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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 아담 스미스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지난 17일 밤, 쇼트트랙의 최민정 선수는 1500m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온 국민에게 기쁨과 감격을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최 선수는 500m에서는 준준결승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탈락했고, 1000m에서는 결승선 통과직전 네덜란드 선수가 팔로 가로막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쳤습니다. 하지만, 이번 1500m에서 그 두 종목의 우승자를 추월해서 결승선을 통과함으로써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40억 명 정도가 낯선 이를 돕고 있습니다. 23억 명이 보육원에 기부하고, 16억 명 이상이 자원봉사를 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이도 있습니다.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는 와중에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하고자 애쓴 비유대계 사람은 2만7천명이 넘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부터 자선활동을 펼쳤습니다.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돈과 상품 등을 제공받아서, 몸이 불편한 이들의 양식을 구입하고, 참전 군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했습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공공사업에 참여하게 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자, 낯선 이들을 도울 방법이 더 많아졌습니다. 198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한 대기근 뉴스가 전해지자, 아일랜드의 음악가인 ‘밥 겔도프’도 집에서 그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는 동료들을 모아 자원봉사밴드를 결성했고, 그들과 노래를 발매해서 1천 달러 이상의 수익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익으로 기근 구제를 도왔던 것입니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더없이 이기적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들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설사 다른 이가 행복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 외에는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스위스 은행가 ‘뒤낭’이 유럽 12개국 국가를 설득해서 ‘국제 적십자위원회’를 설립한 것도, 이탈리아에서 부상병을 도운 평범한 시민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부상병들의 상처를 닦은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음식과 물을 제공했습니다. 뒤낭은 그 시민들이 한 말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형제다”(출처; 좋은생각, 이은애 기자)
세계인구가 78억인데, 그 중에서 40억이라면 반수가 넘는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남을 도와가며 사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남의 돈을 빼앗으려는 사람들도 적잖지만, 그래도 도와가며 사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겁니다. 뉴스를 들어서 아시겠지만,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의 사주(社主) ‘일론 머스크’가 자선사업에 약 57억 달러(약6조8천200억 원)를 기부했다고 합니다.(물맷돌)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재산이 넉넉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걱정 없이 웃으며 살아갈 수 있고, 못된 짓 꾸미며 살던 자가 죽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환성을 올린다.(잠11:10,현대어) 우리는 이웃을 기쁘게 하여 서로 유익하게 하고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롬15:2,현대인)]
배추김치는 심장건강에 특효가 있다
샬롬! 밤새 안녕하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채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채식으로 건강을 지키려면 다음사항을 지켜야 한답니다. 첫째: 인스턴트식품을 줄여야, 둘: 충분한 칼로리 섭취, 셋: 더 완벽한 영양설계, 넷: 소화력이 부족한 노인에겐 무조건 채식이 위험하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장병 전문의(專門醫) ‘윌리엄 데이비스’ 박사는 ‘김치전도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각종 인터뷰를 통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라면서 “한국에서 매끼마다 먹는 전통적 발효음식인 배추김치는 심장건강에 특효가 있다”고 설파합니다.
심장병은 미국에서만 매년 7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심장마비환자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은 ‘관상동맥질환’입니다. 데이비스 박사에 따르면, 이런 심장질환의 가장 결정적 위험인자 중 하나는 음식입니다.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의 과다섭취’는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관 내 퇴적물 축적’을 유발해서 동맥건강상태를 해칩니다. 게다가 고혈압, 운동부족, 당뇨병, 과체중이 더해지면 추가위험변수가 됩니다.
이런 경우, 김치는 건강한 장내 박테리아의 생성·번식을 도와 심장혈관계 질병인자위험성을 낮춰줍니다. 건강한 심장을 유지하려면, 김치처럼 심장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자주 운동을 하고, 가능한 한 스트레스를 줄이며, 충분한 양질의 수면을 취하고, 체중관리를 하면서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춰야 한다고 합니다. 데이비스 박사는 “김치를 한두 번만 먹어도 심혈관질환을 예방해준다고 할 수는 없어도, ‘김치를 비롯한 발효식품을 포함시키면 위장과 심장의 건강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단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출처; 윤희영의 News English, 윤희영)
이토록 좋은 음식인 김치를 개발하여 물려준 우리 조상님들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 중에는 김치를 싫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어서 염려가 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우리 몸에 이롭지 않은 ‘기름지거나 달콤한 음식’을 선호한다는 겁니다. 부모님들이 자식의 음식취향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할 듯싶습니다.(물맷돌)
[남을 속여서 얻은 것이 맛있는 음식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얼마 안 가서 입 안의 모래와 같을 것이다.(잠20:17,현대인)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먹도록 식욕을 주시고 그것을 소화시키도록 위장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먹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먹는 것을 중요한 일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위장도 음식도 다 없애 버리실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6:13상, 현대어)]
모태솔로에서 벗어나려면?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도 ‘아무 탈 없이 건강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인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코로나에 걸리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빌어마지 않습니다. 요즘 취업준비생들이 쓴소리와 잔소리를 해주는 유튜브 동영상을 매일 찾아본답니다. 예컨대, “내일부터 열심히? 그러다가 평생 못해요!”와 같은 소리를 듣고서 마음을 다잡는다는 겁니다.
