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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삶의 활력까지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몸을 움직여 땀 흘리고 나면 머릿속의 스트레스와 잡념이 사라진다는 경험담도 주변에서 쉽게 듣는다. 날이 갈수록 주목받는 신체 운동의 가치만큼, 그 방법과 관련 산업 규모도 나날이 커지고 넓어진다. 물론 운동에는 수없이 다양한 분야, 종류, 차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활체육’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그 산업을 구성하고 떠받치며 일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들이 있다.
필자도 몇 년 전부터 여러 공간에서 요가, 유산소, 근력강화, 춤 등 여러 운동수업을 수강했다. 그러면서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들과 친분이 생겼고, 이들이 하는 노동의 성격과 환경, 조건을 조금씩 알게 됐다.
운동법, 구기, 무술, 춤 등 제대로 몸 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니 누구보다도 건강할 것 같고 행복하고, 스트레스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시간 혹은 불규칙한 노동 시간과 저임금, 격무로 인한 스트레스,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그리 건강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내가 건강하게 사는 데 상당한 부분을 기여하는 운동 강사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해졌다. 수 년 전부터 현장에서 운동강사로 일하고 있는 두 여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새벽부터 밤까지 무조건 많이 뛰어야 해요”
“죽을 것 같이 격렬하게 운동하고 났을 때 머릿속이 개운해지고 날아갈 것 같은 쾌감을
느꼈어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운동으로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변하는 걸 보고 주위에서도 본격적으로 하라고 권했어요. 그래서 태보 강사 자격증
따고, 스텝댄스 자격증도 땄죠. 그 전까지 영어 과외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자격증을 따고서 해당 협회에서 취업 알선을 해주어 그룹운동(흔히 ‘지엑스-GX’라고 부름) 강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유산소 운동의 여러 종목을
가르치며 피트니스센터에서 일한 거예요. 이때도 영어 과외는 계속 알바로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비영리단체에서 상담 일을 하던 다현 씨(36세)는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보니, 본인의 몸과 마음이 지쳐 쉬기로 했다. 이때 친구가 쉬는 동안 운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한번 해보았는데, 무척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시작은 자신의 건강이 목적이었지만, 남에게도 그 경험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런 뜻을 가지고 운동강사가 되었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가차 없었다. 단체에서 일할 때도 수입이 적어 영어 과외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운동강사로 일하면서도 그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그만큼 노동 강도와 시간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았다.
“계약서 작성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처음엔 강의 한 시간당 이만 오천 원이나 삼만 원을 주었어요. 심한 곳은 강사에게 사람을 끌어오는 것까지 요구해서 두당 급여를 책정하기도 했어요. 제가 하는 지엑스 수업은 음악에 따라 안무를 짜는 창작 과정이 반드시 필요해서 시간 투자가 필수에요. 그에 대한 보수는 무시되더라고요.”
8~9년 째 운동강사의 보수는 오르지 않고 그대로라고 한다.
“강사 양성하는 협회도 많아지고 전체 강사 인구도 많아져서 공급이 확 늘어나니까 고용주들 입장에서는 임금을 올릴 이유가 없는 거죠. 그나마 조금 더 낫던 다른 종목의 임금도 같이 내려가는 부작용까지 나타났어요. 그러니 새벽부터 밤까지 무조건 수업을 많이 뛰어야 기본 생계가 유지되어요. 장거리도 마다 않고 동서남북 종횡무진 보따리장수처럼 돌아다니기도 해요.”
하지만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수업을 많이 “뛸” 수는 없다. 몸이 망가지니까. 실제로 다현 씨의 동료 선후배 중에 크고 작은 부상이 없는 사람이 없단다.
“운동강사들은 카이로프락틱, 침술 등에 수시로 의지하고 있어요. 어디가 안 좋으면 일단 그 부위를 쓰지 않고 쉬는 것이 필수지만 쉴 수가 없죠. 발목 보호대, 무릎 보호대 같은 걸 차고 일하는 것이 기본이고요. 저는 아직까지 큰 부상이 없었는데, 몇 달 전부터 무릎이 좀 안 좋아 조심하고 있어요.”
걸스힙합, 태보, 스텝댄스, 재즈댄스 등 지엑스 수업은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동작을 직접 반복해서 보여주어야 하므로 운동량이 굉장히 많고 몸에 무리가 온다. 쉴 새 없이 몸을 과도하게 움직이며 시범을 보이다 보니, 아차 하는 순간 관절과 근육이 다치는 일이 잦다. 하지만 다쳐도 병원에 가서 꾸준히 치료받고 푹 쉬는 일은 불가능하다. 시간이 곧 돈이고, 수업을 쉰다는 건 곧 해고를 뜻하기 때문이다. 병원이라도 가려면 알아서 직접 강의를 해줄 “대타”를 구해서 보내놓아야 한다.
