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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이사야-02 하나님의 심판(이사야 3장 1-7절)
오늘 성경말씀은 이사야 3장 1절부터 7절까지입니다
[이사야 3장]
1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3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4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6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7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 말라 하리라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께로부터 중차대한 사명을 띠고 선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교와 기도와 중재, 이스라엘 나라의 제사장 나라된 사명을 잘 감당하므로써 세상 모든 나라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어야 하는데, 세상 나라들이 돌아오기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도 하나님을 등지고 악한 일을 일삼고 해서,
이사야 시대쯤 오면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왔어요.
여러분 우리가 어느 한 시대 한 세대라고 하는 상황을 두고 볼 때 어느 한 단계를 넘어서면 돌이키기가 어려운 때가 있단 말이죠.
어디까지 어느 정도면 돌이킬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가서는 반반이고 하다가, 어느 한 고개를 넘어서면 돌이킬 수 없다 하는 건데요,
이사야 시대에 왔을 때는 거의 돌이킬 수 없는 때까지 온 거예요.
그래도 역사는 연장이 됩니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이야기는 아마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잘라버리는 므낫세에 의해서 완전히 결정이 나죠.
그렇지만 그 이전에 벌써 이사야 선지자 소명 받는 것을 6장에서 볼텐데, 소명 받을 때 보면, ‘너는 가서 이 백성으로 마음으로 둔하게 하고 귀가 멀게 하고 눈을 감기게 해서 은혜와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해라.’
이런 사명을 받고 파송되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문은 이미 닫혔는데, 언제까지냐고 이사야가 나중에 묻습니다.
물으니까 사람들이 다 사로잡혀 가버리고 온 땅이 황무하게 될 때까지 그렇게 된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그 때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사야 3장]
1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을,
없애버리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시장이나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가보면 참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되는가?
여러분은 그런 생각 안 들어요? 꼭 저게 다 있어야 되는가?
특히 여성들것이 많죠?
여자나 남자나 똑같은데, 뭘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남자들 것 보다 여성들 것이 배나 더 많은 것 같애요. 배가 아니라 세배나 네배가 될거예요. 다 필요한 아닐 거야.
우리 성도들은 그런 것 다 안 쓰겠죠?
그렇게 복잡한 것 같애도 정작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양식과 물이예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겁니다. 물과 양식.
물과 양식이 떨어져버리면 끝나버립니다.
우리가 현대 첨단 과학이 어쩌고 IT BT 어쩌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물과 양식을 끊어버리면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을 없애버리겠다 하는 건데, 거기다가 여러분 레위기 각주를 하나 달기를 레위기 26장 26절 써놓고 찾아가 봅시다.
이것이 그냥 어느 날 하나님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한게 아니고, 다 예전에 이미 율법을 제정할 당시에 이미 그 말씀하셨던 건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거죠.
레위기 26장 26절을 한번 펴보시면,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니까 의뢰하는 양식을 하나님께서 끊어버릴 때, 다시 말하면 언약을 배반하여 지키지 않을 때를 말하는 건요,
레위기 26장 14절에 보면 그렇죠?
14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15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하게 될 때 그런 징벌이 내려오는데, 그것은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버려서 10명의 여자가 한 빵틀 주변에 둘러앉아 빵을 저울에 달아 먹는데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얘기죠.
하나님의 징벌 중에 하나는 양식이 끊어지게 한다는 것이고 물이 떨어지게 한다는 건데, 이것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북왕국에도 볼 때 엘리야때는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아서 물도 떨어지고 양식도 떨어지고 그렇게 된 적이 있었죠?
그래도 회개하지 아니하자 엘리사 때는 7년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그렇게 해도 그들은 역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모스서에 우리가 본 대로 어금니가 아무 할일이 없을 정도로 이를 한가하게 하고 혀가 말라서 아이들 입천장에 말라 붙어도 돌아오지 않았고, 자기 자녀를 삶아서 식물을 삼으면서도 돌아오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어느 한 도를 넘어서거나 한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거에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강제로 변화시키지 않고 말을 해서 말이 안 통하면 하나님도 손 뗍니다. 말이 안 통하면..
