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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오늘은 마가복음 7장의 말씀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증명하기 위해서 기록한 마태복음은 어떤 영적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교리적인 순서를 따라
기록한 반면에 이 마가복음은 주님에 대한 진리의 가르침의 말씀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주님의 그 행적을 쫓아 나타난
주님의 인성 안에 있는 아름다운 미덕을 통한 수고하심과 봉사하심 속에서 나타나신 그분의 행동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쫓아가는 삶을 통하여 역사적인 사건의 순서에 따라서 기록한 것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가요한을 통하여 하나하나 기록하게 한 사도 베드로 선생님의 의도는 이 점진적인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어떤 특별한 역사적인 순서를 따라서 계시되어 있는 영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안배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이 마가복음이 기록된 것임을 우리가 은연중에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7장 말씀 전에 예수님께서 고향 갈릴리 사람들로부터 멸시받고 배척받는 장면에 대한 말씀이 계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더 큰 소망 가운데 격려를 받으시고 그 임명하신 열두제자들을 짝을 지어서 세상 가운데로 보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전진해 나가는 삶을 행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왕의 대로를 예비하고 준비한 침례요한이 헤롯왕에 의하여 목이 잘림으로 말미암아 순교를 당하는 일로 인하여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떤 위험과 위협을 직시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를 받고 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 공급을 통하여 생명 양식을 허락해 주시기 위하여 오병이어의 역사를 통해서 5천 명에게 먹이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다 위를 걸으시는 장면과 그리고 이 게네사렛 지방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그 당시에 유대 사람들과는 달리 즉시 예수님이 노예로 오신 구주임을 알아보고 그분에 대한 소문을 곳곳으로 뛰어다니면서
소식을 전하고 병든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장면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6장에서의 말씀은 주님께서 이 바람과 파도가 있는 폭풍이 있는 바다를 걸어오시고 그 게네사렛 지방에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을 치유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왕국을 소멸시키기 위한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수고하시고 봉사하시고
움직이시는 주님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마가복음 7장 1절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중에 어떤 자들이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와 그분께 왔다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떤 종교적인 예수님의 꼬투리와 트집을 잡기 위하여 모의 가운데 어떤 큰 계획을 세우고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가장 하단 부근의 남쪽 지역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장 북쪽에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유대 종교자들의 정탐꾼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트집을
잡기 위해서 아주 멀리에서 남쪽으로부터 북쪽까지 이렇게 오는 장면을 통해서 얼마나 그들이 예수님을 적대하고
배척하고 있는지를 우리가 이렇게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마가복음 7장 2절을 통해서 제자들 중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는 것을 보고 흠을 잡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고 그리고 7장 3절 4절에서는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조상들의 전통인
손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4절에서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또 다른 많은 것들을
물려받아 지키는데 잔과 주발와 놋그릇과 상을 씻는 것이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문제로 인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책잡고자 하는 그들에게
5절에 주님께서 이렇게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조상들의 전통대로 장로들의 전통대로 걷지 아니하고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장로들의 전통대로 걷지 아니하고 어떤 걷는 것도 조상들의 전통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씻지 아니한 손으로 왜 빵을 먹습니까? 6절에서 예수님께서 대답하되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에 대해 잘 대응을
하였도다.그것은 기록된 바 이 백성이 자기 입술로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아주 멀도다라고 얘기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장로들의 전통은 그 당시의 장로들이 아니라 그 조상들의 유전이라는 뜻으로
그 오래전부터 그 이전에 있었던 시대에 어떤 사람들의 어떤 전통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을 따르고 쫓는 제자들이 바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그러한 유대인들의 전통과는 전혀 상이한 방법으로
걷고, 여기 5절에 보면 장로들의 전통대로 걷지 아니하고 걷는 것도 제자들이 조상의 유전의 전통대로 아마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고 손과 발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이렇게 행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가복음 7장에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다라는 이러한 말씀을 6장과 연계해서 무엇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시고자 친히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 문제를 가지고 외적인 어떤 상태에 대해서 들추어내고자
했을 때 주님께서는 사람의 내적인 상태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지혜로우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7:20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7:21 이는 속에서, 즉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간음과, 음행과, 살인과,
7:22 도둑질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눈과, 하나님을 모독함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니
7:23 이런 모든 악한 것은 속에서 나와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고 하시더라.
