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빌딩 숲 한가운데 낭만 가득한 숲 속 산책로
양재동으로 향하는 길은 '시골 냄새'를 맡으러 가는 가장 짧은 여행길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양재동'과 '시골'이라는 단어는 거의 반대말에 가까운 단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한가로이 거닐며 수다 떨기 좋은 도심 속 자연 체험장, 양재동 시민의 숲.
도심에선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빽빽하게 우거진 서초문화예술회관 산책로, 왜가리를 비롯해 250여종의 동식물이 한가로이 어울려 살아가는 생태하천 양재천, 철마다 다른 느낌으로 옷을 갈아입는 자연친화적인 도심 공원 양재동 시민의 숲. 이 모든 곳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긴 여행 코스다. 뉴욕 센트럴파크가 부럽지 않은 도심 속 '생명의 허파' 같은 곳이다.
양재동 자연 테마 여행의 시작점은 시민의 숲. 어차피 드넓은 대지를 걷기로 작정했다면 굳이 버스에 몸을 싣지 말고 지하철 3호선 양재역 7번 출구로 나와 열심히 걸어보자. 15분쯤 걷다 보면 약 25만평 규모의 드넓은 숲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기자기하게 가꿔놓은 흔적은 별로 없지만 한가롭게 거닐며 수다를 떨기 좋은 도심 속 자연 체험장이다. 바비큐를 구워 먹는 가족, 배드민턴이나 배구를 즐기는 사람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소가 넘쳐흐른다. 그들은 숲의 정기를 쏙쏙 들이마시며 한 주의 피로를 풀고 있다.
- ▲ 도심 한가운데 번듯한 서초문화예술공원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는 뜻밖의 선물 같아 기쁨이 배가 된다.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kmin@chosun.com
시민의 숲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가면 약간은 어수선했던 시민의 숲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고즈넉한 공원 풍경이 펼쳐진다. 양재동 시민의 숲에 부록처럼 딸려 있는 서초문화예술공원이다.
이곳이 널리 알려진 이유는 메타세쿼이아 산책로가 100m쯤 낭만적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 짐작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으면 기쁨이 두 배가 되는 것처럼, 뜻밖의 풍경을 만나면 심장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칠게 뛰기 마련. 서초문화예술공원의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는 이런 의외성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매혹적인 산책로다.
양재동에는 이런 산책로가 하나 더 숨어 있다. 양재천 산책로 옆에 나란히 늘어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 이곳은 한술 더 떠 길이가 약 3.5㎞나 된다. 번화한 강남대로에서 살짝 비켜나 있을 뿐인데, 도로에는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울창한 나무가 주인이고, 사람들은 오히려 거대한 나무 아래 숨을 죽이며 걷고 있다. 메타세쿼이아는 하늘 끝까지 길쭉하게 솟아 있는 큰 키와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몸집을 가졌지만 결코 위압적으로 사람을 누르지 않는다. 넓은 품 안에 포근히 사람을 감싸 안는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색다른 거리가 있다. 낮에는 차, 밤에는 와인을 파는 카페들이 즐비한 양재동 '연인의 거리'다. 연인의 거리 터줏대감격인 크로스비(02-576-7754)와 씨엘(02-578-0771), 밤나무 카페로 유명한 하늘소(02-578-1417) 등 10개의 와인 바가 약 700m 거리에 오밀조밀 모여 있다. 저녁이 되면 따뜻한 주황색 불빛들이 양재천과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 사람들을 조용히 불러 모은다.
시골 하천보다 더 시골 냄새 물씬한 양재천과 낭만적인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를 거닐다가 분위기 좋은 와인 바에서 목을 축이면, 식었던 애정도 100만 볼트의 스파크를 내며 번쩍 솟아오를 것 같다. 테라스를 널찍하게 열어놓고 손님을 맞는 여름밤의 노천카페도 운치 있지만, '겨울연가'의 한 장면 같은 메타세쿼이아 길을 거닐고 난 후 마시는 와인 한 잔도 충분히 따뜻하고 운치 있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하차. 7번 출구로 나와 우성아파트 방면으로 15분 남짓 걸어가면 양재동 시민의 숲이 나온다. 서초문화예술회관은 시민의 숲과 도로 하나를 두고 이어져 있다. 양재천은 경기도 과천부터 서울 서초, 강남구까지 18.5㎞ 남짓 이어지는 긴 산책로. 서초문화예술회관에서 걸어갈 수 있으며,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대치역, 도곡역, 매봉역, 양재역, 지하철 분당선 대청역, 대모산입구역, 개포동역, 구룡역 등에서 내려 표지판을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자동차 운전자는 경부고속도로 양재IC에서 나와 영동1교 방면으로 나오면 양재천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양재천 주변 공영주차장 요금은 10분당 300원. 연인의 거리는 양재천 옆길, 영동 1교와 2교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