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한 날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소통의 부재는 금방 넘어져 생긴 생채기 마냥 쓰라리다. 그럴 때면 푸다닥 매운 닭 한 마리에 쨍한 술 한잔이 고프다. 한 잔을 넘기면 상처 난 마음이 소독되듯 쐐한 통증을 느낀다.
고객과의 실랑이로 지친 우리 자매는 풀 곳이 필요했다. 초저녁이었지만 가게에는 벌써 서넛 테이블 손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삼십 대로 보이는 여자 셋이 맥주잔을 들고 있다. 조금 어두운 곳이어서 그런지 한 여자의 얼굴이 많이도 지쳐 보인다. 슬쩍 엿보는 아줌마의 오지랖은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들의 얘기가 슬쩍 들려온다.
“여든이 넘은 노인네를 내가 밀치고 방에 가두었어.”
치매가 점점 심해지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대한 맞은 편 여자의 대답이다.
등을 보이고 앉은 일행 두 명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우리 둘은 귀를 쫑긋이 세우고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 열중하고 있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삼십 대 후반의 여자라고 짐작이 갔다. 남편은 마땅한 직업이 없는 듯 했다. 종일 서서 고객을 응대하는 여자는 저녁이면 녹초가 된다고 한다. 그날은 간식조차 먹지 않아 배가 고프던 차에 마침 어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저녁밥을 해놓았으니 빨리 오라는 기특한 독촉 전화였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샤워를 한 후, 김을 자르고 김장 김치를 꺼내고 밥을 푸려고 밥솥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밥통 안에는 싱크대의 하수구 찌꺼기 받이가 꽂혀 있었다. 어린 딸애가 한 하얀 밥 위에 얹인 찌꺼기 받이는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밀쳐 방에 넣고 문을 잠갔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픈 사람인 줄 알면서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사람인데’ 그녀와 난 어느새 암묵적으로 동지가 된 듯 안타까운 눈빛을 잠시 나누었다.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를 위로하느라 술 한 잔을 더 권했다. 한 잔을, 더 들이킨 그녀가 가슴을 뜯으며 다음 말을 했다.
“난 참 못된 사람이다. 내 죄가 너무 커.”
시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고 명절날 친정에 가서, 얘기를 했나보다. 압력솥에 불을 켜놓고 잊기가 예사여서 화재 사고가 날 뻔도 했고, 먹고 돌아서면 잊고 또 배가 고프다고 밥을 하는 통에 쌀독이 금세 동이 난다고도 했다. 어는 날 듣고 있던 그녀의 여동생이 누군가에게 들은 비책을 말해주었다. 시아버지 제삿날 다른 사람 신발은 다 옆으로 나란히 세우고 시어머니 신발만 밖을 향해 돌려놓으면 돌아가신 영감님이 모셔간다고 했다는 게다.
“제삿날 아침부터 온종일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어. 몇 번을 망설인 끝에 결국 그 짓을 하고만 거야. 알겠니?”
그녀가 주정처럼 흐느끼는 동안 누구도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정말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입원까지 하셨어.”
그녀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많이 후회를 한 모양이다. 병실에서 ‘어머니 잘못했어요.’ 하고 끌어안고 통곡을 하는데 거짓말처럼 한 말씀을 하시더란다.
“내가 네가 고생하는 거 다 안다. 정말 미안하다.”
그러고는 등을 토닥이는데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들고 싶었다며 급히 또 한 잔을 벌컥댄다. 남의 일이 아닌듯한 마음을 들킬까 봐 동생과 나도 한 잔을 삼킨다.
얼마 전 한 복지관에 있는 작은 요양원을 며칠 찾은 적이 있다. 첫날, 문을 열자 대소변이 섞인 특유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십여 명의 노인이 생활하는 그곳에는 노인성 질환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계셨다. 멀쩡한 정신을 갖고 있지만 너무나 연로해서 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어르신도 있고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질환으로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도 있었다. 그분들 중 상당수가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을 하거나 과거의 어느 한 길목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미니마우스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잠옷을 곱게 입고 공주처럼 웃으시는 할머니도 그랬다.
“새댁! 아휴 배가 고프네, 아직 밥 멀었어요.”를 연발하셨다.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 항상 고맙다는 답을 잊지 않으셨다.
수줍은 아이처럼 웃으시는 할머니를 ‘배고픈 공주님’이라고 불렀다. 가끔 못들은척 돌아서는 나에게 혼자서 중얼거리곤 하셨다.
“우리 어머니가 오신다고 했는데 안 오시네. 우리 딸이 올 때가 되었는데, 맛있는 거 사가지고 온다했는데. 이 방도 우리 딸이 나 혼자 있으면 심심하다고 친구들이랑 놀라고 백만 원이나 주고 얻어 준 거야.”
“맞아요, 맞아. 할머니 딸은 효녀야”
옆의 요양보호사가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어주며 맞장구를 쳐준다. 요양보호사의 말에 의하면 근처에 사는 딸이 날마다 퇴근길에 들렸다, 가는데도 기억하지 못한다 한다.
어제도 저녁 늦게 와서 잠든 어머니 머리카락을 넘기며 ‘우리 어머니를 어쩜 좋아’하며 안타깝게 바라보다 갔다고 한다.
습관처럼 배가 고프다는 어르신들, 그분들은 진정 배가 고픈 것일까. 아니면 가족의 살가운 정이 고픈 것일까. 기억은 자꾸만 퇴행하여 유년의 어느 날로, 젊었던 시절로, 가족과 복닥거리던 단내 나던 일상으로 내닫기만 하고 있다. 생의 절정의 시간 속에 머물러 순간만은 행복할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것일까. 기다림의 끝은 오기나 하는가.
그날 밤 눈물이 반인 술잔을 들고 흐느껴 울던 그녀는 지금쯤 따뜻한 방에 누워 시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손 빗질하며 쓸쓸한 웃음을 웃고 있을까. 아니면 너무 지친 나머지 요양병원에라도 모셔두고 비용마련을 위해 퉁퉁 부은 다리로 백화점 매장을 종종걸음치고 있지는 않을까.
그물코처럼 얽히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했던가. 나는 지금 딸과 며느리의 입장에, 있으면서 또한 이삼십 년 뒤의 내 뒷모습을 보고 있다. 흐느껴 울던 그녀의 모습이 어느새 떨칠 수 없는 그림자가 된다. 요양원의 ‘배고픈 공주님’이 고픈 가슴을 끌어안고 나에게 손짓하고 있다.
고픈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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