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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23일 목요일
[(녹)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라고 한다(제1독서).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지른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한 번에 다 이루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25―8,6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25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26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28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8,1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대사제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시어,
2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3 모든 대사제는 예물과 제물을 바치도록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대사제도 무엇인가 바칠 것이 있어야 합니다.
4 만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시면 사제가 되지 못하십니다.
율법에 따라 예물을 바치는 사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5 모세가 성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지시를 받은 대로,
그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상이며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성소에서 봉직합니다.
하느님께서 “자,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형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6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더러운 영들은“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르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7-12
그때에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8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서 그동안의 예수님의 구마와 치유 기적, 용서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십니다. 그러자 가까이 갈릴래아 지역을 비롯하여 사방에서 큰 무리가 몰려옵니다. 남쪽으로는 유다와 이두매아 지역에서, 동쪽으로는 요르단 건너편에서, 그리고 북쪽으로는 티로와 시돈 근처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무리를 지어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적으로 구하는 것은 치유이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앎)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봅니다.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르 3,11) 하고 소리 질렀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침묵하라고 엄하게 이르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특징인 ‘메시아 비밀’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다만 인지(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과 추종의 앎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열광하는 군중이 아닌, 당신을 뒤따를 제자들을 바라십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우리 교회는 힘겹게 살아가는 양들에게 위로와 기쁨과 희망을 주고 있는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피정 오신 자매님들 통해서 요즘 대세인 몇몇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가수들께서 이런저런 고통과 상처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존재 자체로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신다니, 참으로 감사한 동시에 부끄러움도 느낍니다. 교회가 주지 못하는 위로와 기쁨을 그분들이 대신 주고 계시니...
막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행적을 묵상해보니, 요즘 대세 트로트 가수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셨습니다. 요즘 봉독되는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 공동체의 신명나는 활약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구세사의 주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군중들은 크게 환호했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자체로 위로요 구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유다 지방 사람들뿐만 아니 예루살렘 도시 사람들, 이두매아 사람들, 요르단 강 건너편 사람들, 북서쪽에 위치한 티로와 시돈 지방 사람들까지 몰려들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군중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 군중의 특징이 무질서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차례가 올 것인데, 조금이라도 빨리 치유의 은혜를 입고자 새치기를 하고, 뒤에서 밀고 난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전장치 겸 군중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짜내십니다.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구해보라고 이르십니다. 거룻배에 타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밀어 육지에서 약간 떨어트려 놓으십니다. 그리고 분위기를 좀 가라앉힌 상태에서 차분하게 말씀을 선포하시고 치유 활동을 재개하십니다.
군중이 예수님께로 몰려드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은총을 입기 위해서 왔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와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들려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겸손하신 하느님, 우리 인간을 향한 극진한 사랑과 자비의 표현인 예수님의 얼굴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교통수단이라고는 특별히 없었던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먼 길을 걸어서 왔습니다. 먼 길을 걸어오느라 무척이나 지쳤을 것입니다. 목마르고 굶주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예수님을 뵙겠다는 일념으로, 새 세상을 열어주실 메시아의 말씀을 듣겠다는 목적으로 그 먼 길을 거의 달려오다시피 했습니다.
교회를 찾는 우리의 발걸음이 그들처럼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미사참례 차 성당을 찾는 우리들의 마음이 그들처럼 설레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을 기다려왔던 축제에라도 가듯이, 사랑하는 사람 만나러 가듯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그렇게 사람들이 교회로 오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과 함께 구성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활기차고 신명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 교회의 발밑을 한번 내려다봅니다. 그 옛날 초기 교회처럼, 오늘 우리 교회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까?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지친 성직자·수도자들은 상습 피로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비명 속에 양떼들 사이에서 헌신하고 있습니까? 말씀에 굶주린 세상 사람들은 남녀노소 그 누구를 막론하고, 교회가 제공하는 시원한 구원의 청량음료를 원 없이 마시고 있습니까?