이 7장20절 사람들 속에서 나온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이 말씀이 이 6장 말씀과 더불어서 이렇게 연관되어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있는데요. 바다 위를 걸으시고 심지어는 게네사렛 지방에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이런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고 무엇을 알 수 있느냐 하면 사람의 내적인 상태의 문제가 실제적인 외적인 상황보다도 더욱 심각하고도 악화된 것이다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가복음 7장 2절에 바다 위를 걸으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이 계시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 바람과 파도와 풍랑 때문에
6장 48절에 보면 노젓느라고 괴로워하고 또 6장 53절부터 56절까지는 게네사렛의 수많은 병자들을 주님께로 다가온 자들에게
친히 고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외적인 괴로움을 당하고 수많은 게네사렛 지역에 있는 이 병자들의 모습은 외형적인 어떤 상황에 관계된 외형적인 어떤 심각한 상태의 모습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우리의 존재에 있어서 외적인 상황보다는 내적인 상태의 문제가 더욱더 심각하고 그 문제가 모든 문제를 유발시킨다라는 것을 계시하고자 이 7 장1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내적인 상태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고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까지도
외형적인 상태의 문제에서는 거론하고 트집을 잡고 그 문제의 상태를 얘기했지만 타락한 사람들 안에 있는 내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쫓고 그분을 사랑하는 제자들까지도 내적인 상태에 대해서
아무것도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 무지한 상태에 있는 그 자신을 쫓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계시해 주기
위하여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에게 트집을 잡고자 하는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바로 이때다 싶어서 내적인 상태에
관해 계시할 수 있는 드러내어 나타내 보 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생각하시고 그것을 선용하여서 놓치지 않고 인간의 내적인
상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7장 2절에는 외형적인 문제에 그 제자들이 노젓는 그 괴로워하는 사람이 사망의 폭풍 가운데서 현재 처해진 인간의 생활이
이렇게 바람 잘 날이 없는 끊임없이 우리들의 삶을 요동치게 흔들거리게 하고 심히 수고스럽게 하는 일들이 이렇게 펼쳐지고
있고, 그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 주위에 이렇게 치료받지 아니하면 될 수 없는 병자들이 많이 이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이 서기관들의 의도는 노예로 오신 구주를 정죄하고 트집 잡으려고 손을 깨끗이 씻지 않고 먹는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제자들에게 트집을 잡고 제자들을 정죄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안배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그러한 질문에 따른 일을 통하여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사람의 보이지 아니하는 내적 상태에 대해서 다룸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참으로 밝히 계시하고자 했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외적인 형식의 상태에 외적으로 씻는 문제와 외적으로 이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 걷는 문제 이러한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사람의 어떤 내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또 알지도 못했고 그리함으로 말미암아 내적인 문제가 아닌 외형적인 사람의 어떤 상태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조상들의 전통을 통해 나타난 손을 깨끗이 씻지 않고는 먹지 아니하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7장 1절부터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첫 번째는 1절 말씀을 통해서 바리새인들과 이 율법학자들 예수님과 제자들을 정죄하고 트집 잡고자 하는 무리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일부는 주님을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따라온 그런 무리들과 또 주님을 쫓음으로 말미암아 섬기고자 하는 무리들이
14절에 있었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7: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7: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7: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4절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무리를 다시 부르셔서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라고 얘기하시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1차적으로 무리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그리고 무리들을 분별하여서 주님의 제자들 주님을 쫓아 사랑 하고 섬기고자 하는 친밀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특별히 비유의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1차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진 자들보다는 주님을 쫓음으로 말미암아 섬기고자 하는
