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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불교대학 상반기 성지순례 겸 53선지식 및 명찰순례(2회)44차 서산 간월암,덕숭총림 수덕사,태안 태을암을 다녀와서(2010.6.13)
0.맑은 날씨지만 간혹 빗방울 한두방울씩 내리고, 보현신협앞 차량은 길게 줄을서고 오늘 성지순례행사 회원들을 반기고 있었다.
0.2010년 06월13일 07:30경 대구반월당에서 대구불교대학 재학생,종업생등 약450명이 대형버스 10대에 나누어 타고 목적지인 충남 예산 덕숭총림 수덕사로 출발했다.
-1호차량 박해종,이석정 2호차량 정종국,장주일 3호차량 김동훈,이웅기 4호차량 김동회,양영희 5호차량 최동식,김순회 6호차량 윤상철,윤정수 7호차량 이영미,이승호 8호차량 장건환,신경순 9호차량 권오경,임성조 10호차량 김장수,허운자 등 인솔자 집전자 각각 소임을 맡았다.
-차량은북대구IC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서울방면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3호차량탑승자는 48명(졸업생11명,재학생37명)정원초과로 출발하였다.
0.이번 성지순례는 최근 보기드물게 가장 많은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참여를하였다 차량10대가 고속도로를 1km가량 길게 줄을서 달리는 모습을 차창밖으로 보면서 대구불교대학 동문으로 가슴벅찬 뿌듯함을 느꼈다....
-08:10경 칠곡휴게소에 도착하여 잠시휴식을 취했다.
차에 내리면서 서로간의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또한 각차량 인솔자들을 집결하여 사무국정토야 행정주임이 차량 전체 인원체크와 향후일정을 협의하였다.
-08:35경 차량은 출발해서 차중법회에 들어갔다.
-3호차량 내에서는 지원 이웅기님 집전으로 천수경, 예불문, 이산해 연선사 발원문, 참석회원 전원 릴레이 관세음보살 정근, 반야심경순으로 진행했다..
0.차중법회를 마치고 3호차 개인소개는 인솔자가 아침인사를 부처님전 에 박수로써 올리고, 3호차량 탑승 선임자이신 학해 스님 인사말씀, 수덕사, 간월암에 대하여 별도의 사찰안내 없이 열강을 해주셨다,일정소개,안전교육은 인솔자가 수시로 차량이동시 안전벨트착용을 권유하였다, 개인소개는 53주간회장인 강지호님이 몇몇 소개를 해주었다,잠시후 인솔자가 이어받아 개개인소개를 하였다.
-10:10경 서산 당진고속도로 휴게소인 공주에서 잠시휴식을 취하고 출발했다, 공주휴게소를 지나자 차창가에는 구름과 햇빛사이로 가랑비가 조금씩 내렸다.
011:30경 서산방조제 주변을지나 차량은 간이주차장에서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줄을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차량은 간월암 주차장 입구에도착 주차장이 협소한 관계로 여러번 나누어 차량이 회원들을 내려주고 바닷가 주변 주차장으로 이동하였다, 가랑비가 제법 내리는 가운데 회원들은 바닷길을 지나 간월암 경내를 관람하고,인솔자는 도반법우들과 지난주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후라 주차장에서 차량 정리를 하고 참석한 회원들이 올때까지 해변가를 거릴면서 차량쪽으로 이동하였다
*간월암은...
이곳은 과거 삼국시대에는 피안도(彼岸島) 피안사(彼岸寺)인데 당시에 원효대사도 수행하셨던 곳이기도 하며 물이 가득 찼을때는 마치 한 송이의 연꽃이 또는 한척의 배가 떠있는듯 하다하여 따로이 원통대(圓通臺) 또는 연화대(蓮花臺)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고려 말 무학대사께서 이곳에서 수도(修道) 하다 하루는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치시고 난 후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菴)이라고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하였다.