그러다보니까 예언자를 보내고 보내다가 안되니까 어느 한 단계를 넘어서면 하나님도 여기까지 가다가 여기까지다 하고 손을 떼버리면 그러면 때리고 양식을 줄여본다든지 흉년을 보내는 이런 것은 하나님이 아직도 사랑의 애정이 남아있는 것이고, 그 뒤에 어느 선을 넘어서면 내버려놔두는 거야.
말 상대도 안되고 말할 가치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이쯤되면 아예 갋지도 않는 거예요.
그래서 버려두신다하는 말이 여러군데 나옵니다. 버렸다는 거예요. 그 시대를 버렸다.
“너희가 내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너희를 버려서 나의 제사장 되지 못하게 하겠다.”
호세아서에서 봤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리에 대한 지식을 관심없어하고 놔 버리게 되면 하나님도 너희 자식까지 내가 잊어버리겠다.
다시 이사야서 3장에 와서 보면,
..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을,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용사와 전사’는 양식이 있을 때 우리가 농사를 정상으로 지어서 양식을 추수해서 잘 보관하면 용사와 전사가 있어서 외적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그런 안전장치가 되는 거죠. 용사와 전사가..
그것도 없애버리고 재판관을 없애버리겠다.
재판관은 사람이 살아가다가 시비가 벌어지는데, 그 시비를 가려줄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잡아갈 것이고, 선지자도 없애버리겠다.
하나님이 그래도 아직도 애정이 남아있을 때, 예언자를 보내고 무슨 말씀을 하고 와서 책망을 하고 하는데, 예언자까지 거두어 가신다 그러면 끝장나는 거죠.
..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3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전부 다 없어지게 하겠다는 거죠.
백성의 지도자층이라든지 내지는 기술자 전사 용사 할것없이 쓸만한 사람을 다 없애버리겠다는 거요. 일반사회에서 쓸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그 결과,
4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적자’라는 것은 발가벗은 놈들, 엉덩이 내놓고 다니는 애들 이런 아이들이
..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옛날에 공산주의 혁명이 났을 때, 머슴살이 하던 사람 이런 사람들이 공산당 앞잡이들의 선동에 휘말려가지고 주인들 묶어다가 고발하고 때리고 했어요. 머슴이 주인을..
그런 일이 우리 역사에 실제로 얼마든지 있었잖아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애들이 주인을 끌고 다니고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4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이것은 어찌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교만을 떨었거든..
너희들도 너희 하인들이나 노예들이 주인에게 덤벼드는 것을 한번 당해봐.
그러면 너희도 하나님 속을 좀 알겠지..
그래서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6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네가 면장을 해라 도시자를 해라 시켜 본다는 거예요.
7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 말라 하리라
뭘 시켜줘도 아무 것도 안 할려고 해요.
요즈음 살만하니까 전부 군수하겠다 도지사 하겠다 난리가 나지만, 완전히 어려워지면 아무 것도 안 할려는 거죠. 그런 때가 온다는 거에요.
쓸만한 사람은 다 잡아가버리고 옷 한벌있다고 해서 동장하라 면장하라고 이렇게 나올 때 아무도 하지 않을려고 하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을 하다가 결국은 이런 일을 당한 거죠.
9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소돔 사람들은 죄를 뻔뻔스럽게 자랑을 하고 죄를 많이 지은 것을 훈장처럼 떠들고 다니는데, 그런걸 ‘파렴치한(破廉恥漢)’ 이라고 하는데 파렴치한.. 부끄러운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수치를 자랑으로 여기는 그런 파렴치한 이예요.
헬라어로 파렴치한들을 ‘아셀게이아’라고 해요. 아셀게이아.
‘아’ 하는 것은 부정접두어인데, ‘셀게이아’. 염치도 없어서 아주 파렴치한..
그렇게 부끄러움을 모른 다 거죠.
