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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기원과 정체성을 묻고 생각한다. 부록(하)
26. [周恩來 總理談 中朝關係] 북한중공(北韓中共) 대표 연석회의상에서 중국총리 주은래는 고구려 발
해 를 조선사로 인정하였다. 고구려는 물론이고 발해사도 조선사의 범주이다. (外事工作統報 1963년판)
이로 인해 1962년~1963년 중공과 북한 간의 대규모 고구려 발해 유적 공동발굴의 배경이 되였다.
한국사의 방어적 민족주의 왕조와 종족을 계통으로 삼는 동아의 특징을 고려해서 정치와 역사는 구별해
야 옳다.
[제국과 정의로운 국가 '600년간의 한중관계'] 저자 오드 워스타드 하버드교수는 '한국은 한번도 중국의
일부였던 적이 없다. 오히려 중국을 잘 콘트롤하던 유능한 나라였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보다 훨씬 일직
국가형태를 보인 나라였으며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올바른 나라였다. 청에대해서는 항상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청나라 역시 한국을 외국으로써 존중했다.
27. [황해대평원 수몰문명]신시 배달 대인국 군자국. 중앙국 청국국 진국이 이었던 수몰부로 보이며
청원군 출토 쌀농사 15,000년전 세계 최초. 장흥군 출토 신석기 세계 최초 20.000년전 . 제주 고산리이서
세계최초 1만수천년전 토기가 발굴되였다. 1만2천년전 고대 한반도 주위 황해지역이 대륙에 붙은 육지 였다.
지금의 서해(황해) 지역에는 말하자면 [고대 황해대평원]이라는 거대한 평야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평야의
가운데를 거대한 대강(大江)이 남으로 흐르고 동쪽은 한반도에 이어저 있었다.
한민족은 원래 스스로들을 [이]라고 많이 부른다. (그이 저이 가는이 아이)중국인들은 한민족을[동이(東夷)]
라 불렀다. 해 뜨는 밝은 땅이란 듯의 밝달>배달도 같은 뜻으로 불린 말이다. 이 대강(大江) 동쪽 지역에서
원주민과 초원에서 이동한 북쪽 유목인과 혼인동맹으로 이루어진 동이족이 배달국을 개국하여 환웅 천제가
삼신산에 신시에 도읍하고 중앙국 2천리를 통치하였다.
이 중앙국을 중국사서에 군자국으로 표현했다. 좌우에 분국을 두어 삼분할하고 주위 1만리 권역(만주~한반도
~중국남부)을 관할하였으며 언어가 같았다고 한다. 물이 들어찬것은 8천년전으로서 중앙국이 수몰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말미암아 수도를 발해 위의 홍산으로 옭기게 되였다. 이 시대의 흔적이 후세의 사서와 공맹 등
위인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순임금이 다스렸다는 1만리 군자국에 대하여 [태평어람] <괄지도>에 왈(曰) 군자
국 사람들은 칼을 찬다. 호랑이를 거느리고 누에로 짠 옷을 입는다. 사방천리로 무궁화가 많다. 서로 양보하여
군자의 나라라고 한다. 대극산 서쪽에 살며 채색한 염색옷(草服)을 입고. 만리에 통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상전벽해 桑田碧海]라는 고사성어가 갈홍의 신선전에 나오는데 한(漢) 환제(桓帝) 때, 신선 방평(方平)이 채경
(蔡經)의 집에 강림했다. 방평은 마고(麻姑)를 불렀다. 마고는 19세 정도로 쪽을 쪘는데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채색 초의(麻織) 무늬옷은 광채가 눈부셨으며, 그녀의 형태를 형용하기가 어려웠다. 마고는 지니고 온
음식물을 가져오게 했는데, 금 쟁반에 옥으로 만든 잔이었고, 음식은 모두 과일로 그 향기가 실내에 가득 퍼졌다.
「마고가 방평에게 말했다. “제가 신선님을 모신 이래로 동해가 세 번이나 뽕나무 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
다. 지난번에 봉래(蓬萊)에 갔더니 바다가 이전의 반 정도로 얕아져 있었습니다. 다시 육지가 되려는 것일까요?”