많은 청춘이 모태솔로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소개팅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애에 서툴수록 연애를 결혼의 선행 활동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개팅에 나가는 날부터 상대방과의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소개팅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가 없을 뿐더러, 그 자리에서도 즐기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연애상대를 배우자감 고르듯 신중을 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직업뿐만 아니라 연애마저도 안정지향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런 유형이라면 ‘꼭 커플이 되지 않아도 좋아. 좋은 사람을 알아두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이성(異性)을 대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심이 깊으면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법입니다. 매력은 자신이 편안한 상태일 때 발산되는 것이고, 상대 역시 이런 모습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한창 연애할 나이에 결혼을 목표로 이성과 만나면 ‘미스매칭의 비극’이 일어납니다. 상대의 조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외모나 매력이기 때문입니다. 30대 초중반 여성들도 입으로는 결혼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좋아하는 남자는 강동원이나 조인성처럼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스매칭(짝맞춤 실패)의 비극입니다. 혹시, 지금 미스매칭의 비극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자문(自問)결과, ‘매력적인 사람과 데이트하고 싶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때는 심장(속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음에 결혼상대로 괜찮은 사람이 왔을 때, 뒤돌아보지 않고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배우자를 원한다.’는 답이 나오면, 그땐 ‘확 끌리지 않아도 이 정도라면 함께 살아도 괜찮겠다.’는 사람을 선택하면 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서대로 오듯, 연애와 결혼도 순서가 있습니다. ‘연애는 몽땅 생략, 결혼은 한 번에 성공’,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 번 연애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런 사람과 결혼해야 행복하겠구나!’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고, 거기에 준하는 사람이 만두같이 생겼어도 결혼할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정신과전문의 유은정 박사)
요즘 우리 주변에는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처녀총각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줌을 통한 중매’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아침편지’ 하나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시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결혼해서 가정을 갖는 일’은 그냥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물맷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것과 ‘남자는 그의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다.(마19:4-6)]
“분골로 할까요, 분쇄로 할까요?”
샬롬! 지난밤 잘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지난 2월 4일은 ‘세계 암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3월 21일은 ‘암 예방의 날’입니다. 암은 ‘예방이 최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국제암연구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암 사망의 30%는 흡연으로, 30%는 음식물(음주포함)때문에, 10~20%는 만성감염이 그 원인이랍니다.
얼마 전, 저는 두 곳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한 분은 ‘돌아갈 곳을 알고 있던 분’이고, 다른 한 분은 ‘돌아갈 곳을 모르던 분’이었습니다. 두 곳의 장례식 분위기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례식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유가족을 위로할 특별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례식에는 소망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천국에 대한 소망의 말들을 주고받았습니다.
두 장례식을 다녀온 후, 저는 다음의 말씀들을 묵상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한 번은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히9:27,쉬운성경)” “네가 아직 젊었을 때, 네 생명의 은줄이 뚝 끊어지고 금그릇과 같은 네 머리가 깨어지기 전, 네 목숨이 우물가에 놓인 항아리같이 깨어지고 샘의 두레박줄처럼 끊어지기 전,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전12:6,현대어)”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는 날이라? 사실, 저는 이 말씀이 우리 몸이 산산이 깨어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한 말씀인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번 장례식에서 고인의 몸이 화장터 화구로 들어가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순간, ‘철커덩’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면서 닫히는 화구문을 바라보면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우리가 평생을 은줄처럼, 금그릇처럼 아끼던 우리의 몸이 깨지는 것이구나! 항아리 같던 우리의 몸이 깨지고, 바퀴처럼 의지했던 우리의 몸이 깨지는 것이구나!’