.. 소돔과 같으니 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그래서,
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그래서 그렇게 할 때, 그런 심판이 있기 바로 전에 한번쯤은 하나님께서 따질것은 따진다는 건데요,
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그러니까 이 당시에 정치인들의 악이란 것은 항상 어려운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그러면 정치인이 아무 자격이 없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을, 부자나 힘있는 사람들의 세금을 거두어서 가난한 사람들 채워주라고 정치인을 세운건데, 그 정치인들이 왕들이 방백들 이런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
16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여자들에게 하는 말인데, 가난한 여자들이 아니고,
.. 교만하여 늘인 목,
‘늘인 목’이라는 말을 제가 무슨 말인가 이해가 안되어서 원어를 다 찾아봤는데 ‘목을 쭉 뺀것’을 늘인목 이랍니다. 목을 뺍니까?
늘인 목, 그리고,
..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17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18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19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20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21 지환과 코 고리와
22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23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참 많죠?
24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25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26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그래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거덜나버리게 될 때에, 어떠한 슬픔이 올 것인가? 그런 것도 모르고 예루살렘의 귀부인들이 사치하고 이렇게 자기 치장을 하고 그러면서도 가난한 자들의 얼굴에 맷돌질 하는 그런 시대를 하나님이 심판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그 뒤에 4장으로 나누어진 장 나눔이 조금 어쭙잖게 되었어요.
제가 가끔 드리는 말씀인데, 4장 1절까지가 위로 3장 끝으로 붙어야 됩니다.
4장 2절부터는 딴 이야기이니까 4장 2절부터가 4장 1절이 되었으면 딱 맞는건데,
장 나누는 것을 인쇄공이 인쇄조판하기 좋게 나누다보니까 이렇게 나누어진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슬퍼하게 될 때, 4장 1절에,
[이사야 4장]
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전쟁에 나가서 남자란 남자는 다 죽어버렸고, 그저 한 남자 있으면 일곱 여자가 달려들어서 그저 과부라는 소리만 듣지 않게 해 달라.
우리가 양식을 가져갈 것이고 옷도 다 가져갈테니까 먹여 살리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한다는 것은 남자란 남자는 다 전쟁에 가서 몰살하고 어쩌다가 남자가 있으면 일곱여자가 달려든다. 그런 얘기예요.
그 위에 여자들이 사치하고 남자들이 교만하다가 남자들은 다 아까 봤잖아요.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 선지자 복술자 장로 오십부장 귀인 모사 공교한 장인 능란한 요술자 전부 다 죽어버리고 포로잡혀 가버리고 아이들이 어른들 학대하고 여자들은 그냥 전부다 홀로 되어가지고 한 남자 바지가랑이를 일곱여자가 매달리는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런 식으로 온다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조금 있다가 이루어지는 거죠.
그리고 4장 2절부터는 전혀 다른 날인데, 어떤 또 한 날이 있어요.
여기에 제가 이사야서 읽을 때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그 날에’ 라는 말을 하면 우리 어법에서는 ‘그 날에’ 하면 앞에 말 하던 어떤 그날이죠.
앞에 무슨 말 해오던 그 날인데, 히브리어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어는 ‘그 날’이라는 것은 ‘하 욤’인데, ‘하’라는 정관사와 ‘욤’은 ‘날’, ‘하 욤’ 하면 ‘어떤 그 날’ 하면 하나님의 특정한 또 한 날이야.
앞에 말한 그 연장선상에서 그것을 받아서 그 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예언서에서는 굉장히 조심해야 돼요.
만약에 앞에 말하던 그 날로 해가지고 읽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여기 보세요. 무슨 얘기냐?
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벌써 말이 안되죠? 앞에 날을 받아서 말을 하면 말이 안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또 어떤 그 날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역사를 온통 모든 역사를 전부다 주관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가끔 역사 신학이라든지 성서신학을 정밀히 안하는 분은, ‘모든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렇게 많이 하죠?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홀로 주관하면 하나님이 전부다 책임져야 돼.
인간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고..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보면 모든 역사를 홀로 주관하는게 아니라 대부분의 역사는 인간이 주관해요. 악한 인간들이 주관하고,
어떤 한 날이 있어요. 그 날. ‘크로노스’라는 쭉 흘러가는 일반시간 속에 하나님의 날이 마치 시간속에 영원이 침투해 들어오듯이, 그런 순간적으로 임하는 그런 날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날도 어떤 또 ‘어떤 그 날’ 이렇게 되어있는 건데, 이걸 잘못보면 큰 실수하게 되고, 예언서를 잘못 해석하면 큰 우를 범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지금 그 날은 또 다른 한 그 날이예요.