그러한 갈망을 가진 자들에게 1차적으로 설명해 주신 다음에 2차적으로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 비유의 말씀을 계시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계시하고자 하는 그 의도는 바리새인들과 이 서기관들이 말하는 어떤 외적인 상태에 대한 것이 아닌
내적인 상태를 완전한 방법으로 계시하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이런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트집 잡고 정죄하고자 하는 일 때문에
유익을 얻는 자들은 1차적으로 먼저는 주님을 쫓고자 하는 그런 주님에 대한 갈망을 가진 무리들과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주님을 온전히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주님의 친밀한 제자들이 이 유익에 대한 혜택을 온전히 받았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구약 성경은 물론 이 신약 성경에서 조차도 주님께서 이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기까지는 외적인
상황만 알았을 뿐 사람의 내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있는 그런 단계에 대한 문제를 알지 못했던 무지함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그 주권 안에서 이 상황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가복음 7장 이전에 게네사렛 사람들의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성육신 되신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신성하시고도 영원하시고도 가장 높은 생명을 지니신 참된 구주로서 사람들의 모든 상태를 보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온전히 치료하실 수 있었던 것이 마가복음 6장 53절부터 56 절까지의 병자들을 고치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치료는 외적인 질병에 대한 문제이지만 이러한 외적인 질병에 대한 문제가 실질적으로는 내적인 질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외형적인 질병이 결과물로 나타났다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노예로 오신 구주께서는 외형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특별히 우리의 내적인 질병을 돌보시고 치료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온 존재에 대해서 완전히 해결해 주시는 구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장에서는 노예로 오신 구주께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사람의 외적인 상황에
관한 것을 통하여 반대자들과 적대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트집 잡고자 하는 손을 씻지 않고 먹고자 하는 그런 제자들을 보고 정죄하고자 하는 그러한 일을 통하여 타락한 사람들의 내적인 상태를 다루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외형적인 상황에 관한
것을 부가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어 계시해 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6장의 말씀을 통해서는 고향 갈릴리 나사렛 사람으로서 주님께서 비천한 신분을 가지고 목수로서 일을 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 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그분이 비천한 신분인 목수 왕가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천여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왕가의 혈통을 가진 주 예수님에 대해서는 완전히 유대 백성들에게 잊혀진 바 되고
현상적으로 보이는 비천한 신분의 소유자인 목수만을 기억하고 그들에 의해서 배척을 당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노예로 오신 구주께서는 자신보다 6개월 먼저 온 노예로 오신 구주와 왕으로 오신 구주를 예비하고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로 온 침례요한이 헤롯왕에 의하여 목이 잘리는 순교를 하는 장면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순교를 하고 있는 장면은 세상이 하나님의 노예로 오신 하나님의 왕국을 임재케 하고 도래케 하기 위해서 일하는
모든 일꾼들을 향한 사단의 증오가 침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일이 노예로 오신 구주의 그 복음을 전함으로 그 복음은 왕국의 씨이고
하나님의 그 유전자를 가진 생명의 그 씨 자체가 노예로 오신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에 그분을 전할 때 그분의 전하는 그 진리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 진리의 씨가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왕국을 도래케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세상과 그리고 주님을 거절하는 모든 세력들의 그 증오와 거절과 반대와 배척에 의하여 이렇게 침례자 요한이 순교를 당하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노예로 오신 구주를 위해서 이 왕국 복음을 임재케 하고 이 세상에 천국의 출현을 가지고 오게 하는 그때 당시에는 천국의 출현을 가지고 오게 했지만 지금은 이미 천국의 출현이 온 것입니다.