그때, 화구 앞에 서 있던 직원이 감정을 거두어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몸이 작으면 2시간 정도 걸리는데, 고인의 몸이 커서 3시간 이상 걸립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분골로 할까요, 분쇄로 할까요?” ‘이런 결정까지 해야 하는구나!’ 유족들의 눈에서는 또 한 번 눈물바람이 일었습니다.(출처; 빛과 소금, 홍애경/저서 ‘오늘도 만나를 줍는 여자’)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저를 성장시키고 있었습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가요?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두부를 얼려 먹으면 단백질이 6배 더 많아진답니다. 아시다시피, 두부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고, 항암효과와 스트레스 완화효과까지 있습니다. 얼린 두부는 상온에서 해동하거나 전자레인지에서 3~4분 돌려서 조리하면 된다고 합니다.
육아를 시작할 무렵, 저의 머릿속은 ‘어떻게 해야 이 녀석을 잘 기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뿐이었습니다. 책은 기본이고, 각종 정보를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렸습니다. 혹 제가 잘못하거나 놓치는 것은 없는지, 조바심과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낮에는 녀석과 한바탕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면 잠든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스스로를 책망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쌓이자, 어렴풋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저를 성장시키고 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스승을 찾아서 사막을 헤매던 인생이, 사실 스승은 늘 제 곁에서 함께 하고 있었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육아’라는 단어에 의문을 가진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은,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아이를 기다리고 격려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주변을 살피고 수풀을 헤치며 한 발짝 한 발짝 스스로 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때문일까요? 오랜 기간 아이들이 보는 잡지에 그림을 연재하면서도, 비슷한 고민이 따라다녔습니다. ‘얘들아, 이러이러한 것은 잘못된 거야. 몰랐지? 우리가 가르쳐 줄게’라는 태도로 아이들에게 내용을 전달할까 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살아가다가 어떤 잘못된 것들을 접했을 때,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을 때, “그거 문제 맞아!”라고 넌지시 손잡아 주는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켜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연대(連帶)’가 아닐까요? ‘육아(育兒)’가 아니라, ‘함께 성장’의 시간을 보내온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길 소망합니다.(출처; 좋은생각, 김규정/그림책 작가)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에 와서 ‘아버지학교’와 ‘어머니학교’가 생겨나고 있지만, 전에는 그런 교육도 받지 않고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격다짐으로 자녀를 키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미 때를 놓친 사람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이제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부모 될 준비’를 해야 하리라 봅니다. ‘자식 키우는 일’보다 더 큰 애국은 없기에 말입니다.(물맷돌)
[여러분은, 내가 오늘 증거한 이 모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전하여 이 모든 율법의 말씀을 지키며 살게 하십시오.(신32:46,현대어) 자녀들을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또, 잔소리를 늘어놓아 반항심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품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훈계와 조언과 충고로 키우십시오.(엡6:4,현대어)]
“당신들은 매일 김치를 먹는다던데, 지겹지 않으신가요?”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2월 들어 두 번째로 맞이하는 주말 아침입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지난번에 ‘고구마는 우리 몸에 보약과 같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만, 그러나 당뇨환자에게는 적(敵)이랍니다. 고구마는 식이섬유도 풍부하지만, 혈당을 올리는 ‘당질’도 많답니다. 140g 고구마 한 개에는 공기밥 2/3의 당질이 들어있답니다.
유학시절, 제가 살던 4층짜리 학생아파트에는 8가구가 모여 살았습니다. 1층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유학생가족, 2층에는 일본유학생가족, 3층에는 칠레에서 온 목사님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은 4층에 살았습니다. 우리 집 맞은편에는 중국, 독일, 미얀마, 나이지리아, 캐나다 등에서 온 미혼여학생들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특히 우리 앞집 여학생들은 언제나 밝고 쾌활했습니다. 아침 등굣길에 현관문을 열고 마주치면, 마치 오랜만에 만나 가족을 대하듯, 활기찬 목소리로 저와 우리 아이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습니다.
