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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신호입니다. 고통스러운 수행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왕궁에는 하늘의 뜻을 전했다는 신비로운 고승의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원효 의상 해초 징표 표현 그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길을 걸었지만 한 가지 물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가? 20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이 남긴 깨달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까요? 오늘 고요한 지혜수에서는 신라의 다섯 고승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잠시 세상에 근심을 내려놓고 천 년을 이어온 지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스님 그 물을 정말 마셨습니까? 의상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어젯밤 원유가 물을 마셨다던 그릇을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벽빛 아래 드러난 것은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의상은 차마 다음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원유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놓인 것을 확인한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지난밤 두 승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 원유에게는 평생을 걸고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다 건너 당나라로 가서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서기 617년 신라 암양군의 불지촌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부대에 전하는 이야기에는 그의 어머니가 밤나무 아래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살았으라 불렀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서당 오픈 날 신라 불교에 큰 스승이 되는 원유였습니다. 그가 태어난 시대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고 백성들의 삶에도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원유가 어린 시절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성장하여 불교의 뜻을 두고 출가했고 경전을 연구하며 진리를 구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 원유에게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인데도 경전에 따라 설명이 달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깨달음의 참뜻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원효는 배움을 거듭했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당시 당나라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승려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새로운 경전이 번역되고 이름난 고승들이 불교의 깊은 이치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원효는 그곳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뜻을 함께한 승려가 있었습니다. 자신보다 8살 아래였던 의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당나라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법을 배우려는 열망은 쉽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650년경 원유와 의상은 첫 번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은 고구려를 거쳐 당나라로 향하는 육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와 신라는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신라 승려 두 사람이 국경을 넘어가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험한 산길을 지나며 낯선 땅으로 들어선 두 사람에게 마침내 위기가 닥쳤습니다. 후대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군이 그들을 붙잡아 첩자로 의심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당나라로 불법을 배우러 가는 승려였지만 적국의 군사들이 그 말을 고지곧대로 믿을 리 없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꿈꾸었던 유학길이 한순간에 막혀 버렸습니다. 결국 원유와 의상은 당나라 땅을 밟지 못하고 신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원효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경절을 펼쳤고 의상과 함께 다음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첫 번째 실패가 오히려 당나라에서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번에는 육로가 아니었습니다.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향하기로 한 것입니다. 661년경 원효와 의상은 두 번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바닷길 역시 위험했습니다. 당시의 배는 거센 풍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고 바다 한가운데서 사고라도 나면 살아 돌아올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다시 출발했습니다. 첫 번째 유학길에서 실패한 뒤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습니다. 원유에게 당나라는 아직 가보지 못한 배움의 세계였습니다. 그곳에서 이름난 스승을 만나고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의문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유학길에서도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비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거세졌습니다. 천둥이 울리고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두 사람은 서둘러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낯선 길 위에서 날까지 어두워지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비바람을 피할 만한 곳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치륵 같은 어둠 속에서는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습니다. 젖은 옷을 추스른 두 사람은 잠시 몸을 쉬었습니다. 밖에서는 여전히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빗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잠들어 있던 원효가 갑자기 눈을 떴습니다. 목이 몹시 말랐습니다. 하루 종일 길을 걷고 비바람까지 맞은 탓인지 입안이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물 한 모금만 마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원유는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밖으로 나가자니 비바람이 여전히 거셌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아침까지 기다리기에는 갈증이 너무 심했습니다. 그는 혹시 물이 있을까 싶어 주변을 더듬었습니다. 그때 손끝에 차갑고 단단한 물체가 닿았습니다. 안쪽을 만져보니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원유는 반가운 마음에 그것을 들어 올렸습니다. 무엇으로 만든 그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둠 속에서 그런 것까지 살필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을 마셨습니다. 차가운 물이 콧구멍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그 순간 타들어가던 갈증이 가라앉았습니다. 원효는 남아 있던 물까지 마셨습니다. 이보다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마름에서 벗어난 그는 물이 담겨 있던 물체를 내려놓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발견한 물 한 모금 덕분에 그날 밤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효는 알지 못했습니다. 조금 전 자신이 입에 댔던 물체가 무엇인지 그 안에 고여 있던 물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말입니다. 긴 밤이 지나고 마침내 날이 밝았습니다. 거세게 내리던 비도 그쳤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원효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지난밤의 갈증은 사라졌고 다시 길을 떠날 기운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먼저 주변을 살피던 의상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밤새 머물렀던 곳에 새벽빛이 들어오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닥에는 오래된 흙먼지가 쌓여 있었고 한쪽에는 사람의 뼈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제야 자신들이 밤새 머물렀던 곳이 오래된 무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 의상의 눈에 이상한 물체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원유가 잠들었던 자리 바로 옆이었습니다. 