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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豊友會 원문보기 글쓴이: 시보네/54
순흥초군청 민속축제
조선말기 경상도 영주 순흥에서 조직됐던 농민자치기구인 초군청(樵軍廳)은 대보름날 자시(子時)를 기해 두레골 서낭제를 시작으로 두레골 성황당 음복의례, 지신밟기, 성하성북 줄다리기, 민속놀이(윷놀이, 투호대회, 널뛰기), 초군청 농악놀이 등 다양하게 개최되며, 달집태우기를 끝으로 행사를 마치게 된다.
1990년대부터 순흥 줄당기기와 함께 시작한 초군청 풍물은 지역주민이자 기능전수자인 정창순옹이 발굴 및 재현, 복원을 하였다.
초군청 풍물은 12마치의 36가락이 전승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줄당기기 중단과 함께 풋굿이 사라지면서 초군청 풍물도 전승력이 약화되어 지금은 두마치, 세마치, 네마치와 질굿이 남아 있다.
또한, 1900년초부터 시작된 초군청놀이는 두레골 성황당제, 초군청재판놀이, 초군놀이(벅구, 지게끈치기놀이, 소리타령, 양반휘롱마당), 성하성북줄다리기 지신굿밟기와 달집태우기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였으나 놀이의 대부분이 사라져 2000년 초부터 발굴 및 재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에는 초군청학술대회 개최, 악보채록 등 체계적으로 발굴 및 문헌보존을 한 해로서 10월에는 초군청농악놀이가 전국민속예술제에 참가하여 전국에 알렸으며, 12월에는 초군청놀이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하였다.
초군청은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농군들의 자치기구로 조선 말 고종 임금 시절에 순흥고을 토호세력들의 하인배와 머슴꾼들이 상전의 세력을 등에 업고 민초들에게 행패를 가하는 일이 빈번하여 농민들이 토호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을 보다 못한 선비 김교림(金敎林)이 조정의 허락을 받아 만든 촌민 자치, 자위 조직으로 조정에서 순흥에 초군청인(樵軍廳印)을 내려 보내 민초들이 직접 초군청을 운영토록 하여 민초들에게 행패를 가한 토호세력가들의 머슴들에게 태형을 가하고 하인관리를 잘못한 상류층에게 벌금형을 내려 토호 세력들의 악폐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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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국방경비를 위하여 주(州), 현(縣)에 초군(樵軍)을 두었다. 또 나무꾼을 초군(樵軍)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순흥에 있었던 초군(樵軍)이라 하는 것은 농사군을 뜻하는 것이다. 순흥은 예로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의 요충지대요, 역사적 사건과 명승고적이 많은 지방이며 순흥도호부가 설치된 곳이다. 관아(官衙)의 관원들과 관직을 마치고 돌아온 전관, 생활이 부유한 세도가들이 많았다.
초군들이 항상 모여서 일할 수 있는 청사도 마련되었다. (지금은 없어졌음) 이 자 치단체의 조직은 우두머리를 좌상(座上)이라 하고, 농군들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자격은 규정이 없으나 인격과 덕망이 있어야 하고 연령적으로도 많은 경륜이 있어야 한다. 좌상의 선출은 음력 정월 16일이 정일이며 여기에 당선되면 농군으로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큰 잔치를 벌리고 동민이 모여서 먹고 마시며 풍악을 울리며 축하연을 배푼다.
임기는 1년이고 유임도 가능하다. 초군청인장과 초군청 관계문서를 인수인계하며 좌수의 권한은 그들 세계에 있어서는 부사와 똑같은 권한과 행사를 집행한다. 지금도 순흥에서는 좌상의 위치는 변함이 없다. 순흥초군정인장과 관계문서를 보관하고 좌수의 명의로 문서를 발송할 때는 순흥초군청좌수 OOO하고 청인(廳印)을 찍고 있다.
좌수 밑에 이방(吏房)을 위시한 육방(六房)이 있고, 늙은 총각으로서 귀땅머리를 따는 총각대방, 좌수를 수행하는 비장(裨將)등 지방 행정관청과 똑같은 제도이다. 농군들 중에 잘못된 자가 있으면 출두명령서에서 좌수인장을 찍어 초군청에 불러 형방(刑房)이 문초하고 형의 경중에 따라 처벌한다. 순흥장날 장똘뱅이들이 농민의 물건을 강압적으로 뺏거나 시세를 약하게 놓아서 고발만 되면 엄중한 벌을 받는다. 그들의 세계에서 부여받은 권한으로서의 불문율이다. 무서운 조직체였다. 초군청의 조직과 기구도 민주적이기도 하지만 하는 일도 상당히 근대화되어 있다.
O 초군청의 하는 일
물자동원등 현재도 철저히 하고 있음은 아름다운 풍습이고 좋은 전통이다.
O 초군청 경비 조달 (수입)
순흥초군청과 두래골 순흥수호 산신각과 금성대군 수호신을 모신 성황당은 서기 1726년 창건으로 145년의 세월이 흐른 당시에도 순흥초군에서는 재정이 빈곤함에도 소한마리를 사서 재물로 한다는 것은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풍어제를 지내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우리 순흥에 귀양 오셔서 단종복위를 꾀하다 비참하게 금성대군과 우리선조들이 돌아갔으니, 우리 초군청에서는 성의를 다하여 위로하겠사오니 일년 내내 굽어 살피십사하고 고사를 올리는 것이다. 중한 병에도 약을 바로만 쓰면 병이 낫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들었던 순흥 농군들을 참봉 김교림은 순흥초군청이란 도장 하나로 폐풍을 고쳐서 더욱 착실한 미풍양속(美風良俗)을 낳았으니 그분의 지극한 효심과 내 고장을 사랑하는 애향심의 발로라 하겠다. 이 좋은 전통이 길이 길이 후손에 전하여 보다 나은 발전 있기를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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