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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79
기뻐하라 (스바냐 3장절)
2024-11-10
기뻐합시다, 하나님이 교회 가운데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 오늘 아침 성령님도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뻐하라, 노래하라. 소리치라.” 정치를 보면 우울합니다. 우리들에게도 여러 문제들이 있습니다.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바냐 때는 지금 보다 더 힘들 때였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면 성전도 불탈 것입니다. 바벨론 나라가 들어와서 왕의 눈을 뺄 것입니다. 왕자들을 왕이 보는 앞에서 죽일 것입니다. 그들이 살던 예루살렘과 집을 불태울 것입니다. 밧줄에 묶여 포로가 되어, 남의 나라 바빌론으로 1,500km나 멀리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멸망의 날이 다가오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구약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포로로 잡혀가는 불행도,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서 행동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모아 올 것입니다.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15, 17절)에 반복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다시 포로로부터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그들을 회개하고 하고 마음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기뻐합시다, 하나님이 교회 가운데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1. 기뻐합시다.하나님은 죄짓는 교회 가운데서 사랑으로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1-8절)
2, 기뻐합시다. 하나님은 징계와 고난 가운데서 교회를 거룩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9-13절)
3. 기뻐합시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서 기뻐하시면서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14-20절)
성령님이 오늘 아침 설교말씀을 사용하여, 우리 모두를 기쁨으로 인도하시기 소원합니다.
1. 기뻐합시다.하나님은 죄짓는 교회 가운데서 사랑으로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1-8절)
1)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도시, 예루살렘이 이렇게 부패했습니다. 아, 화로다, 앞서 2;1에서 이방 나라들에게 “화로다”하고 말하는 데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 나라 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 앞에 더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억압합니다. 하나님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시지만, 백성들은 그 분께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운데 있는 공직자도, 악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 관리들도 백성들을 사자 처럼 괴롭힙니다. 재판도 엉망입니다. 제사장도성전 예배를 바로 세우지 않고 율법에 폭력을 행합니다. 선지자들도 속입니다.
2) 그렇게 악하게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성읍 가운데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의롭게 행하시고, 정의롭게 대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아침마다 해가 뜨고 있는 것입니다. 정의롭고 의롭게 세상을 다스립니다.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있습니다. 스바냐 같은 좋은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법을 어기고 악을 행해도, 하나님은 오늘도 아침이면 해를 뜨게 하면서 의롭게 대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뻐합시다.
3) 그런데 그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사악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부끄러움도 알지 못하고 악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계속 경고하시고, 마침내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셨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훈계를 받고 돌이키라고 하십니다.
6, 7절에서, 먼저 불의한 나라들을 끊어 버린 사실을 보게 합니다. 그들 망한 나라처럼 구약교회를 끊어 버릴 것입니다. 이제라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그 말씀을 들으면 그 안식처를 끊지 않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부지런히 가르쳤지만, 그들은 부지런히 부패하게 했습니다.
8절에, 마침내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정의는 죄악된 그 백성을 심판하시면서 함께 있습니다. 백성을 심판하시는 진노의 불, 하나님이 화내시는 것은 질투의 불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죄악된 교회를 심판합니다.
4) 우리도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벌을 내리실 때, 이 때도 기뻐합시다. 히브리서 12:8(신약 366)은 말합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 아들이 아니니라.” 우리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기쁨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있을 때 기뻐합시다.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 갑시다.
하나님이 죄짓는 교회 가운데서 사랑으로 심판하시니 기뻐하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2, 기뻐합시다. 하나님은 징계와 고난 가운데서 교회를 거룩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9-13절)
둘째로, 기뻐합시다. 하나님은 심판과 고난 가운데서 교회를 거룩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9-13절).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심판하시고, 그 사랑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합니다.
9,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백성의 입술의 죄를 태웁니다. 입술을 깨끗하게 정화합니다. 고난 가운데 회개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한 백성이 아니라 “백성들”, 온 세계 민족들이 함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니다. 어깨를 맞대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멀리 이집트의 남쪽 지역에 포로로 간 하나님의 백성들도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 바치는 헌물이 무엇일까요? 돈도 없고 몸만 겨우 올 사람들이 무엇을 가져 올까요? 그들의 깨끗한 입술, 하나님을 섬기는 손발, 그들 자신이 선물이 되어서 옵니다. 온 땅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이 선물이 되어 옵니다.
