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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청에서 박석무 이사장, 다산의 공렴사상 특강 |
박석무이사장과 서호련 남원발전연구포럼 감사 |
2) 다산의 공렴(公廉)사상-남원 공직자들을 울렸다.
(남원시 공직자들을 위한 박석무 이사장의 거침없는 특강 소감)
남원발전연구포럼 감사 서호련
조선조의 어사가 누구인가? 공직자로서 최고의 영예와 권력을 가진 자가 암행어사이다. 삼권을 한 손에 쥐고 왕을 대신하여 왕명을 집행하는 공권력의 상징이다. 어사는 생사의 여탈 권을 가졌다. 때문에 산천천하가 그 앞에서 떤 것이다. 사나이로서 한번 해 보고 싶은 자리가 아닌가? 그러나 어사는 왕의 신임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는 그의 복심 중에서 임명되었다. 당시에 다산이 정조 왕에 의하여 암행어사로 임명받은 것이다. 33세에 경기북부 암행어사로 나아가 백성들의 참혹상을 목격하고, 권세를 휘둘러 민폐를 끼친 관리들을 처벌하도록 정조에게 보고한 것을 시작으로 다산은 어사가 된 후 가는 곳 마다 털끝만한 부정이나 부조리를 지은 관리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다. 남원의 공직자들도 일단 국가의 공무원이 된 이상, 밥 먹고 살수 있다면 욕심 부리지 말고 이러한 암행어사의 사명과 자부심을 가지고 시민을 섬긴다면 그는 공직자로서 성공할 것이다.
박 이사장은 정조 대왕과 다산과의 만남에 대하여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었다. 조선조 전반기의 르네상스(문예부흥)를 세종대왕이 일으켰다면 후반기의 르네상스는 정조 대왕이 일으킨 것이다. 세종대왕 때는 집현전의 학사들이 주역이었고, 정조대왕 때는 다산 정약용이 주역이었다. 정조대왕은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이고 인재를 아끼고 양성한 왕이었다. 일생에 500여 권의 책을 지으신 다산조차도, 자신은 정조왕 만큼 책을 읽지 못했다고 말 할 정도였다. 진사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초시(소과)에 합격해야 되고, 문과(대과) 를 보기 위해서는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입학해야 하는데, 다산 등 200명이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왕을 배알 할 때의 장면을 박 이사장은 이렇게 말 했다. 실제로 정조왕은 200여명의 답안지를 손수 다 읽고 합격자를 결정했다는데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답안지를 하나 접어놓고 있다가 다산이 정조 앞에 섰을 때, 친히 세 마디를 물었다고 한다.
정조 왈, “공은 고개를 들라!” 다산이 고개를 들자
정조는 “공의 이름이 무엇인고?”라고 물었고
다산이, ‘정약용’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 몇 살인고” 라고 물었다.
그리고 다산은 “ 22살입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때가 정조와 다산이 첫 번째로 상면한 역사적인 장면이고 이때로 부터 조선 후기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사암연보(俟庵年譜)』의 기록을 보면, “24세이던 1785년 11월 3일 제주도에서 올라온 누런 감귤을 놓고 보이는 시험의 초시(初試)에 다산이 수석(首席)하였다”라는 내용과 함께 승지 홍인호(洪仁浩 :다산의 6촌 처남)의 증언이 씌어져있다.
“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뵈니, 임금이 다산에게 시험 답안지를 읽게 하고 무릎을 치며 칭찬하기를 ‘네가 지은 것이 사실은 장원보다 못지않으나, 다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급제를 시키지 않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물러나오면서 홍인호는 ‘아무개 같은 사람은 반드시 재상이 될 것이다’라는 임금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초시 때 마다 수석으로 합격시키고도 10년 동안 본시험에는 불합격시키면서 그때마다 다산의 답안은 장원합격자의 글보다 못지않다고 했으니, 이는 다산을 뭇 질시로 부터 보호 하고, 더욱 겸손하게 하여 알찬 인품의 인재를 기르고자 한 정조의 숨은 뜻을 엿볼 수 있지 아니한가?
남원에서의 박 이사장의 강의는 민본(民本)사상을 기본으로 한 가장 이상적인 관료였던 다산 정약용이 생각한 '民'의 개념과 백성들을 두렵게 알라는 논리 정연한 특강이었으며 이는 이제 막 발을 들인 신규 공무원들 뿐 아니라 30년 이상 공직생활에 몸 담아온 공직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박 이사장은, “백성은 지극히 천하여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는 불상한 사람들인 동시에 산처럼 높고 무거운 힘을 지닌 사람들이다. 따라서 공직자라면 아래로는 백성을,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다산이 “청렴하지 않은 자는 공직에 들어서지 말라.” 고 했다면서 “재물에 청렴하고, 여색에 청렴하고, 직위에 청렴하면 문제 생길 곳이 없다. 청렴하며는 백성이 존경하고 상관이 가벼이 여기지 않고, 사물이 실상을 감추지 못한다.“ 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시장 등 자치단체장들이, 지방 서기관 한명 승진시키는데 1천만원, 과장으로 한명 승진 시키는데 관례적으로 500만원씩을 받는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으니 실로 한탄 할 노릇이라고 질타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서 말했다, 옛날 같으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시장은 삼권을 쥐고 있는 부사나 사또였는데, 지금은 지원 장, 지청장등이 있어 주요 권력은 다 빼앗기고 그뜩하면 검찰에 불려 다니고, 감방엘 들랑날랑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면서 “이곳 남원도 감방에 간 시장들이 있지요 라고 물으니 좌중에서는 남원은 그런 일이 없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박 이사장 왈 ”그러면 다행이고.“ 라고 말하니 청중이 모두 폭소를 자아냈다.