이후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스승으로서 한양 도읍지를 잡는 등 조선의 건국에 많은 공헌을 하셨으며 조정에서는 간월도, 황도등을 사폐지(賜弊地) 정하여 대사께 드렸으니 많은 수도인이 이곳 간월암에서 득력(得力)을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조선왕조의 배불정책(拜佛政策)으로 이 암자가 완전 폐(廢寺)된 것을 1941年 辛巳) 만공선사께서 선승(先僧)들의 안목(眼目)을 기리시며 제자인 마벽초 선사에게 중창(重創)을 명하신 후 친히 조국해방 천일기도(千日祈禱)를 올렸는데 회향(回向) 삼일 만에 광복을 맞이 하였으니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해방의 초석(礎石)이 된 의미 있는 기도 도량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스님의 속명은 도암(道巖), 법호는 만공, 법명은 월면 이다. 전라북도 태인에서 부친 송신통(宋神通)과 모친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3년 13세 되던 해 김제 금산사(金山寺)에서 불상을 처음보고크게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공주동학사(東鶴寺)로 출가하여 진암(眞巖) 문하에서 행자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경허 스님을 따라 서산 천장사(天藏寺)로 와서 태허 泰虛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를 계사(戒師)로 사미십계(沙彌十戒)를 받고 법명을 월면(月面)이라 하였다.경허 스님의 법을 이은 스님은 덕숭산에 와서 금선대(金仙臺)를 짓고수 년동안 정진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납자(衲子)들을 제접하며, 수덕사(修德寺), 정혜사(定慧寺), 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많은 사부대중을 거느리며 선풍을 드날렸다. 스님은 일제 강점기 선학원(禪學院)의 설립과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선우공제회 운동(禪友共濟會運動)에 지도자로 참여하였으며,조선총독부가 개최한 31본산 주지회의에 참석하여 조선 총독 미나미(南次郞)에게 직접 일본의 한국 불교정책을 힐책하였다. 이는 일제 치하의 치욕스런 불교정책을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만공의 사상은 생사를 초탈한 선사의 가풍이라 할 것이다. 말년에는 덕숭산 정상 가까이 전월사(轉月舍)라는 초가집을 짓고 지내다가 입적하니, 1946년 10월 20일 그의 나이 75세, 법랍 62세였다.
---이상 간월도리 간월암 소개한 책자에서 발췌한 내용 임 ---
-12:40경 참석인원 대부분이 도착하여 덕숭총림 수덕사로 출발하였고 차량한대 인원5명이 출발시간을 잘못 전달받아 늦게 도착하여 출발하였다.
차량 이동이 되고 차창밖에는 이슬비가 그칠줄 모르고 인솔자의 가슴을 조이고, 혹 점심 공양할 때 비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13:10경 수덕사 주차장에 도착 각차량별로 점심공양을 가랑비 내리는가운데 맛있게 공양을 마쳤다. 몇몇 회원들은 쓰레기봉투를 이용 음식물을 정리하고 주변정리를 하였다 ,도보로 수덕사 입구로 이동 하는가운데 날씨는 가랑비온뒤 후덥지근하게 기온이 올라갔다.
*덕숭총림 수덕사는....
덕숭총림 수덕사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 ~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덕숭산(495m) 기슭의 유서 깊은 수덕사는 일엽스님의 애절(哀切)한 사연이 깃든 산사로 유명하다. 사하촌을 지나 수덕사길로 접어들어 조금가면 일주문 옆에 수덕여관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충남 문화재기념물 103호로 당대의 쌍벽을 이룬 두 폐미니스트 일엽스님과 서양화가 나혜석 그리고 고암 이응로 화백, 또 한 사람 일엽스님의 속세에 두고온 외아들 일당스님(김태신)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녹아있는 역사적 장소이다.예사스러운 곳이 아니다.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 눈여겨 살펴 볼 만한 곳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사천왕문,여승들의 수도장인 덕숭총림을 지나 대리석 돌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에 이른다.
수덕사는 백제 때 창건된 고찰로 현재 우리나라 4대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의 본찰로서,경내에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절이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어진 국보 제49호 대웅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의 최고 목조건물로 손꼽힌다.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대웅전 뜰에는 3층석탑, 범종각 등이 있으며, 덕숭산 능선에 위치한 정헤사로 올라가는 1천 20개의 돌층계길은 고요한 사색의 공간으로 좋고,정헤사 옆에는, 만공탑이 있다.
