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설핏 든 잠 속에 그분이 출현했다. 소식이야 인터넷 세상에서 실시간으로 듣고 보지만 꿈에 오신 건 처음이었다.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잔잔히 미소 띤 모습과 ‘윙윙’ 울림이 큰 음성도 그대로……. 꿈에서도 어찌나 반갑던지 연신 합장 반 배를 올렸다.
내가 처음 인도에 간 건 10년 전이었다. 처음엔 부탄 여행을 계획했다. 경제적으로는 그토록 가난한 나라가 국민 행복지수는 세계 1위라는 부탄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여행상품 중에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고 부탄으로 가는 일정이 용케 눈에 띄었다. 매년 여름 인도 다람살라에서 한국 불자를 위해 예약되어 열리는 법회라고 했다.
‘이 기회에 오롯이 나 자신을 만나자!’
낯선 일행 속에 나 혼자 끼어 가는 순례길에 용기 있게 동참했다. 목적지는 델리 공항에서 버스로 12시간 이상 가야 하는 다람살라. 지나치는 풍경 속의 인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다.
해발고도 1,800m의 작은 마을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티베트 난민이 중국의 억압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와 집단 거주하는 인도의 북부 산간마을. 티베트 난민들의 삶터가 있으니 히말라야의 작은 티베트로 불린다고 했다. 특히 남걀 사원은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듣기 위해 각국의 수행자나 신도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되었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같은 일행 중에도 오직 달라이 라마 법회를 위해 인도에 일곱 번째 왔다느니 여덟 번째 왔다느니, 놀라운 수행법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었다.
‘이 먼 곳에서 3박 4일 꿈같은 법문을 들을 기회라니!’ 설레는 맘으로 순간순간 전기도 수돗물도 끊기기 일쑤인 숙소에서 하룻밤을 밝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첫날 법당에 들어선 순간, 삼배를 올리기도 전에 하염없는 눈물부터 쏟아졌다. 아무리 입을 틀어막아도 온몸이 떨리는 전율…… 처음 만난 옆자리 보살님이 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윽고 시작된 법문은 《반야심경》이었는데, 통역을 통해 들어도 감동이었고 은혜로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 날 또 다음 날까지, 그 법당에만 들어서면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로 나는 꽤 혼란스러웠다,
이후 부탄으로 이어진 여정은 순조로웠다. 우리나라 50년 전 같은 자연경관과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마침내 내 속내도 평화롭게 가라앉음을 실감했다. 산과 강을 해치면서 도로를 내지 않는 자연보호 정책이 우선이라니, 좁고 굽은 길로 걷는 게 다반사였음에도 여행 맛이 제대로 나서 좋았다.
일행 중 연세 지긋한 비구니 스님과 차담 시간에 남걀 사원 법당에서의 눈물 사건을 고백했다.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은 건 난생처음이랍니다. 울 엄마 돌아가셨을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아이고, 업장소멸하셨네요. 우리네 스님들도 못 하는 걸…… 선혜 보살이 부럽습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새로이 정돈되는 걸 느꼈다. 말하자면, 서랍을 빼꼼 열고 구석구석 정리하던 걸, 완전히 꺼내 쏟아놓고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 넣는 기분이랄까.
“다 인연법 따라 찾아온 일일 겁니다. 사람들은 이승에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전생에 맺어온 이승에서 인연을 하나씩 풀어가는 게 아닐까요?”
연기법까지 이어진 그날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그리운 시간이다.
부탄의 호텔은 방갈로처럼 한 채씩 띄엄띄엄 지어진 흙집이었다. 나 혼자 차지한 숙소에서 들꽃을 꺾어 빈 병에 꽂아놓고 천천히 흐르는 하늘의 구름을 보는데, 이게 진정한 여행이지 싶었다.
이후 인도에 두 번 더 다녀왔다. 달라이 라마 존자를 세 번 친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껏 일관된 생각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것, 행복이든 괴로움이든 물질이든 마음이든 인연법 따라 왔으며 또 지나갈 것이다.
새벽예불 시각에 잠시라도 꿇어앉는 시간이 평화롭다. 날마다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
“기도는 내게 뭘 이루어주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생겨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더라.”
이후 닥친 어려운 일도 순연히 풀어냈으니 나름대로 자신 있게 한 대답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꿈을 꾼 뒤, 뜻밖의 수상 소식을 들었다. 내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던 문학상이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부터 흘러 흘러 인연법은 어디까지 가는 걸까.
/ 백승자 동화작가
출처 : 불교평론