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일지 (2024.06.04~06.25)*
-15일차 : 6월 25일 화요일
유월, 여름의 꿈은 한가하다
-6월초에 도서관에서 빌린 대부분의 책을 거의 다 읽고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1》을 읽고
1
아내는 아침을 먹고 나면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정오될 때까지 짧은 잠을 자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자고 있는 아내를 두고 거실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던 나는 소파에 깔아둔 진녹색 독서용 얇은 담요 위에서 발바닥에서 떨어진 듯 보이는 각질 몇 조각을 발견한다. 담요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거실로 난 창으로 가서 털 계획이다. 방충망까지 완전히 열어젖히고 담요를 완전히 밖으로 끄집어낸 뒤 막 털려고 한 번 흔들었을 때다. 그 순간 난 대학교 시절 같이 공부했던 여학생 친구가 얼핏 떠올랐던 것 같다.(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검은 책》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영향 탓…….)
“어이쿠, 이런.”
손에서 순식간에 담요를 놓쳐버렸던 것이다. 빠져나간 담요가 그만 고층 아파트 허공을 획하고 공중선회를 한 번 보이고 나더니 까마득한 아래층으로 고공낙하를 하기 시작했다. 창문밖에 걸쳐진 철제 안전 난간대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민 채 바닥으로 무사히 떨어지기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아파트 1층 출입구를 지나 단지 내 도로 주변을 빠르게 뒤져보았지만 담요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대신 위를 꼼꼼하게 훑어보니 7층 아파트의 거실 옆 첫 방의 철제 안전 난간대에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만일 열어놓은 어느 세대의 거실이나 방으로 바람에 날려 들어가 버렸다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찾지 않으면 같은 동 윗세대에 사는 무고한 이웃들이 욕을 먹을 테고, 담요의 진한 녹색 탓에 얼른 부재가 눈에 뛴 아내에게 난 앉은 채로 추궁을 당하다가 마침내 불가항력의 이실직고를 듣고는 그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관용을 듣긴 하겠지만 아내가 나에게 늘 마지막으로 하는 습관대로,
-그러니 가만히 있지, 뭐한다고 깨끔을 떠느냐 이 말이야. 얼른 직장을 구해서 나갔으면 이런 소란은 없었을 거 아냐!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다행스럽게도 담요가 7층에 사는 세대의 작은 방 난간에 걸려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부리나케 7층으로 올라갔다.
이 아파트에 입주하고서 다른 층의 이웃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방문할 세대 층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를 나서는 순간부터 현관 벽에 붙어있는 진회색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 굉장히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그리고 그 이웃은 두 번째로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긴, 요즘 거실에 놓인 방문객용 화면을 통해 자기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싶으면 문을 아예 열어주지 않는 것이 다반사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그건 이제 너무나 당연한, 예의를 넘어서서 개인의 안전과 관련되는 사항이라 도시의 아파트에 살거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불문율인 것이다.
“누구세요?”
포기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현관 안쪽에서 어떤 여자의 가는 음성이 들려온다.
“위층에 사는 사람인데요.”
문을 열어줄까 말까하는 잠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더니 이내 문이 열리며 강아지가 얼굴을 먼저 내민다. 우리 이웃은 자다가 잠에서 막 깬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분은 별로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을 놓는다.
“들어가 있어. 무슨 일이시죠?”
“위층에서 조금 전 난간 밖으로 먼지를 털다가 깜박 실수로 담요 하나가 밑으로 떨어졌는데 보니 댁의 거실 옆방 난간대에 걸려 있어서…….”
“잠시 기다려보세요.”
이웃은 아무런 표정 없이 담요를 찾아 가져다 문밖으로 내민다.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담요를 받아들고 얼른 집으로 돌아온다.
아파트에 입주해 7년째 살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데, 그것도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오전에 갑작스레 일어난 소동 아닌 소동은 짧은 순간이지만 요즘 연일 평화롭던 가슴을 급하게 요동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매사 급한 내 성격에 그나마 진땀을 흘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가.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조용히 들어오는데 아내는 안방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여태 잠에 빠져 있는지 조그만 정적이 흐를 정도였다.
되찾아온 담요를 소파의 원래 자리에 깔면서 이 아파트는 그 건축의 애초 평면도 계획상 부득이하게도 오전에는 모두 잠시 잠을 청하게 되는 환경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때 갑자기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진동소리가 강하게 들려온다.
〔Web발신〕 XXX 환자님, 위내시경 조직검사결과, 헬리코박터균 감염 확인되었습니다. 제균 치료여부 상담위해 병원 재방문 바랍니다.