바다와 같은 주님: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은총을 주시면서도 군중과 거리를 두십니다. 군중들이 당신을 밀치는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으시려고 배를 한 척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님께서 은총을 주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순종’을 배우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은총을 받는 이가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 은총이 독이 됩니다. 질서를 알게 하는 차원에서 은총을 받는 이에게 휘둘리면 안 됩니다.
한서진은 ‘SKY 캐슬’에서 사회적 압박과 개인적인 불안에 압도된 부모의 전형을 보여주며, 강예서에게 특히나 약한 어머니로 묘사됩니다. 그녀는 도축장 옆에서 부산물을 팔며 등록금 내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딸 둘만 낳아 시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부잣집 가문 며느립니다. 그녀에게 공부 잘하는 예서는 그녀 자신이 그 가문에서 인정받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과도한 성공 욕구와 건강한 경계를 세우지 못하는 태도는 예서가 특권 의식과 공감 부족을 키우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이렇게 서진은 예서의 인격 형성보다 외형과 사회적 인정을 우선시합니다. 서진은 예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너를 위해 모든 걸 다 했다. 넌 꼭 성공해야 해.” 이는 성공이 행복과 가치의 기준이라고 믿는 그녀의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며, 그녀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불안감을 예서에게 투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서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고 그녀의 잘못을 덮어주는 서진의 태도는 결과가 도덕성보다 중요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예서는 이를 내면화하고 어머니의 죄책감과 욕망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며,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악화됩니다.
서진이 예서의 이기적인 행동에 도전하거나 도덕적 지침을 제공하지 못한 것은 예서가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정당화하고, 성공이 모든 잘못을 용서받게 한다고 믿게 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서진이 예서의 왜곡된 가치관 형성에 자신의 책임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강예서는 엄마의 유전자가 자신의 몸속에 있다는 것을 한탄합니다. 그러자 한서진은 고백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널 행복하게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들어버렸구나.” 이 고백은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약점—방임과 잘못된 우선순위—이 예서의 특권 의식과 도덕적 실명을 부채질했음을 강조합니다.
이 사례는 부모와 교육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경계를 설정하고, 자녀의 성취보다 인격을 우선시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관계가 깨지고 자녀의 성격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교훈을 제공합니다. 겸손을 가르쳤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녀의 꿈에 이용당한 엄마는 그 많은 고생에도 자신을 원망하는 딸만 가질 수 있을 뿐입니다.
자녀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부모란 자녀가 부모를 존중할 수 없게 키운 부모입니다. 자녀가 나빠지는 이유는 불안과 교만 때문입니다. 불안은 다정함으로, 교만은 단호함으로 꺾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정하며 동시에 단호할 수 있을까요?
유튜브에 ‘전 세계 화제가 된 리트리버의 새끼 훈육법’이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8주 된 강아지들이 한 방에 모여있습니다. 잠시 후, 어미견 로잘리가 들어옵니다. 강아지들은 어미를 향해 달려듭니다. 하지만 어미는 오늘 아이들에게 ‘배려하는 것’을 가르쳐줄 참입니다. 젖을 떼야 할 때인 것입니다. 어미는 으르렁대며 단호하게 아이들을 떼어냅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겁을 먹습니다. 이제 어미는 새끼들을 다시 핥아줍니다. 그리고 훈육은 끝났습니다. 이것을 보면 느껴지는 것은 ‘다정하지만, 단호하다.’입니다.
자연 안에서 이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바다’일 것입니다. 바다는 다정합니다. 해변에서 놀도록 얕은 파도를 보내주고, 배가 고프면 맛보라고 맛있는 물고기도 줍니다. 그러나 물고기를 새끼까지 깡그리 잡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지구 온도 조절이 안 돼서 인간도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바다는 단호할 때도 있습니다. 커다란 파도와 해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만듭니다. 무한한 보물을 가지고 언제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만, 인간에 의해 휘둘리지 않기 위해 단호할 땐 단호해집니다. 인간은 바다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그래서 바닷사람들은 바다에 나가기 전 각자가 믿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바다는 우리에게 말하는듯합니다.
