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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그림 궁 원문보기 글쓴이: 팔봉산
올해 201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키프 교수는 1971년 '뇌 안의 GPS'라 불리는 '장소세포(Place Cell)'의 존재를 처음 규명했다. 장소세포는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 속의 신경세포 중 하나로, 공간을 찾고 기억하는 역할을 맡는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그의 연구가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앓는 '공간 기억 상실'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 점을 평가했다.
오키프 교수는 "처음에는 해마를 다친 환자 중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많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 연구를 시작했다"며 "연구가 진행되면서 특정 세포가 장소와 관련된 기억을 담당해 하나의 지도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선구적인 연구는 장소세포에 이어 '방향세포'와 '거리세포'를 발견하는 실마리가 됐다.
그의 연구는 공간 개념에 대한 일반의 상식을 뒤집는다. 공간은 우리 밖에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창조물이다. 오키프 교수는 "지금 이 책상에 종이컵이 보이는데, 이건 바깥 공간의 정보를 뇌가 종합한 결과가 아니다"며 "공간 개념은 장소세포를 통해 어느 정도 뇌 속에 갖춰져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뼈대로 삼아 정보를 수집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이 경험 이전에 구성된다는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논변과 맥이 닿는다."
http://media.daum.net/foreign/newsview?newsid=20141021023005382
임마누엘 칸트 현대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으로 근대철학의 전환을 가져온 사람..
우리는 천부경을 해석하면서, 강조하는 것인 천지인 삼재라고 하고, 하나둘셋(무극-반극-태극)의 삼극지도에 의한 하늘의 법칙이라고 합니다만, 계(공간의 구분)도 삼계로 천계, 지계, 인계(중계)라고 하는 삼계로, 이는 하늘계로 형이상계, 중계(인계)는 형이중계, 땅계를 형이하계, 학문도 형이상학, 형이중학, 형이하학으로 나누었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하나둘셋, 넷다성여섯, 일곱여덟아홉. . 그리고 열이라는 천부의 수는 10수로 十이 천부경이다. 하나가 본이고 태양이고 시작이나, 이는 다시 하나무로, 하나는 하늘로 돌아가는 움직이는 공간과 시간의 사이에 있는 인간의 관계를 말씀한 십천부경으로 十의 시작을 우리하나사람들의 GPS (지구 위치추적 시스템)을 우리 머리에 새겨놓았습니다. 즉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 16자이지만, 이는 숫자로 1, 2, 3, 4, 5, 6, 7, 8, 9, 10이라고 하는 천수가 천부경이다는 내용을 아예 머리에 이고 살도록, 이유는 천손자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사람의 GPS로 서양사상과는 다른 10진법이 바로 하늘수로 하늘의 천간이고 하늘수로, 그것을 이기면, 바로 십승이고, 마음에 있다는 철학사상과 종교론까지도 함께 하는 홍익(十, 卍)의 정신으로 이것은 이미 천부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이라는 GPS가 우리머리에 장착되도록 해서 사용중입니다. 12진법, 태음력이라고 하는 12달은 우리도 알고 있었고, 오히려, 땅의 신, GPS는 12지지로 사용하였고, 이 10진법과 12지지(진법)의 사용으로 120진법이 아닌, 음양, 즉 음은 음끼리, 양은 양끼리 모인다는 사실을 알고 육십갑자를 역으로 사용하였으나, 왜 우리는 남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단위인 태양력 10수, 하늘수 10수로 모든 숫자와 수리, 그리고 역수, 과학까지 면적법인 미터(米틀)은 천부경의 쌀 미가 아닌 10으로 팔팔 나누어, 十진법이다는 것. 