왕방평이 말했다. “동해는 다시 흙먼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성인들이 말씀하셨소.”麻姑謂王方平曰, 自接待以來,
見東海三變爲桑田. 向到蓬萊, 水乃淺於往者略半也. 豈復爲陵乎. 王方平曰, 聖人皆言, 東海行復揚塵耳.
동해(황해)의 수몰 사건! 이 신화에서 그 단서가 표현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대인국(大人國, 환웅 단군)은 태양을 숭배]
대홍수 이후 발해와 황해가 생기면서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동북을 선진인의 문명지대로 알고 있었다.
산해경에 이르기를 대인국(大人國)은 태양을 숭배하고 물가에서 배를 만드는 나라를 이르며 군자국(君子國)은
의관 대검을 하고 수어렵 농업이 풍부한 자연혜택과 도덕률이 있어 다투지않는(不爭) 나라를 말하고, 청구국
(靑邱國)은 군자국 조양(조선)에 있는 나라로서 많은 짐승과 과일 그리고 욕곡(浴谷醫藥)과 뽕밭(扶桑蠶缎)
아침에 피고 저녘에 지는 근화가 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자는 시경에서 군자국 대인국 청구국을 칭송하며
그곳에 살고 싶다라고 했다. 공자는 노(魯)에서 난 유가(儒價)성인으로 동이(조선)족의 후손이다.
28. [금문신고](장박군 저)/에 요하문명에서 발원한 홍산인이 중국 하남지방으로 이주한 세력이 고조선을 건국
했다고 기술하였다. 이 "삼국유사에서 환웅천황의 아들인 천자 단군이 bc2546년에 아사달 신시에서 조선을 건국
한 기록과 일치한다"고 [옴니버스 한국사]저자 이진우는 해설하고 있다. 1,500년 간 단군이 조선을 다스린 후 주
가 상을 멸한 bc1046년에서 역산하면 단군이 조선을 건국한 해는 bc 2546년이 된다. 단군이 조선을 세웠다는
삼국유사 기록 당요 50년(bc 2333년) 보다 213년 앞서 고조선이 건국된셈이다.
[금문신고에 단군조선 왕조]는 신농(bc 2517~bc 2474).소호금천(bc2474~bc 2467). 전욱고양(bc 2467~bc
2420). 제곡고신(bc2420~bc2365). 지( bc 2365~bc 2357). 요(bc 2357~2321). 순(bc 2321~bc 2311).
우(bc 2311~bc 2303). 백익(bc 2303~bc 2297).
홍산인은 도사(陶寺)ㅡ 석묘(石峁)-해현(섬서중원)으로 이동하며 전기 고조선(신농~ 백익)단군이 끝이나고 상
(商)으로 이어지며 후기고조선(요서조선ㅡ낙랑조선)으로 이었다.
DNA 조사결과 Mㅡ117하플로 석묘인 石峁人 (오르토스), 상나라, 부여. 고구려, 백제 인의 먼 조상으로 밝혀졌다.
석묘왕족 유골에 동전으로 생각되는 작은 패를 입에 물고 있음은 현대 한국의 장례 염 풍습으로 이해된다.
하조(夏朝)(契)(bc 2297~)(황하문명 개시)에 의해 백익 단군이 망한 후 수도를 옮긴 서조선은 요서 장단경 아사달
에서 408년 bc638년(동주 희공 22년)까지 존속한다.
29.[한서.지리지]<유주(幽州) 속군><어양 , 우북평. 요서. 요동. 현토. 낙랑군>에 기록된 650 리 이상 물길.
가. 어양군 어양현 750 리 고수
나. 우북평군 무종현 650 리 경수 / 요서군 작은강48개 총 3046 리, 동~서로 흘러 난수濡水로 합쳐진다
다. 요동군 망평현 1250 리 대요수. 라. 현토군 서개마현 2100 리 염난수
마. 낙랑군 탄열현 820 리 열수. 바. 우북평.요서.요동 3 개 군을 흐르는 백랑수
대요수는 청국 말 (1911 년)까지 약 2,100 년 동안 불렸고, 지금은 란하부른다. 즉 만주 요하와 구별된다.
