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장 9-2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충만히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이 자랑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믿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방인이 유대인보다 나은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습니다. 이 땅에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은 온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 율법으로는 오직 죄만 깨달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에 대한 평가(9)
자신을 평가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평범하게 생활하다가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시험을 통해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가장 힘든 시간입니다.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9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9)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우리는 나으냐?’라고 묻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 지배받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자신의 지식을 자기고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헬라인, 스스로 도덕적인 행위로 의롭다 칭함을 받기를 원하는 유대인들도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으로 보면 자격이 미달이란 것입니다. 누구도 인간의 의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자격 미달인 죄인입니다. 누가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자격 미달이라는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구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모든 인생을 경험하고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20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전도서 7:20).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단정하십니다. 본문에서도 또한 사도 바울은 다른 성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사람들을 평가하십니다.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에베소서 2:2-3)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으로 적게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양심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흉악한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을 정말 거룩한 것처럼 착각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는 때로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평가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의롭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말 전도하거나 가르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도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앞에서 죄와 심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은 상대적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면서 누가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도토리 키 재기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십니다. 종종 우리들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헌금이나 봉사 등을 비교해 보면, 주일날 한 번 교회 출석하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수고는 우리들의 자랑거리나 의로움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성도들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계속해서 이 땅 가운데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 나가야 합니다.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의 특징(9-18)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인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9-18)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한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창조하실 때,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서 이런 죄인의 모습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는 의인은 없고 모두 죄인들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신다면, 우리들은 깨달음도 없고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서 무익하게 됩니다.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살면서 마치 대단한 것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다 치우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선하고 유익한 일에 쓸 수 없는 그러한 인생일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죄인들의 특징을 시편에서는 죄인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2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시편 36:1-2)
죄인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며, 혀로는 선함을 말하지만 속임을 베풀고, 입술에는 선을 품어낸 것처럼 하지만 독사의 독으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저주하고 죽이는데 발 빠르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앞에 놓인 길이 파멸과 고생의 길이며, 그들에게서는 평화를 찾을 수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들이 회복해야할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10-12)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축복과 회복해야할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만이 우리에게 참된 축복을 가져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구하지도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깨닫는 지식을 주셨고,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선을 행하게 하십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의 길입니다. 시편 기자는 선을 행하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편 37:25-26)
우리들이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은 축복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요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자녀를 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가운데 잃어버린 축복이 있다면,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축복들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의 한계(19-20)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죄인들입니다. 학식이 풍부하여 세상의 학문을 두루 통달한 자도, 배우지 못하여 지식이 없는 자도 여기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권력자나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도 모두 이 선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으로 지칭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를 잘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19-20)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가진 것이 구원을 받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주신 이유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죄를 깨닫는데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갈망하게 됩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고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 대할수록 우리의 죄성이 드러나고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추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은 또 다른 의인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는 몽학선생(蒙學先生)과 같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과 마음과 행실을 점검하면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회개해야 할 죄들이 많음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