그것이 알게 모르게 사용한 천부경의 10진법, 10수에 의한 역수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천부경은 단순히 하나경, 하나를 설명한 경이 아니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시 하나로, 하늘의 법칙을 의미하는 전체의 수는 열 十으로 1(하나)에서 01이 아니고 10(하나공)이 바로 완성되나, 다시 1(하나)가 된다는 무시무종 하나, 01--->10의 영원불변의 법칙을 경으로 하늘의 말씀으로 81역수로 표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十승이 나오면, 서양과 동양의 합일의 도가 나온다는 것은 바로 천부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6,000년전에 문자로 적힌 것을, 무시하고 부정하므로써, 눈도 돌리지 않았던 천부경의 내용을, 다시 알고, 분석하니, 그것이 바로 10진법의 시작이고 하늘의 수로, 천수로 하늘의 말씀으로 영원불변 변치않는 하늘의 말씀경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는 1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이로, 공간, 시간, 인간이라고 하는 사이로, 사이는 바로 공시인, 천지인, 삼재가 있다고 하나, 움직임이 없이, 무위가 아닌 유위가 없이는 그 의미나 가치가 전혀 없다. 그래서 천부경은 삼재 및 삼계와 삼극의 변화, 역상의 변화, 공간과 시간의 변화에 따른 인간(사람들의 법)- 도덕, 윤리라고 하는 법이 있으나, 이의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천리고 지리라는 공간과 시간의 법칙에 순응한 연후에, 사랑, 사람의 도를 깨달고 행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의 무극대도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忠한다고 집권당의 이익을 위해 일을 했으니, 충신이라고 하지만, 仁人입니까? 아니다. 천리와 지리, 공간과 시간을 알지 못하니, 풍수지리를 모르고 자신의 법이 도라고 하여, 충은 되나, 인은 되지 않는다. 충은 나라라는 마음의 공시간적인 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그 "나"가 만든 "라"에 충성하면 충이고 인이지 않습니까하는 것은 천지도리를 모르고 인간리만 옳다고 하는 것이니, 사람이라면 무릇, 풍수지리(천문지리)를 먼저 알고, 이에 따라 사람의 도를 창조하고 펼쳐야 바로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홍익의 충이고 효고, 사랑이라는 이야기.
空의 개념, 우리는 공의 개념이 우리의 천부경과 삼일신고에 없다, 우리는 공의 개념이 전혀 없었던 미개인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태양족으로 태양력 삼신7정은 10수로 천지인, 일월수화목금토, 10신을 하나라고 한다는 엄청난 이야기를 모르고 있습니다. 단순히 삼신 하나님이라고 하니, 삼용 일신 하나님, 일체구나.. 합니다. 삼신 천지인을 불변이고, 움직이는 태극은 7정으로 일월수화목금토로 일월은 천지고, 수화목금토는 5행으로 태극의 사령 5행이라고 한다는 것. 이것이 연결되어 있어 혼선이 있으나, 삼신을 빼고 음양오행만을 이야기하면 10수가 아닌 7수고, 이에 8괘가 있다고 하나, 무엇인지 빼먹은 것을 모르고, 우리의 환역은 99=81로, 이 다음은 하늘이라고 하는 10x10=100으로 공공,
하늘공공, 허허공공이므로, 이는 사람이 어이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시간도 아닌, 있슴이나, 보이지도 알지도 못하는 형이상학의 위, 형이천상학의 개념이 바로 無이고, 우리가 하늘이라고 하는 無입니다.
삼일신고의 無의 개념
우리는 선조들이 이미 시간과 공간에 대한 GPS를 천손자손으로 10수로, 十으로 좌표를 설치하셨다는 것. 이를 모르고 살지만, 좌표설치 끝.. -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 이와는 달리 12진법을 쓰는 태음력(유다인들은 12진법 태음력으로 카발라는 기원후 동방학의 영향으로 1, 2, 3, 4, 5, 6, 7, 8, 9, 10의 십수를 신으로 대입하여 이해한 유다인들의 신비주의, 십수, 천수법의 이야기이나, 이는 바빌로니아의 신비주의/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기원후 이야기지, 유다인 고유의 사상이 아닙니다.)으로는 그 사상과 좌표가 틀리게 잡혀 있어 영국, 미국등의 12진법 화폐와 무게, 도량형에서의 차이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는 10진법(화폐)를 사용하지만, 그래도 파운드는 12진법으로 혼선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또한 아라비아숫자의 원형이라고 하는 인도도 8진법 화폐법으로 전혀 사맛디 않는 사상이나, 0이라고 하는 10진법을 공으로 여겨 사용하므로 수리의 천재라고 하나, 실은 모두 천부경의 10진법의 전수일 뿐입니다.
