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시여, 열반의 경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옵니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길을 끈 상태이니라.”
그렇습니다. ‘열반(涅槃)’은 우리 모두의 목표로서, 열반이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은 물론 온갖 우주 삼라만상의 실체와 그 시작과 과정과 끝을 알아, 나고 늙고 병들어 죽어야만 하는 고통의 되풀이에서 벗어나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열반의 경지인데, 그러나 열반에 이르러 부처님이 되시겠다는 올곧은 욕심은 가져야 하겠죠. 열반에 이르고 나면 그런 열반에 이르겠다는 욕심에서마저도 자연히 벗어나게 되실 테니까요
“부처님이시여, 때때로 제가 배워 알고 있었던 앎은 물론, 배우지 않은 앎까지도 쉽게 이해하여 설명할 수 있었는데, 어떤 때는 배운 것조차도 설명할 수 없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옵니까?”
“그대여, 그것은 오물로 뒤섞여서 흐려진 물의 밑바닥은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대의 몸과 마음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흐려져 있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의 마음과 몸속의 온갖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오물을 걷어내어야 몸과 마음이 맑고 고요해짐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온갖 우주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니, 그때야말로 열반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할 수 있는 것이니라.”
열반은 ‘유여열반(有餘涅槃)’의 경지와 ‘무여열반(無餘涅槃)’의 경지로 나뉘는데, 첫째 ‘유여열반’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모든 우주 삼라만상이 왜 생기고 부서지며, 모든 생명체가 왜 태어나고 죽는가를 아는 열반으로 들어섰으나, 이 세계의 사람으로 사는 한 물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유여열반이란 낱말의 뜻 그대로 아직도 걸러낼 것이 남아 있는, 즉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상태로서 열반에 이른 사람을 뜻합니다.
‘무여열반’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모든 우주 삼라만상이 왜 생기고 부서지며, 모든 생명체가 왜 태어나고 죽는가를 아는 열반의 경지에 들어선 후 스스로 삶을 끝낸다든가, 늙고 병들어 죽는 자연적인 과정을 거쳐 물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몸과 마음을 버리고, 몸과 마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완전히 떠난 사람들을 뜻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열반 후엔 어디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옵니까?”
“다시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지도 않느니라.”
“?”
“그대 앞에 모닥불이 타고 있다고 하자. 그대는 그 타는 불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부처님이시여. 저는 그저 불이 타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불은 무엇으로 타고 있는가?”
“나무를 연료로 해서 타옵니다.”
“그렇다면, 불이 다 탔다고 하자, 그대는 타던 나무와 불길을 보거나 가질 수 있는가?”
“나무를 연료로 해서 불이 탔고, 나무가 다 탔음에 불이 꺼진 것인데, 그 나무와 불을 어디에서 보고 가진단 말씀이오니까?”
“그렇다. 나무를 연료로 해서 불이 탔고, 나무가 다 탔음에 불이 꺼져 보거나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연료로 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불길로 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에 그대가 그대의 몸과 마음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다 태워버린다면,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며, 그런 후에야 그런 열반의 경지가 어떠하다는 것을 그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니라.”
“......”
“......”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이해하고 실천하여 열반에 드는 사람들도 있으나, 열반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어찌 이해해야 하옵니까?”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을 때, 어떤 사람은 그 목적지를 잘 찾아가고, 어떤 사람은 그 목적지를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느니라. 그 결과는 그들 각자가 바르게 노력하여 실천하거나 바르게 노력하여 실천하지 않은 결과이니, 스스로 노력하며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부처인들 어찌할 것인가? 부처는 다만 길을 가르쳐주고 부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인 것을.”
“......”
“......”
“무엇을 위해서 열반으로 들어가는 것이옵니까?”
“그대의 어리석은 질문은 끝을 모르는구나. 그대가 열반에 이르면 다 알게 된다고 하였거늘, 그러니 그때그때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여 스스로 열반의 경지에 들어 스스로 그 경지를 확인하도록 하라.”
그 무렵의 부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항상 자유로우셨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초전법륜(初轉法輪)’, 즉 부처님께서 최초로 가르치셨을 때의 어려웠던 환경과 처지와 상대들을 그때에 비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깨달은 제자들이 그때의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능력들을 갖추어 부처님께서 일일이 사람들을 상대하시지 않아도 되었고, 부처님의 재가 신도가 된 인도의 왕족들이나 부호들이 인도 곳곳에 지어 바친 사원들이 있어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가르침을 베풀 수 있는 깨달은 제자들과 좋은 환경의 사원들이 지어졌음으로, 그 얼마 후에 맞이하셨던 부처님의 사람으로서의 몸과 마음을 버리신 후 완전한 열반, 즉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향하실 수 있으시다는 홀가분한 심경을 표현하신 것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혜관이 아주 어렸을 때, 대략 12살 전후의 행자(行者), 즉 예비 승려였을 때의 은사님께서 ‘열반의 경지란 촛불을 훅 불어 꺼버린 후와 같은 상태’라고 하셨을 때, 그렇다면 스님들은 물론 많은 신도님께선 왜 촛불을 끄지 않고 부처님 전에 켜 올리면서 각자의 성불이나 복을 비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습니다만, 그러나 어느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었으므로 홀로 끙끙거리다가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 저 스스로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은,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서의 몸과 마음을 도구로 하여 공부하면서 죽음을 끝으로 성불로 향하는 것을, 주위를 밝히며 타던 촛불이 꺼졌을 때까지를 사람들이 공부하는 일생으로 보고, 촛불이 다 타서 꺼진 상태를 사람들의 죽음으로 보아 그런 죽음을 통하여 완전한 열반으로 향할 것을 부처님 전에 서원(誓願), 즉 부처님 전에 맹세하는 의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으며, 더하여 촛불을 훅 불어 꺼버린 후와 같은 상태가 열반의 경지라고 표현하는 또 하나의 뜻은, 촛불이 꺼지고 나면 세상사 그 어느 것도 보거나 상대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으로 가정하여, 즉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어떤 세속의 것도 보지 않고 내면으로 들어가 그 내면 너머까지 들어갈 수 있어서 열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이해를 돕는 방편이라는 결론을 내릴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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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맑고 건강하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