산재보험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운동센터 운영자나 고용주에게 아프거나 다쳤다고 말해도 펑크 날 수업 걱정뿐, 시간제 강사의 복리후생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4대 보험은 운동강사들에게 꿈같은 일이다. 수업 시간표를 짤 때도 강사 의견을 묻는 일이 잘 없다. 월수금만 나올 수 있는 강사에게 갑자기 화목 시간표를 들이밀며 “안 돼요?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라고 반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체육계의 관행
래아 씨(33세)는 피트니스센터에서 개인 트레이너(퍼스널 트레이닝, 줄여서 PT라고 부르는 운동법을 지도하는 강사)로 일하면서 아주 가끔이지만 정규 직원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센터마다 한두 명 정도 있는 팀장급 직원들뿐이다. 외부 강사는 물론이고 한 곳에 붙박고 일하는 트레이너들 모두 비정규직이다. 4대 보험은커녕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는다.
“하루 12시간 정도 근무해요. 트레이너는 수강생들 눈도 신경 써야하니까 자기 관리 철저히 해야 하는데 정말 힘들죠. 근무시간 짬짬이, 혹은 업무 외 시간에 운동을 따로 해요. 월차, 연차 같은 거 없어요.”
래아 씨는 운동강사로 일하는 동안만이 아니라 체육계의 고질적인 폭력성과 모순을 다층적으로 겪었다고 했다.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고 합기도장에 들어가서 4년 남짓 열심히 합기도를 배웠다. 그곳 관장이 잘 가르쳐준다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부사범으로 부르면서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시켜도 묵묵히 했다. 그러나 항상 무시하는 듯한 관장의 태도가 섭섭했고, 자신을 함부로 대할 때마다 거북스러웠다.
“무료로 부사범 교육 받는 거니까 내가 고마워해야 한대요. 네가 여기 나가면 사실 뭐해먹고 살 거냐, 저기 태권도 전공한 애도 겨우 80만원 받는다, 너 같은 부전공자는 아무것도 못한다, 이러면서. 성희롱 비슷한 행동도 하고.”
래아 씨는 관장이 툭하면 잡일을 시키고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기는커녕 무시하는 태도가 싫어서 도장을 그만뒀다. 그래도 운동에 대한 열망은 계속 있어서, 대학 졸업 후 다시 준비를 해 체육교육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간 대학 체육교육학과에도 폭력과 군대적 위계와 권위주의가 가득했다.
“제가 다닌 학교는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지만 ‘다나까’(군대에서 흔히 쓰는 ‘다’ ‘나’ ‘까’로 끝나는 말투. ‘요’는 쓰면 안 된다) 체라든지, 의무와 규율 같은 게 어느 정도는 있었죠. 엠티나 술자리 가면 후배가 알아서 해야 할 의무가 딱딱 정해져 있고, 남녀차별이 대놓고는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는 엄청 심했어요. 군대, 조폭 이런 문화였죠. 그러다 제가 선배가 딱 됐는데, 사실 후배한테 대접받는 게 편하잖아요. 그 느낌이 참 묘하고 씁쓸했어요. 결국 그런 문화가 넌덜머리 나서 휴학까지 했어요.”
“트레이너인지 영업사원인지 구분이 안 갔죠”
래아 씨가 휴학하고 일자리를 구한 곳은 서울 강남역 근처의 꽤 규모가 있는 피트니스 센터였다.
“이곳 퍼스널 트레이너들은 기본급이 80만원 될까 말까 했는데, 모자라는 수입을 채우려면 할당제로 신규(고객) 등록 실적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매일 나가서 역에서 전단지 뿌리고, 그렇게 온 사람들 상담해서 되도록 높은 금액에 1년 치 이용권 끊게 하고. 내가 트레이너인지 영업사원인지 구분이 안 갔죠"
화장실과 강의실 등 센터 구석구석 청소하기, 짐 옮기기, 전단지 배포 등 갖은 잡일에
수강생을 관리하고 감정노동도 감당해야 했다. 식대는 겨우 하루에 3천원이어서 질 낮은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웠다. 제일 힘들었던 건, 신규
등록자를 끌어오는 영업이 서툴다 보니 심각한 저임금을 감수해야 했던 점이다. 당연히 운동을 가르쳐주는 본업에 집중할 여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트레이너들 사이에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 래아 씨를 무척 힘들게 했다.
