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처음으로 긴 여행에 나선다.
무려 9일..
이 짧지 않은 시간들은 나에게 어떤 역동을 가져다 줄까..
새벽별을 보며 전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에서 표를 끊는다.벌써 부터 예정보다 한 시간 늦은 차를 타는거다.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은 탓이긴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저 만나지는 인연들에 몸과 마음을 맡길 예정이므로..서두르거나 초조할 필요가 없다
버스를 타고 한 참을 오다가 낮선 시골도시에 내리고 그곳에서 다음에 갈아 타야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허기를 달래고 또 버스를 탔다.중간중간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찾아보고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잠깐 긴장도 하고 서두르기도 하고 다시 또 연락을 하는 등의 움직임들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설렘에 비하면 고생이 아니다.
드디어,마침내 내가 오려고 하는 곳에 닿았다.어느 곳이나 새롭긴 마찬가지지만 이곳은 특히 낮선 곳이다.
푸른 누리..
들어오는 초입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부터 왠지 이전의 세상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걸어도 충분할 것같은 거리를 친절하신 도움선생님덕에 빨리 도착했다.사실은 이곳에 생활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것도 없고. 자세히 물어보지도(이곳을 권한 친구에게)않았으니 그저 모든 일은 맞닥뜨려볼 일이다.
새벽에 나선 길이 저녁이 거의 다 되서야 닿았는데 오자마자 나는 마음닦는 방으로 가야하는 시간이다. 그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나를 구속하고 벗어날 틈을 주지않는 기계.손전화기를 맡겨야한다.
이 기계없이 내가 근 8일을 견딜 수 있을까?게다가 당연히 먹을 줄 알았던 저녁은 일정에 없다.이런!
독방.
딱 그 크기인것 같다.문득 독방에서 몇 십년씩을 지내시며 온갖 성찰을 하신 신영복 선생님이 떠 오른다.혼자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의,아무것도 없이. 최소한의 물건이 있는 공간.이 곳에서 나는 어떤 마음들과 부딪힐까.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첫 일정에 들어가야 한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길게 들어서있는. 마음닦는 방으로 들어가니 다들 부처처럼 앉아있다.무턱대고 나도 방석을 깔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본다. 추우니 입고 간 긴 패딩잠바를 걸치고 앉았으니 부스덕소리가 나는건 당연하다.
게다가 20분도 안되서 내 다리는 저리고,허리는 아프고 코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만 알아차리라는 선생님은 말씀은 온 데,간 데 없이 몸뚱이 이 곳,저 곳에서 불편하다고 난리다.
ㅡ다른 분들이 소리가 난다하니 이 옷을 걸치세요.추우시면
이 담요를 덮으세요.다른 마음닦는 분들은 부스럭소리에도 예민하십니다.
에구,깊은 삼매경에 빠져 있을텐데 그런 소리가 들리나?누가 그런 말을 전한거야,마음공부 하는 분들 맞아? 몸이 불편하다고 투덜거리는 모습만큼 내 속에서는 끊임없는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고 누구야?날 이른사람이 하는 미운 마음이 일어난다.
ㅡ다음날부터 올라오는 날까지
신기했다.
새벽 4시에 눈을 떠서 그 깜깜한 새벽을 가르며 마음닦는 방으로 가서 한 시간을 앉아 있다가,
밖에서라면 정신없이 잠자고 있을 새벽 5시반에 밥을 먹는데 밥이 먹힌다. 먹힐 뿐 아니라 도움주시는 선생님의 정성이 오롯이 느껴져서 한 올 한 올 꼭꼭 씹어서 내용물을 소화시키고. 음식을 거의 한 톨도 남기지 않았다 먹거리는 늘 비슷했다.과일 한 쪽과 잡곡밥(잡곡엔 가끔 은행알도 섞여 있고,밤알도 씹히고,또 버섯도 씹혔는데 여간 담백하고 맛이 있지 않았다).