사기 史記]<夏本記>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은 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라는 기록이 있다.
이 고대의 요서지역은 현 난하이서~베이징 부근을 말하고, 연과 후기고조선(기씨.위씨)및 낙랑의 소재지이고,
한(漢)과 충돌한 후, 우거왕을 제거한 낙랑조선이 한과 화친했다. 후한 이후 홀로 남은 낙랑은 400여년 지속 되
면서 중원및 연과 요동 부여 고구려 와 교류하고 때로는 교차 점령 등 이동이 잦으면서, 이 지역으로 스키티이
( 부여계), 흉노 선비계(연) 서북방 기마유목인이 융합하여 서방의 청동 철기마문명의 힘으로 새로운 시대의 동
북아 왕조가 건설되어였다. 즉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 등 4국시대를 열었다. 만주 요서지역 및 낭랑지역
은 4국이 태동하는데 많은 연관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실정으로 후대에 그 위치와 문화내용이 부정확하여
혼선이 있는 것이다. 고조선의 도성인 요서(노룡, 조양,아사달)는 홍산(요양, 장당경)과 평양(대동강)을 합해,
고조선의 3대 근거지이다. 우리 조상의 뿌리가 이곳과 인연이 있고 중국인과 여러차례 혼합되는 과정을 겪었다.
만주남부는 고구려 백제 발해 신라 뿐만 아니라, 요동이남은 신라를 이어 고려 초까지 이였고, 원대에 고려충선,
충목, 충정왕(1308~1376년)이 심양왕을 겸하여 요하유역까지 통치하였다.
[입당구법순례행기/圓仁저]입본 승려의 통일신라시대 당나라 순례기에서 산동 등주~양자강하류 양주에 이르
는 지나동해안 지방의 신라방(新羅坊)을 소개하는 문장에서 당나라 행정이 아닌 신라의 행정체계에 의해 다스
려지는 기록을 남겼음은 곧 신라가 대륙을 경영한것을 나타낸다. 장보고의 기록도 일정부분 왜곡 축소된것이
아닐까? 한다. 한반도 청천강 이남으로 신라와 고려의 영토를 축소 왜곡한 것은 시급히 복원돼야 한다.
30. [부여기마민족과 倭]/ 저자 코벨이 일본문화를 연구하다가 그 근원이 한국문화에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세계최초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고 발표했다. 그 증거로 요동성 근방 만주
지역에서 대량의 탄미(불에 탄 쌀)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 쌀이 동아시아에 발견된 인류최초의
것인 17,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고 DNA 검사결과 자연산이 아닌 교배종이란 것과 농사기술이 상당한 수준이
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일본천황 혈통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전 660년이 아닌 서기 369년
임을 밝히는 [부여기마족과 倭]라는 이 책은 미 사학자 존 카터 코벨이 쓴 책이다. 이 부여족의 야마토 정벌 과
정과 왕권 수립의 증거, 일본에 남아있는 한국문화의 흔적, 한국이 일본에 전한 영향, 일본의 역사왜곡 등을 다룬
62편의 칼럼이 수록돼 있다. 코벨 박사는 "중동이 세계문제의 중점이라고 보지 않는다. 동아시아 문제야 말로
중요한 것이며 한국은 거기서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31. [시경]상송(商頌) '天命玄鳥 降而生商'은 '천조의 정기를 받아 상(시조 설)이 태어났다'. 현조(玄鳥)는 제비
또는 까치이다. 성언(醒言)에 상이 현조에 의해 탄생한것과 같이 청의 시조를 늙은까치(누루하치)라 했다. 상(商),
진(秦)시황, 연(燕), 청(淸)과 같은 북방계 조상은 모두 현조의 신화와 관통한다. 즉 동이(고조선족)인것이다.