이러한 천국의 임재를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를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거절과 반대와 증오 가운데서 나타난 사단의
증오의 표현이 이 침례자 요한을 죽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 외형적으로 이러한 배척과 거절과 이런 증오로 인하여 정말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빨리 재촉해서 배에 태우시고 바다 건너편 뱃세다로 먼저 가게 하는 이런 장면은 모두 이 악한 사단의 증오에 의하여 그 도구로
사용되어진 이 세상에 권세자라든지 유대 종교 지도자들 이라든지 이런 증오심을 가진 사단과 하나가 된 가운데 도구로 사용되어진 그들의 증오에 의하여 주님께서 건너편 뱃세다로 가실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이 바다 건너편에 게네사렛 땅 안에 예수님을
알아본 자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본 그들을 믿음의 더 높은 단계로 이끌어 주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봉사하시고
수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거절과 반대와 배척하고 증오하는 세력에 의하여 내쫓김 당하듯이 완전히 배척당하시지만,
또 한편 주님을 알아보는 자들 마가복음 6장 54절에 베에서 예수님께서 내리시니 사람들이 즉시 예수님을 알아보았더라.
예수님을 알아본 자들에 의하여 예수님이 그곳에서 큰 환대를 받고 환영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이 뛰어다니면서
병든 사람을 침상에 싣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오기 시작했다는 마가복음 6장 55절의 말씀은
우리들을 참 눈물나게 하는 것입니다.
6:53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다〔마 14:34-36〕〕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6: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6: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대로 병든 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오니
6:56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예수님이 잠시 잠깐 후에 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을 알아본 자들에 의하여 환대와 환영을 받고 그 환대와
환영을 받은 그 예수님을 실질적으로 바로 이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의 치료자로 오신 그분을 알아본 자들에게 그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고 치료하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주님께서 이 한편으로는 증오 가운데 배척을 당하시지만, 한편으로는
주님은 자신을 알아본 자들에 대해서 환대를 받는 모습을 통해서 제자들이 잠시나마 기쁨의 상황 속에서 일을 했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7장에서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바로 남쪽 유대에서 그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정탐꾼으로서 트집과 정죄하기 위한 일을 이렇게 도모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계신 곳인 갈릴리 그 북쪽까지 그 멀리 떨어진 그 곳 까지 향해 온것을 볼때에 그 당시에 유대 백성들의 예수님을 향한 증오가 얼마나 극심하였는지를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장 1절에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 특별히 선별되어진 예수님을 모의하고 그분을 정죄하기 위한
아주 철저한 계획 가운데 예수님을 마주하기를 원했던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수님께 모여들었는데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이 온전한 내적인 사람의 그러한 상태에 대해서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계시를 펼칠 수 있도록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들의 펼쳐오는 그 상황을 선용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주님을 그렇게 찾아와서 이 손 씻는 문제로 인한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트집 잡고
정죄하기 위한 그러한 일들이 없었더라면 주님께서 이 내적인 상태를 드러내시는 계시를 온전히 나타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가복음 7장 6절 7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 하고 계시고 있죠
7: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 29:13〕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라는 이 말씀으로 외식하는 자들인 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인 서기관들은 외형적인 상황만을 주의하고 집중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그 외형적인 상황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그 실질적인 내적인 상태에 관심 갖고 주의하게 하시려고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손을 씻고 먹든 손을 씻지 않고 먹든 그것은 실제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들 마음에 너희들 안에 있는 마음의
내적인 상태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내적인 상태가 문제로서 내적인 마음의 상태에 더러운 것을 갖고 있으면 더러운 것이
나오고 깨끗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 깨끗한 것이 나온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의 마음을 열어서 그 마음에 있는 더러운 것을 그대로 얼마나 더러운지 얼마나 추악하고
얼마나 냄새가 나고 얼마나 부정하고 얼마나 속된 것인지를 드러내게 했다 하시고 주님께서는 이 7장 말씀을 통해서
타락한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주장하는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그 일을 통하여 실질적인 사람의 마음에 악한
상태를 들춰내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에게 바로 그러한 삶을 절대 가지지 말라라고 요구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결점과 결함을 찾고자 유대 지역의 남쪽 예루살렘에서 북쪽 지역에 있는 예수님께 찾아왔지만 주님께서는