그 날에는 여호와의 싹이, ‘째마흐’라는 어호와의 싹이 아름답게 솟아날 것이고,
..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갑자기 분위기가 바껴져 있죠?
그리고,
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그러니까 여기 지금 이스라엘 역사에 여러 이런 저런 재앙이나 환란이나 어려운 날들이 계속 지나가고 지나가고 하는데, 그리하다보니까 그 많은 사람들, 출애굽할 당시 200만 되었던 사람들인데, 인구가 별로 안 불어났어요.
왜 그러냐하면 항상 하나님의 심판이 자꾸 지나가니까.. 수시로..
그때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데, 그런 떨어질 때는 떨어질자들이 떨어지는 거야.
물론 그런 악한 시대에 의로운 사람이 외치다가 순교하듯이 한 분도 있지만, 대체로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줄줄이 떨어지는데 떨어질사람만 떨어지는 거야.
그리고 얼마가 남아요.
남아가지고 또 남은 그들이 범죄하면 또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지나가면 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얼마가 남습니다.
그러니까 그 역사가 그렇게 긴데도 불구하고 인구가 별로 불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계속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지나가는 거예요. 수시로..
그때마다 줄줄이 낙엽처럼 떨어지는데, 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리고 나서 또 맨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있어요.
혹은 ‘끝까지 견디는 자’ ‘남은 자’ 이런 말로 일컬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 남은 자는 많지 않습니다.
소수가 남은 자가 되어가지고 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에서 또 녹명된 자, 생명책에 그는 이름들이 있는 자, 이런 사람들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을 것이다. 성도라. 성도. 거룩한 사람들..
아마도 이런 말들은 성경학자들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거룩한자 이런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렇게들 합니다.
어려운 말이죠?
4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죄악이 영속되며..’ 라는 다니엘서에도 있고 여러 번 그런 말이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율법이 나오고 구원이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어지는 일들인데, 그 때에 많지 않지만 어떻든 그런 심판의 바람이 여러 차례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했는데도 남아있다가 남은 자 중에 녹명된 자 얼마가 ‘거룩한 자’라 하는 칭함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4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5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출애굽할 때 그랬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늘 함께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은혜의 그늘로 덮어주시는 그런 은혜가 거기 임한다 그런 이야기인데,
6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그래서 이런 것 보면 역사를 하나님이 전체적으로 주관하시지만, 순간순간 인간들이 악을 행하다가는 심판의 바람이 불고 또 남은 사람이 악을 행하면 심판의 바람이 지나가고,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남은 자 중에 여호와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 소수가 거룩하다는 칭호를 받게 된다.
그러니까 아주 소수로 생각할 수 있어요
예루살렘에서 구원받게 되는 사람은 아주 소수로 구원받게 된다.
에스겔 당시에도 ‘인을 치라’한 사람들 보면 극소수예요.
온 예루살렘이 죄악으로 관영한데, 그런 죄에 가담하지 않고 홀로 고고하게 홀로 정말 정결하게 그 예루살렘에 자행되는 죄악을 슬퍼하면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이마에 인을 쳐라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 가서 만약에 본다면 아마 상상외로 의외로 소수가 있을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지도 몰라요.
무디같은 분은 그 말이 100% 확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무디같은 분이 한 말을 보면 ‘미국에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중에 절반을 천국에서 만나면 기적이다.’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보고 그 뜻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거의 우리 생각을 가지고 살기 쉬워요.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보다는 자기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고 힘써 자기 의를 세울려고 하는..
그게 바리새인들이죠.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그 당시에는 자기들이 제일 잘 믿는 줄 알았어요.
제일 잘 믿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가 너희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안식일 잘 지키고 십일조 땡전하나 안 떼먹고 자기들이 최고로 잘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평가는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면하겠느냐?’
그래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 보면 ‘폐일언하고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노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어요.
