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삼성전자의 발표에 대한 반올림의 입장
삼성전자는 10월 21일 삼성투모로우에 <조정위원회 출범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반올림을 매도하고 삼성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교섭과 관련된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1. “보상에 대해서는 원칙과 기준을 세운 뒤 협상 참여자뿐 아니라 기준에 해당되는 모든 분들을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강조한 바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 절대로 교섭 참여자만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고 삼성이 거듭 주장하는 점은 참 다행입니다. 그러나 반올림이 무엇을 비판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 반올림은 삼성이 교섭 참여자만 보상하려 한다고 비판한 것이 아니라, 말로만 폭넓게 보상하겠다고 할 뿐 실제로는 교섭에 참여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보상에 너무도 무책임한 점을 비판해왔습니다.
이번 10월 21일 삼성의 입장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준에 해당되는 모든 분들에게 보상하겠다”고 하지만,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한 마디 언급이 없습니다.
◯ 삼성은 제6차 본 교섭(2014. 8. 13)에서 ‘소속회사, 질병종류, 재직기간, 재직 중 담당업무, 퇴직시기, 발병시기’ 등 여섯 가지 내용으로 보상대상자 기준을 만들어 다음 교섭부터 논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반올림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초의 요구안을 수정하여 7차 교섭 이후 매번 교섭장에 들고 갔습니다. 그러나 정작 삼성은 조정위원회로 들어오라는 말만 반복할 뿐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보상 대상자 선정의 6개 기준에 대한 반올림의 의견>
1. 소속: 반도체, LCD 공장에서 근무했던 모든 노동자로, 협력업체 노동자를 포함한다.
2. 질병: 암, 전암성 질환(재생불량성빈혈 등), 희귀난치성 질환. 다만 희귀난치성 질환은 질병명이 많으므로 논의를 통해 목록을 구체화할 수 있다.
3. 재직기간: 수개월 노출만으로도 발병한 사례가 있고, 실제로 단기간 노출로도 발생하는 질환이 있으므로, 이를 포함하도록 설정한다.
4. 담당업무;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한 노동자뿐 아니라 생산현장에서 근무한 노동자들을 포괄한다. 반도체, LCD 공장의 구조적 특성 상 유해물질에 대한 간접노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5. 퇴직시기, 발병시기; 기본적으로 이에 대해 제한을 둘 근거는 없다.
◯ 삼성은 “기준에 해당되는 모든 분들에게 보상하겠다”는 애매한 말만 반복하지 말고, 그 ‘기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제라도 밝히십시오.
2. “반올림은 지난해 12월 자신들이 제시한 요구사항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삼성에게 모든 요구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만을 고집해 왔다”는 주장에 대하여
◯ 반올림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요구사항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요구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만을 고집해왔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3차 교섭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고소고발 취하, 사과의 방식, 재발방지대책 일부 등에 대해서는 양쪽의 의견을 좁혔습니다. 반올림은 삼성의 요청을 받아들여 보상에 대한 요구안을 새로 정리하기도 하였습니다.
교섭장에서 실제로 오간 얘기들이나 공식 회의록에 남긴 내용들마저 왜곡하고 날조해서, 삼성은 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반올림이 고집한 것이 있다면 “세 가지 의제에 대해 충실히 논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삼성이 ‘8명 선보상 논의’를 최우선으로 하자고 고집을 피우며 다른 교섭 의제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약속한 교섭 의제들에 대해 최소한의 성실함은 보이기를 거듭 촉구했더니, 삼성은 이를 “고집”이라 비난하기 바쁩니다.
부디 앞으로는 삼성이 기업의 덩치에 맞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길 당부합니다.
3. “넉 달 동안 진행된 협상은 회사가 어떤 제안을 내놓아도 늘 원점으로 되돌아가 공전을 거듭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 “회사가 어떤 제안을 내놓아도 늘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 왜곡에는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입니다.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된 6월부터 8월까지 삼성이 내놓은 제안이 무엇이었는지요. ‘교섭단 참가자들에 대한 보상 논의부터 하자’와 ‘다른 재발방지대책은 모르겠고, 종합진단 정도는 실시할 수 있겠다’는 말을 되풀이한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을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넉 달 동안 삼성이 두 가지 말만 녹음기처럼 반복하여 교섭이 공전을 거듭했음”.
◯ 삼성은 특히 재발방지대책에 대해 논의 자체를 회피하였습니다
반올림의 재발방지대책 요구안 중 하나는 모든 화학물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요구안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삼성은 공개 가능한 화학물질 정보의 범위는 어디까지며 공개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지 구체적인 의견을 가져와서 대화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삼성은 반올림의 요구가 무리하다며 논의 자체를 회피해 왔습니다.
또한 반올림은 삼성의 경쟁사들이 이미 실행하고 있는 “안전보건관리 정기 외부감사”를 요구했습니다. 만일 외부 감사단의 절반을 반올림이 추천하겠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삼성은 다른 안을 가져와서 논의를 진전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삼성은 반올림의 요구가 무리하다는 말로 일체의 논의를 거부했습니다.
◯ 삼성은 교섭을 실질적으로 풀어갈 의지가 없었습니다.
