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카페 게시글
성경묵상 나눔 눅11:1-13 기도에 대한 가르침
노베 추천 3 조회 210 24.11.13 08:16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24.11.13 08:24

    첫댓글 제 개인의 실력은 부족해서 주석의 한 부분을 타붙해 올렸는데요. 기도하는 일에 더욱 성경적이고 적극적이기를 기도합니다.

  • 24.11.13 08:48

    아멘! 자기 실력의 과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내용의 전달입니다. OK!

  • 24.11.13 16:38

    @장코뱅 공감합니다.

  • 24.11.13 08:51

    <호크마 주석>, 누가복음
    =====11:1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 마태복음의 경우 '주의 기도'는 산상 수훈에 포함되어 있어 적어도 그 장소는 어느 산 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가는 다소 모호한 표현인 '한 곳에서'로 이야기의 서두를 삼고 있
    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3:21;6:12), 이렇게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은 제자들로 하여금 기도에 대한 열심을 지니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요한이...가르쳐 주옵소서 - 복음서 안에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서 요청하는 것은 이 곳이 유일한 경우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하는 것을 보자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것이 생각나 자기들에게
    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당시 어떤 종교 공동체(宗敎共同體)에서 지도자들이 기도를 가르치는 일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랍비들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고(Farrar, Plummer), 또한 일반 유대인들
    도 정시에 일정한 형태의 기도문으로 기도를 하였다(행 10:3,9).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의 공동체를

  • 24.11.13 08:51

    특징 지워줄 수 있는 기도를 원했던 것이다(Jeremias).
    =====11:2
    이렇게 하라 -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 본문을 영원 불변의 기도형으로 생각해서 마치 주문(呪文)을 외듯이 반복하라는 말씀으로 받아서는 안될 것이며, 기도가 담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내용과
    그 기도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것을'(what) 기도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how) 기도하라 하신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버지여 - 이 호칭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사용했던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가 마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처럼 다정하고 친밀한 것임을 나타낸다(10:21 주석 참조). 이제 예수는 제자들도 그런 의미에서 이 칭호를 사
    용하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롭게 갖게되는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준다(요 20:17;롬 8:14-17). 한편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로 되어 있어
    형식에 있어서 더 세련되고 완벽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 24.11.13 08:5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 부분은 마태복음과 일치한다(마 6:9).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표현한 것이니만큼 여기서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뜻한다. 결국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원(祈願)이자 경외심에서 기인하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기도 하다. 또한 본 구절의 표현이 수동태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겠다는 신앙의 표시이자 하나의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레 22:32;시 79:9;사 8:13;29:23). 동시에 이 기원은 기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역하여 하
    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worship)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간구이기도 하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지배하는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어 지는 것에 상응하는 인간에 대한 축복이다. 이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종말론적 성취를 대망하게 하
    는 것이다.

  • 24.11.13 08:52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사단의 통치의 종식(終熄)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 나라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9:1;10:17). 따라서 본문의 말씀도 성도들이 단지 미래에 성취될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개인과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을 바라며, 또한 실제로 경험하며 살게 해달라는 간구로 보아야 한다.
    =====11:3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두 번째 부분은 개인적인 필요를 구하는 내용이다.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용할'(* , 에피우시온)이라는 형용사의 해석이 난해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기에서만 사용되
    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사용된 범례(凡例)를 참고할 수도 없으며 그 의미도 여러가지로 해석된다. (1)'내일을 위한'이란 의미. 그러나 문맥상 '내일'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를 요청하는데 초점이 있는만큼 이 해석은 저녁에 기도
    하는 경우에만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단어가 종말론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면 '내일'은 종말론적 완성의 때를 가리키며 '양식'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영적인 양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 24.11.13 08:54

    한편 마태복음에 기록된 '오늘날'(6:11)은 그 미래의 양식을 '오늘' 허락해 달라는 간구로 이해할 수도 있다(Liefeld). (2)'필요한' 또는 '충분한'이라는 의미. 이렇게 되면 본문은 "날마다 충분한 양식을 주옵시고"가 되어 비교적 자연스러운 문
    장이 된다. 예수 당시의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게 있어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는다는 것은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었으며(마 20:1-5),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었다는 사실은(출 16:4;신 8:9) 이 신앙의 근거가 된다. 육체적인 양식이든 영적인 양식이든 그것을 공급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은 매우 중요하다.
    =====11:4
    용서하오니...사하여 주옵시고 - 여기서 '죄'(* , 하마르티아)는 아람어 '호바'(hoba)를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빚'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에 근거하건대 '죄'란 하나님께 '빚' 또는 '부채'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죄를 범한 사람이란 하나님께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 할 '채무'를 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빚을 탕감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 24.11.13 08:55