삼일신고의 하늘(天) - 無
蒼蒼非天 玄玄非天
창창비천 현현비천
天无形質 无端倪 无上下四方
천무형질 무단예 무상하사방
虛虛空空 无不在 无不容
허허공공 무부재 무불용
이 말씀은 위대한 말씀으로, 가감이 어려운, 해석만 난무한 내용입니다. 무상하사방이다. 이것은 GPS가 없다는 것으로 위아래, 사방이라는 개념이 없는 하늘이다는 뜻으로 실제는 위아래, 동서남북이라는 것은 사람이 창조한 위치명칭으로 이 GPS에 쉽게 이해하도록, 인식하고 개념화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지피에스에 시스템 장착입니다.
좌표, 시스템, 언어와 문자가 없으면, 참으로 현대사회에서는 살아나가기 힘든 세상이 됩니다. 다행히도 우리 선조들은 아예 수리도 천수로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을 동서남북도 東은 성인이 나신 곳을 동이라고 하는데, 이는 문명이 시작된 곳, 해가 뜨는 곳이라고 한다. 이에 북은 北으로 사람이 등배한 것이 아니고 하늘의 북극성, 북두칠성의 별자리 北, 항상 그자리에 있는 북극성을 삼신성이라고 하여 북이라고 하여 죽으면 돌아갈 고향이라고.. 그래서 북이라고 방위를 정한 것이고..
위의 무는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자, 칸트후의 언어학과 실존적인 철학론으로 사유를 했는데, 천부경의 "無"란 무엇인지? 과연 비실존(Non-Existence, 밖에 없슴)인지를 알려고 문의한 내용. 불교의 무론이나, 공론과는 사뭇 다르기에 물어본 것으로 이는 동양철학이라고 하는 노자나 공자의 철학과는 다른 우리고유의 철학 무론과 공론이 함께 들어가 있는 신불님의 가르침(종교)의 기본 말씀, 제1장 하늘이란? 무다..
하늘을 쳐다보니,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하늘(天)이 아니지요, 그래서 푸르고 푸른 것은 하늘이 아니다. 검고 검은 것은 하늘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요? 無다. 이에 님을 붙여도 "하느님" 천신이라고 하나, 인칭이 아닌, 공님이라는 것.
여기에서 말하는 하늘은? 바로 하늘의 하늘(天之天, 천상천), 하늘위의 하늘, 무위하니, 무위자연 하느님이라고 하나, 이는 하나의 시작의 바탕이 되는 無로, 텅비었다고 하나, 허한, 무엇인지 꽉찬 氣(지기=天)이라고 하고 이를 삼재 천지인과 구분하기 위해 천지천(하느님)이라고 해도, 그 뜻은 無라, 이를 모심하는 랑을 무당이라고 하니, 무당은 모실 무에 하느님 당으로 하늘을 모심하는 사람들을 무당이라고 한다는 것. 하나님전에, 하나님의 조상은 하느님이니, 그 하늘이 바로 "無"로 무단예, 무상하사방, 무형질.. 그리고 무부재, 무불용 허허공공.
空은 구멍혈에 工(천지인)의 어머니로 無라고 하니, 이를 공이라고 함은 가상의 하늘, 하늘의 하늘을 空이라고 하고 일반적으로 비었다 함은 아무것도 없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하늘위의 하늘을 의미하는 무형의 하늘.
그럼 우리가 천지인 하늘이라고 하는 하늘은? 일월성신, 구름, 벼락, 천둥, 비라고 하는 천문의 소리와 빛이 하나님이니, 바로 시작이고, 하늘의 하늘에서 시작한 하늘의 빛이 하나라는 아주 정밀한 GPS 시스템을 말씀해 놓고 있다는 것. 유형의 하늘은 하나이고, 무형의 하늘을 하늘이라고 한다.
공은 하늘의 가상의 모양으로 이에 間을 붙이면?
