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중의 위로
겔 11: 14-21
덴마아크의 사상가인 키에르케르고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명저에서 절망을 가리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지적하였습니다. 한 개인이나 민족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희망이 있기에 하루 하루를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보다 나은 장례를 설계합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제시하는 위로의 메시지는 무엇 일까요?
1.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1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흩은 열방에서 잠간 그들의 성소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소란 곧 하나님의 임재을 상징하는 처소입니다. 이스라엘이 지사의 어느 나라보다도 축복된 나라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친히 택하시고 그들 가운데 계셨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그 은혜의 절정을 보여주셨습니다(마1:23) 우리를 어느 정도나 사랑하셨으면, 하나님이 죄악된 인생의 자리로 까지 낮아지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성소로 삼으시고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주님과 지금 이 순간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동행하고 있는가의 여부를 최대의 관심사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2. 본토 회복의 약속입니다.
17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열방가운데서 모아내고 본토로 귀환시킬 것이라고 말씀햐셨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국 땅에서 학대 받는 민족에게 국권과 영토의 회복은 간절한 염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갖은 모욕과 아픔을 경험했던 우리 민족이 실제로 체험한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영원한 본향을 확신하는 믿음만 지니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맞게 되는 어떤한 고난과 시련도 소망 가운데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새 신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9절에서는 회복된 이스라엘에게 새 신(神)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언급됩니다. 그리하여 우상 숭배에 빠졌던 심령이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죄악과 방탕의 길을 좇던 자들이 하나님의 율례를 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근본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악되고 연약한 인생으로서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강권적인 은총으로 가능케 됨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
진정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 자신과 주변의 세상 풍조를 보면 가히 절망적이지만, 믿음의 눈을 뜨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 앞에는 소망뿐임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