의상은 그 물체를 바라보다가 원유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어젯밤에 물을 마셨다고 하셨지요? 그렇네. 마침 물이 담긴 그릇이 있기에 마셨지. 그 말을 들은 의상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원효는 의아한 표정으로 의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의상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습니다. 스님 그물은 원유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의 해골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움푹 펜 해골 안쪽에는 아직도 탁한 물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지난밤 자신이 두 손으로 받쳐들고 마셨던 바로 그 물이었습니다. 원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토록 달콤하고 시원했던 물이 사람의 해골에 고여 있던 물이었다는 그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속에서 무엇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원유의 머릿속에 이상한 의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어젯밤에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했던 물이 어찌하여. 지금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물이 되었단 말인가. 원효는 해고를 바라보며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깨달음이 바로 그 끔찍한 해골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 괜찮으십니까? 의상은 원유의 등을 붙잡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원유가 해고를 발견하자마자 몸을 웅크리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목이 타들어갈 때 마셨던 그 시원한 물 원효는 그 맛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해골의 고인 물이었다니 생각할수록 속이 뒤집혔습니다. 원효는 해골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젯밤에도 저 해골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물 역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마셨을 때는 그렇게 달콤하던 물이 날이 밝아. 그 정체를 알고 나니 입에 담기도 끔찍한 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이 달라진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원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해고를 바라보았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경전을 읽고 스승을 찾아다니면서도 풀지 못했던 의문이 바로 이 무덤 속에서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 자신을 괴롭혔던 것은 갈증이었습니다. 물을 발견하자 기쁨이 일어났고 물을 마시자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해고를 보는 순간 같은 물에 대한 기억이 고통으로 바뀌었습니다. 원유는 자신이 경험한 기쁨과 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되짚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을 가로막고 있던 무언가가 한순간에 거치는 듯했습니다. 하하 갑작스러운 웃음소리에 의상이 깜짝 놀랐습니다. 스님 어찌 웃으십니까? 원효는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해골의 고인물을 마셨다는 사실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두려움은 더 이상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르침의 뜻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체USIM조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는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까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마음이 일으키는 분별과 집착에 따라 우리가 경험하는 괴로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원유는 그 사실을 경전의 글귀로만 이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골의 고인물을 직접 마시고 기쁨이 혐으로 바뀌는 순간을 몸소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때 의상이 다시 길을 떠날 채비를 시작했습니다. 비가 그쳤으니 서둘러 항구로 향해야 했습니다. 어렵게 얻은 두 번째 유학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효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안 무덤 입구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돌아가겠네. 의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스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는 말일세.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상은 당황했습니다. 두 사람이 이 길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렸습니까? 첫 번째 유학길에서 고구려군에게 붙잡혀 돌아온 뒤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위험한 바닷길까지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신라로 돌아가겠다니요. 의상은 원유의 결심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원유의 마음은 이미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는 당나라의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더 많은 경전을 배우면 자신이 품었던 의문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진리의 실마리는 뜻밖에도 이름 없는 무덤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당나라로 가야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자신이 만들어낸 집착일 수 있었습니다. 원연은 이제 그 깨달음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의상은 예정대로 당나라로 향했습니다. 오픈하이크는 당나라에서 지험 대사에게 화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신라로 돌아와 화엄불교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반면 원혈은 신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날 무덤 앞에서 헤어진 두 승녀는 훗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신라 불교의 깊은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그러나 신라로 돌아가는 원유 화폐는 아직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효는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다고 해서 경전 공부까지 그만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해골물 사건은 그가 불교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던 경전의 말씀들도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경전에서는 모든 것이 공하다고 가르쳤고 또 다른 경전에서는 모든 중생에게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효는 어느 한쪽만 옳다고 주장하기 보다 각각의 가르침이 어떤 뜻을 밝히고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평생 탐구하게 되는 eSIM과 화쟁의 사상도 이러한 깊은 연구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유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아무리 깊고 훌륭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일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시 신라에서는 신분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크게 달랐습니다. 귀족들은 학문을 배우고 불교의 가르침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평범한 백성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어려운 경전을 펼쳐놓고 그 뜻을 설명한들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장터에서 물건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효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들에게도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그를 모르는 백성들도 불법을 가까이 할 수 있을까요? 그 고민은 훗날 원유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장터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될 줄은 이때만 해도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원유가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기 전 신라의 왕궁을 발칵 뒤집어 놓을 기이한 사건이 먼저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원유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자료 없는 도끼라니 손잡이가 없는 도끼로 어떻게 나무를 깎는단 말입니까? 