[서경] [우서 순전:書經, 虞書 舜典]에 '순이 마침내 동후(단군천제)를 뵙고 천문팔궤 태음력 도량형 5기(器) 5례
악을 익히고 근례를 올리고 돌아오다.' 라는 문장을 중국의 역사에서는 지난 2천년간 순이 동방의 제후를 돌아보
고 천문 도량형 예악을 전했다고 뒤집어 왜곡하며, 그때의 선전국 단군 천제를 제후로 격하 왜곡하여 고조선을 지
워버렸다.
주: 문장중 사근동후 (肆覲東后)의 참뜻 <사(肆)>: 마침내 . <근(覲)>: 신하가 천자를 뵙는 례 =근례(5례의 하나)
는 제후가 옥을 천자에게 바치고 직접 천자를 만나는 예절을 말함), <동후(東后)>:서경속의 동후는 천자를 호칭함,
즉 동방의 천자(단군 천제)로 서경 전체 문장에 나타난다. 이 내용은 단군조선의 실체와 부루태자를 순에게 보내어
실체를 들어낸 중국측의 공식 문헌에도 나타난다.이매림 저 서경에 기록된 후 2,000년 만에 순에 대한 사근동후의
실체 논문에 계재.
32. [동국정운東國正韻]저자 申叔舟는 산스크리트어(범어)어원으로 한자를 해설한 책이라고 강상원박사는 고찰
하고 있으며 이 음운들이 한글 창제에 쓰였다고 한다. 즉 우리말이 산스트리스어 음운을 어원으로 하기 때문에
한글의 글 모양을 형성할때이 음운을 적용했다고 한다. 한자는 동이족이 창제한 것이며 한자 뜻을 알려면 조선어
(범어)로 만 해석이 가능하다.
33. [조선 동이 문명기원 사략]에서 강상원 저자는 [잃어버린 무대륙-처치워드 저]를 인용하여 조선족의 기원을
수만년(3~5만년) 전 태평양에 있던 무(巫)제국에서 부터 찾는데, 화산 지각변화로 수몰되면서 6천만명이 몰살하
고 주변에 흐터저 고산지대인 네팔을 지나 파밀고원에서 마고문명 환국(桓國,판찰라스)을 세운것이 동이족의 시
원이라고 하였다. [부도지-박제상]에 환국이 소개되는데 그 맥락이 같음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한다.
東夷族(동이족)은 통이(Tong+i)로 '모든 것을 석권한' 민족으로 번역되며 옥스포드 사전에 꾸루(KURU)로 실려
있다. 꾸루(Kuru)는 구리, 구려, 고구려, 고려 등 동이족이 살아 왔던 땅을 꾸루(Kuru,고산족)라고 하였다. (高句
驪, 高麗)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수물한 무우(Mu)대륙의 존재와 고산지역 파밀에 기원한 환국(桓國.판찰라스)은 실존했던
것이며 동이의 어원과 실체가 파헤쳐 지고 있다.
<플라톤의 '아트란티스'를 연상하는 미스테리이다>
1만여 년간 지속한 마고문명 시대의 환국 (판랄라스)은 기후변화에 따라 산악도시(아사달=방어성벽의 도성)에서
동방으로 내려와 요녕(홍산) 지방으로 이동하여 동이족의 신시(아사달)를 건설하였다. 이때가 8~5천년 전이다.
<朝鮮과 韓의 梵語 語源>朝鮮=Khai Lasa, Pancalas(波奈留之國/符都志). Sumeru(須嵋山 生命山 Lotus Seed
Veloer). 朝鮮語(범어,산스크티트어)는 Mu(巫)대륙 ㅡ> Anhcor Vat ㅡ>파밀고원(마고문명) ㅡ> 홍산문명 순
으로 이어젔다.
* 朝=조, 됴, Di yo ta(됴타) 불 디(di)피다. 태양이 비추다(밝다). 朝鮮 즉 '아침의나라'.
* 韓=한 위대한 으뜸 ㅎ한 kha+n 태양의나라 (grand solar county state)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단군조선이 건국된것으로 보는것이다.
