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카파도키아의 기기묘묘한 바위들 위로 수 많은 열기구가 떠 있는 영상이 터키 여행의 상징이 된 것 같다. 바위 모양이 특이할 뿐 아니라 바위 속에 집을 짓고 사람이 살았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유니크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단기 여행자들은 보통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카이세리나 네브셰히르로 이동하지만 두 도시가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지는 아니다.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지는 괴레메이며 그 주변에 우치히사르 아바노스 위르귑 등 작은 도시들이 있다. 그 부근에 파샤바 데브란트 로즈 비둘기 으흐랄라 등의 이름이 붙은 여러 계곡들과 데린쿠유 카이막클르 마즈 등의 지하 도시들이 있고, 열기구 투어 외에도 레드투어(괴레메 아바노스 위르귑을 중심으로 가까운 곳을 도는 일일 투어) 그린투어(우치히사르 데린쿠유 으흐랄라 등 먼 곳을 도는 일일 투어) 로즈투어(로즈계곡을 갔다 오는 일몰 트레킹) 승마투어 지프투어 ATM투어 등등 수 많은 여행 상품들이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관광지다. 그에 비하면 대중교통은 열악한 편이어서 여행사 투어나 렌트카를 이용하지 않은 뚜벅이 부부로서는 조금 불편한 점도 있었다.
2019년 1월 1일
전날 밤에 호텔 검색을 하다가 마론스톤하우스가 18유로(110리라)에 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마론스톤하우스는 네이버 카페에서 마론인형이라는 별명을 쓰는 한국 여자분이 운영하는 숙소인데 예전에 관심을 갖고 알아봤을 때는 하루 숙박비가 5-60유로라기에 제껴놓았던 곳이다. 비수기 할인인가? 비슷한 급의 다른 숙소들과 비교해도 저렴한 편이라 3박을 예약했다.
시바스 시내버스비가 3.25리라, 시바스에서 카이세리까지는 40리라 (3시간 반 걸림). 카이세리에서 괴레메까지는 20리라 (생각보다 먼 곳이다. 시간도 1시간 반이 걸림). 아침10시쯤 시바스 숙소를 출발해서 오후 4시 경에 괴레메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들어가기 전에 길가에서 버스를 내렸는데 길 건너편에 보이는 바위 덩어리들이 여기는 카파도키아라고 소리를 지르는 듯했다. 갑자기 다른 세계로 점프한 듯한 느낌?많이 놀랐는지 옆지기는 배낭을 짊어진 채 사진부터 찍는 생소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마론스톤하우스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마론인형님은 부재중인 듯, 남편으로 추정되는 한국말 잘하는 터키 남자가 싹싹하게 맞아 주었다. 여기서 무얼 하고 싶으세요? 열기구는 안 뜨겠죠? 날씨가 안 좋으니 당분간 못 뜰 겁니다. (하루 연장해서 4일을 묵는 동안 열기구는 결국 타지 못했다. 12월에도 열기구가 뜬 날이 6일밖에 안 되었다고 하더니, 역시 겨울에는 어려운가 보다.) 우린 슬슬 걸어다니며 구경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럼 이 지도 가져가세요. 한글로 된 지도, 좋았다.
시설은 살짝 오래 된 듯한 느낌이었지만 대체로 무난했는데, 처음에 배정해 준 2층 6호실은 화장실에 난방이 안 되었고 방의 난방도 약한 편이었다. 직원들도 친절하긴 한데 시설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 듯, 하루를 넘겨 다음날 아침에 1층 4호실로 옮겨 주었다. 옮긴 방은 화장실 바닥(화장실 바닥이 무려 대리석이다)으로 온수관이 지나가서 따끈따끈했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뭔가 먹어야 하기에 식당부터 찾아 나섰다. 가까운 곳에 세데프가 평점이 높다길래 들어갔는데,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 동네 명물이라는 항아리케밥을 시켰는데 가져오자마자 사진 찍을 새도 없이 항아리를 깬 것도 맘에 안 들었고, 음식 맛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고, 가격은 생각보다 살짝 비싼 편이었다. 오랜만에 100리라가 넘는 식사를 하고 괴레메 야외박물관을 향해 길을 나섰으나 이미 시간이 늦은 탓에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다.
(카파도키아의 어원이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라고 한다. 승마투어도 재미있을 것 같긴 했지만 말만 구경하고 말았다.)
(근처에 도자기 공방이 있다. 도자기는 아바노스가 유명하다고 해서 여기는 슬쩍 구경하고 말았는데, 정작 아바노스는 안 감)
1월 2일
호텔에서 받은 지도에서 파샤바행 돌무쉬 정류장과 시간을 확인하고 나갔는데, 조금 늦었나 보다. 매시 15분에 버스가 있다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0시 20분, 10분 정도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어제 못 갔던 괴레메 야외박물관으로 갔다. 어제 들어가 보지 못해서 궁금해 하던 바위 속을 처음 들어가서 구경했는데 들어가 보면서도 현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시내로 돌아와서 중국음식점 매화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오전에 기다리던 그곳에서 파샤바행 돌무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차 하나가 멈추더니 어디 가냐고 묻는다. 파샤바 계곡이라고 대답했더니 (잘 못 알아들었을까?) 아바노스 어쩌고 하면서 구글 지도를 더듬는다. 비슷한 방향인 것 같으니 일단 타세요. 중간에 내려서 걸어갈 각오를 하고 올라탔는데 알고보니 그들의 목적지도 파샤바였다. 가면서 대화를 나눠보니 운전하는 남자는 이라크 사람이고 조수석의 여자는 터키 사람이란다. 이라크? 낯설다. 우리 생애 최초의 히치하이킹인데, 터키도 아니고 이라크 사람이라니?