“어, 와서 놀아! 얼마든지 내어줄게. 근데 까불면 죽는다~!”
하느님도 우리 안에서 이와 같으십니다. 무한한 바다와 같은 사랑을 지니셨지만, 동시에 인간과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이는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바다에 빠지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바다를 무시하지 않게 해야 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많은 은총을 주시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그런 교만이 생기면 손해는 인간이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과 거리를 두시는 것입니다.
‘이빨 보이던 댕댕이가 한순간 얌전해진 까닭’이라는 유튜브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발 닦는 것을 싫어하는 댕댕이는 주인이 발을 닦아줄 때 으르렁거립니다. 주인은 몇 번을 참아주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립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조용해지고 심지어 웃는 표정까지 짓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개에게 계속 은혜만 주면 그 은혜가 개를 망칠 뿐입니다. 다정함과 함께 단호함은 꼭 필요합니다.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이것이 은총을 주는 이의 자세입니다. 사제가 그래야 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그래야 합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자기 안에 바다를 품고 있으므로 그것을 보며 다정하지 않을 수 없고 단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하느님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이웃을 대해야 하는지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난 12월 31일입니다. 본당에서는 ‘송년 미사’를 준비했습니다. 2024년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새로운 한 해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친 후에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본당의 행사를 정리해서 영상으로 보여드렸습니다. 전임 신부님의 송별 미사와 후임 신부의 환영 미사가 있었습니다. 부활절, 견진성사가 있었습니다. 성모의 밤, 청소년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주일학교의 캠프와 피정이 있었습니다. 27기 사목회의 임명장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26기 사목회 임원들에게 감사장을 드렸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찬양의 밤이 있었습니다. 대건회 어르신들의 야유회가 있었습니다. 꾸르실료 봉사자들의 소풍이 있었습니다. 본당의 날 행사가 있었습니다. 걷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자선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성탄 미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2024년을 보내고,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고 기쁜 소식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을 제자로 뽑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연민의 마음이 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으로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열병을 앓고 있던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자비를 청하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이웃들이 지붕을 뚫고서 데려온 중풍 병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10명의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 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권위로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025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제가 아름답다는 것은 그의 외모나 언변이 출중해서가 아닙니다. 사제의 아름다움은 그가 입은 제의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사제가 아름답다면 사제가 사제의 직분을 충실히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제의 아름다움은 복음을 전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병자를 위로하면서 시작됩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데서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금도 없고, 은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야기합니다. 일어나십시오.”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베드로는 아름다운 사제입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내 생의 전부입니다.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교회를 박해했지만, 회개했던 바오로는 아름다운 사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사제들이 있습니다. 순교로 신앙을 증거했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땀의 순교로 신앙을 증거했던 최양업 토마스 사제는 아름다운 사제입니다.
신자가 아름답다는 것은 그의 명예, 권력, 재물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자의 아름다움은 신앙생활의 연륜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신자가 아름답다면 신자의 직분을 충실히 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보면 아름다운 신앙인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아름답습니다. 재산의 반을 나누어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빚진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던 자캐오는 아름답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해 주고 여관으로 데려갔던 사마리아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뜨거운 믿음을 보여 주었던 백인대장은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린 여인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꽃동네의 시작이 되었던 최귀동 할아버지는 아름다운 신앙인입니다. 요셉의원을 시작한 선우경식 원장님도 아름다운 신앙인입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화려한 건물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당신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부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5년 우리의 삶이 아름다움으로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움을 원하신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면 됩니다. 그런 아름다움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프리스카 (Prisc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270년경
같은이름 : 프리스까 쁘리스까 프리실라 프리쉴라 프리스킬라 프리스낄라 브리스킬라
프리스킬라(Priscilla)로도 알려진 성녀 프리스카는 로마의 초기 순교자인 듯하며,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이 외에는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신분 : 공주, 수녀
활동지역 :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 1242-1271년경
같은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조국 헝가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태어났는데, 그녀의 부모는 만일 전쟁이 승리한다면 어린 마르가리타를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 은혜는 실제적으로 허락되었기에 세 살 난 딸을 베스프렘(Veszprem)에 있는 도미니코 수녀원에 맡기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국왕 벨라 4세(Bela IV)와 마리아 라스카리스(Maria Laskaris)였다.