그렇다면 교회 다니는 것이 그냥 예수님 하나님을 이용해서 세상에서 잘 될란가, 내 자식이 잘 될란가, 내 사업 잘 될란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 소원을 이룰려고 하는 그런 신앙이라면 사실은 신앙도 아니죠.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같은 사람들이 그런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훗날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 보고 ‘너희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만큼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여러분 오늘날 서구에서 우리가 신학을 가져와서 그것을 배워서 어느 정도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는데, 지금은 한국교회가 성장은 고사하고 제자리걸음 내지는 퇴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은 퇴보가 급속히 진행되어가지고 아예 다른 종교에 예배당 다 팔아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거죠.
그 유럽사람들의 성향을 우리가 볼 때 매우 보수적이어서 좀처럼 잘 바뀌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도하게 밀려오는 물질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가 그냥 다 휩쓸고 지나가니까 그런 큰 대박해 이런 것이 아니고, 그냥 세속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 이런 것이 지나가는데, 그렇게 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버린 거예요.
그래 얼마 남아있겠어요? 지금 유럽에..
우리는 그저 ‘유대교만 그렇지 기독교는 안 그럴 것이다.’고 한동안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뮙니까? 기독교가 더 심하죠.
유대교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지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을 보면 우리보다 열배나 더해요
정통파 히브리인들의 삶을 보면 우리보다 열배나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평점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겉으로 볼 때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라는 것은 우리보다 비교가 안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우리끼리 잘 믿는다고 하는데, 우리가 정통이고 우리가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우리가 잘 믿는 것인가?
어차피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때에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게 될 것인데, 언젠가는..
그래서 성경 전체에 흐르는 진리는 심판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 직고하게 될 것이다. 심판이 있다는 거죠.
믿은 사람들도 그래요.
우리가 대부분 그저 내 마음에 안 들면 잘 안봐서 그런데, 누가복음에 보면 ‘알고도 예비하지 않은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예비하지 않은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종들이 맞기는 다 맞는데, 많이 맞느냐? 적게 맞느냐?
물론 착하고 충성된 종들에게는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종들은 반드시 회계 한다는 겁니다. 회계..
또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는 겁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다.
대부분 이런것은 잘 안보는 거예요. 항상 그저 달콤한 얘기 잘된다 복준다 그런 것만 가지고..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속이면 안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말씀, 그늘진 말씀 이런 것은 우리가 예사로 봐 버리고, 믿어야 할 것을 믿는게 아니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그런 쪽으로 잘못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항상 우리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움직이다가 잠시 잠깐 후에 심판대 앞에 서는 겁니다. 금방..
아무도 피할 수도 없고 거기는 뇌물도 통하지 않는 곳이예요.
또 ‘몰랐다’ 그런 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역사 하나를 우리에게 모델로 쭉 보여 줍니다.
하나의 모델로 쭉 보여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것처럼 하면, 우리가 하면 똑 같이..
사도바울이 한 말을 보면 ‘똑 같이’가 아니고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수 있어요.
무슨 얘기냐?
하나님께서 열매,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니까 참 감람나무도 잘라버리는데, 돌 감람나무인 너희 이방인들은 얼마나 더 잘라버리겠느냐? 그런 말씀도 있는 거예요.
그것도 안봐요. 다..
그래서 우리가 자긍할 것이 아니라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옛날에 우리가 구원파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구원의 확신이 있다 없다 그것으로 가늠할려고.. 그런 적이 많이 있었어요.
옛날 부흥회는 맨날 그런 거죠.
부흥회 앞부분에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없는가 계속 그런 것으로 했는데..
여러분 구원의 확신 같은 것은 구원파나 이단도 안상홍증인회도 무료성경신학원도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보다 배나 더 확신으로..
진리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 교리를 신학적으로 보면 맞는게 성경에 원만히 합치된다고 하지만, 확신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착각도 있을 수 있는 거야.
얼마전에 제가 한번 강의시간에, 92년도에 다미선교회 사건의 뉴스를 내가 못봐서 아쉽다 했더니 누군가가 그 동영상을 찾아 가지고 홈페이지에 올려놨어요.