마가복음 6장 53절 56절에 자신에게 찾아온 자들 예수님의 옷이라도 만지기를 간청한 그 게네사렛 지방의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심으로 말미암아 긍휼과 자비와 동정심을 무한히 가진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리고 바로 반대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율법학자들에게는 솔직하게 바로 너희들은 외식하는 자들이라 라고 반대자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 모습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참으로 참되고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지를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8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명은 너희가 버리면서 사람의 전통은 지키고 있구나 너희들은 너희들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리는 외식하는 자들이구나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7: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그리고 나서 13절의 말씀에서 너희의 조상들이 전해준 장로들의 전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빼앗고 또
잘못된 일을 많이 행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7: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그래서 그 외식하는 자들은 내적인 마음의 상태가 아닌 외형적인 행동으로 보여지는 실질적인 외적인 상태의 것을 들추어냄으로 말미암아 결점을 찾으려고 왔지만 주님께서는 너희가 왜 그 조상들의 전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오히려 패하고 있는지를 나는 모르겠다. 너희는 이러한 것을 통하여 입으로만 그냥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척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너희가 얼마나
악한 마음의 소유자인지를 내가 너희의 마음에 있는 것들을 다 드러내겠다 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10절 11절 12절에 고르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7: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출 20:12, 신 5:16〕 〔출 21:17, 레 20:9〕
7: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7: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이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귀한 예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할 때 가장 가치가 있고 귀한 선물을 가져다 드리는 것처럼 이 고르반은 하나님을 향한 선물인 것입니다.
이 고르반에 대해서 레위기 1장부터 7장까지 여러 종류의 제물들이 나오는데요.
1장에서는 태워서 드리는 번제 그 연기를 통해서 드리는 냄새의 고소하고 향긋한 번제를 드리는 것을 얘기하고 있고요.
2장에서는 음식을 통한 봉헌물을 드리는 것이 나오고,
3장에서는 화평케 하는 예물
4장에서는 죄와 허물에 대하여
5장에서는 죄를 범한 것을 사함 받기 위한 헌물을 드리는 것이고요,
6장에서는 번제의 헌물과 범법의 헌물과 죄의 헌물에 대해서 한꺼번에 통합해서 이렇게 번제 헌물에 대한 것을 애기하고 있고,
7장에서는 특별히 범법 헌물에 대한 범죄한 자들이 범죄한 것을 사함 받고자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습
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제물로 나타나 있지만 실질적인 히브리어의 코르반에 대한 번역이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갈망하고 소원하는 것들을 해결받고자 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아주 가치 있는 선물 가치 있는 예물이 바로 이러한 번제물로 음식을 드리는 헌물로 또 화해의 헌물로 드려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 가장 가치 있는 귀한 선물을 드리는 일을 할 때 부모님 때문에
그것이 가로막혀져서는 안된다 라는 이러한 잘못된 관념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셔서 이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 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바쳐야 되는 그 귀한 선물을 드려야 되는 일 때문에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이 기쁨의 마음을 드리기 위하여 선물인 예물을 드리는 일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들의 어머니나 아버지 부모에 대한 존경하기를 소홀히 하고 이렇게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을 그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무리나 제자들의 마음에게도 이러한 것들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 예물 때문에 오히려 부모 존경하기를 소홀히 하라고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명을 폐한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의하면 그 장로들의 전통인
오래전부터 나타나진 조상들의 전통 때문에 다섯 번째 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라는 부모를 공경하고 돌보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행동으로 돈을 사용하는 일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다섯 번째 계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일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들 여러분들 보십시오. 무슨 명절 때나 무슨 생일 때나 기념일이 있을때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는 그런
일들이 있죠. 부모님을 공경하고 돌보기 위해서는 돈을 사용해야 되는 일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이 조상들의 전통에 의하면 고르반 하나님께 가장 귀한 제물 가장 귀한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부모를 돌봄으로 말미암아 돈을 사용하게 되면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귀한 선물이 좀 훼손되어지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에는 부모를 전혀 돌볼 필요가 없다 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부모 존경하기를 소홀히 하라고 실질적으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다섯 번째 계명을 어기고 있다 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다시 말해서 그 조상들의 전통 장로들의 전통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오히려 폐하여져서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다섯 번째 계명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의 조상들의 전통에 의하면 바로 이 하나님이 가장 먼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이기 때문에 그 부모에게 드려지는 돈을 다 취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서 하나님께 기쁨의 선물이
