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있는 문장과 구성/박종인
나중에 모든 원칙에 통달하고 글에 익숙해지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원칙들을 다 버려도 상관없다. 하지만 글을 연습하는 초기에는 이 원칙을 획일적으로 지켜보자. 원칙은 버리기 위해 존재한다. 버리기 전에는 익혀야 한다. 그래야 응용도 하고 버리기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버리기 위하여, 아래 세 문장을 외운다.
글은 문장으로 주장 또는 팩트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좋은 글은 리듬 있는 문장으로 팩트를 전달한다.
리듬 있는 문장은 입말이다.
리듬 있는 문장 쓰기
말을 문자로 기록하면 글이 된다. 글은 안드로메다에 사는 외계인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에 재미나게 얘기하는 말들이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니까 이를 문자로 기록한 것이 글이다. 다른 게 없다. 그게 제일 좋은 글이다. 학자들에게는 자기들끼리 쓰는 단어들이 있다. 이들이 쓰는 전문 단어들을 문자로 옮기면 논문이 된다. 일반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할 때는 쉬운 말로 쓰려고 노력한다. 이를 문자로 기록하면 강연문이 된다. 모든 게 마찬가지다. 일단 글의 기본은 말이다. 입말이 기본이다. 입말로 문장을 만들면 이게 글의 시작이고 기초다.
문장이 모여서 글이 되는데, 하늘에 던져서 되는 게 아니다. 문장은 구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배치되어야 한다. 쉬운 말, 쉬운 문장을 설계도를 따라 배치한다. 그래야 재미난 글이 된다.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은 바로 ‘리듬’이다. 리듬 속에서 문장이 이뤄지고 구성이 이루어진다. 지난 장에서 리듬을 이야기할 때 한국어의 외형률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조나 판소리를 완창할 때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하나다. 리듬이다. 사람들이 듣고서 웃거나 운다.
첫째, 문장에 리듬이 있다. 외형률이 주된 이유다.
둘째, 구성에 리듬이 있다. 내재율이라고도 한다. 의미단위/문단/내재율 비슷비슷한 말이다. 이런 개념을 가지고 구성을 한다. A에서 B를, B에서 C, C에서 D를 이야기해서 결론 E를 이끌어내는데 이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연관이 돼 있어야 한다. 그래서 E가 나와야 한다. 전혀 무관한 얘기들을 주절주절 쓴다고 해서 글이 완성되지 않는다. 글은 맥락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음악을 예로 보자. 오선지 맨 앞에 나오는 부호가 박자 부호다. 곡 하나를 가장 큰 틀에서 규정하는 요소가 바로 이 ‘박자’다. 리듬이다. 한 마디 안에 세 박자, 네 박자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3/4박자, 4/4박자 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리듬이 있어야 한다. 강약약 중강약약이라는 리듬이 있어야 동요가 제대로 들리고 왈츠가 들리고 오케스트라의 심포니가 들린다.
글 구성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냅다 단어를 때려 넣는다고 글이 되지 않는다. 강약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읽다가 숨도 쉬고, 급하게 빨려들기도 한다. 중요한 얘기라고 무조건 다 집어넣는 게 아니다. 뺄 때와 숨길 때를 알아서 글을 써야 재미난 글이 된다.
자, 이렇게 리듬감 있게 문장을 써서 구성을 했다. 여기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변수가 바로 팩트다. 우리들이 글에 담아야 할 것은 주장이 아니라 팩트다. 거짓말 가운데 제일 좋은 거짓말은 그럴듯한 거짓말이다. 그럴듯한 거짓말은 왜 그럴듯할까? 구체적일수록 그럴 듯하다.
⚫ ‘옛날옛날’이 아니라 ‘서기 1821년 6월 7일에’라고 쓴다.
⚫ ‘두 시쯤’이 아니라 ‘2시 11분’이라고 쓴다.
⚫ ‘강원도 두메산골’이라고 쓰지 말고 ‘1993년에 전기가 들어온 강원도 화천 군 파로호변 비수구미마
을’이라고 쓴다.
⚫ ‘20대 청년’이 아니라 ‘스물다섯 살 먹은 키 큰 대학 졸업생 김수미’라고 쓴다.
그래야 거짓말이 진짜처럼 들린다. 거짓말이 그러할진대, 진짜도 구체적이지 않으면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이를 팩트라고 한다. 에세이가 됐든 논문이 됐든 소설이 됐든 시가 됐든 구체적이어야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설득력이 있는 글이 된다. 입말로 팩트를 기록하면 좋은 글이 된다. 짧은 문장과 짧은 글로 팩트를 기록하면 더 좋다.
우리는 늘 뭔가를 주장한다. 자기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늘 존재한다. 세상이 평화로웠으면 좋겠고 정쟁(政爭)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질서를 지켰으면 좋겠고 내 사랑하는 마음을 연인이 알아줬으면 좋겠고, 질서를 지켰으면 좋겠고 내 사랑하는 마음을 연인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를 메시지 혹은 주장이라고 한다. 모든 글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바로 이 메시지 전달이다. 하지만 함부로 메시지를 앞세우면 곤란하다.
독자들이 관심 있는 부분은 메시지가 아니라 팩트다. 팩트를 써서 메시지와 주장을 깨닫게 만든다. “명강의로 소문난 훌륭한 강사십니다”라고 한다면 훌륭한 강사가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이 강사 수업을 거쳐간 학생 150명 가운데 136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라고 하면 명강사임이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팩트가 없으면 거짓말은 그냥 거짓말이다. 사실도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 된다.
좋은 글은 물 흐르듯 흐른다. 물 흐르듯 읽힌다. 바위를 만나면 돌고, 급류가 되면서 순식간에 흘러간다. 리듬감 있게 거침없이 흘러간다.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대 리듬감 없는 문장과 구성으로 기록돼 있다면 감동을 줄 수 없다.
스키 타는 사람이든 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뭔가를 할 때 리듬을 타지 않으면 동작이 불편해진다. 스키를 탈 때 몸통과 다리, 스키와 스틱이 서로 리듬을 타지 않으면 속도는 나지 않고 균형은 깨진다. 음악을 할 때도 리듬을 잡아주는 드럼 같은 타악기나 베이스가 없으면 어느 부분에서 크게 부르고 어느 부분에서 숨죽여 긴장을 해야 할지 알기 힘들다. 세상은 리듬이다. 글도 리듬이다.
글에서 리듬이라 함은 ‘독서에 속도감을 주는 작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글에 리듬이 없으면 독자는 그 글을 읽을 때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내용이 쉬워도 초등학생이 TV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출처_『기자의 글쓰기』(박종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