-이런 오늘 무슨 날인가. 어떻게 갑자기 난감한 일들이 이렇게 한 번에 닥치는 걸까. 가슴이 또 두근거리는 게 영 불안한데. 오라는데 안 갈 수도 없고, 병원이라면 딱 질색인데…….
월요일 아침부터 갈팡질팡하며 그 동안 누렸던 평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영 좌불안석이 시작된다.
2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은 1권만 읽고 더 이상 읽기를 멈춘다. 도서대출 기한이 오늘이라 오후에 책을 반납해야 해서 더 읽기가 어중간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3》을 비롯해 이 책 《검은 책·2》는 후일을 도모해야 할 것 같다.
(빌려 온 책을 같이 읽는 아내가 케이트 커크패트릭의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과 애니 그래이의 《먹보 여왕》을 다 못 읽었다며 다시 대출을 요구해 와서, 도서관에서 일전에 한 통화에 의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3》을 구비해 놓았다면 조만간 다시 빌려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4권의 시집을 포함해서 모두 17권의 책을 빌렸는데,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2》와 주영하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의 일부, 스탕달의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를 제외하고는 다 읽었다. 애초 이 모두를 다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빌린 것은 아니었다. 아내도 책을 읽는 나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따라 읽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같이 읽을 요량으로 이만큼 빌렸던 것이다.
덕분에 6월 초여름의 시간이 잘 흘러갔다. 그리고 빌려온 책 덕분에 ‘생의 신비주의’에 관한 작가들의 생각(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태엽 감는 새 연대기》도 그러하지만 특히,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에서)들을 풍족하게 읽고 충분히 느꼈다. 아주 훌륭하고 이색적인 경험이 되겠다. 그러한 생각들은 다양한 철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치밀하고도 오랜 사색의 시간이 없으면 나오기 어려운 ‘사고(思考)의 결정체’일 것이다.
두 명의 뚜렷한 개성과 뛰어난 자질의 여성을 이번 독서에 만났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다. 그 동안의 역사적 오랜 시간 속에서 ‘생의 굴레’라고도 할 수 있을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 사람의 훌륭한 인격체로서 발돋움할 계기를 사상과 문학 작품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린 보부아르와, 겉으로 들어나는 화려한 궁중 생활에 매료되어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선망하는 영국 여왕의 자리를 60년 가까이 묵묵히 지키며 9명의 자녀를 거느린 가정도 함께 일궈야 했던 여성 빅토리아의 삶은 서로 여러 면에서 대비되기에 충분하다.
그들 각자가 걸어간 삶이 평생 보장된 길과 불모지를 개척해야 하는 다른 길이 그러하고, 그들이 배우자를 선택하고 가정을 꾸려나간 극명하게 다른 방식에서 또한 그러하다. 그들은 모든 여성들에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선한 영향력을 훌륭하게 그리고 지대하게 끼쳤다고 여겨진다. 화려함의 휘장 속에 철저하게 가려진 평범한 인간의 국가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고충을 극복하고 온전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용감하게 시대의 불합리에 맞서 평생을 살아간 여인의 당당함이다.
시인 손종호의 《뿌리에 관한 비망록》을 포함한 네 권의 시집은 거실 테이블과 침대 옆에 두고 틈나는 대로 페이지를 열어 감성의 샘을 풍족하게 채웠다. 한 권의 시집이 만들어지는 데 걸린 시인의 오래고도 귀중한 시간을 생각한다면 이건 너무하는 얄미운 장난이 아닐까 싶은 미안한 감정도 없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알리고 싶다.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의 공저 《부적 1·2》는 흥미로운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이 두껍고도 어려운 책을 읽어내느라 나의 소괄 머리 없을 뇌를 혹독하게 단련시키는 재미 또한 대단했음을 특별한 경험으로 남기려 한다.
여름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다보면 어느 새 성별과 나이, 살고 있는 현실을 잊기 십상이다. 작품마다 개성강한 작가들이 펼쳐보이는 세계에 흠뻑 물들기 때문이다.
무더위에 눌린 감각이 무뎌져 마침내는 현실을 망각할 수도 있는데, 그보다는 무더위조차 잊을 정도로 매 작품마다 훌륭한 작가들이 제공하는 피서지이자 작품 세계로 순간이동을 해서 현실의 모든 것을 한 곳으로 제쳐두고 이번에 특별한 경험을 쌓아보도록 권한다.
그것은 매년 들어보는, 귀에 숱하게 듣는 별로 재미없는 말이면서도 귀중하게 여겨지는 내가 조금씩 조심스러워지고 나이가 들어가는 ‘신위지보’(愼爲之寶)인지, 아니면 더욱 젊어져가는 출람지청(出藍之靑)인지 잘 판단이 안서는 것에 대해 여러분의 이번 여름 경험에 찬 고견을 듣고자 함이다.
(2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