 그 조모로 볼때는 1/4 , 증조부모로 볼 때는 1/8, 고조부모로 볼 때는 1/16... 만약 100대만 올라가면 우리 조상은 천문학 숫자가 된다.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삼황오제, 또는 공자가 중국인이 아닌 우리 동이인이었다 하더라도 그 후손은 이미 우리민족이 아니며, 따라서 내 30대 조상이 중국인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나는 우리 말과 문화에 동화된 것 말고도 그 유전자로 볼 때에도 이미 중국인의 유전자가 거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 같은 종끼리 뒤엉겨 사는 인간 등은 유전자를 서로 교환해야 하는데, 인간이 각기 그 씨족만을 찾아 피를 교환하는 이유를 이제 알아보자.
지금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을 예로 들면, 두 민족은 서로 혹 친구는 할 수 있지만 될수 있는 한 결혼하여 피를 섞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건 문화 차이로 오는 마찰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비교적 성과 종족이 개방된 미국에서도 흑인 백인 황인종끼리 친구는 하되 서로 피를 섞지는 않으려고 한다.
오래 전에 미국사람이 되어 이미 그들의 문화에 동화된 황인종끼리도 흑인, 백인 간은 물론, 같은 황인종인 중국인과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서로 피를 교환하는 데는 망설인다.
이건 문화 차이를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종족 개념 때문이다.
지금 중국 남부에서 이주해온 남만족, 즉 단군신화에 나오는 우리 곰 할머니와 같은 남만족인 보로네오의 숲속 푸난족은 먹을것이 숲 속에 널려 있는데도 바로 얼마 전까지 공식적으로 타 종족을 잡아 먹었으며, 지금도 암암리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말로는 타 종족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들이기 때문에 짐승 잡듯이 잡아 먹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현대에서 기간적으로 조금 올라가보자.
불과 60~70년 전인 2차 대전 당시만 해도 게르만 민족들은 자기네 종족들 이외엔 사람으로 보지 않아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유태인 처녀들을 짐승 잡듯이 잡아 그 가죽으로 전등 갓을 만들고, 그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썼을망정 그녀들을 성적으로 강간하지는 않았다. 자기네 순결한 게르만 종족의 피를 짐승들에게 더럽힐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건 히틀러 혼자 전 독일인 의사를 무시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게르만 종족 이외의 다른 종족은 짐승으로 밖에는 보이지 안는 그들의 잠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중국 무협지 <수호지> 등을 보면 지나가는 나그네를 짐승 잡듯 함정을 파놓고 잡아다가 만두 속을 만들어 먹는데, 역사를 더 올라가보면 중국인들은 외부 종족을 짐승 잡듯이 잡아다가 먹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즉, 외부 종족을 짐승으로 보는 잠재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하여 중국대륙에서 일어났던 식인 행위는이만 생략하고, 우리 하느님 시대로 올라가 보자.
하느님의 천부경 교훈이 '하나, 둘, 셋... 아홉, 열'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아홉'은 바로 '업' 즉 '남근'이다.
그런데 최치원은 이것을 一積十鉅에서 '鉅'로 풀었고, 이 鉅는 '울타리'의 뜻이 있다고 필자는 <신지녹도문 천부경 해독>에서 자세히 풀어놓았다.
그렇다면 '울타리 안의 남근'이란 무엇인가?
'남근'이란 바로 '씨'이므로 씨, 즉 '씨족'의 울타리를 '열'고 '이웃씨족과도 유전자를 교환하라'는 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뜻이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도 울타리 내에서, 즉 씨족 간에만 피를 교환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는 당시 중국 대륙에는 여러 종족이 뒤엉켜 살았겠지만 서로 피는 지키며 살았다는 증거이고, 그렇다면 따라서 '말이나 글자의 혼동도 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위에서 말한 신의 섭리는 종이 다른 것들끼리는 유전자 코드가 맞질 않게, 즉 번식을 할 수 없게 자물쇠를 채워놓았어도, 같은 종끼리, 즉 유전자 코드가 맞는 것들끼리는 서로 교잡해야 우수한 종이 번식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는데, 이렇게 되면 '원시인들은 자연의 섭리, 즉 신의 섭리를 거역하는 셈'이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원시에는 성생활이 지금과 같은 개인주의적 향락이 아닌, 오직 그 종족의 번식을 위한 하나의 의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뿌리말에서 밝혀진다.
즉, 짐승들이 각축전을 벌여 이긴 놈이 암컷을 다 차지하듯이, 원시 인간들도 '씨놀음'을 하여 이긴 자가 자기 씨족 안의 암컷을 다 차지한다. 이것은 자연이 섭리이고 본능이다.
이 본능적인 씨놀음이 우리에게는 바로 지금의 '씨름'이 된다.
그러니까 당시 그들은 이 규칙을 어기고 개인적인 성 접촉을 하면 이건 불륜으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결국 그 씨족에서 축출되는 엄한 규율도 있었을 것이다. 이건 바로 그 당시로써는 죽음이다.
그들에게 외부 종족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그래서 환웅 무리의 눈에도 곰족과 호랑족은 아직 사람이 아니다.