(요정의 굴뚝으로 불린다는 파샤바의 버섯바위들)
파샤바 계곡에서 신나게 버섯바위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문득 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딜 가든 평균보다 오래 구경하는 사람들이니, 벌써 가버린 게 아니라면 지금쯤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주차했던 곳으로 찾아가 보니 아니나 달라 차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아구, 미안해요! 고맙고요!!
(선셋 포인트로 알려진 언덕에 올라가서 괴레메를 내려다 보는 중에 바위 비탈을 맨손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발견함)
1월 3일
오늘은 바위산을 통채로 뚫고 들어가 대규모 주택단지를 만들었던 우치히사르와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가서 인구 1만의 도시를 만들었다는 데린쿠유를 가보기로 했다. 알고보니 괴레메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던 봉우리가 우치히사르다. 괴레메에서 5킬로미터쯤 되지만 중간쯤에 괴레메 파노라마라는 전망대가 있으니 천천히 구경하면서 걸어서 가기에 적당한 거리다.
(우치히사르 입장료는 8리라)
우치히사르에서 발견한 맛집, 중턱에 있는 House of Memories라는 식당인데 음식 맛도 좋고 2층에서 보이는 전망도 괜찮지만 무엇보다도 주인장이 멋있는 사람이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주방과 홀을 날아다니는 주인장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양고기 스테이크와 소고기 철판볶음에 음료수까지 해서 63리라.
데린쿠유 지하도시까지 가는 버스는 우치히사르에는 없고 네브셰히르에 가야 있단다. 3리라짜리 버스를 타고 네브셰히르에서 내려 데린쿠유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카이막클르 지하도시라고써 붙인 버스가 먼저 왔다. 꼭 데린쿠유를 가야 하는 건 아니니 먼저 온 버스를 타자! 이렇게 해서 데린쿠유 대신에 그보다 조금 가깝고 규모가 작은 카이막클르로 가게 되었다.
지하 도시는 (사진으로 담기는 어려웠지만) 이것 참 대단하다는 감탄이 계속 터져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와!세상에!! 정말 대단해!!! 입장료는 35리라.
1월 4일
오늘은 드디어 파샤바행 돌무쉬를 탔다. 또 파샤바냐고? 파샤바는 봤지만 그 너머에 있는 젤베 야외박물관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데브란트 계곡을 거쳐 위르귑까지 가 볼 계획.
젤베 야외박관의 입장료는 15리라. 데브란트나 파샤바보다 덜 유명한 듯하지만, 이곳 역시 볼거리가 풍부한 아름다운 곳이다.
(비가 오다 그쳤다 하는 날씨 덕분에 무지개도 볼 수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나와서 데브란트행 버스를 물어보니 여기 버스는 파샤바를 거쳐 괴레메로 돌아가는 것 즉 우리가 타고 온 돌무쉬밖에 없단다. 지도를 보니 데브란트까지 5킬로미터쯤 된다. 그런데 2킬로미터쯤 가면 아바노스에서 위르귑으로 통하는 큰길과 만나니 버스든 뭐든 탈 수 있겠지, 최악의 경우 5킬로를 걸어갈 각오를 하고 씩씩하게 출발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바노스에 위르귑으로 가는 길에는 버스 노선이 없다. 5킬로를 끝까지 걸어갈 판이었는데 다행히도 20분쯤 걸어가다가 구원의 손길을 만났다. 승용차 하나가 자발적으로 멈추어 섰는데, 목적지가 데브란트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자 운전사와 조수석의 남자가 시리아인이란다. 남자의 생일을 기념해서 놀러왔다고...... 호오! 시리아하면 전쟁과 난민부터 떠올리던 우리에게는 시리아인들이 터키로 관광을 온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라크 사람이라고, 시리아 사람이라고 퉁쳐서 하나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거구나. 어디에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기며, 하여튼 우리를 태워 줬으니 땡큐!
데브란트는 낙타바위를 비롯하여 갖가지 동물 모양을 닮은 바위들이 많아 유명한 곳인데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한 바람에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다. 조금 구경하다가 비를 피하러 길가에 늘어선 기념품점들 중 한 곳으로 들어서니 주인 부부가 반색을 하며 무엇을 마실지 물어 온다. 차이? 커피? 뜨끈한 커피를 마시면서 가게 안을 둘러 보니 제법 예쁜 물건들이 보인다. 도자기로 만든 열기구 모형과 털실로 짠 아기 덧신을 70리라에 흥정하고 돈을 꺼내며 커피 값을 물으니 커피는 선물이란다.
빗발이 가늘어길래 위르귑으로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어보니 버스가 없으니 택시를 타야 한단다. 그래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니 주인 남자가 차키를 들고 일어선다. 30리라를 주고 위르귑으로 갔다.
위르귑에서 우연히 들어간 작은 식당이 숨은 맛집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요리는 기본, 성실한 주인장의 무한 친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식당 이름은 소프라소,
(위르귑에서 괴레메 방향으로 3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일명 가족 바위)
가족 바위를 구경하고서 괴레메 방향으로 걸어가며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40분 정도 기다린 끝에 돌무쉬를 만나서 괴레메로 돌아왔다.
열기구도 못 탔고, 여기저기 못 가본 곳도 많지만 이 정도로 카파도키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내일은 세마의 도시 콘야로 이동한다.
첫댓글 짠내투어 시청하면서 마론스톤하우스의 한국말 잘하는 싹싹한 남자가 마론인형님의 남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됨. 남편분은 나이가 훨 많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