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묵상:
히브리서 마지막장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목회 권면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형제 사랑의 구체적인 예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1)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2) 갇힌 자를 생각하라.
3)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그렇다면,
형제 사랑에서 형제가
손님인 경우, 갇힌 경우, 학대 받는 경우는 어떤 경우를 말할까?
오늘 본문도 문맥이 중요하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형제들이 받는 고난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히 11:36~38,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이들은 모두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 형제들인 것이다.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 "갇힌 자를 생각하고"
"학대를 받았으니" -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본문에서 손님 대접이란
유리하는 나그네를 영접하고 숙소를 제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세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첫째, 형제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비록 이 땅에서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지만,
하늘 본향에 큰 상급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믿음으로 고난을 인내하면서
이 땅에서 그들의 신앙을 지켰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고난 받는 형제들이 하늘에서 큰 상급이 있을 것이므로
그들의 현실적 고난에 동참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리어
형제 사랑을 계속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고난 받는 형제들에게
자신들을 생각해 주는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줌으로써
그들이 고난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그들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래에 받을 상급으로 인해서
우리가 현실에서 받는 고난을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2. 둘째, 공감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2절에 중요한 표현이 나온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그러니까,
비록 여러분은 갇히지 않았고 여러분은 학대 받지 않지만,
여러분이 갇혀 있고 여러분이 학대 받는 것 같이
갇히고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형제의 고난에 대하여 "공감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형제와 남의 차이가 무엇일까?
가족과 남의 차이가 무엇일까?
바로, 공감력일 것이다.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아지셔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프고 연약해지면,
자녀들의 마음이 함께 아프고 함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부모님이 아닌 다른 노인들도 나이가 들면 똑같은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함께 아프거나 함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셋째, 형제 사랑과 공감력은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 주신 것이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동정"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sumpatheo"인데,
"sum"은 with,
"patheo"는 to suffer 이다.
그러니까,
동정이란 함께 고난(고통)을 당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이다.
2024년 성탄절이 한 달 남짓 남았는데,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을까?
많은 해답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이것이다.
친히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서,
친히 고통을 겪으시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동정해 주실 수 있기 위해서.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3절,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예수님은 친히 옥에 갇히셨고,
예수님은 친히 몸에 학대를 받으셨다.
그래서
갇힌 자를 동정하시면서 생각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학대 받는 자를 동정하시면서 생각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혹시 우리 중에 고난과 고통 중에 있는 형제가 있는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시고 고통을 당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히브리서에서 형제가 혼자가 아닌 것을 알게 하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친히 실천해 주고 계신 것이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탄절의 의미가 무엇일까?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어떻게?
우리의 고난을 함께 당하시면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겪으시면서.
"형제 사랑을 계속하라"는
오늘 본문의 권면은 다른 것이 아니다.
형제가 고난을 당할 때,
형제가 고통을 겪을 때,
우리가 임마누엘의 손과 발이 되어 그들과 함께 있어 주라는 것이다.
주님,
저희와 함께 계시는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가 고난과 고통 중에 있을 때
저희와 함께 아파하시고 저희의 어려움을 동정해 주시는 주님,
저희가 어떤 어려움 속에 있더라도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 주시고,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주위에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동정하며,
그들과 함께 해 줄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다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조금이나마 닮아가는 저희 모두가 다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