“팀장급 같은 관리자들이 의견이 안 맞는다고 나중에는 골프채 휘두르며 피 터지게 싸우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술 먹거나 회식 때조차 폭력적인 분위기고. 여자들을 노골적으로 성추행 하는 일도 잦았어요. 남자 트레이너들이 일부러 여자 수강생들과 연애감정 부추기고 성적 긴장을 조성하고. 아예 여러 명의 수강생들과 동시에 연애하는 남자 트레이너들도 있어요. 그런데 또 여성 트레이너들은 그 안에서 배제되고 차별을 받죠. 노동은 거의 똑같이 하면서요.”
남성 트레이너들이 성희롱 발언을 하며 즐기는 것도 래아 씨는 여러 번 목격했다. 운동하는 수강생들의 신체 부위를 가리키며 뒤에서 낄낄거리거나, 어떤 부위를 더 잘 보려고 특정 동작을 일부러 더 시키는 일도 다반사였다.
신기한 건, 일부를 제외하고는 여성 수강생들 다수가 남성 트레이너를 더 선호한다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여성전용 피트니스 클럽이 성공하는 일은 거의 없고, 여성 퍼스널 트레이너가 성공하는 일도 잘 없다고 한다. 래아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여성 트레이너들 사이에 선후배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남자들은 형 아우 하면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익숙하잖아요. 보통 어떤 조직이든 남자들은 조직에 기여한 정도나 능력 여하에 상관없이, 술 먹고 형 아우 하면서 자연스레 그 조직에 녹아 드는 점이 있죠. 그런데 여성 트레이너들 사이엔 그 연대가 없는 거예요. 끌어줄 선배도, 열심히 노력해서 크고 싶어하는 후배도 없어요. 서로 잘 모르고요.”
결국 더 배울 것도 없고, 임금도 처음 면접 때 제시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강남 피트니스 센터를 나왔다. 그 다음 간 곳은 신촌의 한 한의원이었다. 이번에는 ‘운동처방사’ 자격으로 취직했는데, 전 직장에 비해 잡무가 거의 없고 식사가 제공되어서 훨씬 조건이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불합리한 영업을 요구 받았다. 운동처방사가 운동을 통해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잘 구슬려 최대한 돈을 많이 쓰게 만드는 일이 주 임무였다.
“한약, 침, 카복시(지방분해 주사요법)가 결합된 패키지를 최대한 많이 파는 것이 내 일이었어요. 역시 환자들의 건강보다는 돈 벌이가 중요했던 거죠. 한약 몇 첩, 침, 주사, 운동처방을 몇 백 만원에 끊게 할 것이냐가 관건이고. 전처럼 전단지 배포는 안 했어도 블로그에 내가 환자인 척 하며 경험담을 올려야 했고, 관련된 온라인 카페 등에 들어가서 내가 여기 가서 효험을 봤다는 식의 홍보 글도 올리라고 하고….”
그래도 3개월을 버텨 수습을 떼고 정직원이 될 때가 왔다. 하지만 원장은 말을 바꿨다.
“내가 영업을 잘 못하니까, 정규직은 못 시켜주겠다는 거예요. 그냥 월급 조금 올려준다고. ‘너 4대보험 뭐가 필요해? 여기서 일하다 혹시 다쳐도 우리가 다 고쳐주면 되잖아’ 이러면서. 규모도 꽤 있는 곳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실망했죠. 그때 그냥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요.”
래아 씨는 폭력적인 위계와 권위가 팽배한 학교에 복학했다. 일단 대학에서 중요한 자격증을 따고 석사 학위를 하면 이런 대접을 안 받아도 될 것 같았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로 존중하는 운동문화의 가능성을 찾아서
다현 씨와 래아 씨의 이야기를 듣고서, 이렇게 열악하게 일하는데 운동강사들끼리 뭉쳐서 노동 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거나, 모여서 고충을 토로하는 커뮤니티가 없는지 물었다.