토템(대동계 大同契 곰토템 새토템). 아사달(산성형도성) 신시, 솟대(蘇塗 제천 왕의 신령스런 곳) 등이 홍산에서
집중 발굴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신화로 전하고 있는 동이족의 문화이다. 스메르문명도 파밀(마고문명)문명에서
갈라저 서쪽으로 이동한 동이족이 그곳 토착인과 합세하였다고 한다. 이로 보아 태고대에 동이족이 사용한 산스
크리트어는 동서언어의 뿌리가 됐다. 지금 영호남에서 쓰는 사투리는 이 산스크리트어원이 존속되고 있는 세계
유일 언어이다.
인류 최초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의 신비스러운 어원의 의미는 한국인만이 풀수있다고 강상원박사는 주장한다.
태고의 고서에 난해한 신화와 전설 그리고 서양학자 연구에 의해 밝혀진 태평양에서 수몰한 무대륙에서 살아남은
지능인(산스크리드어. 범어)의 일단이 고산지로 이동하여 파밀(앙크로르바트->히말라야네팔->파밀고원)에
정착하였고, 이들은 인류 최초의 태고문명을 열었다고 한다. 이후 사방에 흐터지니 서쪽으로는 스메르문명을,
동북에는 홍산문명을 개창하였다.
가. 태고의 고산족인 파밀의 마고(북두성)문명은 환국을 건설하여 도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강역에 환인천황의
도덕정치를 베플었다. 신화같은 내용이지만 산스크리트 어원의 해석과 유적의 고증 연구 대상임을 인정해야한다.
나. 환국에서 인구가 많아지니 환웅천자에게 3천의 무리(풍사 우사)를 이끌고 태백산(홍산? 백두산?)에 이르러
신단수 아래 배달국을 세웠다. 환웅은 천손과 원주민 예맥족이 동맹하여 동이족을 탄생시킨다.
다. 동이의 배달 환웅은 '하늘이 기르는 정치'의 창시로 제세이화 홍익인간의 도덕정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단군이 조선을 건국케 하고 아사달에 도읍하였다. 조선은 비로서 강역의 경계(국경)를 세웠으며 동북아 최초의
국가가 성립되였다. 이 강역은 산해경(조선의 지리서)에 그 개략을 신화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은 통치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3한(韓)의 분할경관제를 시행하였다. 이 삼한은 신석기이후 청동 철기시대의
진입과 함께 무력이 주어지는 병권이 생겨 열국으로 분활하며 전기조선은 끝을 맺는다.
34. [아시아 이상주의] 이홍범 펜실바니아대 교수 저서
2차대전이 끝났는데도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식민지 유산을 극복하지 목하였다.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그외국에 있는 대다수의 한국전문가들은 식민지 유산의 덫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한국 사학자들이
이병도의 지도를 받으며 학업을 닦았끼 때문이고, 고대 한, 중, 일의 역사자료를 찾아내고 읽는것이 매우 어렵고
골치아픈 과제였기 때문이다.
'[魏書]에 따르면 고대의 한국인들이 중국과 아시아를 통치하였다.' (아시아 이상주의 13P참조)
1만 년 전 고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문명의 창시자는 한민족이다.
세계 강대국들은 공통적으로 자기만족의 역사정신을 확고히 세워 전국민들을 단결시켜 번영을 누려왔다. 19세기에
있었던 동학농민운동과 태평천국운동이 찬란한 문명을 이뤘던 고대 한국(東夷) 이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은 사대주의와 식민사학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한국의 고대사와 근대사 모두 그 진실을 알 수
없게 되었음을 한탄한다.
35. [고려전기의 강역]은 요령(철령)~선춘령 이남과 한반도까지 5000리 강산
[고려사]에 시무 28조(최승로,권93열전 권제6 제신)가 있었고, 고려강역의 서북은 융적에 접하여 방수할 곳이 많고,
고려는 마할탄으로 경계를 삼았고, 압강(요하)변 석성을 경계로 삼은것이 거란의 뜻이였다.(당시는 압록이 요하를
뜻하였다)
고려 초 10도 12주, 관내 중원 하남 영남 영동 산남 해양 삭방 패서도 580주군으로 매우 성했다(고구려는 310성 이
였음) 현재 한국사에는 5도 양계로하여 남한 청천강 이남으로 축소하였음.(동북으로는 고구려보다 넓고. 서북은 작
다라는 표현이있다). 고려 태조 때(951년) 요주(요서)를 거란이 임의로 찾이한 것이 고려와 국경 갈등의 시작이다.