11-13절, 하나님이 새로 모으시는 교회에서는 교만한 자들을 제거하십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가난한 백성을 남겨둘 것입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피하는 자들, 그들만을 남겨두어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악함이 없듯이, 남은 자들은 사악함이 없습니다. 그들의 입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 시온에 남은 자들은 거룩한 백성으로 변할 것입니다. 온순한 양들로서 하나님의 목장에서 풀을 먹고, 또 누워 쉴 것입니다. 그들은 겸손하고 약하지만, 그들을 무섭게 하고 떨게 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피난처 되시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사회, 회개하지 않는 교회에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교만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입니다. 교만한 성도들이 심판을 당하면서 겸손히 양처럼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합니다. 구약 성도는 다가오는 도시의 멸망, 집을 잃고 고통을 당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이 오히려 거룩함으로, 또 하나님의 보호로 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떨지 않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2:10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시는 징계에 대해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징계와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과 고난 가운데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니 기뻐하자.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3. 기뻐합시다, 하나님이 교회 가운데서 기뻐하시면서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14-20절)
셋째로, 기뻐합시다. 하나님이 교회 가운데서 기뻐하시면서 구원하시고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1) 기뻐하라 (14절)
14절, 예루살렘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온 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노래하라”
감정 때문에 노래하기 보다, 구체적 사건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시내산에서 성막을 세우고 제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백성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그 때 백성들은 기쁨으로 소리치며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레 9:24, 구약 158).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이제도 하나님이 영광이 나타나실 것이므로 기뻐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 처럼 기뻐 노래합니다 (시 20:5).. 나라는 망해 가는데, 교회의 예배는 약해 지지만, 바로 지금 찬양하라고 합니다. 찬양하고 기뻐할 이유는 이것입니다.
2) 기뻐할 이유: 벌을 제거하고 우리 가운데 계심 (15)
15절에서 기뻐할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거두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너, 구약교회의 심판을 제거했습니다. 원수를 돌아가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교회 공동체에 심판을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사람들, 그들을 바벨론에 강제 이주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끝내실 그 날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 포로의 땅에서 벗어나는 것만 아닙니다. 그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러 오던 적들이 오지 못하도록 쫓아 보낼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일인데 이미 그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합니다.
어떻게 적들에게 승리합니까? 여호와께서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이 땅의 왕은 악하고 약하여 망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적들을 몰아 내시고 싸워 주십니다. “너의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원수들은 물러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보호하십니다. 다시는 재앙, 재난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두려움 없이 살게 해 주십니다.
나라가 망해가는 그 순간, 앞으로 여호와께서 왕으로 보호해 주실 그날을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은 노래하고 기뻐했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힘들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재난을 너머서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그날을 소망하는 성도는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찬양 받으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성도는 지금 찬양하며 힘을 얻습니다. 그날 두려워 하지 않을 날을 생각하며 , 앞으로 다가올 바벨론 포로의 두려운 날을 지낼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이 사실을 인해 기뻐합시다.
3) 기뻐할 이유: 구원의 용사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16, 17절)
그 날에 주실 위로를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십니다. 16-17절에서, 구원의 용사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성도는 기뻐합니다. 16, 17절을 같이 읽읍시다.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두려워 하지 말라 격려하십니다. 힘이 없어 손이 축 처지지 말라. 여기서도 개인이 아니라 시온, 하나님의 교회 전체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점에서 기뻐하십니다. 지금 우리들을 이렇게 기뻐하십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시고,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님을 통해 우리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마태복음 18:20 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작은 수로 모여도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모인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신으로서 신비한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오늘 이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을 듣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이곳에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로 함께 하십니다. 구약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다시 돌아 오게 하시는 그 구원의 전능자로 함께 하십니다.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 함께 계십니다. 그 보혈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양심의 평화와 기쁨을 주십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 주십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 가지 않도록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실 뿐 아니라,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힘을 주십니다.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여기서 “전능자”는 용사라는 뜻입니다. 죄와 마귀의 세력과 싸워 이기시는 용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셋째, 삼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17절은 “너로 말미암아, 너를, 너로 말미암아”를 반복합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삼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할만한 것이 있을까요? 죄와 부족함의 덩어리인 우리 아닙니까? 우리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은 하나님쪽에서 은혜로 기뻐하고 사랑하십니다. 우리 안에는 기뻐할만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 쪽에서 기뻐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쪽에서 사랑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니까 우리는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깨서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우리는 사랑할 만한 존재로 됩니다.
4) 예수님과 삼위 하나님의 기쁨
이 사랑은 먼저 삼위 하나님 안에 있던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0:21, 22절(신약 110)을 봅시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진 아버지여’”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기뻐하시며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원래 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누가 복음에서는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함께 하시면서 구원하는 일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이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십니다. 계속해서 누가복음 10:21을 봅시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교만하여 자기를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숨기십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같이 가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나타내 주십니다.