대웅전 서쪽 산중턱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比丘尼) 사찰인 견성암이 있는데, 이곳은 일엽스님이 이곳에서 출가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수덕사하면 사찰보다, 비구니(比丘尼) 시인 김일엽스님과 얽힌 이야기가 유명하다. 수덕사 일주문 옆의 수덕여관은 한때, 당대(當代)의 내노라하는 시인 묵객(墨客)들의 발길이 잦던 유서깊은 곳으로 일엽스님과 속세에 두고 온 외아들 일당스님에 얽힌 애달픈 사연이 숨어 있는 곳이다.한국 최초의 여류시인 김일엽(金一葉)스님은 평안남도 용강출신으로 이화학당, 일본 닛신학교(日新學校)에서 수학한 여류문인 승려로 수상록 '청춘을 불사르고'등을 남기고, 특히 '수덕사의 여승'이란 대중가요의 모델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일본 수학시절 일본인 오다 세이죠와 열애로 김태신을 낳았으나 오다 세이죠가의 반대로 일엽은 수덕사 견성암에서 탄옹스님으로 부터 수계를 받고 불가에 귀의하여 붓울 꺾고 불자로서 정진하게 된다. 노랫말 처럼 속세에 이국땅에 두고온 사랑하는 사람과 외아들을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얼마나 울었을까?
이무렵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도 이혼을하고 여승이 되기위해 수덕사를 찾았으나 만공선사로부터
"임자는 중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야"
라는 거절을 당하고 수덕여관에서 5년동안 그림을 그리며 소일한다. 이때, 속세에 두고온 김일엽의 외아들 태신과 인연을 맺는다.
어느날 일본에 두고 온 열네 살 소년 태신이 엄마가 보고 싶어 현해탄을 건너 수덕사로 찾아 온다.나헤석이 거처인 수덕여관에서 모정이 그리워 바다건너 산넘고 물건너 찾아온 피붙이 테신에게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라고 일엽은 냉정하게 대한다.
세 아이의 엄마인 혜석은 아들을 대하는 일엽의 냉정한 태도에, 일엽을 대신하여 태신이 모정이 그리워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마치 자식을 대하듯 팔베개를 해주고 자신의 젖을 만지게 하는 등 모성애에 굶주린 태신을 보살핀다.이무렵 수덕사와 가까운 홍성이 고향인 청년화가 이응로도 수덕여관을 자주 찾아 그림 이야기와 실습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태신은 이들의 영향으로 후일에 유명화가로 변신한다.
나혜석은 수덕여관에서 34년부터 43년까지 9년간 그림을그리면서 이응로에게 파리의 환상을 심어 준다.누나처럼 선생님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던 선배 화가 나혜석과의 인연으로 수덕여관에 정이 들어 버린 이응노는,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나자 수덕여관을 사들여 수덕사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화폭에 옮긴다.
수덕사를 떠난 나헤석은 공주 마곡사에서 수도생활에 들어간다.
나혜석의 영향으로 이응노는 1958년 21세 연하의 연인 박인경과 함께 파리로 떠난다.세월은 흘러 김태신은 화가로 성장하여 일본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아사히상을 수상하고, 현재 김일성 종합대학에 걸려있는 김일성주석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일당스님으로 변신하게 된다.일제시대 한국 최초의 여자 유학생이자 당대 최고의 비구니로 칭송 받던 일엽스님의 외아들이라는 것이 그의 자전 소설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를 출간하면서, 그가 한국 비구니계의 거두 일엽스님(1896~1971)의 아들이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란 김태신의 자서전은 67세에 불가에 귀의하여 80노인이 된 노스님이 털어 놓는 그리운 나의 어머니, 그리고 파란만장 했던 삶의 이야기이다.