만약 환웅 무리의 눈에 그들이 사람으로 보였다면 구태여 사람을 만들려고 마늘과 쑥 등으로 복잡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외부 종족인을 짐승으로 보는 것은, 자연의 섭리가 사람의 눈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그 종족들의 알량한 자기종족 우월감 때문이다.
애초 성행위를 오직 종족의 번식을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 씨놀음을 하던 원시인에게 타 종족와의 혼혈은, 아마 짐승과의 수간 정도의 수치가 아니라, 결국 그 씨족에서 축출되는 엄한 규율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주의 성생활 같았으면 아무 종족이나 처 들어가 그 종족의 암컷을 취했겠지만, 당시 씨를 퍼뜨리는 일은 반드시 씨놀음을 통하여 이긴 자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그들이 자기 종족의 많은 암컷들을 놔두고 구태여 타 종족인 짐승을 취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이 같은 종끼리만 교접해야지 다른 종과 교접하면 그 유전자 코드가 맞질 않아 번식할 수 없게 채워준 자물쇠의 뜻을, 그 알량한 자기종족 우월감으로 다른 종족은 아예 짐승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다른 부족과의 교접을 피한느 것은 물론, 그들을 잡아 먹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인간의 먹거리 문제가 나온다.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라 무엇이건 먹을 수 있다.
즉, 식물이건 동물이건 다 잡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먹거리는 신의 자기 표현체인 인간을 기준으로 '그 정도에 비례하여' 먹거나 죽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인간이 인간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은 조금 먹어도 되고, 식물은 많이 먹을수록 건강하며 좋고...
이것을 쉽게 증명하기 위하여서는 육식성 동물들을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육식성 동물은 그 구조상 식물을 먹을 수 없다.
육식성 동물이 육식만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초식하는 사슴이나 토끼 등을 잡아 먹는 동물들의 수를 조절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초식성 동물이 너무 번성해도 풀들이 남아 나질 않을 것이며, 너무 없어져도 풀들은 너무 무성하여 떠서 죽게 되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 바로 육식성 동물의 출현이며, 그래서 자연은 생명의 고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육식성 동물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신의 지능으로 판단하여 자신보다 큰 동물이나 동종의 동물은 잡아 먹지 않는다.
즉, 사자나 호랑이는 코끼리를 잡아 먹을 생각도 못하고, 자기의 동종인 사자나 호랑이들도 잡아 먹질 않으며, 늑대 역시 사자나 호랑이, 그리고 자신과 같은 늑대는 잡아 먹질 않고, 오히려 유전자 교환을 하려고 수컷 싸움 정도는 한다.
그리고 먹이는 반드시 자기보다 하급인 동물 만을 주로 잡아 먹는다.
그러니까 인간이 다른 종족인 인간을 쓸데없이 죽이거나 먹는다는 건 신(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며, 다만 인간은 다른 인간끼리 교접하는 건 할수록 좋다.
이에 관해 희한한 동물들을 예로 들면, 오징어 등 연체동물은 한 몸에 양성을 다 가지고 있어서 한 해는 암컷이 되어 새끼를 치고, 다음 해에는 수컷이 되어 다른 암컷에게 유전자를 전한다. 또 달팽이 류는 한 몸에 암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가 번식기가 되면 암수 모두가 발정을 하여 다른 달팽이들과 동시에 교미를 한다.
즉, 자신에게 암수가 다 달렸으니 다른 데 가지 말고 자기가 자기에게 자신끼리 교접할 수도 있을 텐데 절대 그런 일은 없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유전자 교환은 그만 두고 자기와 유전자가 거의 같은 형제, 부모 등 근친끼리 상간을 하면 결국 무지랭이를 낳아 도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 한 쌍을 새장에서 기르면 얼마 있다가 새끼를 친다. 그런데 그걸 그대로 두면 또 새끼가 나오는데, 그 새끼들은 머리털이 빠지고 결국 병들어 죽게 된다.
호박이나 오이도 화분에 딱 한 그루만 심어놓고 암수 꽃을 인공적으로 수분하면 잘 열리지도 않지만, 어쩌다 열리는 오이나 호박은 쭈구렁텡이가 되어 얼마 안 가서 떨어진다.
그래서 자신의 유전자와 다른 종족과 교접을 한 결과로 보다 훌륭한 후손을 두게 되는데, 이 자연의 섭리 역시 홍익인간 원리 때문이다.
즉, '여러 종족이 하나가 되라'는 것이 신의 섭리이다.
그래서 천부경의 하느님은 '그 '이종과 교접하지 말라는 열쇠는 그런 뜻이 아니니, 네 그 씨족의 울타리를 열고 나가 너희들이 짐승 취급을 하는 그들을 잡아 먹지 말고 그들과도 어울리거라'한 것이 바로 '아홉, 열'에 나오는 홍익인간인 것이다.
즉, 그때 당시 사람들이 어떤 종족이건 가리지 않고 피를 섞었다면 구태여 하느님이 그 '아홉을 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이상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섭리에 대해서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말했고, 따라서 이 '우주는 맹목적 우주가 아니라 거대한 생명 덩어리'라는 것을 말했다.
▪ 결론은 '인간은 개체인 자신이 아니라 바로 신의 자기 표현체'이다.
그러므로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란 내 자신인 개체가 아니라 바로 대생명인 하늘'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그리고 이 하느님들이 사는 이 지구가 하느님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