교섭 혹은 협상은 양쪽의 의견을 좁혀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은 교섭 참여자에 대한 우선보상 논의와 종합진단 두가지 외의 다른 의제에 대해서는 ‘반올림의 요구안이 무리하다’며 논의 자체를 회피하였을 뿐, 의견을 좁혀가기 위한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4. “대화 상대방 간 이견이 있는 경우 제3자의 적절한 조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에서 폭넓게 적용되는 문제 해결의 방식일 뿐 아니라 지난 4월 9일 반올림 스스로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한 내용”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지금은 삼성전자가 아무런 의견을 내놓지 않고 교섭을 해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쪽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면 응당 조율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한쪽에서 아예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조정을 어떻게 받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계속 교섭의 틀을 바꾸면서 피해자들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시간을 끄는, 대단히 무책임한 행태입니다.
5. “가족위 측은 세 가지 의제를 한 자리에서 논의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반올림 측이 끈질기게 별도로 협상할 것을 요구해 대화는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하는 답답한 국면”이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 반올림은 끈질기게 “별도 협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반올림과 했던 약속대로 교섭을 진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여섯 분이 갑자기 독자교섭 입장을 밝혔을 때 삼성은 교섭 상대방이 나뉘어 난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올림도 삼성에게 앞으로 교섭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삼성은 한날 한자리에서 다 함께 대화하자고 하였습니다.
◯ 하지만 정작 교섭장에서 삼성은 반올림 교섭단과 아무런 대화를 진전시키지 않았습니다.
삼성은 일단 가족대책위의 조정위원회 제안에 답을 한 뒤에 반올림과 약속한 세 가지 의제 논의를 하겠다길래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세 가지 의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다섯 번 여섯 번 물어도 침묵만이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반올림도 조정위원회에 참여하라”고 반복해서 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한 자리”입니까
삼성도 가족대책위도, 세 가지 의제를 모두 논의하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정작 각 의제에 대한 입장은 없습니다. 아니, 입장이 있는데 반올림 앞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한 자리에서 모여 얘기하자면서 정작 자신들의 얘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거라면, 반올림의 의견에는 전혀 귀기울이지도 않을 거라면, 대체 왜 반올림에게 한 자리에서 대화하자고 하는 겁니까.
반올림의 입장도 듣고 싶지 않고, 반올림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반올림은 교섭에도 나오고 조정위원회에도 들어와야 한다니. 이런 식의 “묻지마” 조정위원회 종용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이자고 한 겁니까.
6. “반올림이 가족들에게 ‘떠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에 대해서는 이미 별도의 입장글을 통해 사실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족대책위도 아니고 삼성의 입으로 또다시 사실이 호도되는 상황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 제6차 교섭(8/13)을 위한 반올림의 사전준비 회의에서 일부 피해가족들이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까지 논의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일단 삼성이 하자는 대로 해보자”고 한 것은 사실입니다.
황상기 님을 비롯한 몇몇 피해자들과 반올림 활동가들은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했습니다. 그 대신 교섭이 장기화되고 있으니 “긴급 치료비, 생활비 지원”을 삼성에 요구해서 부담이 큰 피해자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보자는 제안도 드렸습니다.
◯ 하지만 일부 피해가족들은 긴급 치료비 지원을 요구하는 것조차 반대하였습니다.
그런 논의조차 오래 걸리지 않겠냐, 더 이상 교섭이 길어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더라도 삼성의 안(교섭단 우선 보상)을 받겠다는 입장을 따로 밝히겠노라 하였습니다.
◯ 그래서 반올림 활동가가 “정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막겠는가. 그러나 따로 가더라도 어떻게 해야 잘 풀어갈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보자”고 했습니다.
며칠 후 삼성의 안을 받고 싶다고 하셨던 분들이 “따로 교섭을 하고 싶진 않다. 함께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리하여 6차 교섭 직전에 다시 한번 모임을 갖고 “일단 6차 교섭에서는 기존의 우리 입장을 다시 한번 주장해보자, 그래도 삼성이 종전 입장을 고수한다면 7차 교섭 전에 내부 토론을 갖고 다시 뜻을 모아보자”고 당부드렸습니다.
그러나 6차 교섭 말미에 결국 일부 피해 가족들이 돌발적으로 삼성의 안을 받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고, 그 이후 6명의 가족대책위가 반올림과 별개의 독자 교섭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 오랫동안 함께 울고 웃고 보듬어가며 싸워온 사람들이 주고받았던 대화들, 공식 회의에서 나눈 얘기 뿐 아니라 사석에서 속내를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꺼낸 얘기들까지 변형되고 왜곡되어 언론을 통해 세상에 돌아다니게 된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급기야 삼성이 마치 자신이 본 일인 양 공식적인 글을 통해 함부로 평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참담합니다.
이 교섭의 본질은 삼성이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해 위로하고 보상을 통해 치료와 생존권을 보장하며 다시는 비극이 발생치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이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러한 교섭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반올림 교섭단은 끝까지 책임있게 이 교섭에 임할 것입니다. 삼성은 반올림 흠집내기에 보이는 정성을 교섭의 성실한 참여에 쏟아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