무엇을 나타내십니까? 22절이 말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서로 아십니다. 안다는 것은 누구인지 알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부가 친밀하게 서로를 알고 사랑합니다. 그것 처럼, 아니 그보다 더 친밀하게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님이 서로를 알고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아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해 주십니다. 이렇게 서로 알고 사랑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지 않으시고 “아들이 소원하시는 대로”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알게 해 주셨습니다. 아들 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 이 사랑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우리 주 예수님은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이 하나님께 기쁨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사랑과 기쁨의 신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교회로 모으셨습니다. 이 교회 안에 계시면서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은 용사의 능력으로 교회를 구출하여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기뻐합니다. 소리치며 노래하며 기뻐합니다. 승리의 기쁨으로 소리 치지만 그러나 교회를 깊은 사랑으로 바라봅니다. 조용히 안고 즐거워 하며 예쁘합니다. 침묵 가운데서 즐거움을 누릴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시니까 교회와 성도도 노래하고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기쁨의 소리를 내니까 우리도 따라서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그런데, 구약백성은 이 말씀을 들을 때는 기뻐할 수 없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배는 타락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외국 군대를 불러서 나라 전체를 망하게 할 날이 10년, 20년 안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교회 안에 여호와 하나님은 계시지만 구원의 기쁨이 아니라 심판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성도는 앞으로 주님께서 벌을 거두실 그 날을 바라보며 찬송합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사랑으로 잠잠하시고, 기쁨으로 노래하실 그날을 소망합니다. 이 찬송을 부르며 고통의 시간을 견딥니다.
인생이 힘들고 지칩니까? 우울한 생각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까? 내 마음을 들여 보고 들여 보면 더 우울해 집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더 이상 내 자신의 안을 들여다 보고 슬퍼하지 맙시다. 우울해 하지 맙시다. 교회를 불러 모으시고 교회 안에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바라 봅니다. 기쁨이 터져 나오는 삼위 하나님의 임재를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우리도 함께 기뻐합시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여기 있는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기쁨을 바라 보고 알게 하소서.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 교회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알게 하소서.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주임을 알게 하소서.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시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심을 바라 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딸된 우리를 삼위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사랑하심을 느끼게 해 주소서”
5) 기뻐할 이유: 교회와 성도를 영광스럽게 만드심 (18-20절)
기뻐할 또다는 이유는 18-20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를 영광스럽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18절 부터는 하나님께서 직접 구약교회에게 말하시며 격려합니다. 바벨론으로 강제로 이주한 경건한 성도들 중 근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절기 때문에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십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절기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함께 모여 예배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던 것을 그리워 하는 성도들입니다. 그 예배의 장소가 없어진 것을 생각하며 근심하며 탄식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시 소집하여 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당하는 고난을 슬퍼하는 성도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오직 이 근심이 있는 자들만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포로의 고통 가운에 있던 성도들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교회의 파괴에 대해 슬피 울었습니다.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 (예레미야 애가 1:12). 괴롭게 하는 것은 근심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슬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슬픔을 아는 자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십니다.
이 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 안에서 메아리칩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 26:38). 예수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가오는 재난들로 인해 슬퍼하셨습니다 (눅 19:41-44). 우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19, 2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날이 옵니다. 포로 생활에 지쳐서 장애인처럼 된 자, 쫓겨난 자를 모아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들을 불러 내어 시온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모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고 칭송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명예를 높여줄 것입니다. 이방 모든 세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높여 주십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모인 하나님의 백성은 온 세상에 소문이 날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백성은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장애있는 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을 치유하여 교회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백성 가운데 오셨습니다. 이제 이 약속된 복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은 계속 죄인인 우리 안에서 의로운 분으로 계십니다. 계속 우리의 교만을 제거하고 겸손하게 남아 있게 하십니다. 이 겸손하게 남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빌립보서 1:11에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누르고 계십니까? 지금 머리를 숙이고 주님께로 돌아 갑시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심판하시고, 구원하시고, 함께 기뻐하시는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계속 피합시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시다. 그리스도의 이름 뒤로 피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뻐합시다.
기쁨을 연습합시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죄가운데서 우리를 사랑으로 징계하십니다. 징계하는 것을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십니다. 기뻐합시다. 고통이 있는 순간에도 기뻐합시다. 요한복음 16:33,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난가운데 담대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기쁨으로 기뻐하게 하십니다.
다 같이 하나님 앞에 기뻐하며 찬양합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이 옵니다. 온 땅에 교회의 영광이 가득할 그날, 그날이 올 때 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