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이 기쁨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인 평화가 여러분 가정과 이 나라에
그리고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알려 주시고,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인간의 삶을 억누르는 죽음을 이겼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삶과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
이것처럼 큰 기쁨과 희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또 이렇게 표현하 였습니다.
“죽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보십시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죽음은 죽었습니다.
오 생명이여, 오 죽음의 죽음이여.”(성 아우구 스티누스의 강론집)
인간 삶을 한계 지었던 죽음이 죽었다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사라졌다는 것에서 우리는 큰 희망과 용기를 품게 됩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상을 사는 데 절망이 있을 수 없고,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을 넘어선 삶을 알고 있고 믿 고 있기에, 또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신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신 부활을 모든 이들이 믿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빈 무덤을 찾아왔던 이들은 예수님 부활에 확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고,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마르 16,8 참조)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루카 24,16)라고 전합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에서 당신에게 하신 말씀들을 설명해 주시면서 그들의 눈을 열어주셨고,
성찬례를 통해 그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시며 부활의 은총을 나누어 주시며,
사명을 주시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루카 24,36-48; 요한 20,19- 23 참조)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의 은총을 주시며 우리 모두가 세상에 나아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은총이고, 인간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형제자매로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에페 2,14 참조)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 자체가 주는 인간의 비극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이 전쟁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득 챙기기와 편 가르기에 급급합니다.
21세기에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탈냉전에서 냉전의 시대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 각지의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통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유혹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도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중동지역에서는 지진의 피 해에도 불구하고 내전을 10년 이상 지속하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 정치의 논리가 만들어낸 비극은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쌓게 하고 적대감과,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참담함을 낳고 있습니다.
분명 모든 이들은 전쟁이 최고의 방법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어느덧 힘의 논리에 맛들인 사람들은 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꼭 전쟁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힘의 논리로, 경제적 우위로,
다수의 논리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 있습니다.
힘의 논리는 남들 위에 서려고 하는 교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결과는 하느님께서 바벨탑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셨듯 분열과 죽음입니다.(창세 11,1-9 참조)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의 욕망과 죽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부수시며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 평화의 사도가 되라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분열과 죽음이 아닌 조화와 존중과 생명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며, 그 은총을 널리 전하라고 하십니다.
부활의 기쁨에 넘쳐 지내는 것은 죽음의 문화, 힘의 논리를 버리고,
화합과 존경과 일치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 안에서부터 우리 모두 평화를 살아가는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이를 통해 세상에, 한반도에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화의 은총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세례자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