거기 보니까 자정이 다 되어갈 때 정말 자기 재산 다 팔아서 선교비로 쓰고 나누어주고 아무것도 없이 그날 흰옷 입고 손에 간단한 소지품 한두가지만 가지고 휴거 될거라고..
거기 나와가지고 방송국 기자와 인터뷰 하는데 확신에 차서 넘쳐있는 거예요.
그때 만 몇천명 정도가 준비했던데, 한국에서 몇군데만 해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할 때 10만명 정도가 그렇게 준비했을 거라고 그러던데,
오죽 확신에 찼으면 자기 재산 다 팔아서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니까 확신 그 자체는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진주문 열고 들어가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을 때까지는 큰소리 치면 안 돼요.
구원 받았다 십원 받았다 아무리 떠들어봐야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시면 한마디로 끝나 버립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러면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가 괜히 교단만 정통정통하지, 교단은 나도 분명히 정통이라고 믿습니다. 정통인데, 그 사람들의 신앙이나 생활은 깡통일 수가 많아..
하나도 제대로 아는것도 없고 배운것도 없고 실천하는 것도 없고 그러면 뭐 정통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정통이 아주 정통으로 잘못되는 거죠.
그래서 여기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갔을 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첫사랑이예요.
몇 군데 그럽니다. 하나님이 ‘나의 첫사랑’이라고..
하나님의 첫사랑도 이렇게 내팽개쳐버리고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심판하시는데, 돌감람나무 이방인들 우리가 그렇게 막되먹게 살다가 돌아와서 그렇게 우리가 진지하지도 않고 신실하지도 않게 한다면, 자기네 확신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착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겸손하게 정말 겸손하게 하나님 말씀을 차근차근 배워서 옳은 것은 항상 내게 기분이 좋고 기분이 나쁘고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되고, 한 말씀도 빼지 말고 제대로 읽어봐야 돼요.
그리고는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야 됩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가 그 당시 종교지도자 바리새인 율법학자 사두개인들 대제사장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세리와 창녀가 너희보다 더 먼저 천국에 간다.
왜냐하면 세리와 창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이니까..
그런데 거룩한 척 하니까 이 사람들은 죄인 아닌 줄 아는 거야. 자기들이..
그런데 예수님이 와서 심판하니까 거룩한게 아니라 독사의 자식이란 말이야.
그런 착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 그 로마 교황청이 잘못될 때 얼마나 악한지 아세요?
종교재판을 해가지고 마녀사냥이라고 해서, 우리처럼 성경대로 믿을려고 하는 사람을 잡아죽인 사람이 최소한 6백만에서 6천만을 죽였다는 거예요.
숫자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문서 자료를 전부 다 교황청에서 갖고 있으니까 아무도 모르는데, 교황청 비밀문서 보관소에서 본 사람들 얘기는 최소한 6백만에서 6천만을 죽였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당시에는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 기독교 목회자들 중에 그 카톨릭이 우리 큰집이라고 마침내 우리는 돌아가야 된다. 화해와 일치로 가야 된다. 그런 소리를 공공연하게 나와서 떠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심하게 어려운 때가 옵니다.
우리가 진리를 분별하기 어려운 때가 올 텐데, 마지막때 가면 더 하겠죠?
그리고 온갖 이적과 기적과 표적을 행해서, 할 수만 있다면 택한 백성도 미혹하게 할거란 거예요.
항상 깨어서 우리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깨끗하게 순수하게 지켜 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참으로 많이 사랑하셨지만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쫓아가서 결국은 잘못된 길로 가게 되니까 여러 차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수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불어 지나갔고 그 때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생명들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 어둠의 곳으로 밀려갔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노하신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그 예루살렘에 남은 자 중에 소수의 무리가 머물러 있어서 생존해가지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녹명되어서 거룩하다 일컬음 받는 무리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세상에서 온갖 풍파가 지나가고 온갖 바람이 지나갈 때, 쭉정이가 다 떨어져 나가고 바람의 겨와 같이 날아가고, 이런 저런 바람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은혜와 진리 가운데 머물게 하시고 또 생명책에 녹명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 끝날까지 주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