되어야 된다 라고 얘기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분명 존경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섬김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 소홀히 돼서는 안된다 라는 이러한 명분을
가지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주님께서는 십계명중에 다섯 번째 계명을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라 라는 말에 있어서 이것은
타당하지 않고 합당하지 않다 라는 것을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들었을 때 그들 안에 있는 이런 내적인 마음의 상태의 더러움으로 인하여 크게
부끄러워해서 아마 조용히 얼굴을 붉힌 상태로 아주 급히 사라졌을 것이라는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그래서 모든 무리가 있는 데서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인 성경을 박식하게 가장 잘안다 라는 그들을 드러내놓고
그들의 마음의 더러운 상태를 들추어내어 그들을 꾸짖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 하시며 그리고 8절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면서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외식하는 것에 대한 책망을 하심으로 그들이 굉장히 수치를 당하고
조용히 사라져 가는 모습을 이 말씀을 통하여 암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입으로는 어떤 외형적인 형태의 것은 잘 보고 잘 알았지만 실제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상태의 그 마음속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을 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지만 실제적인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라고 말씀을 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의 내적인 어떤 마음의 상태를 들추어내시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고 율법을 사실은 무효화시켰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고르반이라는 예물로 인하여 사실은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까지도
소홀히 하고자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마음속에 있는 추악하고 더러운 것을 끄집어내서 그들에게 엄중한 책망을 하고
수치를 드러내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나님을 속이고 부모까지 속이고 너희 자식까지도 속이고 있는 너희들은 깨끗한 자가
아니다 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들이 외형적인 형태에서 나오는 그런 행동들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그러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14절 15절에 기록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7: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7: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7: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을 참 더럽히는 것은 그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더러운 것을 갖고 있으면 더러운 것이 나오고 깨끗한 것을 갖고 있으면 깨끗한 것이 나온다는 그것이
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고르반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다섯 번째 계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것들 외형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그런 외형적인 어떤 형태의
것들이 아니라 실제적으론 보이지 아니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내적인 것들에 관하여 크게 관심을 가지고 그 내적인 사람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들춰내서 깨끗하게 해야 된다 라는 문제를 다룸으로 말미암아 사람 마음속에 있는 내적인 것들이 우리를 실제적으로 더럽히고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무리를 떠나셔서 집으로 들어가셨죠.
1차적으로 자신에게 가까이 온 주님을 쫓고자 하는 갈망을 가진 그 모든 사람들 여기 모든 사람은 우리들입니다.
그런 무리들을 불러 1차적으로 설명해 준 다음에 17절에서 그분께서 사람들을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셔서 자신의 제자들 또한
특별히 주님께서 아주 친밀한 동반자들인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 비유에 관한 말씀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7: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7: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7: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7: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리고 예레미야서 17장9절에도 이 마음에 대한 말씀을 잘 나타낸 말씀이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 으로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7: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라는 이 얘기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 거짓되고 사악하기 때문에 절대 고칠 수 없다 라고 얘기하고 그것을 아무리 위장하려고 해도 위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이 더럽고 부패됐으면은 그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나오는 것들이 부패한 행동으로
나온다 라는걸 말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부패하면 그 부패함으로 말미암아 균이 발생되어져서 타락한
본성의 세균들이 가득 찬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더러울 때 부패해져서 세균들로 가득 차서 행동들로 나타나지게 된다라는 것을
21절, 22절 말씀으로 쭉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7: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여기서 음란한 것이 나오고 간음하는 것이 나오는데 음란한 것은 결혼하지 않은 자들과의 어떤 그러한 부정한
행위라면 간음은 결혼한 자들끼리의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한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23절을 통해서 결론을 맺기를 주님께서는 이 모든 악한 것이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악한 것들이 그 속에서 부패가 되어 썩는다는 것이죠.