약 4년 동안 날마다 외국인들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각 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와 습관을 가까이서 피부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4층에 살고 있었지만, 중국 여학생이 귀가할 때는 1층에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우리 집까지 들렸습니다. 2층에 사는 일본인 친구의 목소리는 언제나 몸을 기울여 들어야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인도에서 유학 온 목사님 댁을 지날 때면 언제나 카레 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어느 날, 저는 “목사님, 매일 카레를 먹으면 지겹지 않으세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당신들은 매일 김치를 먹는다던데, 지겹지 않으신가요?”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먼저 질문을 던졌던 제가 머쓱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어서 사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와 우리 가족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어지간히 채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기대와 흥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출처; 가정과 건강, 박재만 편집국장)
어쩔 수 없는 추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점점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니,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막을 길이 없는 겁니다. 제일 염려스러운 것은 이슬람 사람들이 다수가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장차 우리의 순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외국인 차별은 없어야 합니다.(물맷돌)
[주님은, 고아와 과부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주시고, 여러분과 함께 사는 외국인들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외국인들을 잘 대우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애굽 땅에서 외국인으로 생활하였습니다.(신10:18-19)]
그 한(恨)이 부활의 의미 앞에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결심하는 것이 금주(禁酒)라고 합니다. 금주했을 경우, 다음과 같은 몸의 변화가 있답니다. 하나; 지방간 수치 감소, 둘; 숙면, 셋; 맑은 정신, 넷; 피부변화, 다섯; 체중감량, 여섯; 기억력 향상, 일곱; 혈관질환 예방(출처; 마음건강 길)
“신영애 환자 보호자님, 지금 빨리 오셔야겠어요.” 새벽 3시 반에 울린 병원전화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어머님의 임종이 다가왔음을 알았습니다. 얼른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4개월 전부터 전화기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중이었습니다. 그 4개월은 저에게 극심한 우울과 고통을 안겨주었고, 삶의 의지를 다 떨어뜨렸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새벽, 제가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두신 어머니의 육신을 마주했습니다. 피부가 상하고 연약하게 말라비틀어진 그 육신의 흔적 앞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장례식장 앰뷸런스가 오기까지 2시간 넘게, 어머니의 육신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사랑해요!”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영혼의 대화는 고요한 중에 비언어적 요소로 계속되었습니다. 생명이 다한 어머니의 몸에 마지막까지 감도는 따뜻한 온기는 목 뒷부분에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목덜미에 손을 넣고 기도했습니다. 곧 앰뷸런스 차가 오고, 어머니의 몸이 실리자,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1997년 11월 27일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서 7개월, 집에서 7년, 다시 병원에서 13년, 어머니는 만 20년을 식물인간상태로 계시다가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자리에서 ‘부활’을 묵상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진 날과, 그 후 돌아가신 날, 저는 가장 무력했습니다. 그 무력함의 고통에서 마음 깊숙이 파고든 것이 부활의 의미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자리에서 묵상하는 부활만큼, 강력한 전달은 없을 겁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보내드려도 한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한(恨)이 부활의 의미 앞에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내게 그 순간의 부활은 세상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위로였고 희망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천국시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보배로운 선물이었습니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고 경험했기에 천국의 예배가 가능했고, 장례식은 부활을 소망하는 가장 영적인 예배였습니다.
어머니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무수히 애써온 아픈 사건과 시간들은, 결국 부활을 깨달으면서 유익으로 변모되었습니다. 부활과 천국의 메시지가 없다면, ‘고통이 가득한 인생에 참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 이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일시적으로 치유가 되었습니다.(출처; 빛과 소금, 황교진/작가)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부활이 있기에 ‘삶의 의미’도 있는 겁니다. 농부는 ‘마당에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나락’을 보면서 일 년간 수고한 보람과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한 해 농사지은 결과가 마당에 쭉정이만 가득하다면, 그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물맷돌)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죽은 자 가운데 계시다면, 우리가 전한 것은 다 허상에 불과하며,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릴게 아닙니까?(고전15:14,현대어)]
‘해법(解法)은 고난보다 많다. 해법은 늘 있다!’
샬롬! 오늘도 새아침에 인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동계올림픽 소식을 들으면서 ‘중국이 덩치 값도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곤 합니다. 혹시, 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제는, ‘고구마가 우리 몸에 보약과 같다’고 소개했는데, ‘고구마를 껍질째 먹되, 낮 12시 이후를 피하고, 군고구마도 피해야 한다.’고 합니다.
중국 시골에 사는 50대 남자 ‘자원치’는 세 살 때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릴 적 친구인 ‘하이샤’는 채석장에서 사고를 당해서 두 눈을 잃었습니다. 하이샤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만 생각했습니다. 그때 자원치가 하이샤에게 찾아가 “나는 두 팔 없이 50년을 살았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의 눈과 팔이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 고향 산에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기로 했습니다.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했습니다. 하이샤가 자원치의 텅 빈 옷소매를 잡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이샤가 묘목을 붙들고 있으면, 자원치가 얼굴과 어깨 사이에 삽자루를 끼워 흙을 메웠습니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습니다. 첫해 800그루를 심었으나, 두 그루만 살았습니다. 그러기를 15년, 민둥산에는 나무 1만 그루가 자라서 울창한 숲이 되었습니다.