더구나 하늘을 떠받칠 기둥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뜻을 알 수 없는 노래였습니다. 사람들은 원효가 어째서 그런 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가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왔다는 소식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이번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까지 부르고 다니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효의 노래는 몰부가라 불리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기이한 노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자꾸 듣다 보니 그 안에 무슨 뜻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졌습니다. 그 소문은 마을을 지나 장터로 퍼졌고 마침내 신라의 왕궁에까지 전해졌습니다. 태종무열왕은 신하들이 전하는 원효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잘 없는 도끼를 달라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겠다. 왕은 그 말을 곱씹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뜻을 알 수 없었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노래를 듣고 뜻밖의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원유가 말한 자로 없는 도끼는 평범한 도끼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떠받칠 기둥 역시 나무로 만든 기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했습니다. 왕은 원유가 귀한 여인과 인연을 맺어 나라를 떠받칠 만한 인재를 낳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인 요석 공주를 떠올렸습니다. 요삭 공주는 남편을 잃고 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왕은 원유와 공주 사이에 인연을 맺어 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뜻이 원효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원효는 이미 평생의 꿈이었던 당나라 유학마저 스스로 포기한 인물이었습니다. 왕은 신하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장 원유를 찾아 요석궁으로 모셔오너라. 왕의 명령을 받은 관리들은 서둘러 원효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원유가 문청교를 지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관리들이 급히 그곳으로 향했을 때 원효는 다리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유에게 다가가 왕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원유가 갑자기 다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풍경 관리들은 깜짝 놀라 달려갔습니다. 물 밖으로 나온 원효는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손님을 그 모습 그대로 요석궁에 모시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원유를 요석궁으로 데려가 젖은 옷을 갈아입게 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전하는 기록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원유가 실수로 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일부러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효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받고도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요석궁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요석 공주와는 어떤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일까요? 원효의 삶은 이제 또 한 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 일부러 물에 빠지셨다고 왕의 명령을 받고 원유를 찾아갔던 관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다리를 건너던 원효가 갑자기 물속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관리들은 원효를 물 밖으로 모셨지만 온몸이 흠뻑 젖은 그를 그대로 왕궁에 데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원효는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요석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태종 무열왕의 딸 요석 공주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후대에 전하는 삼국유사에는 원효가 일부러 물에 빠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원유와 요석 공주가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요석 공주는 남편을 잃고 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왕은 원유가 부르던 기이한 노래를 듣고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 주고자 했습니다. 원유가 불렀던 자료 없는 도끼의 노래. 다른 사람들은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왕은 귀한 여인을 만나 훌륭한 아들을 얻고자 하는 뜻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요석궁에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요석 공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바로 훗날 신라의 이름난 학자가 되는 설총이었습니다. 설총은 성장하여 학문과 문장에 뛰어난 인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후대에는 환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이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도 기억되었습니다. 왕이 원효의 노래에서 나라를 떠받칠 만한 인재의 탄생을 읽어냈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설총의 출쟁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원유의 인생은 여기서 또 한 번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는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은 뒤 이전과 같은 승려의 신분으로만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소선거 사라 부르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름난 고승이었던 원효가 승려의 신분을 내려놓았다는 소식은 당시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당나라 유학을 포기한 일도 뜻밖이었지만. 왕의 딸과 인연을 맺고 거사가 된 일은 더욱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원효는 자신의 삶을 그곳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고 해서 화려한 궁궐에서 명예를 누리며 살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발걸음은 신라의 평범한 백성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원효는 그동안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연구하면서 한 가지 고민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면 수많은 백성은 어떻게 불법과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요? 당시 신라의 백성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농부들은 날이 밝기도 전에 논밭으로 나갔고 장터의 상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 종일 물건을 팔았습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어려운 경전의 뜻을 설명한다고 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효는 불교의 가르침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할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거리에서 관계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광대들이 등장하자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른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의 재주를 구경했습니다.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웃었습니다. 원효는 그 모습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어려운 경전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노래와 춤에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도 노래로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원효는 광대들이 사용하던 도구를 본떠 새로운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을 무예라고 했습니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원유는 그 도구를 들고 저잣거리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이름난 고승 원효가 광대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분이 정말 원유 스님이란 말이요. 아니 그 유명한 스님께서 어찌 저런 모습을 하고 계신단 말이요? 