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가마솥 갱엿처럼 보도블록 위에 꺼멓게 들러붙어 있습니다. 입속의 혀처럼 머물 때가 나의 전성기였지요. 쩍쩍 씹히기만 하다가 펑 터질지라도 풍선이 되는 순간이 마냥 좋았습니다. 납작 엎드린 채 행인의 구둣발에 짓밟혀도 찍소리 못하는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보도블록 사이에 뿌리내린 질경이의 질긴 목숨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한때 ‘껌 좀 씹었다.’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는 ‘놀만큼 놀았다.’는 뜻의 은유지요. 짝다리 자세로 건들거리는 이의 입속에 들어 질겅질겅 씹어 돌려질 땐, 겁 없이 무게 잡는 것들의 앞잡이였습니다. 종횡무진 치아 사이를 누비며 딱딱 소리로 흥얼거릴 때는 내 세상이라도 된 듯했지요. 때로는 이와 잇몸 사이에 숨죽여 있기도 했지만, 입속의 전생과 후생의 내막을 나보다 잘 아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지요.
그녀가 단발머리 계집애 적에는 내가 귀하디귀했습니다. 뭔가를 입에 넣고 씹는 것을 좋아한 그녀는 언니 오빠들이 하는 것을 따라 했지요. 수분이 채 마르기 전, 풋밀을 뽑아 밀 이삭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동글동글 비볐답니다. 껍질을 훅 불고나면 푸른 알갱이들만 남지요. 이것을 꼭꼭 씹다보면 달달한 맛은 사라지고 눅진한 껌이 되어갔습니다. 끈기가 덜해 풍선을 불기 어려웠지만 입 안에 씹을 거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요.
밀에 함유되어 있는 글루텐 성분 때문에 천연 밀껌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녀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요. 누렇게 밀이 익어가는 6월이면 밀껌을 만들어 씹던 어린 기억을 들춰내며 빙그레 미소 짓는 그녀를 보곤 했습니다. 주전부리가 귀하던 시절, 흔히 재배되던 밀이 그 시기에 군것질 거리의 대용이었지요. 밀껌을 만들어 씹으며 허기를 달랬을 겁니다. 밀밭에 쪼그리고 앉아 풋내 나는 밀을 한줌 입안에 털어 넣고, 조잘대던 고만고만한 계집아이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요.
소화기관을 약하게 타고난 그녀는 나를 씹으면 소화가 잘된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식사 후나 입안이 개운하지 않을 때마다 나를 입에 넣고 씹었지요. 나로 인해 곤혹을 겪은 적도 더러 있었답니다. 학창시절 교련시간이었지요. 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버리기 아까워, 잇몸 사이에 끼워뒀다가 무의식적으로 오물거렸습니다. 호랑이로 소문난 교련선생님께 덜컥 걸렸지 뭐예요. 그날 벌칙으로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림을 당했는지 기억하기도 싫을 겁니다. 종아리에 알이 밴 그녀가 끙끙거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어찌 표현할 수 없어 속만 애태웠답니다.
그녀의 가방 속엔 내가 빠진 적이 없었지요. 어느 제과에서 3종 세트 껌이 유행할 시기에 그녀는 새콤달콤한 맛만을 고집했답니다. 한꺼번에 한 개를 다 씹기가 아까워 꼭 반으로 잘라 반만 씹었지요. 입 안 가득 향긋한 냄새를 머물고는 흥얼흥얼 콧노래도 불렀어요. 딱딱 소리를 내가며 씹거나, 앞니 사이에 나를 펼쳐두고 톡톡 터트리는 재미도 쏠쏠했나 봅니다. 잠시나마 그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답니다.
그녀의 나에 대한 취향은 다양도 합니다. 운전 중 졸음이 오거나, 나른한 오후에는 정신을 맑게 해준다고 민트향을 즐겼어요. 아카시아 꽃이 필 때는 아카시아 향을 고집하다가 또 한 때는 커피향을 풍기는 내게 푹 빠지기도 했지요. 요즘은 충치 예방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자일리톨이 함유된 나를 즐겨 찾습니다. 나를 씹으면 두뇌 활성과 기억력 향상이 되고, 치매예방과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그러대요. 내 인기가 한창 상승세라니 어깨가 우쭐해집니다.
종합검진을 받고 나온 그녀가 우울해 보입니다. 검사결과 치아가 많이 닳았고 한 쪽으로만 씹어서 턱이 비대칭이라네요. 턱관절도 좋지 않다고 크게 하품을 하거나 쌈을 크게 싸서 먹지 말라고 했답니다. 밤에 잘 때도 너무 치아를 꽉 깨물고 자는 버릇 때문에 턱관절에도 이상이 있다고 하네요. 마우스피스를 끼고 자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았대요. 오랜 세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일까요. 괜히 죄인이 된 듯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몸에 좋다고들 하지만 십여 분 정도 씹는 것이 가장 좋아요. 나를 오래 씹으면 사각턱이 된다고 하던데 그녀의 턱은 내 보기엔 갸름하기만 하니 천만 다행입니다.
아주 싼값의 물건이나 보잘 것 없이 적은 돈일 때 흔히 “껌 값이네!”라고 표현 하지요. 쓸데없는 소리를 빗대어 말할 때는 “껌 씹는 소리”라고도 하지요. 내가 하찮은 이미지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데 가만히 있는 나를 왜 들먹거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위대한 ‘껌 값’도 있답니다. 박지성 축구 선수가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 전 씹던 껌 이야기 들으셨나요? 그가 씹던 껌이 무려 6억 6천여만 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 나를 우습게보지 마세요. 외적인 가치만 따지고 진짜 소중한 것은 지나치지 않았나, 되돌아 봤으면 해요.
오래 전 씹던 나를 벽이나 장롱에 붙여 놓던 시절이 있었지요.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은 별도로 남기지 않았답니다. 다시 나를 찾았을 때 사라진 것을 알고, 그 허탈감을 맛보고 자란 그녀의 유년을 요즘 세대들은 알까요. 모를까요. 네 것 내 것 따로 없는 오누이의 입속이 그립습니다.
달궈진 아스팔트만큼이나 제가 누워있는 보도블록도 뜨겁습니다.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우리들만큼이나 바닥에 몸을 붙인 채 내게 다가오고 있네요. 이젠 정말로 마지막인가 봅니다. 절대 떨어질 것 같지 않던 내 몸이 주걱 칼에 무참히 뜯겨졌습니다. 거리의 흉물로 남아 눈총 받는 신세로 남아있느니 차라리 후련합니다. 다만 단물만 빨아 먹고, 먹었던 입으로 다시 퉤! 뱉는 요즘 영악한 입들이 밉살스러울 뿐입니다.
[월드코리안 문단] 《껌의 독백》-2017.11.월드코리안뉴스 발표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