국,나물과 김치 그리고 늘 단백질을 보충할 계란이나 버섯,콩이 있었고 해조류인 김이나 미역이 함께 준비되어 있다. 그래도 평소에 바른 먹거리에 대해 들어 온 풍월이 있어서인지 준비해주시는 뜻이 오롯히 느껴져서 다 소화시키면서 먹고 나니 편한 속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식사를 이른 11시 20분경에 한 번 더 하고는 하루 종일 물이나 차만을 마시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 그렇게 사흘을 지내다 보니 늘 올라와 있던 윗배가 잡히지 않는다.게다가 하얗게 끼어 있던 백태대신 약간의 붉은 빛이 나기시작하는 혀라니!!
하지만 어려웠다.
식사를 하고 한 시간정도를 쉬고 나면 다시 마음닦는 방으로 가서 양반다리를 하고 내 숨을 알아차리며 있어야 하는 시간들이.
ㅡ올라오는 온갖 마음가지들이 있을겁니다.그럴 때마다 다시 콧끝으로 돌아와서 들어오고 나가는 내 숨에 집중하세요.
처음 뵙는 최한실 선생님은 미동도 없이 말씀하신다. 먼저 마음을 닦고 계시는 분들도 꼼짝을 하지 않고 삼매경에 빠져 있다.하지만 나는 삼십분도 안되서 다리에 쥐가 나고 허리가 아파와서 등뒤의 시계를 한 시간이 되기전에 꼭 돌아보게 되었다.
ㅡ그럴 때마다 코끝의 들숨날숨에 집중하세요.
머리와 몸이 그렇게 따로 행동하는게 느껴지기도 처음이다. 끊임없는 올라오는 이 생각,저 생각에 이 곳,저 곳이 힘들다고 아우성대는 몸이란.
그런데 희안한 일이다.
삼일 째 되는 날은 이른 마음닦는 시간에 눈물이 줄줄 흐른다. 올라오는 생각들 중 어린 나를 두고 눈을 감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와 추운 겨울 다친 손가락으로 집을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불쌍한 아버지에 대한 생각들에 이르러서는 감은 눈 위로 끊임없이 눈물이 흐른다.뜨거운 물이었다가 차가운 물이 볼 위로 줄줄 흘러내리는데 다른 분들께 피해가 갈까바 소리를 내지 않으려니 더 뜨거운 눈물이..그 눈물은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아니고,그 분들이 불쌍하다는 마음도 아니었다.남겨진 어린 내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지지와 사랑의 힘이 아주 두텁게 느껴져서 흐르는 눈물이었다.그저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한 생명체이지만 그 인연의 고리에 대한 감사함같은 마음인것 같다.잘은 모르겠다.이 것 또한 내 생각이고 관념일테니..
아무튼,
ㅡ재미가 없으세요?
예정했던 9일을 다 있으면 안되겠다는 결심이 서서 너무 죄송한 말씀을 드리자 도움주시는 선생님이 깜짝 놀라신다.
ㅡ아니요.올라가서 해야 할 일들이 자꾸 떠 올라와서요. .
사실은 재가센터 일을 직원에게 다 맡기고 나. 편하자고 마음만 닦고 있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어차피 크게 내가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닌데 어쩌면 그 곳에서 떠날 핑계를 찾아 낸 것일지도 모른다.
ㅡ이제 시작인데 하다가 멈추겠다는거요?
왜 그렇게 사시요?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요.
이제 좀 집중을 하는 것 같아 본격적으로 윗빠사나 수련을 좀 가르쳐주시려고 하는데 고만두겠다니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이다.
ㆍㆍ왜 그렇게 사시요ㆍㆍ라는 말씀의 뜻이 어떤 의미인지 나 혼자서는 알 것같아 뜨금했다.나는 또 한계를 넘지 않으려고 핑계를 찾아낸 것이다.