사람들은 수근거렸습니다. 그러나 원유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예를 들고 노래하며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이들이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장터에서 물건을 팔던 상인들도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광경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원유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원유가 부르는 노래는 어려운 경전을 읽을 줄 몰라도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과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이러한 무행을 통해 많은 사람이 부처님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원효는 백성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직접 백성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높은 법당에서만 불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터와 마을에서도 불법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노래하고 춤추며 지냈다고 해서 학문을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효는 평생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탐구한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경전의 가르침을 연구하면서 하나의 커다란 문제와 마주했습니다.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인데도 어찌하여 서로 다른 주장들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어떤 가르침은 모든 존재가 공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가르침은 모든 중생에게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따르는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때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놓고 논쟁하기도 했습니다. 원효는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가르침이 어떤 관점에서 성립하는지 살피고 서로 다른 주장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그가 탐구했던 사상이 바로 화쟁이었습니다. 화쟁은 서로 다투지 말고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자는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의 의미와 한계를 깊이 살피고 그 차이를 넘어 더 넓은 진리를 이해하려는 치열한 학문적 탐구였습니다. 원효는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수많은 저수를 남겼습니다. 배승기 신론소와 금강산맥 경로를 비롯한 그의 저술은 훗날 신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불교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원유의 삶에는 한 가지 특별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깊은 학문을 연구하면서도 평범한 백성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경전 속에서 진리를 탐구했고 거리에서는 노래와 춤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학문과 실천을 서로 다른 길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깨달은 발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은 누구에게나 흘러갑니다. 젊은 시절 당나라로 향하던 원유에게도 어느덧 노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평생 수많은 경전을 연구하고 백성들에게 불법을 전하며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서기 686년 이른 해의 생애를 마치고 입적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원효의 가르침을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원유가 떠난 뒤 아들 살총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설총은 아버지 원유의 유예로 소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모셨습니다. 어느 날 설총이 아버지의 소상 앞에서 예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원유의 소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는 것입니다. 설총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어찌하여 이 신비로운 이야기를 천 년이 넘도록 전해왔던 것일까요? 아버지 불초한 아들이 이제야 찾아뵙습니다. 설총은 아버지 원효의 소상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살아 계실 때는 차마 다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슴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는 대답할 수 없는 분이 되었습니다. 설총이 깊이 머리를 숙여 저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분명 움직일 리 없는 원유의 소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는 것입니다. 설총은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이 자신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신비로운 이야기는 후대에 전해지는 원효대사의 설화입니다. 실제로 소상이 움직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전해온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원유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버지를 향한 설총의 그리움과 원유가 남긴 가르침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유는 생전에 참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에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왕실에서는 이름난 학생으로 알려졌고 불교를 공부하는 승려들에게는 깊은 경전 연구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백성들에게 원효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던 사람 아이들과 어울려 춤을 추던 사람 어려운 경전을 알지 못해도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어찌하여 그토록 깊은 학문을 닦은 승려가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길을 선택했던 것일까요? 그 답을 찾으려면 원효가 평생 붙들었던 두 가지 일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 나는 서로 다른 불교의 가르침을 깊이 연구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가르침을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원효는 어느 한쪽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신라에는 여러 불교 경전과 학설이 전해져 있었습니다. 승려들은 자신이 배운 가르침을 바탕으로 불교의 진리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경전마다 사용하는 말과 설명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어떤 가르침에서는 모든 것이 공하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가르침에서는 중생에게 깨달음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 다른 설명을 접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효는 그 차이를 무조건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가르침이 무엇을 밝히고 있는지 왜 서로 다르게 설명하는지 깊이 살폈습니다. 한쪽의 말만 붙들고 다른 쪽을 틀렸다고 하기 전에 그 말이 나오게 된 까닭부터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가르침의 뜻을 밝혀 조화를 이루려는 사상이 바로 화쟁이었습니다. 원유에게 화재는 단순히 다투지 말자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에 담긴 뜻을 깊이 살피는 학문적 노력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탐구를 바탕으로 수많은 불교 저수를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대승기 신론소는 마음과 깨달음에 관한 깊은 가르침을 해설한 대표적인 저술입니다. 금강산맥 경론 역시 원유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으로 전해집니다. 서로 다른 불교 학설을 화해시키려 했던 그의 사상은 신문화쟁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유의 저술은 신라를 넘어 다른 나라의 불교 학자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젊은 시절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당나라의 끝내 유학하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학문은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유의 위대함을 학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어려운 경전의 뜻을 연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가르침을 어떻게 사람들의 삶 속에 전할 것인지도
고민했습니다. 그가 무예라는 도구를 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