EBS에서 방송한 ‘나무와 두 남자’를 보면서,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의지에 감탄한 나머지 경건해졌습니다. 압권은 두 사람이 국수를 끓여먹는 장면이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남자가 젓가락으로 냄비에서 국수를 건집니다. 국수 가락이 미끄러져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헛젓가락질을 합니다. 보다 못해 ‘팔 없는 남자’가 말합니다. “이리 줘 봐, 내가 할게!” 그가 발가락에 국자를 끼워 국수를 건집니다. 눈 먼 남자는 그릇을 더듬어 국수를 먹고, 팔 없는 남자는 고개를 숙여 먹습니다. 하이샤는 말했습니다. “우리끼리 늘 하는 말이 있어요. ‘해법은 고난보다 많다. 해법은 늘 있다’는 거죠.”
이 다큐를 보면서 처음 갖게 된 생각은 ‘저런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팔다리가 멀쩡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금세, 이런 생각이 ‘장애는 열등한 것’이란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누가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얻었다고 해서 ‘그가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장애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나쁜 일이고 뒤처지는 것이며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두 팔이 없는 남자와 두 눈이 안 보이는 남자가 나무를 심고 숲을 가꿉니다. 한 남자는 숲을 바라보면서 웃고, 다른 남자는 나무들을 안아보면서 웃습니다. 이들에게 ‘장애를 이겨낸 사람들’과 같은 수식은 너무 진부합니다. 다만, 어떻게든지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해지겠다.’는 인간의지, 그 위대한 불굴의 정신을 이들에게서 보았습니다. 더디어도 좋습니다. 한 발짝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출처;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한현우 기자)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물맷돌)
[예수께서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시려는 것이다.(요9:3)]
위로의 예수님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사위 부스 터커가 시카고의 한 집회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긍휼에 대한 터커의 설교를 듣고 많은 회중들이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단상을 내려오는 터커에게 한 남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가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라 듣기 좋은 소리를 잘도 하는군요. 나처럼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매일 우는 두 자녀를 두고 있어도 과연 그런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도 모르면서 쉽게 말하지 마세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난 뒤 며칠 있다 터커의 아내가 기차 탈선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드려진 예배에서 터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며칠 전 집회장에서 누군가 저에게 아내를 잃는다면 예수님의 긍휼에 대해서 설교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만약 그분을 만난다면 저는 꼭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내 가슴은 찢어지게 아프지만 여전히 예수님은 저를 위로하시고 긍휼의 마음을 주신다는 사실을요.”
예수님은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막아주시는 분이지만, 뜻이 있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시며 항상 내 옆을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상한 심령을 위로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절망에서 일어나십시오. 아멘!!
주님! 이웃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공감하며 기도할 줄 아는 성도되게 하소서.
고통과 슬픔 중에 있는 사람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위로와 격려를 보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바위도 칭찬하라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고향에서 친구들과 정자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화 중 세간에 오르내리는 한 벼슬아치의 이름이 나오자 사람들은 능력이 형편없으니 분명 많은 뇌물을 주고 자리에 올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정약용 선생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요. 사람은 함부로 평해서는 안 됩니다.”
잠시 뒤 늙어서 짐을 싣지 못하는 말이 지나갔는데 사람들이 풀이나 축낸다고 평을 하자 정약용 선생은 이번엔 “짐승에게도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살짝 화가 난 사람이 옆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들을 귀가 없는 저 바위에게는 함부로 말을 해도 되겠소?”
“바위가 우리를 모욕한 적이 없고 불손하게 군 적이 없는데 칭찬을 해야지 어찌 험담을 하려 하십니까?”
훗날 이 일화를 통해 정약용 선생이 대화를 나누었던 정자는 “바위에게도 칭찬을 해야 한다”는 뜻의 ‘품석정’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남의 험담만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자신을 좀먹는 쓸모없는 일은 없습니다. 주위의 평이나 들리는 소문에 신경 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남을 귀히 여기며 말씀대로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 말씀대로 주님처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살게 하소서.
혹시 누군가를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는 습성이 있으면 고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나님을 믿으라
경북 지산에 있는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지역에는 사람들이 ‘오부자’라고 부르는 유명한 집안이 있었습니다. 형제 5명이 모두 경북에서 알아주는 부자라 사람들은 이들을 ‘오부자’라고 불렀습니다. 오부자는 한 교회에 같이 다녔는데 어느 날 대구로 이사를 가서 교회를 옮긴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재정의 큰 부분을 담당했던 오부자가 떠난다고 하자 교회 재직들은 크게 걱정했습니다.
마침 부흥회 때 말씀을 전하러 온 안두화 선교사님에게도 이 고민을 한 장로님이 전했는데 이 말을 들은 선교사님이 대답했습니다.
“그거 정말 큰일입니다. 그런데 저에겐 그보다 더 큰 걱정이 있습니다.”