    하는 바 그것은 나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주는 것이 하나님께 빚진 나의 채무를 필연적으로 탕감되도록 하는 담보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 빚의 탕감을 조심스럽게 간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 여기서 '시험'(* , 페이라스모스)은 '유혹'(temptation, NIV)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의 의미는 성도의 신앙을 꺾으려는 외적인 시련과 죄를 범할 수 있는 내적 유혹을 함축적으로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시험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중요한 것은 그 시험을 견디어내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하는 주체가 하나님인 것으로 오해의 여지를 남기나 약 1:1-15에 의
    하면 하나님은 결코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물론 때로는 그분의 선한 뜻을 펴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기도 하지만(4:1-12;욥 1:12) 본문은 성도가 시험에 부딪쳤을 때 굴복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이것은 마 6:13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 24.11.13 08:56

    한편 마태복음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는 송영구가 있으나 권위 있는 마태복음 사본 가운데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어 이것이 본래적인(original)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11:5
    밤중에...내게 빌리라 - "너희 중에 누가"라는 양식으로 비유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자주 사용하신 형식이다(11절;12:25;14:28;15:4;17:7). 한 친구가 찾아온 시각은 '밤중'이다. 7절에 의하면 이 시각은 제법 늦은 밤이었다. 왜냐하면 식구들이 모두 잠 자리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친구의 방문이 예의를 벗어나는 것임과 따라서 환영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11:6
    여행 중에...먹일 것이 없노라 - 이 친구가 밤중에 떡(bread,NIV)을 얻으러 다른 친구의 집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제시된다.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 즉 낮의 찌는 더위를 고려하건대 밤에 여행하는 일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으므로 여행하는 친구가 밤에 찾아 온 것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었다(마 2:9). 그런데 친구의 방문을 받은 이 사람은 공교롭게도 손님을 대접할 음식이 없었다.

  • 24.11.13 08:58

    이 친구에게 대접할 음식이 전혀 없었는지 아니면 조금은 있었으나 당시의 풍습상 손님에게 떡을 부족하게 대접하거나 먹다 남은 떡 조각으로 대접하는 것이 손님에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그는 떡을 필요로하는 여행중의 친구를 위해 가족이 모두 한 방에서 자야 하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친구의 집을 찾아간 것은 분명하다.
    =====11:7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 아마 이 주인은 잠이 들었다가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다소 불쾌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친구의 방문을 환영하는 "친구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Manson). 실질적으로 이 집 주인이 괴롭게 생각했던 것은 떡을 주는 것보다는 첫째는 문이 이미 닫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식구들과 함께 자고 있는데 일어나 움직이면 식구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염려이다. 첫째 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문을 잠그기 위해 문빗장을 걸었을 텐데 그것을 어두움 속에서 찾아 여는 것은 대단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Easton). 이집은 온 가족이 한 방 한 이부자리 밑에서 잠을 자는 팔레스틴의 시골 농가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11:8
    벗됨을 인하여...강청함을 인하여 -

  • 24.11.13 08:59

    '강청'(boldness, NIV)함을 견디지 못해 필요한 것을 준다. 여기서 '강청함'(* , 아나이데이안)은 부정접두어 '아'(* )와 '부끄러움이 없음'을 뜻하는 '아이도스'(* )의 합성어로 체면 불구하고 간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는 두가지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하지 않으려 했던 집 주인과 하나님의 쾌히 주심을 대비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려는 것이고(9-13), 둘째, 응답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계속해서 끈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함을 가르친다(살전 5:17).
    =====11:9
    구하라...주실 것이요 - 본문의 '구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테이테'(* )는 동등한 입장에서 구하는 '에로토'(* )와는 달리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구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기도'와 관련하여 많이 사용된다(10:13;마 18:19;막 11:24;요 11:22;엡 3:20). 본문의 의미는 '받기 위해서는 구해야 한다', '구하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다'로 이해할 수도 있고(Lagrange), '구하면 확실히 받을 수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Marshall).

  • 24.11.13 08:59

    그런데 후자의 의미는 다음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볼 수 있기에 본절은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기도할 때 반드시 그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찾으라...찾을 것이요 - 이 문구의 의미는 기도한 것을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야 함을 말해주는 거일 수 있고, 또한 여기서 사용된 동사 '찾으라'(* , 제테이테)의 성경적 용버버에 따라 하나님을 찾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신 4:29;삼하 21:1;호 5:15;행 17:27). 두드리라...열릴 것이니 - 기도를 문을 두드리는 것에 비유한 예는 랍비들의 가르침에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기도를 함에 있어서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예레미아스(Jeremias)는 이 장면이 하늘의 잔치에 들어가기 위한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전후 문맥상 다소 거리가 있다.

  • 24.11.13 11:45

    주기도문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그 기본 뜻과 내용을 알려주네요.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는 간청하는 기도의 특징상 하나님께서는 간청하는 자의 사정을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네요.
    그리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필요에 응답하실 뿐만아니라 좋은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인 성령을
    부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네요.
    기도에 대해 함축적으로 가르쳐주는 좋은 본문이기도 합니다. 기도에 대해 잘 배웁니다.

  • 24.11.13 16:43

    네,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 24.11.13 17:06

    공감합니다22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