공시인.. 천지인 삼재인데, 이는 요소고, 그 중요한 삼재요소에 사이 間이 붙으면, 세대, 시간에 의한 상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말. 천부경의 삼재는 천지인이나, 이는 간이 아닌, 그 자세 공간적인 배치로 중요삼요소를 천지인이라고 하고 이의 변화하는 상은 바로 천일, 하나고, 지일 둘이며, 인일 셋이다고 하는 하나둘셋이 역상으로 시간적인 역의 변화, 그러나, 시간으로 인한 변화는 공간의 변화를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하고, 그러나, 이의 본은 변함이 없는 하나이니, 있슴 그 자체라고.. 하늘(무)는 무부재 무불용 허허공공이나, 그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상의 변화일 뿐, 동일하다. 무진본 부동본 하나다는 것..
공간은 공과 공 사이, 즉 공이라는 공에서 다른 공이라는 공의 사이. 무시에서 무종으로 0에서 10으로 공간이라고 하면, 그 공간은 창조해낸 공간이지 동일한 부동본 공이니, 공간은 바로 사람이 창조해낸 공간이다. 이에는 공간적인 이동이라고 하나, 이는 바로 시간에 의한 변화로 공의 모양의 변화, 가로막았느냐 하는 문제는 사람이 보고 만져서 알고 있는 공간이라는 門으로 태양(나)가 들어가고 나오는 문은 오직 하나다. 그것이 공간이라고 하는 공과 공사이.
시간은 時란 4시하면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이야기하니, 이 또한 움직임이라. 하늘은 좌선(좌로 돌고)이고 일월(하나)은 우선(우로 돈다).. 돌기에 지구의 축이 기울어 있기에 4시가 생기는 것으로 시간은 해의 한바퀴 돌아감에 해라고 하고 하루 하루 새로운 창조의 해는 해라고 하지 않고, 날(나)라고 하는 이치와 같다.
시는 시일 뿐인데,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늙고 죽으니, 세월, 인생을 시간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하늘의 자손으로 하나가 되어 사람으로 태극이 되어 왔으나, 가더라도 업주가리요, 업의 주(신명)을 갈이하는 것이지, 시간이 제약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
인간은 사람과 사람사이라고 하여 사이는 협일이라고 하나, 이 때 인간은 천지인간, 공간, 시간, 인간으로 인과 인사이, 업주가리 인간, 사람-사람사이로 공간과 시간이 함께하는 천상(공간), 천하(시간) 그 중에 인간의 개념으로 工은 공간적인 배치라고 함은,바로 하늘과 땅사이에 인간이 섬에 工으로 이것이 하늘의 삼재고 공시인의 천지인 삼재를 의미한다는 것.
천상천하에 중간에 서야 하니, 인간이라고 하듯이, 사이(쇠)는 없어서는 않될 무위자연, 무위의 도가 아니고, 유의자로 태극이고 무한창조의 중심이니, 이러한 공간과 시간속에 GPS (위치추적장치시스템)으로 천지의 도를 버리면, 길을 잃고 마니, 이를 도덕,윤리라고 하나, 천지의 도를 먼저 알고, 그 좌표에 설치하여야 위치를 잃지 않고, 쉽게 사람의 도를 찾고 지키고 알고 깨달을 수 있다. 노력하지 않고, 도닦는다 함은 사람의 수명연장을 위한 방법일 뿐 GPS 좌표상에 표시된 목표와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삶이 됩니다.
이러한 내용이 천부경속의 시간-공간-인간의 사이론으로, 임마누엘 칸트의 이성비판을 잠시보면,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B%A7%88%EB%88%84%EC%97%98_%EC%B9%B8%ED%8A%B8
17~18세기 철학은 인식론으로 크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로 나뉘었다. 여기서 합리주의는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선험적 이성을 중시하였고, 경험주의는 인간이 경험함으로써 지식을 얻는 귀납법을 중시하였다. 합리주의의 방식은 "백마는 희다"와 같이 술어가 주어의 개념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분석판단[14]을 하므로,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경험주의의 방식은 귀납적인 방법을 강조하며 종합판단을 한 나머지 진리의 필연성을 찾는 데 한계를 드러내었다.[주 3] 여기서 칸트는 이 두 사상을 통합한 선험주의를 주장하였다. 즉,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식을 확장하는 '선험적(선천적:a priori) 종합판단' 을 긍정하였다.