장로님과 재직들은 깜짝 놀라 그 걱정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부자 다섯 명이 떠난다고 교회 유지를 걱정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걱정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서 예수님 안 믿고 오부자만 믿고 있었습니까?”
이 말을 들은 재직들은 회개하며 더욱 똘똘 뭉쳤고 지금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교회로 계속해서 진리의 등대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는 최선입니다. 사람을 믿지 말고, 물질을 따르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아멘!!
주님! 제가 주님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 믿거나 의지하지 않게 하소서.
내게 있는 어려운 일을 주님만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간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쓰임새가 다르다
한 인터넷에 익명으로 올라온 ‘종이의 쓰임’이라는 산문입니다.
‘포장지는 벗기고 난 뒤에 쓰레기가 됩니다.
신문은 읽고 난 뒤에 쓰레기가 됩니다.
스케치북은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쓰레기가 됩니다.
그러나 같은 종이라도 책은 대접을 받습니다.
훌륭한 책은 백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찾으며 영감을 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아무도 읽지 않으면 책장에서 먼지가 쌓이고, 쓰레기가 되고, 결국 무게 당 얼마인지를 따져 팔리는 폐품이 됩니다.
같은 종이라도 책이 되느냐, 신문이 되느냐, 포장지가 되느냐, 전단지가 되느냐에 따라 쓰임이 모두 다릅니다.’
잘 드는 칼을 요리사가 들 때와 강도가 들 때의 쓰임이 다르듯이 종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떨까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리고 수천 년이나 사람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성경’은 나에게 그저 좋은 책입니까, 아니면 읽지 않는 폐품입니까, 혹은 생명을 주는 귀중한 양식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지혜로운 성경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으십시오. 아멘!!
주님! 저의 삶이 주님의 은혜로 귀한 가치를 지닌 삶이 되게 해주소서.
매일 성경이 내 영혼의 양식이 되고 있는지 점검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고통에도 뜻이 있다
일본의 겐조라는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질 때문에 뇌성마비에 걸렸습니다.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소리를 듣고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던 겐죠의 머리맡에 성경을 펴두고 일을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겐조가 볼 수 있는 건 성경 1장뿐이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하나님이라는 생각에 억지로 성경을 읽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시는 어머니와 매주 빠지지 않고 찾아와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 때문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됐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고린도전서 12장을 읽고 있다가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바울의 고백을 자기를 향한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날부터 겐조는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시를 지어 일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쓴 “괴롭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시의 일부분입니다.
“만일 내가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고통에도 뜻이 있음을 믿고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기도하여 고통의 뜻을 찾아 행복하게 사십시오. 아멘!!
주님! 어려운 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주님 안에서 그 뜻을 찾게 하소서.
우리 주변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친절을 베풉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먼지 덮인 도자기
런던 북부의 낡은 오두막에 사는 어머니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집의 선반에는 먼지 덮인 낡은 도자기가 있었는데 그게 언제부터 있었는지, 누가 사다 놨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있어서 누군가 사다 놓았겠지 싶은 상태로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나중에 생활이 점점 어려워진 모자는 선반 위의 도자기가 그래도 나름 값이 나가는 물건이 아닐까 싶어 근처 전당포에 들고 갔는데 전당포 주인은 도자기를 보자마자 범상치 않은 물건 같다며 골동품 전문 감정사에게 맡겼습니다.
전문 감정사도 도자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느꼈지만 어느 정도의 물건인지는 알 수 없어 브레인브리지라는 작은 경매업체에 맡겼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결국 이 도자기는 건륭왕조시대 만들어져 황실에서 꽃병으로 사용되던 것이라고 밝혀졌습니다.
도자기가 진품이라는 게 확인되자 전 세계의 부자들이 경매에 참여했고 중국의 한 부자에게 780억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에 낙찰됐습니다. 이 금액은 지금까지 경매에서 판매된 도자기들 중 가장 높은 가격입니다.
아무리 귀한 도자기도 가치를 알아주지 않으면 낡은 골동품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를 가진 성경을 책장에서 내 삶으로 옮기십시오. 아멘!!
주님! 귀한 것을, 귀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영안을 주소서.
내가 덜 중요시하고 있는 사람을 겸손한 마음으로 재조명해 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감사의 실종
대학생 스펜서는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엄청난 충격음을 들었습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미시건 호수의 커다란 바위에 유람선이 충돌해 가라앉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수영 실력이 뛰어났던 스펜서는 바로 뛰어나가 호수에 몸을 던졌고 17명이나 구조했습니다. 그러나 한계 이상의 체력을 써 이날 이후로 큰 병을 앓았고 7년 뒤, 32살의 젊은 나이에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펜서의 활약을 알고 있던 지역 신문사의 기자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병실에 찾아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구해 준 17명의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겠습니다.”
