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 치과에서
박 승
신경을 치료하는 것은 신경을 죽이는 것
얼음 조각으로 머리를 찌르는 통증
신경과 사라지는 것
입을 헹구고 누운 나에게 말했다
생명도 고통도 뿌리로
빛으로 세탁된 하얗고 검은 세상
의사는 핀으로 신경을 휘젖는다 여러 번
마음이 사라지면 컴컴한 절벽
아픔은 마취되어 길을 건너지 못하고
핀에 묻은 죽음이 하얗다
옌볜거리
산다는 것은 대과자 같은 것인가
쇠소리 울어대는 불에 달구어져 검은 입 벌리고
그림자 먼 세상인 듯 비추기도 하며
비닐 같은 고무 같은 하얀 반죽
기름불에 누르스름 부풀어
알통으로 피어나는 그런 때인가
흑룡강성의 할머니 경상도 억양으로
걸어가는 부엌에서 퉁퉁 박자를 맞춰가며
돼지고기 익히는 어쩌면 기름에 찌든
탁자가 추위에 끈끈하게 굳는 날
젊은이의 뻔하게 지껄이는 소리
잘도 지나기만 하는 정월의 거리까지
불퉁한 소음과 기름이 튀어
우유빛 뜨거운 국물에 대과자가 적셔지는 서울
하루가 바싹한 껍질에 스미듯
저녁이 내리면 딸의 손을 잡고
양고기를 구우러 나온 여인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북풍의 추위 외투 벗은 등짝을 서늘하게 때리며
가늘게 썰린 고기도 빨간 고춧가루에서 다 끝나 버린
하얗게 빈 술잔에 바람이 빙글 돌아 나가는
박 승
경남 밀양 출생. 2004년『민족예술』으로 등단.
―『시에』2010년 여름호
첫댓글 우리 민족에 대한 관심은 언제 어느 때고 그 정당성을 갖습니다. 분단의 종지부까지 아니 그 후에라도 저는 개인적으로 북방의 묻히고 잊힌 삶과 모든 서정에 푹 빠져보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백석 이후 북방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서정에 많은 분들의 천착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승님의 노작에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