(산) 인식론-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 이를 선험적(선천적: a priori) 종합판단을 긍정한 선험적 이성을 긍정하여 경험이전에 이성이 존재하나, 이 이성에도 사람이 알 수 없는, 선험적인 경험보다는 앞선 형이상학, 그 위의 무, 형이상의 상, 하늘이 존재한다는 인식, 즉 신위에 신의 무엇이 있다. 이를 긍정한다는 신은 인간이 만들었다. 고로 신은 죽었다는 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도 나옵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간 인식에 선험적 형식을 도입하는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을 시도하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인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대상의 관념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다.[11] 쉽게 말하면 인간은 대상이 있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 대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진리는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하는 무엇이다.[11]
칸트의 인식론은 감성을 통해 얻은 감각을 범주를 사용하여 지성(Verstand:오성)[주 4]으로 인식하고, 초경험적인 것은 이성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감성은 어떤 물자체를 지각하는 능력이며, 범주는 이러한 감각을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틀이다. 따라서 감성과 지성은 인간이 지각 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요건인 셈이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데 시간과 공간 값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연장과 존재하는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인식을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감정과 같은 것은 공간 값은 없지만 시간 값만 있는 것으로 보았다.
(산) 시간과 공간적인 개념을 이성주의에서는 이를 신이 만들었다고 하나, 칸트는 신이상의 초경험적인 이성이 있는데, 이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데, 선험적, 이미 있는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 초월적인 요소로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 있는데, 이 공과 공 사이, 공간에 존재하는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인식을 할 수가 없다. 시간이 없으면, 인식, 기억, 사고의 가치가 필요치 않게 되므로, 이는 시간이라는 값이 있기에 사람이 인식하는 것, 즉 기록과 기억으로 인해 선험적인 이성과, 경험으로 시간이라는 값이 있기에 사람은 인식한다고 하는 인식이 대상의 관념을 만들어낸다는 것. 정확하게 사람, 인간(태극)은 바로 공간과 시간사이에서 인식, 기억, 사고의 틀(GPS)라는 시스템, 셀이 부착되어 있기에 인식(Perception)이 가능한 것으로 이 인식은 모든 사람마다 다르게 창조되나. 이를 언어와 문자, 그리고 학문이라고 하는 과학의 틀, 그리고 철학과 종교라는 틀로 GPS를 고정하므로써 인식을 일정한 관념, 철학틀속에 묶어두게 된다. 감정은 공간값은 없고, 상의 변화과정보다는 시간의 값에 의한 변화(역상)의 기억과 인식에서 나온다고 본 것이 바로 이성과 감성의 차이를 공간과 시간이라는 선험적인 이성위의 천지천의 존재를 초월적인 존재로 이성위의 무엇.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것을 선험이라고 하나, 그 위의 무엇을 의미하는데, 시간과 공간은 바로 하늘(천지천) 무의 세계, 형이상의 상학으로 무론을 모르기에 어렵게 말하고 있는 이야기..
칸트는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초경험적인 것을 이성으로 알려고 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가령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존재론적 증명 등을 비판하여 여러 형이상학적인 사상들을 배격하고자 하였다. 이 말은 형이상학의 영역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 할 수 없는 것으로, 어떤 형이상학적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지성(Verstand)이 사물의 현상을 분류,정리할 수 있으나, 그 현상 너머에 숨은 본질에는 이를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사물의 본질이나 신에 해당하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12]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기존의 형이상학은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초감각적이고 초경험적인 것을 인식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칸트는 형이상학이 그런 오류에서 벗어나 이성의 인식체계에 대한 학문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10] 하지만 칸트는 형이상학적인 신, 영혼들의 존재를 도덕을 다루는 과정에서 다시 요청하게 된다.
(산)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적 철학론에서 이성으로 초경험적, 선험적인 것을 "이성" 합리론으로 이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이 사람이상의 무엇인가 초월적인 것을 "이성"이라고 한 것을 비판하였다는 것으로, 이는 우리가 "하늘"이라고 하면 사람이 만들고, 알고, 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를 이성, 합리적인 사유로 "인식"하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하는 형이상학의 도, 진리, 본질, 그리고 신을 형이상학으로 이성이라고 하여, 인식의 범주안으로 이를 형이상학, 이성학으로 알고 있다. 끌어들여 분석하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 것은 오류다는 것. 즉, 형이상학적인 신, 영혼, 하늘 등의 이야기는 보이는 하늘인 하나는 이성의 범주에서 가능하나, 하늘의 하늘이라고 하는 하느님, 신, 영혼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속의 존재를 다루는 것은 사람의 이성을 벗어난 존재로, 이는 초월적인 존재로 현실적인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잘못이다. 그래서 순수이성에서는 이성속에는 형이상학위의 상학인 신, 영혼론 등은 이성으로 논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므로 구분해야 함에도 형이상학에서는 이 또한 이성으로 사유하면 존재, 본질 규명이 된다고 한다를 비판.