이 질문을 들은 스펜서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17명의 사람들 중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사람은 어린 소녀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작년까지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매년 감사편지를 보내줍니다. 하지만 다른 16명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한 소녀의 감사 때문에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콘라드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구원받은 감격을 느끼고 있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구했다면 감사를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특히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생명을 바쳐 날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한시라도 잊지 않게 하소서.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구원해 영생을 주신 주님을 널리 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위로의 가치
헴슬리 그룹의 회장 리오나 헴슬리는 괴팍한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직원들을 하인처럼 부리고 툭하면 트집을 잡아 멋대로 해고했습니다. ‘부동산 여왕’으로 불리던 헴슬리는 세 번의 결혼생활이 실패한 후 기부에 큰 힘을 쏟았습니다. 그녀가 기부한 총 금액은 5조원이 넘어 2008년도에는 미국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도 선정됐습니다.
노년을 넓은 펜트하우스에서 수년간 혼자 살다가 세상을 떠난 헴슬리는 기부를 하고 남은 재산을 가족들에게 나눠줬는데 기르던 반려견 ‘트러블’에게는 150억 원이나 물려줘 화제가 됐습니다.
혈육인 동생과 손자들은 다 합쳐 120억 원을 받았기에 언론들은 이 뉴스를 억만장자의 어리석은 선택처럼 다루었지만 헴슬리를 아는 사람들은 트러블이 충분히 받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가족도 없이 넓은 펜트하우스에서 혼자 살던 헴슬리의 곁에 항상 있어줬던 것은 트러블뿐이었으며 주인이 올 때까지 문 앞에서 3시간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헴슬리에게 트러블은 단순히 기르는 개가 아니라 유일한 친구이자, 자신을 기다려주는 벗이었습니다.
적절한 위로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귀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외로움을 외면하지 말고 먼저 찾아가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아멘!!
주님!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를 제공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주변에 외로워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식사하며 믿음을 이야기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내 안에 있는 빛
눈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밤이 되면 언제나 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이 등불을 보고 부딪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참 사려 깊은 사람이지요. 어느 날 밤 그는 등불을 들고 걸어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등불을 잘 보고 다녀야 하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쳤지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꺼진 등불을 어떻게 보고 다니라는 말입니까.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눅 11:35, 새번역)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남의 등불이 아니라 자신의 등불을 잘 살피라는 말씀이지요. 내가 빛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혹시 어둠은 아닌지 성찰하라는 말입니다. 등불이 꺼진 줄 모르고 어둠 속에 다닌다면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랬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빛이 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빛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고 확신했지요. 그러나 그들의 등불은 꺼져 있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어둠이라면 온 세상도 깜깜하겠지요. 내 안에 있는 것이 빛이라면 온몸이 밝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바로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마음 깊은 곳에 밝은 빛 하나 밝히는 사람들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심각한 증상
“열은 어떠세요.” “열은 하나도 없습니다.” “잠은요?” “오래전부터 잘 자고 있습니다” “아하, 증상이 심각하시군요.” “심각하다고요? 저는 어떡하면 좋지요?”
무슨 대화가 이럴까요. 열도 없고 잠도 잘 자는데 왜 증상이 심각하다는 것일까요. 이것은 코로나19 증상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무기력한 사람에게 물은 것입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뜨거운 열정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식었습니다. 또 그에게는 품고 있는 비전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꽤 오래전 일입니다.
이런 심각한 증상이 나에게는 없는가요. 세상 어려움 때문에 거룩한 불까지 식고, 암울한 현실 때문에 하늘의 비전조차 잃어버린 영적 우울 증상 말입니다. 더 이상의 성장도,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않고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면 심각한 증상이니 속히 회복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힘들수록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의 사람, 비전의 사람이 더욱 필요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천 번의 이벤트보다 정말 원하는 것
김선교의 ‘믿음은 분투다’라는 책에서 연인 사이인 자매가 형제에게 쓴 인상적인 글귀입니다. “너의 천 번의 멋진 이벤트보다, 내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그 한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이 내겐 더 큰 감동이야.”
내 행복을 위해 천 번의 멋진 이벤트를 기획하며 노력하는 형제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그 한 가지를 계속한다면 관계는 불행해집니다. 선악과가 그랬습니다. 모든 것을 허락했지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그 한 가지에 불순종함으로써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수많은 예배와 섬김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설교문 완성을 예배 직전에 마무리합니다. 오랜 습관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예배 직전에는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올해는 주님이 싫어하시는 이 습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 중에서 주님이 싫어하시는 한 가지를 바꿔보면 어떨까요.