왜 그렇게 사냐는 선생님의 말씀에는 내가 살아 온 모습들이 보이신걸까.아예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 앞 뒤 재지않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다가도 조금 알 것 같으면.아니 조금 힘들어지면 난 이제 알았어,또는 왜 힘들게 정상까지 가야해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하며 마무리를 하지 않거나 정상까지의 가지 않으며 스스로 합리화하며 사는 내 모습.
안타까워 하시는 선생님들을 뒤로 하고 이불을 빨고 가방을 쌌다.ㆍㆍ언젠가 조금 더 마음을 먹고 다시 와야지..하는 마음으로.
ㅡ다시 오기는 쉽지 않으실거예요.
ㅡ오늘 밤동안 내가 가르쳐준대로 다시 마음을 닦아보고 결정해요.
라며 안타까워 하시던 선생님들.
작고 탐스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선생님들께 인사도 없이 8시 반 마음닦는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나선 길에는.
그리 깊지 않은 산속이지만 9시반 버스를 타야한다는 불안한 마음 탓에 그 고요하고 아름답게 내리는 눈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하늘 위에서 하얀 눈송이들이 나풀나풀 내리는데 구름뒤에 가려진 태양이 한풀 꺽힌 빛을 내 보내주던 풍경이란...저녁 마음닦기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면서 바라본 그 맑고 초롱초롱한 우주의 볓빛들의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정오를 넘긴 늦은 두 시 이후에 본당 툇마루로 내리쬐던 햇살,시간마다 다르게 들어오던 빛의 길이가 만들어 내던 마음닦는 방 창문의 그림자들,시간시간마다 다른 바람의 소리,새들의 소리들..
글을 쓰는 지금도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예정했던 일정을 다 마치지는 못했지만,사실은 너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그리고 지금 현재는 그 경험들만으로도 뿌듯하다.
ㅡ다시 올께요.선생님
이라고 말씀드렸다.입 밖으로 내뱉은 말엔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언젠가는 다시 갈거다.
짧지않은 시간을 다시 만들어내야하는 숙제가 생겼지만 내게 주어질 인연을 무턱대고 믿어 볼 생각이다. 지금도 콧속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알아차리는 중이다♡
첫댓글 까닭은 모르겠지만 구름처럼님이 쓰신 글을 읽는데 눈물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요♡
뭐든지 장애와 난관을
내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
이기적인 동물적 본성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이기는곳에 개인에 삶이나 집단에도 사회와 역사에 진보가 있습니다 .
그래서
투쟁은 삶에 본질 입니다
투쟁을..나와의 투쟁을 하며 살아야 하나요.
@구름처럼 그렇습니다.
사람이 걸어가도 바람에 저항을 받는데
하물며 옳은일일수록 저항은 거세기 마련 입니다.
두려워 하거나 걱정하지 마시고 하늘에 맞고 장애를 조약돌처럼 힘차게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장애는 본래의 자리인 하수구에 처박힐 것입니다. 뭐든지 투쟁없 저절로 이루어 지는것을 봤습니까
@저절로그러함 마음을 닦는 일을 투쟁이라고 생각하며 해야하는 것인지요..투쟁이라는 어휘가 주는 느낌이 너무 강한데..
@구름처럼 투쟁을 폭력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됩니다.
마음을 닦는 일에도
언제나 참나인 양심과 영혼 얼을
에고에 실체인 몸둥아리와 내안에 비겁함과 나약함과 동물적인 본성인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득 찬 에고와 언제나 투쟁을 해야 합니다.
나는 두개의 나가 싸움을 하는데 어느 편에 살것인지
냉정하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에고와 참나중에 누구 를 즐겁게 할것 인지
그래서 삶자체가 투쟁 입니다.
투쟁을 통해서 삶에 진보가 있습니다.
아 그런의미의 투쟁이군요...참나를 찾기 위한 투쟁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