고려초기 수도는 요녕 봉황산성 개주(開州)이다. 이곳은 1011년 고려 현종 2년 때 거란이 침공하여 궁궐을 파손하
고 돌아갔는데, 현종이 1016년에 왕건의 재궁(헛관 즉 거란이 궁을 훼손) 을 개경(개성)으로 옮긴다. <고려사 세가
선종 5년. 1088년>에 거란에 의해 또 한번 요하 서방은 거란령으로 그 동쪽은 고려 땅으로 한다하여 고려의 대릉하
지역은 거란에 넘어갔다.
1019년 강감찬의 귀주대첩도 이때 요동 귀주에서 벌어진 전투로서 거란을 힘으로 밀어낸 역사이다. 또 거란과 서희
의 담판으로 귀결한 강동 6주편입도 이 요녕지역이다.(한국사에는 귀주 대첩. 강동6주를 한반도로 위축하고 있음은
왜곡이다). 12세기 초 예종이 윤관을 시켜 거란이 공략할 때 동여진을 진압하고 선춘령까지 국경을 정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전반기 고려강역은 요령(철령)-선춘령 이남 5,000리 강역 한반도에 걸친다.
<조선왕조 실록>1481년(성종12년)에 남원군수 양성지가 중국이 개주성에 위(衛)를 설치 하려한다는 상언을 한다.
개주 봉황산이래 성은 험한 요새로 1인이 만명을 당해낼수 있는 요새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사 세가 태조편] 고려태조는 건국 최후 전투인 후백제 일리천 전투에 장군 유금필 통솔하에 흑수, 달고, 철륵
등 제번(諸蕃)의 기병 9,500을 동원하고 있었다. 일리천 전투 총 85,000기병 50,000 중에 만주지역의 제번 기병이
9,500이 포함된것이다. 고려는 북방 부족에게 기미주를 설치하여 간접지배하였고, 여진족들은 고려 군현으로
편입하기를 앞다투었다고 한다.
[이승휴 제왕운기]에는 '대금황제가 고려황제에게 보낸다'라는 금 황제의 친서를 고려에 보내왔다고 쓰고 있다.
고려는 황제칭호를 쓰면서 요, 금, 송에 대등하게 해동 황제국으로 대우 받았고, 후기에 몽골침공으로 제후국
대접을 받게 되였다.
성리학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제후국체제를 고수한 조선초의 관료들은 고려사를 편찬하면서 황제나 천자를
지칭하는 표현들을 삭제해 버렸다.
[흠정만주원류고 권9 강역 신라9주]신라 9주의 설치는 동으로는 길림 서쪽으로 광릉에 이르고 해주와 개주를
지나 조선을 포함하는 것으로 폭과 넓이가 광대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935년) 멸망 이후 짧은시간 안에 만주에서 금(신라인)을 건국할수 있었던것은 신라인의 분포가 만주에 존재
하여 그 세력이 협력하였기 때문이다. 금의 왕실은 발해유민과 혼인동맹을 하고 장호(張浩)(동명왕후손 고씨이다)
와 같은 발해인이 금의 건국에 협력하여 대제국 경험의 기틀을 잡는데 협력하였다.
금에 대하여 송나라에서는 이지역을 신라로 칭하면서 금(여진)을 신라의 예법으로 상대하였다고 한다.