“다 따로 놀아요. 단순한 정보 교환은 인터넷에서 많이 하고, 노동 조건에 대해서도 불만까지는 말해요. 악덕업주 고발하는 신문고도 있고, 조언도 해줘요. 하지만 그냥 거기까지예요. 조직력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까진 못 가요. 노동자라는 의식도 부족하고, 부당한 감정노동 같은 걸 공론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죠. 그나마 학교 체육과나 선수단 내 성폭력 문화, 군대 문화 이런 건 언론에서 다뤄져 다행인데.” (래아)
“지엑스 강사들은 급여가 너무 적은 게 제일 큰 불만이거든요. 그럴 땐 그만둘 수밖에 없어요. 시세라는 게 정해져 있으니까. 나는 수많은 시간제 강사들 중 한명인 거잖아요. 강사들에게는 이런 조건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노조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것 이런 거 어렵고 상상조차 안 하죠. 사실 나도 생계 수단이 그나마 하나 더 있어서 아주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쩌다 내가 얘기 꺼내도 ‘언니 왜 그렇게 어려운 얘기 해, 난 몰라’ 그래요.” (다현)
다현 씨와 래아 씨는 최근 여성주의적 지역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는 뜻 맞는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개념의 복합 문화 공간이자 운동 공간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굳이 학위나 졸업장이 없어도, 수강생들에게 최대한 비싼 이용료를 내게 하지 않아도, 건강을 가꾸고 즐겁게 운동하는 문화를 전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단순히 날씬하고 가느다란 몸이 아니라 강하고 최적화된 몸을 갖길 원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것과,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자랑스레 여기는 걸 목격한다. 함께 격려하며 신체운동을 하고, 그 안의 관계를 소중히 돌보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진 일들이다.
“이윤 무한 증식이 목표인 영리성 운동센터라면 이런 여성주의 감수성이 살아있지 못할 거예요. 운동강사들은 한 곳에서 길어야 반 년, 일 년 일하거든요. 일하는 사람이든, 운동하는 사람이든 워낙 들고나는 게 잦으니 공동체의식, 연대의식, 관계가 유지될 수 없을 테니까요. 꾸준히 얼굴을 봐야 서로 이루려는 목표, 발전 과정을 지켜보며 관리하고 격려할 수 있잖아요.”
물론, 좋은 뜻을 가진 지역 운동센터라 해도 일의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수업과 행정 사무, 수강생 관리를 모두 해내야 한다. 이렇게 힘든 데도 운동강사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다현 씨에게 물었다.
“수강생들과 힘든 운동을 하면서 함께 땀 흘리고 한계를 극복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게 참 좋아요. 운동하고 나갈 때 뿌듯하고 당당한 그 얼굴들이요. 그리고 수강생들이 ‘난 여기가 안 예뻐요’, ‘여기를 고치고 싶어요’, ‘여기가 싫고 여기를 살 빼고 싶고’ 이런 말 할 때 나는 ‘아니다, 당신 자신 그대로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해요. 나만 할 수 있는 수업이 있다고 보거든요. 남자강사들이 가끔 ‘어머님들 그 뱃살 다 빼고 싶냐, 그럼 이거 열심히 해라, 뭐뭐뭐는 먹지 마라’ 그래요. 우리가 무슨 다이어트에 목숨 건 동물인 것처럼. 나는 다이어트라는 말은 안 해요. ‘체지방 줄이자’ 이런 말은 해도요. 전혀 차원이 다르거든요. 안 그래도 죄책감 가진 사람들에게 그런 강의는 하지 않겠다, 이런 결심으로 해요. 그런데 그게 먹히는 느낌? 그럴 때 뛸 듯이 기쁘고 뿌듯해요.”
한편 래아 씨는 조금 더 구조적인 면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했다.
“체육계가 정말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제나 군대문화에 물들었다고 하지만, 이게 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고 봐요. 그게 체육계에서 노골적이고 집약되어서 드러나는 거지. 체육계 하나만 개선한다고 될 일이 아닌 거예요. 그런 속에서 억압된 여성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해방되려면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 찾고, 내가 할 일들을 하나씩 이루는 과정이 성취감을 주었어요. (…) 지금 일하는 곳도 노동량 많고 근로 조건이 혁신적으로 좋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 존중하는 인간적인 문화가 풍부해요. 그것만으로 일단 큰 자산이라고 봐요.”
다현 씨와 래아 씨는 앞으로 새롭게 개척할 운동문화와 가능성에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여전히 느끼는 한계와 겹겹이 쌓인 관행, 경쟁 문화에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한없이 싼 가격을 제시하는 헬스 센터들과 경쟁해야 하고, 저임금과 갖은 막노동을 참아야 하는 운동강사들이 수백 수천 명 있다는 현실도 이들이 한껏 장밋빛 희망에만 젖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당신 수업으로 나 이만큼 좋아졌다’고 경험담을 말하고, 자신도 이것을 배워서 운동강사가 되겠다고 하는 수강생들이 있어 기쁘다. 다현 씨와 래아 씨는 자신들의 작은 노력이 실마리가 되어 운동문화 전반에 서서히 영향을 미치길, 후배 강사들에게 악조건을 대물림 하는 일이 하루 빨리 사라지길 기도한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시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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