여기에서 공간과 시간의 개념도 이성이라는 범위를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의 이성위의 초월로 이는 순수이성이 아닌, 초월이성으로 기존의 초월적인 존재를 초월이라고 하지 않고, 이를 이성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 초월학으로 이성학, 형이상학의 도덕에서는 가능하나, 학문, 철학으로는 그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주의와 이성주의의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에 대한 통합적인 모든 것이 논리적인 경험3단계논리로 설명될 수 없고, 이성이라고 해서 모든 초월적인 존재학(신학, 영혼론)까지 이성이라고 하여 철학의 사유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은 오류다.그래서 칸트는 신은 만들어졌다. 그리고 신은 죽었다.. 이성에 근거를 둔 학문영역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종교고, 이를 믿지 않고 없어지면, 신은 죽는다. 죽은 영웅의 우상과 같이 신론에 대한 이성주의를 확립하여, 과학적인 입증에 의한 이성주의 합리주의의 근거로, 초월적인 것,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인식했다고 하는 것은 인식을 벗어나, 이성을 벗어난 범주로, 이를 이성이라고 할 수가 없다. 어찌보면 실증주의, 특히 독일의 실증주의적 유물론적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이상학(이성)과 형이하학(경험)의 종합, 순수이성비판.. 이성론이나, 세련된 이성론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천부경의 이야기는 이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 초월적인 "무" (하늘의 하늘)아래..
천: 일신강충이라는 것은 물리(物理, 만물의 이치)로, 이는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지: 성통광명이라는 것은 생리(生理, 생명의 이치)로 이는 형이중학이라고 한다.
인: 재새이화라고 하는 것은 심리(心理, 마음의 이치)로 이는 형이하학(사회, 정치, 행정, 인류문화학)이라고 한다.
삼분론법의 형이상학과 형이상학에 생명학, 생명의 중요함, 사람의 중계학, 신과 지상의 연계 그리고 이 쓰임에 대한 중요성은 도리어 사람의 쓰임으로써 시간적인 변화에 의해 사람은 천리와 지리를 이고 깔고, 그 위에 도덕, 윤리로 창조하는 유위창조의 능력이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그러니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하늘땅을 지고 있으니, 하늘이고 땅이니,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사물을 보는 시각이 창조되고 있으므로 돌출점이고, 귀한 존재다..
사람의 중요성. 그러나, 천지인 삼도가 빠진 도는 사람의 주어진 고장난 GPS로 방향타를 잃는 위치추적장치를 단 결과가 된다는 말씀. 이러한 철학과 사상이 없는 것과 있는 것은 바로 차에 GPS를 달고 다니느냐, 아니면 자신의 골의 GPS를 믿고 달리고 있는가의 차이로, 易(역)은 어렵다고 하지만 쉬울 易(이)라고 합니다. 즉 역을 알면, 세상만사가 쉽다는 의미로, 역은 동양사상의 GPS라는 것. 그러나, 주역이 아닌 천부경, 우리의 역을 달아야 하나사람은 쉽다는 것을 아는데 100년 걸렸는데, 이를 교육하려면, 교육시키면 안된다고 이성적인 국회의원 및 정부여당분들의 반대가 마치 칸트를 반대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칸트가 살아있을 당시부터 칸트 철학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있었다. 칸트는 이성의 능력과 종교를 모두 비판했고, 이러한 비판은 당시에 이성을 신뢰하던 철학자나 종교를 믿던 종교인에게는 매우 불만스러운 것이었다.[21]
"신은 죽었다"고 했으니, 좋아하지 않고, 매우 불만스러운 것이었다는 것..
우리의 GPS (천부경)를 뇌에 장착해야 하나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교육"입니다.
-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