썩고 부패하면 더럽히는 세균들로 가득 차서 그래서 그 행동들이 사악하게 된다 라는 타락한 본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어서 주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타락한 본성은 절대적으로 없어지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자신이 바로 주님께서 이 죄의 문제를 끝내셨다는 사실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이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을 소유받기 위해서 우리라는 존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대체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대치 될 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라고 주님께서 아주 은연 중에 강조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18절에 기록된 것처럼 속으로부터 나오는 사악한 것들은 타락하고 죄 있는
사람의 본성에 악한 결과라고 로마서 7장 18절 말씀을 우리가 한번 읽어볼까요?
7:18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것을 어떻게 행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노라.7:19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도다.7:20 이제 만일 내가 원치 않는 것을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것은 더이상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21 그리하여 내가 한 법을 발견하노니, 그것은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 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라.7:22 내가 속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7:23 내 지체들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7:24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낼 것인가?7:25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선한 어떤 행위를 하기를 원하지만 실질적으로 행하는 것은 전혀 상반되고 전혀 반대되는 것을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내 육신 안에 내 마음 안에 선하고 깨끗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바로 우리의 영원한 대치자요 영원한
대치물이 되시는 주님으로 살게 하지 아니하면 나라는 존재 안에 그리스도를 살아계시게 하지 아니하면 절대적으로 이 일은
될 수 없고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나오는 이 마음을 통해서 내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그러한 조성체를 통해서
우리가 깨끗한 것을 나타낸다면 우리 마음이 깨끗한 것이요 더러운 것을 나타낸다면 우리 마음이 더럽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사람의 내적 상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계시지만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지금 사람의 내적인 상태가
아니라 외형적인 손을 씻고 먹는 행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실제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속에 있는 그러한 추악하고 사악하고
깨끗치 못한 사람의 그 타락한 본성의 악한 결과로 인하여 사악한 행동들이 나온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악한 타락한 본성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악한 것들의 조성체 가만히 있으면 그냥 저절로 악한 것들의
조성체가 되어져서 나쁜 것들만 산출하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주님께서는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가복음 7장 1절에 주님께 찾아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트집잡고자 하는 그런 환경을 통하여
사람의 실질적인 내적 상태를 들추어내고 내적 상태에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들추어냄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더 나아가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온전히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계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유익이
되게 하고자 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주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더럽고
사악하고 추악하게 할 수 있고, 마음에서 나오는 그러한 조성체가 선한 것들이라면 바로 우리들의 행동이 선한 것임을
이렇게 주님께서 알려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더럽히는 것을 주의해야 되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 의하여 더러워지는 것을 주의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느냐에 따라서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먹는 음식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그들은 깨끗하고
좋은 것을 먹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 그것이 배변을 통해서 나온 그것이 사실 더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 깨끗했다. 그런데 너희들 마음속에 있는 이 타락한 본성을 통하여 악한 것들로 조성되어져 있으면 너희들 안에 있는 악하고 더럽고
추악하고 사악한 것으로 인하여 너희들의 삶이 더러워진다라는 이것을 주의하라고 얘기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럽히는 것들은 손을 씻고 안씻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대치자가 되시고 대치물이 되시는 노예로 오신 구주로 우리라는 존재 안에 살아계시게 할때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주님께서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7장 9절에서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조상들의 전통,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구전되어져서 전해져 있는 유대 백성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그러한 전통을 지킨 결과는 하나님의 계명을 오히려
저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을 폐하고 율법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조상들의 전통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쉽게 저버리도록 명분을 갖게 하고 핑계가 되게 한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가장 귀한 예물, 하나님께 바쳐진 선물을 드린다는 명분
때문에 그 핑계로 인하여 부모들에게 공경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면서
잠시 후에 마가복음 7장 말씀을 다시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