수덕사 창건유래는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사는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오늘날人類가文明史的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차제에 '과연 우리 한국 불교는 부처님의 正法을 人類社會에 如法하게 구현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 불교 조계종 덕숭총림 수덕사는 근대 한국 불교의 중흥지로써 꺼져가는禪風을振作시킨 鏡虛, 滿空禪師의 家風을 계승하기 위하여 山中의 200여 승려가 불철주야로 용맹정진 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時代와 大衆의 여망에 부응하고 혼돈의 인류 역사에 등불이 되고자 <직관적 깨우침을 이끄는 參禪>과 <知性的 사유를 통한 선의 理解>를 돕는 禪學연구등을 통한 禪脈正立과 正法守護, 그리고 禪의 大衆化, 禪의 生活化, 禪의 世界化 실현을 위하여 노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상 덕숭총림 수덕사 소개한 책자에서 발췌한 내용 임 ---
-14:00경 참석한 회원들은 수덕사 일주문과 금강문,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도착 미리 도착한 사무국 행정주임 정토야님은 종무소에들러 오늘법회 장소를 안내받아 인솔자에게 전달을 해주었고 청하장재영단장님과 인솔자는 법회 장소(찻집 이라고 씌어진 큰법당) 법당에도착 주변정리와 음향시설을 점검하고 부처님전에 삼배의예를 올렸다 이윽고 참석한 회원들이 속속 법회장소에 도착하자 오늘 각 차량 인솔자들이 회원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학장스님께서도 법회장소에 자리를 하시고 재학생 각반 담임스님들과 함께 참석회원 모두는 정기법회에 들어갔다.
-14:20경 대구불교대학 상반기 정기성지순례 겸 53선지식(2회)44차 법회행사는 삼귀의례,6월은호국 보훈의달 이라 호국영령들에 대한묵념,
반야심경,발원문(53학번 최말순법우 낭독),학장스님 인사말씀,각교무스님 소개, 총동문회장 무등 김장근회장님 인사......잠시 오늘행사에 멀리서 오백여명가량 참석했다는데 내가 법문 아니할 수가 있는가 하시면서 흔쾌히 주지스님 법문을 해주신다는 전갈이 왔다 .......
-14:55경 덕숭총림 수덕사 주지스님 특별한 법문을 해주셨다
조용하고 맑은 목소리로 참석한 회원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큰스님께서는 맨처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덕숭총림 수덕사는 한국불교의 중흥지로 꺼져가는 선풍을 진작시킨 경허, 만공선사의 가풍을 계승시킨 도량이다 ...등 30여분간 참석한 회원들에게 좋은 법문을 내리셨다.....
-15:40경 법문종료
-15:45경 법문종료후 정기법회는 계속되고 대구.경북포교사단장 이시며 전임 총동문회장 이신 대웅 김상수님의 인사,53선지식 단장 청하장재영님의 인사말씀과 사무국 행정주임 정토야님 오늘행사를 위해 일주일동안 고생하였다고 전체회원들의 박수로 격려를 해주셨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중앙단 수석부회장 이신 권대자님소개, 대구불교대학 포교사회 우희삼회장님,대구 연합 합창단 김미자님,각기별회장님전체 소개,대구광역시 신도회 류병선 회장님 소개를 끝으로 ..
-잠시후 의식봉사회 이석정회장님, 장주일님 집전으로 108대참회를 진행하였다...500여명의 회원들의 뜨거운열기속에 대참회를 마감하고 공지사항 전달후 사홍서원을 끝으로 공식적인 정기법회를 마감하였다...
-16:00 - 16:40경 수덕사 경내를 관람하고 16:45경 수덕사 주차장에집결 다음 행선지로 출발.....
0.주차장에 잠시 머무르는 시간에 한석봉 선배님께서 큰스님 법문청할 때 먼저 큰스님 요사체에 남녀 보살2명이 먼저 큰스님께 예를 갖추고 법당 이동중 길놀이를 하고 법상에 좌상하시기전에 길놀이 2명의 남녀보살이 먼저 삼배의 예를 올린후 전체 오체투지 삼배의예를 올린다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상세히 설명해주시는 선배님 정말 감탄하였습니다...
-16:50경 차량은 다음 행선지인 태안 태을암으로 출발했다..수덕사에서 태을암까지는 40여분이상 소요가 되었다
0.태을암 입구 언덕에서 차량은 잠시 정체를 하고 몇분후에 차량모두가 태을암 입구에 도착하였다.
*태안 태을암은...