문혁 목사(좋은나무교회)
죽 한그릇의 감사
무더운 여름에 필리핀 선교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도 가끔 나오는 이른바 ‘쓰레기 마을’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음식을 나누는 사역에 동참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음식을 나눠 주는데 한 아이가 제 시선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죽 한 그릇을 들고 그릇에서 치킨 한 조각을 꺼내 들고는 친구에게 치킨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없다는 친구의 대답에 아이는 치킨 한 조각을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돈이 부족해 건축을 완공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건물 안은 어둡고 창문은 쇠창살로 돼 있습니다. 밖에 있는 아이들은 제가 잘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죽 한 그릇에도 행복해하는 아이들과 썩은 냄새로 가득한 쓰레기 마을에서도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감사를 잃어가는 저는 눈물로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창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에 세 번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죽 한 그릇의 감사를 주님께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결혼의 기억조차 잃은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서약’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내에게는 자신의 친구와 아버지의 불륜이라는 아픈 과거가 있었죠. 그래서 집을 떠나 독립해 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남편 처지에서 보면 아내의 아픈 과거지만 끄집어내면 기억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을 텐데, 아픔을 되돌려 주고 싶지 않아 현재의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다 결국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떠나고 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과거를 다 알게 됐고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고 그를 찾아갑니다. 감사를 표하는 아내 앞에 남편이 “내가 뭘 했다고…”라 말하자 아내는 “전부 다요. 날 있는 그대로 받아 줬어요. 바꾸려 하지도 않고”라고 합니다. 이때 남편의 말이 감동적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랐어. 그뿐이야.”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질문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인가’라고 말이죠.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섬김의 리더십
헤르만 헤세의 단편소설 ‘동방순례’에는 레오라는 일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레오는 성지순례단 일원이었는데 순례단의 식사는 물론이고 모든 잡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종이었습니다. 레오는 저녁이면 지친 순례단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구석구석을 살피며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챙겨줬습니다. 레오의 섬김 덕분에 순례단 분위기는 늘 활기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레오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순례단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평온이 깨지더니 갈등이 불거졌고 급기야 순례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레오가 종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실제로는 순례단의 진정한 리더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순례단의 한 사람이 레오를 찾아 나섰는데, 찾고 보니 레오는 순례단을 후원하던 교단 최고 지도자였음을 알게 됩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로버트 그린리프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주창했습니다. 최고의 지도자는 일꾼이며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경청과 설득입니다. 리더는 공동체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분위기가 뜨겁습니다. 일꾼 같은 지도자가 선출돼 대한민국 공동체가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오늘, 가장 좋은 날
사과 한 상자를 먹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답니다. 한 사람은 매일 ‘가장 좋은 사과’를 골라 먹고, 다른 사람은 ‘가장 나쁜 사과’부터 골라 먹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장 좋은 사과를 먹은 사람은 날마다 가장 좋은 사과를 먹었습니다. 반면 가장 나쁜 사과를 먹은 사람은 언제나 가장 나쁜 사과를 먹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기왕이면 매일매일 가장 좋은 사과부터 먹는 게 좋을까요. 아니지요. 제일 못난 사과부터 잘 발라서 알뜰하게 먹는 게 우리 주부들의 살뜰한 살림의 지혜입니다. 사과는 그렇게 먹어야 버리는 것 없이 잘 먹을 수 있지요.
그런데 사과가 아니라 삶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우리의 ‘오늘’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날입니다. 그것은 단지 오늘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은총으로 열어주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오늘을 아름답고 빛나게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은 가장 좋은 날, 가장 좋은 일을 하는 날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행복을 팝니다
“행복을 팝니다.” 신장개업한 가게에 써붙여 있었습니다. 행복을 갈망하던 사람이 그 가게에 들어가 큰 행복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빙그레 웃으며 가게 주인이 가지고 나온 것은 무엇인가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아니, 행복을 큰 사이즈로 주문했는데 이게 뭡니까.” 주인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우리 가게는 행복의 열매가 아니라 행복의 씨앗을 파는 가게랍니다. 이것을 먼저 심으십시오. 잘 보십시오. 이 작은 씨앗 속에 풍성한 열매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렇습니다. 먼저 심는 것 없이 거둘 수는 없습니다. 2022년 신장개업한 가게에서 여러 씨앗을 살 수 있습니다. 아시잖아요. 심음과 거둠의 순서는 뒤바뀔 수 없다는 것을. 올해 정말 거두고 싶은 열매가 무엇인가요. 그것의 씨앗을 지금 사서 심으십시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퀸즈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