발해는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유민이 세운 나라이고, 신라 멸망후에는 만주에 남았던 신라인과 남에서
이동한 신라유민이 합하여 세운 나라가 금(金)이다. 통일신라때 발해가 남북국이 듯이 고려때는 금이
남북국시대로 이었다 할수 있다해야 하지 않을까? 후에 청(淸)은 안되더라도.[금건국과 발해유민 김위현]
36. [열하일기(熱夏日記)-도강록편(渡江錄編)박지원 저]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한나라의 요동에 두었던 낙랑군치(樂浪郡治)는 그 자리가 오늘의 평양이 아니요 요양의 평양이다. 왕씨의 고려시대
에는 요동과 발해 전역이 한꺼번에 거란에 들어가고 보니 겨우 자비령(慈悲嶺)·철령선(鐵嶺線)을 그어 국경선으로
삼았고 선춘령(先春嶺)·압록강마저 다 내다버려 돌아다보지도 않았으니 그밖에 땅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비록 안
으로 삼국을 통일했지만 그 강토와 무력은 고구려의 강대함에 멀리 미치지 못하였거늘 후세의 곡학자들은 평양의
옛 명칭에만 마음이 쏠렸고 함부로 중국의 사전만 등을 대고는 수 · 당의 구적에 정신이 팔려 여기가 패수다 여기가
평양이다 당치도 않는 수작이다.
당서에 보면, 안시성은 평양서 거리가 5백리요, 봉황성은 또한 왕검성(王儉城)이라 한다 하였고, 지지(地志)에는
봉황성을 평양이라 하기도 한다 하였고, 또 옛날 안시성은 개평현(蓋平縣: 봉천부(奉天府)의 동북 70리에 있다 하
였으니, 대개 개평현에서 동으로 수암하(秀巖河)까지가 3백 리, 수암하에서 다시 동으로 2백리를 가면 봉황성이다.
그러므로 만일 이 성을 옛 평양이라 한다면, 당서에 이른바 5백 리란 말과 서로 부합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선비들이 이러한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漢四郡)을 죄다 압록강 이쪽에다 몰아넣어서, 억지로 사실을
이끌어다 구구히 분배하고 다시 패수(浿水)를 그 속에서 찾되, 혹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고, 혹은 청천강을 ‘패수’
라 하며, 혹은 대동강을 ‘패수’라 한다. 이리하여 조선의 옛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36-2. [규원사화] 저자 북애자 (조선숙종1795년) 이름이 미상인 것은 당시 수서령(금서)으로 문제가 될것을 피한것
으로 보임. 다음과같은 문장이 있다.
"내가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 이르러 통구정에 올라 요동평야를 바라보니 나무와 구름이 손짓하고 부르면 대답할만한
거리에 머믓거리고 있는것 같았다. 마약 한줄기 압록강을 건너가면 벌써 우리의 땅이 아니다. 슬프다. 우리조상이 실던
옛강토는 남의 손에 들어간지 이미 천년이요. 그 해독이 날로 심하니 옛날을 그리워하고 오늘을 슬퍼하며 안타가움을
금할수 없구나. 우리나라의 나라의 경사가 여러번 병화를 입어 흐터지고 사라진바 되였으니 그러다가 후세에 고루한
자들이 중국책에 빶어 주나라를 높이고 사대주의만 옳은것이라하고 먼저 근본을 세워 내나라를 빛낼줄 몰랐다.
고려이후 조공 바치는 사신을 보내기를 수백년이 되였것만 이것을 한탄하지 않다가 졸지에 청을 불구대천지 원수라고
하니 이는 무슨까닭인가? 만일 내게 장수를 누리게 된다면 이 국사를 완성하는 선구적 역할을 할터인데 슬프다.
후세에 만일 이책을 잡고 우는사람이 있다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 한국(인)의 기원과 정체성을 묻고 생각한다. 부록(하)|작성자 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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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의 한국의 상고사 찾기] 이을형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우실하
[환단고기는 결코 위서가 아닙니다] 이기동
[上古史의 새發見] 이중재
[밝혀질 우리 歷史(東夷민족사)] 오재성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박창범
[한국,한국인의 재발견][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윤명철
[요하 유역의 청동기문화와 고조선] 백종오
[김진명의 한국사x파일] [천년의 금서] [글자전쟁] 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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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뿌리와 단군조선사]김영주
[四庫全書로 조명하는 한국상고사의 실체] 심백강
[桓檀古記] 桂延壽-李裕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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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인)의 기원과 정체성을 묻고 생각한다. 참고 문헌 목록|작성자 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