그녀는 12세 때에 첫서원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서약할 자격이 미달된다는 내용을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즉 정치적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성녀 마르가리타는 수녀원을 떠나기보다는 코와 입술을 자르라고 항변하여 자신의 자발적인 의사임을 입증하였다.
그 후 하느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과 자기 극기는 여러 가지 활동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가끔 온밤을 지새우며 성체 앞에서 기도하였고, 기도의 효력을 확신하고 전능하신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였다. “갑자기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할 순 없지만, 어쨌든 하느님께 청하면 무엇이든지 다 받을 수 있다.” 사실 그녀의 이 말이 입증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2명의 수녀들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더 있다가 가라고 하였지만 즉시 떠나려 했을 때 그녀의 기도로 갑자기 비가 와서 그곳에 더 머물렀다고 한다.
그녀는 자주 탈혼을 경험하였고 기적도 많이 따랐다. 또 사순시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그녀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식으로 인하여 측은한 생각마저 들 정도까지 되곤 하였다. “성 금요일은 하루 중에서 가장 짧은 날이다”라고 한 그녀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271년 1월 18일 부다페스트
(Budapest)에서 사망한 성녀 마르가리타는 1789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된 후 1943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회미술에서 그녀는 보통 수녀복을 입은 모습으로 흰 백합과 함께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1월 19일에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성녀 베아트릭스 (Beatrice)
신분 : 과부
활동지역 : 페라라(Ferrara)
활동연도 : +1262년
같은이름 : 베아뜨릭스 베아트리체 베아뜨리체
축일이 5월 10일인 에스테(Este)의 베아트릭스의 조카인 베아트릭스(Beatrix, 또는 베아트리체)는 과부가 된 후 이탈리아 페라라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수도원에 들어가서 베네딕토 회원이 되었다.
그 수도원은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준 그녀의 집안에서 세웠다고 한다.
그녀는 여기서 높은 성덕을 쌓으며 지내다가 그곳에서 운명하고 묻혔는데, 지금도 그녀의 무덤에서 치유의 은사가 일어남으로 순례자가 끊이질 않는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74년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에 의해 승인되었고, 이듬해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기념일이 지정되었다.
성녀 리베라타 (Liberata)
신분 : 동정녀
활동연도 :+580년
성녀 파우스티나 (Faustina)
신분 : 동정녀
활동연도 : +580년
이탈리아 코모(Como)에서 태어난 성녀 파우스티나(Faustina)와 성녀 리베라타는 자매간으로 코모에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 수도원을 함께 설립하였다.
두 성녀는 후에 같은 해에 선종하였고, 그들의 유해는 코모의 주교좌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라퀼라(L'Aquila)
활동연도 : +1543년
같은이름 :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성녀 크리스티나는 유명한 치카렐리(Ciccarelli) 가문의 딸로 1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마티아(Matthi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린 나이로 라퀼라의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한 후에 크리스티나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수도원에서 그녀는 덕행의 모범으로 인정을 받고 살았으며 특히 겸손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덕이 돋보였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기도하였으며, 자주 탈혼 상태에 빠졌고,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능력으로 유명하였다.
또한 그녀는 매우 엄격한 보속 생활을 하였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서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성녀는 1543년 1월 18일에 운명하였는데, 라퀼라의 어린이들이 성녀의 죽음을 온 도시에 전하러 다녔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4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