이날 박이사장 특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공무원의 생명인 공(公)과념(廉)에 대한 개념이었다. 그는 “다산은 공정과 청렴으로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치유하려던 실천 지식인이었다. 다산이 문과합격을 하면서 ‘공렴원효성’(公廉願效誠),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를 원하노라’는 시구 절을 썼는데 이것이 다산 사상의 핵심이다. 다산이 바라던 이상 국가도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이었다.”고 설명했다.
공렴은 공정(公正)과 청렴(淸廉)이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삼정(전정·군정·환곡) 때문에 고통 받는 백성의 참상을 눈으로 보고, 썩어빠진 세상을 개탄하며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다산은 <경세유표> 서문에 썼는데 이런 인식 아래 자신을 닦고 국가를 통치하는 방법을 궁구한 것이 500여권에 이르는 다산의 저작들이다.
그리고 강조하기를 “공직자로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공렴(公廉)’이다. 이는 ‘공정하고 청렴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 말 하나만 머릿속에 새겨두고 공직생활을 하더라도 올바른 목민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산의 愛民사상
그렇다면 다산이 말하는 愛民의 민(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박이사장은 공무원들에게 물었다. 民이 누구인가?
만일 알아맞힌 사람은 상으로 내가 지은 저서 한권을 드리겠다고 하면서 가방 속에서 책한 권을 끄집어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직원이 말한다.
“市民입니다.”
“ 내 그럴 줄 알았소! 보통 말하길, 사랑하는 시민들이여, 라고 말하는데 시민을 사랑한다는 그 말 말짱 거짓말입니다. ”
“남원의 인구가 지금 몇입니까?” 누군가가 대답한다.
“약 9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9만의 시민들을 사랑한단 말입니까?”
다산이 말하는 民이란 보통 백성들을 말 한 것이 아니다. 다음의 불상한 사회적 약자들을 말 한 것이다.
다산이 말한 사회적 약자와 愛民이라는 것은,
1)양로- 노인들을 봉양 하는 것.
2)자유-어린이를 사랑하는 것.
3)애상- 상을 당한 자를 도와주는 것.
4)관질- 질병에 걸리거나 장애가 있는 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
5)진궁-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는 것.
6)구제- 재난을 당해 고통 받는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공직자들이, 돈 있고 넥타이나 맨 사람들에게는 친절히 대하고, 이처럼 어렵고 추하고 불상한사람들을 냉대한다면 그것은 애민이 아니다. 그들을 보살펴야 한다. 만일 그러한 애민정신으로 불상한 사람들을 섬긴다면 그는 가장 성공한 공직자가 되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과 다산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이자 뿌리인 공무원은 특별한 사명감과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공직에 임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다산 정약용과 목민심서에 대해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으나 막상 다산의 저서를 읽어본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면서, 여러분 가운데 다상의 목민심서를 읽어 본 분이 계시면 손을 한번 들으시라고 주문했다. 손을 든 사람이 아무도 없자, “ 그러면 그렇지 , 읽은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고 조크를 하여 모두를 웃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산은 이제 한국인의 다산이 아니라 세계인의 다산으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이미 1997년 12월 5일, 다산이 설계하고 축성한 수원 화성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최근에 유네스코는 “기념이 될 만한 인물”로 외국의 다른 두 인물과 함께 세계의 인물로 선정했으며, 그리고 지금 등재를 준비 중에 있는 다산의 저서 ‘여유당전서 與猶堂全書’ 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다면 다산은 세계최초 ‘유네스코 3관왕’이 된다면서 “여러분이 다산의 저서를 읽지 아니하고 관심을 안 가져도 그분은 지금 잘 나가고 있으니 걱정 말라‘ 고 말하여 모두의 폭소를 자아냈다.
특강을 주의 깊게 들은 남원 시청의 과장 한분은 “다산의 저서를 다시 한 번 읽고 앞으로의 공직생활에 있어 근본으로 삼아야겠다.고 소감을 전했으며, 문화관광과의 한 직원은 “시민을 넘어 국민과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 부정부패를 경계하며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수강소감을 말해 주었다.
강의가 끝난 다음 날에도 여러 분의 직원들이 필자에게 전화를 해와, 남원의 특성에 맞는 이러한 명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강사님을 섭외 초청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다면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국가의 운명이 공렴한 공무원들에게 달렸다고 격려하신 말씀에서 커다란 용기와 감명을 받았고 13대 국회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호통 치던 청문회 스타의 기개를 다시 한 번 상기했다고 말하면서, 마침 지금 남원시에서 칭찬 릴레이 운동을 펴고 있는데, 박 이사장께서 서호련주교님은 남원에 살기 아까운 분이라고 칭찬 하셨는데 칭찬 할 줄 아는 그분의 겸손함이 돗 보였다고 말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