백하산엔 태안마애삼존불(국보 제 307호)을 모신 태을암이 있다. 산 전체가 흰돌로 덮여 있는 백하산은 그 모양이 경주 남산과 흡사하다. 최근 불사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태을암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 삼존불을 친견했다. 유명한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보다 앞서서 조각된 백제의 가장 오래된 마애불이다.
관세음보살이 가운데 모셔져 있고 양쪽에 부처님이 서 계시는 모습이 이채롭다. 전쟁으로 얼룩진 삼국시대에 중생을 돌보고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관세음보살을 두 부처님이 외호하는 양식을 취했다고 전해진다. 관세음보살을 지켜주는 듯한 두 부처님의 상호엔 따뜻한 미소가 번져 있다. 관세음보살의 ‘보디가드’라도 되는 듯, 미소를 머금은 두 부처님의 기세가 마냥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 태을암 마애삼존불 모신 정각에는 벌써 습기가 시작되어 기상관측 자료기기가 설치되어 보존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상 태안 태을암 소개한 책자에서 발췌한 내용 임 ---
-17:55 - 18:40 태안 태을암도착 사찰관람을 하였다.
-18:50경 차량은 인원점검및 차량이동을 체크하고 대구로향했다.
0.이동중 2호차량 탑승한 재학생 한명이 급체를 호소하여 2호차,8호차,10호차량이 인근 도로변에 주차를 하여 응급조치를 한후 차량은 출발하였다...오전 서산간월암 이동중에는 가랑비가 내리더니 대구로향하는 오후 늦게는 햇빛이 따가울 정도가 되었다...
-19:20경 서산당진 고속도로 접어들어 차량은 1호차량부터 10호차량까지 한줄로 이동이 시작되었다 인솔자는 각차량 인솔자들에게 회향법회를 하도록 권유하고 3호차량도 회향법회를 시작하였다.
-19:30경 회향법회에 들어갔다.
3호차량은 지원 이웅기님 집전으로 예불문 ,반야심경, 교가, 사홍서원,산회가등으로 ......
회향법회를 마치고 회원들을 상대로 추첨을하여 당첨된 회원들에게 선문을 나누어 주었다, 작은 선물이지만 모두들 즐거워하며 당첨된 회원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전했다.
-20:30경 공주휴게소에 들러 잠시휴식을 취하고 출발을 하였다.
-20:50경 휴식을 취한후 차량내에서는 53주간회장 강지호님의 사회로 각자 개인 장기자랑을 하였으며 차량은 서산당진 고속도로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0.차량이동중 추풍령 휴게소 인근전에 회원원들을 태운 차량한대에 안전사고발생 연락,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고 각차량 인솔자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으로 빠른시간에 수습하고 각각 차량에 사고차량 인원들을 태우고 대구로 향했다. 참다행이라고 인솔자는 다시금 부처님께 감사함을 느꼈다....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22:15경 추풍령 휴게소를 출발하였다
-22:45경 차량은 어느듯 대구인근에 도착을 하고 북대구 톨게이트를 지나 오늘 행사 마감인사를 지운 이웅기님, 인솔자는 53학번주간 강지호회장님, 고정란 총무님 등 53학번 주간반 여러 도반님들 고생하였다라고 인사를하고 공지사항 전달후 행사를 종결하였다.
-23:25경 차량은 반월당에 도착했다.
0.다음달 53선지식(2회)45차 행사는 2010.07.11(둘째일요일) 07:00경 전남 해남 대흥사 순례예정임.
0.오늘 행사를 아쉬움을 뒤로하면서 53선지식 행사 원력을 한번더 상기하면서...회원들은 각자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글의 흐름상 존칭은 개략 생략한다.....
2010년 06월 14일
덕원德原 김동훈金東勳 기록하다
0.본 순례 준비를 위하여 수고하신 졸업 동문 선후배님,재학생 회장,총무님, 단장님, 각실무국장 및 차장님, 특히 사무국 행정주임 정토야님, 각차량 인솔을 담당하신 인솔자 여러분들 정말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0.보시내역등 자세한 내역은 사무국 결산보고를 통하여 공개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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